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이 쿠바에 대한 제재를 대폭 강화하면서 유럽 기업들의 쿠바 철수가 잇따르고 있다. 관광·해운·물류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 축소가 확산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사실상 뚜렷한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월 쿠바 군부 계열 국영기업 집단인 GAESA와 관련된 기업 및 거래를 겨냥한 추가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들과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외국 기업들도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제재 적용 시한이 도래하면서 유럽 기업들은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스페인 호텔 체인과 독일 해운업체를 비롯한 다수의 유럽 기업들이 쿠바 사업을 축소하거나 운영 방식을 변경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신규 투자 계획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야는 관광산업이다. 스페인계 호텔 기업들은 수십 년 동안 쿠바의 주요 관광지에서 리조트와 호텔을 운영해 왔지만 최근 일부 시설에서 브랜드 운영을 중단하거나 관리 인력을 철수시키고 있다. 기업들은 공식적으로 지정학적 환경 변화와 사업 리스크 확대를 결정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운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유럽 주요 선사들은 쿠바 노선 운항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는 쿠바의 물류망과 수입 공급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번 조치가 단순히 쿠바 정부를 압박하는 수준을 넘어 유럽과 쿠바 사이에 형성된 경제 협력망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유럽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금융시스템 이용 제한과 자산 동결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제재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쿠바 경제에도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쿠바는 관광객 감소와 에너지 부족, 외화난, 반복되는 정전 사태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관광산업은 쿠바의 주요 외화 수입원으로 꼽히지만 최근 수년간 방문객 수가 감소세를 보이면서 회복 전망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추가 제재가 관광업에 집중되면서 쿠바 경제의 핵심 수입원인 서비스 산업 전반이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새로운 제재 체제가 쿠바를 국제 경제망에서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 유럽 각국 정부와 EU 차원의 대응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모습이다. 스페인과 독일 등은 자국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책을 검토하고 있지만, 미국과 정면 충돌하는 방식의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유럽 내부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미국의 역외 제재가 유럽 기업들의 경영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EU가 사실상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스페인 출신 유럽의회 의원 레이레 파힌은 "유럽은 자국 기업의 합법적 경제 활동과 전략적 자율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프랑스 출신 유럽의회 좌파 의원 레일라 샤이비는 한층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최근 쿠바 문제와 관련해 "유럽은 미국 앞에서 마치 강아지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EU가 미국의 압박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EU는 1990년대 미국의 대쿠바 제재에 맞서 이른바 '차단법(Block Statute)'을 도입하며 강경 대응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과의 갈등을 확대하기보다 외교적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에 무게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쿠바 압박이 장기화될 경우 유럽 기업들의 투자 위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쿠바 경제 역시 관광·물류·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추가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동시에 이번 사태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과 대미 관계의 현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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