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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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의눈물 딸기찹쌀떡사건 국민까지 뒤통수
    1. 일본인 스승 다카다 쿠니오씨에게서 배워온 기술 김씨는 2월 11일 인터뷰에서 “제가 그냥 일어사전 하나들고 선생님을 찾아 갔죠. 선생님 일하시는 데 옆에 쭈그려 앉아 가지고 허락 하실 때까지 일주일이던 5일이던 계속 허락을 맡은 거예요.” 이어 “제자로 받아주신 건 그 때부터”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스승 다카다 쿠니오씨를 “올해 1월에도 선생님을 찾아 뵙고 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카다 쿠니오씨의 실명을 언급하며 이를 매장 홍보에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다카다 쿠니오씨와 인터뷰 내용 하지만 다카다 쿠니오씨는 2월 1일 일본 현지 인터뷰에서 “김씨를 제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3번 만난 것이 전부이다. 나는 과일찹쌀떡의 장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카다 쿠니오씨는 김씨를 만난 것은 “MBC 시사매거진 2580촬영 당시인 2013년 여름이 마지막이었다.”고 주장하며 그 후 한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다카다 “한국에서 김씨가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영리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법적대응을 고려하겠다.”고 주장했다. 2. 대기업과 조폭에게 희생 김씨는 2월 11일 인터뷰에서 “(안씨가) 서울대 출신이라서 자기 인맥들이 있겠죠.”라며 “서울대 인맥, 뒤에 봐주는 사람들 화려하거든요. 끝까지 올라가면 유명 IT업체 이OO씨까지 올라가요.”라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조직폭력배의 협박을 당했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조폭 관여했다고 본인(안씨)이 검찰 앞에서 인정 했다.”라고 전하며 안씨가 조폭을 동원하여 자신을 협박했다는 기존의 주장을 확고히 했다. 이어 김씨는 “M방송국 J기자님 말씀으로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검찰 관련 수사관을 안씨가 외부에서 계속 만났었다. 자기 인맥을 통해서 작업해놓은 건데 증거자료는 없다.”라고 말했다며 안씨의 검찰접대의혹을 제기했다. ▲법원의 범죄사실 내용 중 일부, 피고인=김씨 하지만 검찰조사 이후 2014년 4월 서울지방법원의 범죄사실에는 ‘조폭과 대기업이 관여하지 않았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법원의 판단이 잘 못 된 모양세가 된다. 3. 돌려받지 못 한 투자금 김씨는 투자금에 대해 “투자금 6900만원을 다 날렸다.“라고 말했고, 이어 ”(안씨가) 손해배상 청구해라. 돈 못 준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2013년 안씨에게 “네(안씨)가 명동가게 갖던 말든 상관안하고 투자금만 돌려달라.”라고 말했지만 “그것도 안돌려주더라고요”라며 자신이 2015년 2월 현재까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업자 계약서에는 4900만원을 투자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실제 김씨의 투자금은 3900만원으로 이 또한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는 김씨의 주장과 달리 2013년 10월 21일 전액 돌려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3년 여름 갑의 횡포에 의해 희생된 젊은 청년의 억울한 사연이 사회적으로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젊은 청년의 주장만을 근거하여 여론은 동업자를 매도했다. 하지만 청년의 주장처럼 사건에 개입된 대기업과 조폭은 없었고, 청년에게 기술을 전수한 일본 스승은 없었다. 2015년 현재 안씨는 준비 중이던 사업이 모두 중단된 채 대인기피증 증세를 보이며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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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7
  • 서경덕 교수, 교토 재일동포 마을에 '다국어 지도' 제공
