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천만이 넘어 사는 도시 서울의 삶은 여러모로 답답했는데 올해의 봄은 더욱 답답하기 그지없다. 설을 쇠고 나면 새해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하는데 2월 초부터 모든 행사와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어 우리에 갇힌 동물과 같다.
나의 주업은 신문발행이고 ‘부업(副業)’으로서 강연 다니고 세미나를 조직하고 다른 기관에서 마련한 세미나에 발제나 토론자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내가 대표를 맡은 ‘多가치포럼’은 2020년 첫 행사로 본래 ‘3.8 여성의 날’을 맞아 조선족, 새터민, 고려인, 한국인 여성들이 모여 세미나를 개최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역시 취소되었다. 이외 ‘부업’이 또 있다. 서울시청을 비롯해 여러 관공서 회의에 참석하고 법무부회의도 참석한다. 가끔 작품 심사, 언어발표 심사, 기관 직원 채용 심사도 맡아본다. 법무부 제1기 이민자 맨토단 멘토로 합격되어 본래 2월 27일 법무부 장관 위촉장을 받고 사회통합프로그램과 조기적응프로그램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4월 22일 회의를 개최한다는 공지가 있긴 한데 그때 가봐야 확실하다는 전제가 달려 있다. 할지 말지 아직 확실한 결론이 아니라는 말이다. 보름에 한 번씩 나가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독서모임도 취소되고 있어 어디도 나갈 곳이 없다.
설 쇠고 나서 나의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은 두 달 넘게 아무 메모도 없이 깨끗하다. ‘일 년 계획은 봄에 달렸다’는 속담이 있듯이 해마다 설을 쇠고 나면 사회가 온통 분주하다. 이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나의 달력도 왕년 같으면 한주 평균 두 개 정도 ‘행사’가 메모 되었었는데 올해는 전혀 메모가 없이 깨끗하다. 깨끗하다는 것은 아무 활동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활동’은 ‘부업(副業)’이고 나의 ‘부업(副業)’은 곧 나의 ‘부업(富業)’이다. ‘부업(副業)’이 없으니 ‘부업(富業)’도 따라서 사라졌다. 주머니가 늘어야 되는데 줄어들고 있다. 경제적인 손해도 손해거니와 두 달 넘어가니 정신적으로 지치고 슬슬 폐인이 되는 느낌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어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매일 매일 하루, 하루를 마치 중이 종치듯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옥이란 무엇이더냐? 단테는 <신곡>에서 “희망이 없고, 꿈이 없고, 비전이 없는 곳이 곧 지옥이다.”고 했다. 지금의 나의 삶이 어쩌면 지옥일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이 어렵고 힘든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지방에 3박4일쯤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부담 없이 한가한 며칠을 보내면 나아질 것 같았다. 왕년 같으면 이때쯤이면 거의 주말마다 지방 관광지를 부지런히 돌아다녔을 터인데 올해는 관관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태가 사태인지라 괜히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까봐 걱정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인내성이 한계가 있는 법이다. 도무지 안 되겠다싶어 지난주에 대한민국에서 청정지역인 완도로 가기로 맘먹었다. 한국 관광지들은 중국처럼 스케일이 크지 않고 일본처럼 정교하지도 못하지만 나름대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아 구경할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떠나는 김에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먼 곳 중에 부산, 포항, 경주 등 경상도 지역에는 여러 차례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전라도로 가기로 했다. 전라도 중에 찾다보니 가장 먼 곳이 완도였다. 여수도 멀기는 하지만 수년 전 ‘여수엑스포’ 때 가보았기 때문에 완도를 택했다. 완도에서 1박, 목포에서 1박, 땅끝 마을 해남에서 1박하기로 스케줄을 짰다. 완도는 서울에서 440킬로미터 거리다. 서해안 고속도로 타면 330킬로쯤 직진이어서 운전하기 편하다. 목포에 거의 도착할 지점에서 해남으로 빠져나가는 국도를 타고 에돌아 100킬로쯤 더 간다.
