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지명과 연변지명(3)
《중국고금지명사전》(中国古今地名辞典) 기록에 의하면 두만강 명칭은 만주어 tumen sekiyen 한자로 图们色禽에서 유래 되었다고 적고 있다. 만주어 tumen sekiyen는 만 갈래 물줄기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이를 우리말로 즈믄 (천 혹은 많다의 고어) 샴치(함경도 방언 샘물)라고 풀이 하면 그 해석이 더욱 완벽하다. 수많은 샘물들이 두만강 양안에 모여 있는 까닭으로 이름이 붙여 진 것이다.
두만강 양안에는 말 그대로 샘물들이 하늘의 별처럼 널려 있어 한 겨울에도 많은 구간이 완전히 얼어붙지 않는다. 샘물 따라 물안개 보얗게 피는 곳엔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줄지어 들어 앉아 마을 지명들도 샘물둥지 샘물구파이 우물깨 약수동과 같이 다양하게 불러왔다. 그 가운데 두만강 가에 자리 잡은 삼합진에는 지명이 사물깨라는 동네가 있다. 옛날 이 마을에는 샘 줄기가 있는 바윗돌들이 군데군데 자리해 있어 여러 갈래 샘물들이 사시장철 마르지도 않고 바위 밑에서 솟아 나왔다. 사물깨 마을은 말 그대로 샘물이 주물러 자연 그대로 만들어 놓은 동네였다. 여기에서 사무깨란 말은 우물 샘 (새미)의 받침소리 리을(ㄹ)이 탈락한 것이고 깨는 함경도 방언에서 지점 장소를 뜻한다.
연변 동불사 소재지에서 북으로 십리길 들어가면 사수(泗水)촌이 나타난다. 작은 하천을 끼고 마을들이 이루어 졌으나 강물양이 적어 콧물처럼 흐른다 하여 콧물 사(泗)자를 사용해 지명이 유래 되였다는 설과 이 마을 우물들이 골고루 안물(함경도 방언 뽀얀 샘물)로 되여 콧물 사(泗)자를 사용해 지명이 유래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마을 노인들은 가뭄에도 마루지도 않고 뽀얀 우물이 시원하게 솟아나는데 한여름에도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약수 물이었다고 한다.
한국 경상남도 서남부에 사천시(泗川市)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역사를 거슬러 사천시 지명을 뒤적여 보면 조선 태종 때에 사천(泗川)현으로 고려 때에 사주(泗州)로 신라 때 사물현(史勿縣)이였던 명칭을 경덕왕이 사수(泗水)현으로 개명 한 것으로 기록 되여 있다. 사실상 사천시의 최초의 지명을 따지고 보면 사물현(史勿縣)으로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중국 연변 지명과 한국 지명을 바탕으로 사물(史勿)이란 이 지명을 꼼꼼히 캐고 보면 결국 샘물(泉)이란 뜻을 지닌 동음차자(同音借字)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사물(史勿)은 원래 샘물을 뜻하는 우리 말 <<샴 /새미 >>에 대한 한자음으로의 소리 옮김이고 사수(泗水)는 그것에 대한 뜻 옮김이다. 샘물들이 흘러 내를 이루고 또 내가 흘러 강물이 되므로 샘의 뜻을 지닌 사물(史勿)이란 지명이 사천(泗川) 지명으로 이어 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실마리로 삼아 유사한 地名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추정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연변 부처골 용진마을 사물깨, 북한 장진호 연안 지명 사수(泗水), 전라도 만경강 옛 명칭 사수강(泗水江) 등 지명들도 이런 맥락에서 해독 할 수 있다. 거기에 아득히 먼 고구려 지명 사물택(沙勿泽)과 인명 위사물(位沙勿)도 이와 같은 흐름으로 풀이하여 나갈 수 있다. 여기에서 사(沙)는 사(史)로 바뀌어 졌으나 사(史)와 사(沙)는 같은 음독(音讀)으로서 물(勿)과 함께 묶어 놓고 보면 사물(沙勿)은 샘물을 뜻하는 소리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글누림에서 출판한<<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에서 화룡에 있는 쓰렁바이 지명을 쓰렁바위로 착각하여 四人岩 四棱岩으로 새기고 인근 옥천동 지명을 충청도 옥천군 옥천동에서 따온 지명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허나 사실 쓰렁바이 지명은 만주어 seri 샘물과 ba 장소를 나타내는 의미로서 샘물터라는 뜻 이다. 옥천동 지명도 샘물로 이름난 이 고장 쓰렁바이 지명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해야 정학한 것이다. 한국어 샘과 만주어 seri는 비슷한 음을 띠고 있다. 한자 표기 된 지명은 사실 이런 의미를 연결시키는 고리 구실을 하고 있다. 지명을 올바르게 해독하려면 이런 한자 지명 속에 구겨 넣은 최초의 말소리를 정확히 찾아 끄집어내야 한다.
