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과 더부러 새롭게 인식되는 역사, 그제날 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들

■김철균
임표(林彪)와 조선인 장병
임표(林彪)라 하면 일종 전기적 색채를 띠는 유명한 중국의 군사전략가이다. 지난 세기 50연대 중국 중앙군사위에서 중국군 직함을 수여할 때 임표는 중국의 10대 원수중 주덕과 팽덕회 다음으로 서열 3번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다.
임표는 일찍 항전시기 유명한 평형관 전투를 직접 지휘하여 팔로군의 대일작전에서의 첫승을 올렸으며 1948년 11월에는 동북인민해방군을 인솔하여 중국의 가장 큰 3대 전역중의 하나이며 또한 이 3대 전역중의 첫 전역인 요심전역을 승리로 장식한 천재적 군사가이다. 당시 요심전역의 승리로 인해 중국전장의 국공 양군의 군사적 위치는 판도가 선명해졌으며 관내에서 작전하는 공산당군한테 대단히 유리한 형세가 조성되었다.
나의 아버지로 말하면 바로 임표가 통솔하는 동북인민해방군 제10종대에서 근무했다.
아버지에 따르면 요심전역에서 임표는 동북인민해방군내의 조선인 장병들에 대해 크게 신뢰하게 되었고 이 장병들을 관건적인 전투에 잘 활용하였다고 한다.
“임표가 조선인을 좋아하고 관건적인 전투에 곧잘 투입한 것은 두가지 생각으로 결정된 것으로 짐작된다. 하나는 한족이 아닌 조선인을 대포밥이나 총알받이로 이용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인 부대가 아니면 진지를 지켜 내거나 목표물을 공략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확실한 건 없다.”
이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나한테 들려준 얘기이다.
그렇다면 임표가 조선인부대를 시험대에 올린 것은 요심전역의 관건전투의 하나인 금주해방전투와 흑산, 대호산 저격전에 배치할 때부터였다. 당시 유아루(刘亚楼 ㅡ 동북인민해방군 참모장)를 비롯한 많은 지휘관들은 조선인부대를 관건전투에 투입하는데 잘 동의하지 않았다. 조선인부대가 중국혁명에 대해 정서적으로 견결하지 못하기에 즉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임표는 “아니야, 조선인은 비교적 단순해. 중국인과는 달라”란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역시 지금은 증명할 방법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냥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결과 당시 금주해방전투에서 조선인부대는 금주외곽성을 공략하는 혈로를 개척하는 임무를 맡고 놀랄만한 용맹을 과시하였다. 그리고 흑산저격전에서는 아군과는 6배에 달하는 국민당군의 무차별한 진공을 한차례, 또 한차례씩 물리치면서 끝내 진지를 지켜냈다. 그 때 조선인 군인중에는 적의 진공을 물리친 뒤에야 자신의 팔 하나가 오간데 없게 된 것을 알게 된 군인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거짓말 같은 진실이다.
여하튼 요심전역에서 조선인 군인들의 시험대에 올리면서 “단맛”을 본 임표는 그 위에 있은 관건적인 진공시마다 조선족 부대를 선두에 내세우군 했다. 예하면 천진해방전투에는 조선인퇀을 혈로개척에 내세워 전투개시 24시간만에 전반 천진을 해방하게 하였고 무한에서의 장강도하작전에도 조선인부대를 선봉으로 내세웠다. 그덕에 나의 아버지도 돛배의 선수에서 기관총수로 아군의 돌격을 엄호, 숱한 국민당군을 쓸어눕혔다고 한다.
그 뒤 역시 상서에서의 토비숙청시 난공불락의 토비소굴들을 우회작전과 기습 등으로 소탕해버린 것도 조선인부대였고 해남도 해방전역시 뇌주반도에서 해남도로 건너갈 때 돛배에 포를 싣고 국민당의 군함과 맞다들어 군함을 격퇴시킨 부대도 조선인부대였다.
현재 많은 군사평론가들은 중국 국내전쟁시기의 조선인 부대에 대해 여러 가지로 평가하고 있다. 그 중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건 조선인 부대가 확실히 용맹하고 싸움에서의 능수라는 것이다. 하다면 당시 임표가 조선인 부대를 믿어준 것(?)도 의문스럽고 나의 아버지 역시 썩 후에 이 말을 나한테 들려준 것도 어딘가 짚이는데가 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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