● 김 혁 (재중동포 소설가)

요즘들어 배가 화두다. 만경창파를 누벼야할 배가 어쩌구려 사람들의 눈물 속에 스미고, 가슴패기를 짓누르고 있다. 요즘처럼 배가 사람들에게 회자된적은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수년 내내 눈물 위로 떠다니는 배는 '세월호'일 것이다.
3년전,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 300여명의 애닯은 청춘을 수장(水葬)시킨 비정의 “세월호”. 그 미수습자 신원의 발견과 확인에 온 세간의 젖은 눈길이 오늘도 모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바다에서 일어난 해난사고들 중 두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낸 사고에 조선족 한금희(녀, 37)씨와 리도남(남, 38)씨도 조난당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동질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세월호 중국인 사망자를 비하하는 글을 올린 혐의(형법상 모욕)로 권모(당시 27세 ·무직)씨가 불구속 입건되는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했다. 권씨는 인터넷 한 사이트의 게시판에 '실종자 중 조선족 2마리가 있다는데, XX버리고 학생들이 살아났으면 좋겠다'란 글을 올려 중국인 실종자를 모욕한 혐의로 입건되였다.
또한 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이 막을 올려 화제다.
선상 반란 사건 '페스카마호' 실화를 담은 문제작 연극 '페스카마-고기잡이 배'가 대통령의 취임 이튿날인 10일 막을 올렸다.
연극 '페스카마- 고기잡이 배'는 1996년 8월 남태평양에서 조업중이던 원양어선 페스카마15호에서 일어난 선상(船上) 반란 사건을 다룬다.

1996년 여름. 남태평양.
참치잡이배 “페스카마호”에 오른 승선경험이 전무한 조선족선원들은 수차례 작업설명을 해도 손이 느리고 서툴러 갑판장과 갑원에게 구타를 당한다.
한국선원들은 조업 실패를 조선족선원들의 탓으로 돌리며 더욱 심한 폭력을 행사하고 조선족선원들은 비인간적인 처우에도 한국 배에 타기 위해 맡겨놓은 거액의 보증금 때문에 협조하지 않으면 하선시키겠다는 선장의 말에 굴복하고 작업에 림한다.
평소의 열배나 많은 참치가 낚시에 달려 올라온다. 태풍이 예고된 상태에서 선장까지 갑판에 내려와 작업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 조선족 선원이 낚시에 걸린 참다랑어 한 마리를 바다에 떨어뜨린다. 이에 격분한 선장이 조선족 선원을 구타하자 맞은 선원도 선장의 뺨을 때리는 일이 벌어진다. 순식간에 칼과 흉기를 든 한국선원과 조선족 선원들이 갑판에서 대치하는데 나이가 많은 기관장이 중재하여 사태를 수습한다.
분을 삭이지 못한 선장이 조선족 선원 전원을 강제 하선시키기로 통보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선족 선원들은 선장에게 찾아가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빌지만 오히려 선장으로부터 강제하선은 물론이고 선상란동으로 형사고발조치를 하고 조업 손실금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청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한다.
실의에 빠진 조선족 선원들은 한국인 선원들을 차례로 살해한다...

이 연극이 주목을 모은것은 제38회 서울연극제 공식 작품으로 선정된 작품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다룬 소재에도 있겠지만, 금방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시절에 변론을 맡았던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당시, 이 사건의 조선족 선원 6명의 변론을 맡아 화제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일각에서는 당시 문재인이 조선족 인권을 자국민에 우선시했다며 비난하면서 “문재인의 '아킬레스건'”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족들의 선상 반란 사건에서 한국인 선원 7명, 조선족 선원 1명, 인도 네시아 선원 3명 등 11명이 숨졌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범인들은 칼과 도끼로 피해자들을 무자비하게 란자(亂刺)하고 찍었으며 저항력이 없는 환자를 산채로 바다에 내던져 죽이기도 했다.법원은 1심에서 해상 강도살인 및 시체유기 등 혐의로 전원 사형을 선고했다가 항소심에서 주범을 제외한 5명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후 주범인 전재천 씨는 2007년 12월31일 로무현 정부 말기 특별사면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연극은 비극적인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인간의 권리”에 대한 많은 담론과 정서를 만들어 내는 한편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몸부림쳤던 조선족 선원들의 비극을 보여준다. 모두를 경악케 했고 가슴아프게 했던 이 사건은 이데올로기의 장벽에 불협화음으로 얼룩졌던 지난 90년대 중기를 다시 무대우에 소환한다.
20년전 한척의 배위에서 벌어진 연극과도 같은 이야기는 력사와 세월의 “만경창파”에서 한국과 민족적 동질성을 가졌던 이민자의 후예들이 만나는 과정을 서로 잘못 풀었던 시대적 “침몰”을 소급해 보여준다.
아픈 상처를 건드리며 동포 사이의 참극을 반추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상처자욱을 들여다 봐야 한다. 이 사건이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100여년 정착사에서 그 선례를 찾아볼 수 없고 한국과의 관계사에서 있을수 없는 끔찍한 비극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조선족 사망자를 비하하는 글을 올린 상기 사례에서도 보다싶이 조선족에 대한 몰리해, 비하와 질시는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비일비재한 악폐이다. 한국내 조선족 체류자가 70만을 넘기고있는 현재에도 선입견과 랭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불협화음의 상대로 전락된 조선족도 부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화급한 욕망으로 가족과 고향도 쉽게 내치고 스스로 "떠돌이자"를 자처한, 일그러진 “코리안 드림”의 허허실상에 대해 심각한 반추와 검토가 재다시 수요된다.
이렇게 서로의 소통과 화합과 상생의 장을 모색하지 않는 한, 페스카마호처럼 “어사망파”의 침몰선이 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장하는 수가 없다.
중한수교 25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이로부터 한국과 조선족이 모두 교훈을 얻고, 상처를 리성으로 치유하는 예시로 이 연극에 큰 의미를 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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