연변 지역은 고대로부터 동북아 역사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 왔으며 발해시기에 들어와 도성이 자리 잡을 만큼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학계에서는 기존 고고학적 기록과 유적에 매달려 조사하고 있을 뿐 이 지역에서 오래 동안 이어온 고유의 문화 이를테면 지명과 방언에 대한 연구는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실정이다. 거기에 많은 마을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현지에 살던 토박이 노인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가고 있는 오늘날 이에 대한 조사사업은 시급하게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옛날에사 대촌이었지. 인자 성 쌓고 남은 노인들만 남아. 이래가지고 동네가 우찌 될견지 농촌 다 망하는 게라이.」 연로한 할아버지의 한숨석인 독백, 오늘의 연변 농촌 마을에서 가끔 듣게 되는 말들이다.
글 : 허성운
ⓒ 동포투데이 & www.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엇갈린 시선, 닿지 않는 마음 — 한중 젊은 세대의 온도차
● 허 훈 최근 한국에서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가 중국 온라인 공간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 청년층의 다수가 중국을 ‘가장 비호감 가는 국가’ 중 하나로 꼽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수치는 마치 이웃이 적의를 품고 노려보는데도, 정작 당사자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기묘한 장면처럼 ... -
왜 예술인에게 ‘재교육’이 필요한가?
6월의 비는 쉼과 시작 사이를 적신다. 벌써 반년이 지나고, 빗소리는 지나온 시간에 안부를 전하듯 마음을 두드린다. 그리고 지금, 그 빗줄기처럼 우리에게 용기를 속삭인다. ‘다시 시작하라, 다시 배움에 도전하라’ 라고... 무용, 음악, 미술, 연극, 뮤지컬 등, 예술을 전공한 수많은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 -
“나도 드라마 속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다”
● 허 훈 가난한 사람을 다루는 드라마를 네 나라, 한국·미국·중국·일본의 작품을 함께 놓고 본다면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네 나라 중 유독 한 곳만, 가난이 너무도 ‘예쁘게’ 포장돼 있다. 바로 중국이다. 요즘 중국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미드·한드·일드나 본다”는 말이 유행처럼 ... -
“중국이 최대 피해자”?…美·伊 전쟁 프레임 뒤에 숨은 불안한 백악관
미국 언론이 “미국과 이란이 충돌할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중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테헤란의 폐허가 된 거리에서는 한 청년이 무너진 벽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있고, 제국에겐 최후통첩뿐이다.” 이 짧은 문장은, 대결 국면의 중심에서 중국을 지목하는 서방의 담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 -
디아스포라와 AI 시대, 한글교육의 도전과 과제
허 훈 | 칼럼니스트 “디아스포라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지난 6월 23일 서울 종이나라박물관에서 열린 ‘지구촌한글학교미래포럼’ 제10회 발표회에서 전후석 다큐멘터리 감독이 던진 이 말은 한글교육의 본질과 미래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표현이었다. 한글교육은 더 이상 단순한 문자 교육... -
역사 속 ‘신에 가까운’ 일곱 사람…제갈량도 5위 밖, 1위는 누구였을까
각 시대마다 역사 흐름을 바꾸는 탁월한 인물들이 등장해왔다. 이들은 그 지혜와 능력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불리며 사회와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다. <삼국연의>로 널리 알려진 제갈량은 이러한 인물 중 대표적으로 손꼽히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는 그조차도 ‘신인’ 순위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들...
NEWS TOP 5
실시간뉴스
-
중국인 아이돌의 한마디에 ‘집단 분노’… 한국 사회의 불안한 자화상
-
중국 축구, 끝없는 추락에 해체론 재점화
-
“감독만 바꾸면 나아질까”…中 축구, ‘20년 책임 전가’의 민낯
-
‘홍대 중국인 커플 폭행’, 언제까지 외국인 혐오에 눈 감을 것인가
-
“억제”의 환상, 전쟁의 불씨가 된 서태평양…수천만 생명 위협하는 핵 시나리오
-
디아스포라와 AI 시대, 한글교육의 도전과 과제
-
'축구 굴기'의 허상, 국가 통제 축구의 비극
-
“나도 드라마 속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중국이 최대 피해자”?…美·伊 전쟁 프레임 뒤에 숨은 불안한 백악관
-
엇갈린 시선, 닿지 않는 마음 — 한중 젊은 세대의 온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