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은 가격이 국제 금융시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2026년 1월 중순 기준 국제 은 가격은 온스당 9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말 대비 50일 만에 80% 넘게 상승했고, 2025년 초와 비교하면 누적 상승률은 190%에 달한다. 같은 기간 금 가격 상승률(약 75%)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로 인해 금과 은의 상대적 가치를 나타내는 금·은 비율은 50.57까지 하락하며 13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금·은 비율은 전통적으로 귀금속 시장의 국면 전환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돼 왔다. 일반적으로 은이 금보다 빠르게 오를 경우, 귀금속 강세장이 후반부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신호로 해석됐다.
제조업 지표와 ‘탈동조화’…기존 설명력 약화
과거 은 가격 급등은 대체로 제조업 경기 회복과 맞물려 나타났다. 경제 회복 → 제조업 PMI 상승 → 산업용 은 수요 확대 → 은 가격 급등 → 금·은 비율 하락이라는 경로가 반복됐다.
그러나 이번 국면에서는 이러한 공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제조업 PMI는 여전히 기준선인 50을 밑돌고 있지만, 금·은 비율은 이미 50선까지 내려왔다. 은 가격이 제조업 경기 회복이라는 전통적 설명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제조업의 글로벌 비중 축소와 영향력 약화, 신흥국 수요 확대, 지정학적 긴장 심화 등 구조적 변화가 귀금속 가격 결정 요인을 바꾸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금·은 비율이 더 이상 미국 제조업 사이클에만 연동되지 않는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산업재로서 은의 부상…전략 자원 성격 강화
은은 최근 귀금속을 넘어 산업·전략 자원으로서의 성격이 뚜렷해지고 있다. 은은 모든 금속 가운데 전기 전도성이 가장 높아 태양광 패널, 전기차,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장비, 로봇,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산업 전반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태양광 산업은 최근 몇 년간 은 수요 확대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산업용 수요는 전체 은 수요의 약 60%를 차지하며, 귀금속 가격을 좌우하는 구조적 변수로 부상했다. 시장에서는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은의 전략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 급등의 직접적 요인, ‘현물 재고 부족’
이번 은 가격 급등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현물 재고 부족이 지목된다. 2025년 이후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은 확보 경쟁이 벌어졌고, 지역 간 재고 이동과 차익 거래가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한때 유럽 지역 재고가 급감하고 북미 재고가 급증하는 등 재고 왜곡 현상이 나타났다. 이후 일부 재고가 회복됐지만, 실제로 시장에서 즉시 인도 가능한 물량은 제한적인 상황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여기에 상장지수펀드(ETF)에 묶인 물량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가용 재고는 더욱 줄어든다.
공급 측면에서도 글로벌 은 생산량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 반면 태양광, 전기차, AI 산업 확산으로 수요는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단기간 내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강세장 말미인가, 중반 국면인가
현재 금·은 비율은 13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금·은 비율이 급락한 이후 은 가격이 큰 폭의 조정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은 가격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급격한 가격 조정이 나타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만 이번 흐름을 단순한 과열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국면을 1970년대와 유사한 장기 귀금속 강세장의 연장선으로 해석한다. 당시에도 고물가, 탈세계화, 달러 신뢰 약화가 동시에 나타나며 귀금속 가격이 장기간 상승했고, 은은 금보다 더 큰 변동성을 보이며 후행적으로 급등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은 가격 급등이 귀금속 강세장의 말미를 알리는 신호인지, 아니면 아직 상승 추세의 중반 국면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향후 금·은 비율은 과거 고점 구간에서 벗어나 40~80 범위에서 등락하는 새로운 중추 구간에 진입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제경제적 시사점
이번 은 가격 급등은 단순한 귀금속 시장 이슈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에너지 전환, 달러 신뢰 변화 등 국제경제 전반과 맞물려 있다. 전문가들은 은 가격이 단기적으로는 높은 변동성을 보이겠지만, 구조적 수요 확대와 제한된 공급 여건이 유지되는 한 중장기 흐름 자체가 쉽게 꺾이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통화정책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주요국의 산업·무역 정책은 향후 은 가격과 귀금속 시장 전반의 방향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국제 금융시장은 은 가격의 급등이 일시적 과열에 그칠지, 새로운 구조적 국면의 신호가 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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