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끌었던 주룽지(朱镕基) 전 국무원 총리가 12일 베이징에서 별세했다. 향년 98세.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는 이날 공동 부고를 통해 주 전 총리가 병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오전 11시 6분 숨졌다고 발표했다.
주룽지는 한국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통 총리다.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시기, 중국에서는 경제개혁과 금융안정을 진두지휘했다.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위안화 가치를 유지하고 내수를 확대하면서 중국 경제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1928년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난 그는 칭화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경제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후반 상하이 시장과 당서기를 맡으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상하이의 산업구조 개편과 대외개방을 추진했고, 이후 중국 경제성장의 상징으로 떠오른 푸둥 개발의 기반을 마련했다.
1991년 국무원 부총리에 오른 뒤에는 중국 경제의 과열과 물가 상승을 잡는 역할을 맡았다. 1993년 중국인민은행장까지 겸임하며 금융질서 정비와 거시경제 조정을 추진했다. 급격한 경기침체를 피하면서 과열을 진정시키는 이른바 경제 ‘연착륙’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 3월 국무원 총리에 취임하면서 그의 경제개혁은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와 국유기업 부실, 금융권 부실채권 등 만만치 않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주 전 총리는 국유기업 구조조정과 금융·재정 개혁, 정부조직 축소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경쟁력이 떨어진 국유기업을 정리하고 현대적 기업제도 도입을 확대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사회적 비용도 발생했지만, 실업보험과 최저생활보장, 재취업 지원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정책도 함께 추진됐다.
주택제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직장이 주택을 배분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이 주택을 구매하는 시장 중심 체제로 전환하면서 오늘날 중국 부동산 시장이 형성되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
그의 재임 기간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이다. 오랜 협상 끝에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세계시장과의 연결은 급속도로 확대됐다. 외국 기업의 중국 투자가 늘고 중국산 제품의 해외 수출이 급증하면서 중국이 이른바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하는 길이 열렸다.
이 변화는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본격화되고 한중 간 교역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중국은 한국의 핵심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오늘날 긴밀하게 연결된 한중 산업·공급망 관계가 형성되는 데에도 당시 중국의 시장 개방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주 전 총리는 강한 추진력과 직설적인 화법으로도 유명했다. 금융 부실과 관료주의, 부정부패를 공개적으로 질타했고 어려운 개혁을 피하지 않는 경제 관료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2003년 3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공개적인 정치활동을 크게 줄였다.
주룽지가 중국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동시에 중국은 계획경제의 흔적을 빠르게 걷어내고 세계시장으로 진입했다.
주룽지가 주도한 국유기업·금융 개혁과 WTO 가입은 이후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 그의 별세로 중국 개혁·개방의 전환기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경제 지도자 한 명이 역사 속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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