가는 날 장날이라고 날씨를 잘 선택한 탓인지, 타고난 운이 좋은 건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정했고 바람 한 점 없이 제법 훌륭한 봄날이었다. 도중에 개나리도 피고 목련도 피고 버들가지들이 뾰족뾰족 싹을 내미는 것을 구경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200킬로쯤 달린 지점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벌판을 만나 가슴이 확 뚫린 느낌이었다. 경상도 쪽에 여러 번 운전하고 다녀 봐도 김제 벌처럼 넓은 벌을 보지 못했다. 충청도도 마찬가지 넓은 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북쪽 강원도에 가면 가는 도중에 산이 너무 많아 터널을 수없이 만난다.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 지역에 들어서면 터널이 별로 없다. 나는 터널이 2킬로 넘으면 공포증이 생겨나 운전에 지장이 있다. 전라도에 터널이 매우 적고 있다 해도 길이가 짧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래저래 여러 가지 환경이 좋아 440킬로 먼 길이지만 운전을 신나게 할 수 있었다. 완도 목적지 앞두고 30킬로 지점에서 방역검사가 한 차례 있었다. 일행이 네 사람 모두 정상 체온이어서 무사히 통과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완도타워였다. 오후 2시경이었다. 기분 좋게 갔건만 정작 도착해서 기분이 이상해났다. 주차장에 차가 몇 대 없지 않는가. 타워 올라가는 길에 한 사람도 왕래하는 길손이 없다. 타워 앞에 올라가니 관광객이란 우리 일행뿐이었다. 타워 정상에 올라가면 전체 완도풍경이 한눈에 안겨올 것 같은데 문은 굳게 닫혀 있어 올라갈 수가 없었다. 갔던 김에 샤터를 눌러 기념으로 남기는 수밖에 없었다. 사진이나마 다녀왔다는 흔적이기 때문에. 정상에 올라갈 수가 없으니 더 구경할 멋이 없어 시간도 매우 단축되어 발길을 장보고 기념관으로 돌렸다. 장보고 기념관도 굳게 닫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신라 때 한반도 완도에서 출발하여 중국에로 일본에로 해상무역으로 명성을 휘날린 해상왕 장보고를 만나자던 기대가 다 사라져버렸다. 대충 말 타고 꽃구경, 변두리를 돌다가 사진이나 몇 장 찍고 떠났다. 역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시간이 단축되었다.
이번에는 완도수목원으로 가기로 했다. 설마 수목원은 닫지 않았겠지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 갔건만 역시나 문이 닫혀 있어 몹시 썰렁했다. 바닷가에서 신선한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서성이다가 저녁이나 일찍 먹기로 했다. 보는 재미가 없으면 먹는 재미라도 즐겨야지. 완도읍에 전복거리가 있다. 전라남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전복전문음식점에 들어갔다.
“이 어려운 시국에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더분하고 푼더분해 보이는 매너 좋은 주인의 인사말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 큰 음식점이 썰렁했다. 단체모임 손님 20명 있어도 워낙 큰 장소라 기분을 채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아무튼 조용한 분위기에서 저녁을 먹었다. 본래 음식은 기다려서 먹더라도 사람이 문정성시를 이루는 가게에서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 시국에 문전성시는 한 물 건너간 얘기가 아닌가.
저녁 메뉴는 전복집이라 전복풀코스 요리였다. 일인당 5만원, 좀 비싸기는 하지만 ‘싼 것은 좋은 물건이 아니고 좋은 물건은 절대 싸지 않다.’는 중국속담이 있듯이 음식가치가 그만큼 풍부했다.
작년부터 터득한 것인데 지방에 관광 가면 호텔에 묵지 않고 한옥단지에 묵는 것이 나름대로 좋았다. 작년 8월 중순 고열 때 정선 한옥마을에 묵었는데 앞에는 계곡이고 뒤에는 산이어서 경치가 좋을뿐더러 너무 시원하다 못해 조금 추워서 잠잘 때 이불을 덮고 잔 기억이 있다. 피서를 제대로 하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청해진한옥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앞에는 완도 바다가 눈에 안겨오고 뒤에는 역시 산이다. 한옥은 여럿이 가면 잠자기도 편하고 음식도 해 먹을 수 있고 밖에서 바비큐도 해서 먹을 수 있고 불고기도 해 먹을 수 있어 그 재미가 쏠쏠하다.
이튿날 아침 청해진포구 촬영지를 가보기로 했다. 역시 문을 닫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으나 가보지도 않고 미리 예단하고 포기하는 행위는 후회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고 설마 설마하면서 찾아갔는데 우리 일행의 성의를 알았는지 문이 열려 있었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이곳마저 닫혀 있었으면 진짜 이번 완도여행은 추억을 남길 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관광은 6대 요소로 이뤄진다. 중국식대로 말하자면 먹는 것(吃)이 첫 자리이고 잠자는 것(住), 이동하는 것(行), 관광지 구경하는 것(遊), 토산품(기념품)을 구매하는 것(購), 오락 구경하는 것(娛)의 순서이다.
이 6대 요소 중에서 일단 대한민국에서 귀한 음식으로 취급하는 전복을 먹었으니 괜찮은 편이고, 경치 놓은 한옥에서 잠을 잤으니 역시 합격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른 것은 말짱 꽝이었다. 그리고 먹는 것과 자는 것은 다른 지방에 가도 거기서 그것이기 때문에 손바닥 만한 한국 내에서는 별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관건은 관광지 구경이다. 어느 지역이든 어디를 가던 똑 같은 음식과 똑 같은 숙소는 흔하지만 똑 같은 관광지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여행에 있어서는 관광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이번 완도 여행에서 관광지(청해진포구 촬영지 제외하고)가 모두 닫혀 있어 관광의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 한마디로 실패한 여행이었다.
목포에 가려다가 그곳도 역시 관광지가 모두 닫혀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다 도망가 버렸다. 해남도 마찬가지. 아무 의미도 없는 여행을 억지로 돌아다닐 필요가 없지 않는가. 그래서 3박4일로 잡은 여행이 1박 만에 끝나고 이튿날 청해진포구 촬영지에서 직접 가리봉을 찍고 돌아와 버렸다.
완도는 3월 말이면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왕년 같으면 미리 숙소를 예약하지 않으면 잠자리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올해는 숙소도 텅 비어 있었다.
겨울이 가고나면 어김없이 기온이 따뜻해지고 봄이 온다. 들에는 뭇꽃들이 만발하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 이 곳 완도도 틀림없이 자연은 봄이 왔다. 그런데 봄이 왔는데 봄이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말이 있다. 완도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자연에 맞춰 인간사회에도 봄이 와서 북적대야 하는데 그놈의 코로나19 때문에 이르는 곳마다 적막감에 휩싸여 있어 봄은 봄이 아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수년 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생각난다. 미국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1961년 지은 <침묵의 봄(2011년 김은령 역 에코리브르 출간)>이다.
동양인들은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대충 꽃, 아지랑이, 제비 등등이다. 미국인들은 봄에 대해 동양인에 비해 다른 문화적인 패턴이 있는데 그것은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곧 새의 지저귐이라고 한다. 해마다 봄이 오면 새들이 기가 차게 시끄러울 정도로 지저귀였는데 어느 해인가. 새들이 도시 거리에 죽음으로 나타나고 쥐들도 죽어서 거리에 널려 있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그 해부터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가 지저귀지 않으니 봄은 침묵했다.
저자는 새의 지저귐이 사라진 이유는 지구온난화에 의해 생태계가 파괴되어 새들의 먹을거리가 사라졌기 때문이고 인류가 화학비료를 생산하고 사용함에 따라 다수의 생물들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일례로 북미 지역에서만 참새가 35억 마리 죽었으니 봄을 알리는 지저귐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새의 지저귐이 사라진 것을 ‘침묵의 봄’으로 표현한다면 이번 봄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활동이 사라진 것도 역시 ‘침묵의 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이와 비슷한 바이러스 때문에 봄이 오면 봄 같지 않은 봄, 즉 ‘침묵의 봄’이 또 올까 두렵다.
필자/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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