    ▲한국어,일본어,중국어,영어 등 4개국어로 된 히가시쿠죠 마을지도 ▲히가시쿠죠 마을지도를 들고 있는 서경덕 교수 [동포투데이] 다가오는 삼일절을 맞아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일본 교토의 재일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히가시쿠죠'의 마을지도를 만드는데 후원을 했다고 27일 밝혔다. 교토 '히가시쿠죠'는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차별의 상징이자 격리의 공간이었으나 힘겨운 시절을 이겨낸 재일조선인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의 장소이자 공생의 마을로 점차 변화 중인 곳이다. 이번 일을 후원한 서 교수는 "지난 10여년간 일본의 주요 도시 20여곳을 직접 다니며 나라를 떠나 타국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삶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대해 그는 "이런 재일동포 마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늘 고민을 해 오다가 2년전에 '히가시쿠죠'를 소개 받았고 그 지역 재일동포 어르신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후 가장 필요로 한다는 지도제작에 후원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함께 일을 추진한 프레임아웃쟈팡 김응주 부대표는 "매년 11월에는 '히가시쿠죠 마당 축제'가 열리는데 재일동포들과 주변 일본인들이 '다문화 공생'이라는 주제로 어우러지는 것을 보고 다국어 마을지도가 이 마을에 큰 활력소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번 마을지도에는 히가시쿠죠의 재일동포가 직접 운영하는 식당, 상점, 공공시설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특히 '다문화 공생'이라는 마을 컨셉에 맞게 일본인들의 상점도 함께 소개하여 한국어,일어,중국어,영어 등 4개국어로 제작됐다. 지도 제작은 마을 조직인 '히가시쿠죠 에리아 매니지먼트'에서 구청의 보조금을 받아 직접 디자인했고, 서 교수팀에서는 지도 제작비를 후원했다. 특히 이 마을지도는 야나기하라 은행기념 자료관과 지도에 표시된 각 점포에 비치되어 누구에게나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한편 서 교수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교토 히가시쿠죠 마을을 시작으로 일본 내 다른 주요 도시의 재일동포 마을에도 지도제작 후원을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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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7
  • 中 5년간 갇혀있던 24세 여자 네티즌에 의해 구조돼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2월 26일, 중국청년넷에 따르면 중국 허베이성 쇼간시 쇼창현 바이사진 진강촌(孝感市孝昌县白沙镇金港村)에서 24살 되는 여자애가 부모에 의해 5년간이나 페가로 된 방안에 갇혀있다 최근에야 네티즌들과 매체 그리고 사법부문 일군들의 도움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그녀의 구조에 도움을 주었던 한 네티즌에 따르면 짱치(张琪)라고 불리는 여자가 부모에 의해 페가로 된 낡은 집에 갇혀있다는 것을 알고 몇몇 네티즌과 매체 일군들이 수차 찾아갔지만 번마다 짱치 부모의 거절을 받았으며 후에 사법부문에서 참여해서야 이 여자애가 구조되게 되었다. 현재 이 여자애는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정신이나 지력상 장애가 있는지는 종합검진을 받아야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자애가 갇혀있던 방안)   (여자애가 갇혀있던 페가의 외경, 창문 자리는 벽돌로 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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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6
  • 中 샤먼 4종류 호적 낙착정책 조절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중국 푸젠성 샤먼(厦门)에서 4가지 종류의 호적 낙착정책을 조절하면서 예비부부 시민들이 앞당겨 결혼등록을 마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신문조간에 따르면 2월 25일, 춘제연휴의 첫 출근을 하는 날 샤먼시 정무센터와 스밍구(思明区), 후리구(湖里区) 등 구의 혼인등록처 앞마당에는 혼인등록을 하려는 예비부부 시민들로 길게 줄을 섰으며 이 중 정무센터 창구앞에는 1500명을 헤아리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알고 보니 오는 3월부터 샤먼시에서는 호적낙착정책을 조절, 앞으로 샤먼에 호적을 낙착하기가 점점 어렵게 되기 때문이었다. 전하는데 따르면 최근 샤먼시 정부 판공청에서는 “본 시 호적정책을 조절할데 관한 샤먼시 인민정부의 통지”를 발부, 오는 3월 1일부터 성년 자녀가 부모를 따라 샤먼에 입적하는 정책을 취소하는 등 4가지 종류의 호적정책을 조절, 동시에 부부 사이의 호적합류 등 4종류의 호적정책도 점점 저 제한될 방침이었다. 이상 4가지 종류의 호적낙착 정책조절 사항을을 구체적으로 보면 성년자녀가 부모한테 입적하는 것을 취소, 조부모(외조부모)가 손자/손녀(외손자/손녀)한테 입적하는 것을 취소하며, 미성년 손자/손녀(외손자/손녀)가 조부모(외조부모)한테 입적하는 것을 취소하고 며느리가 시댁에 입적하는 것을 취소하며 사위가 장인가정에 입적하는 것을 취소하는 것 등등이었다. 이를 두고 샤먼대학 경제연구센터의 루성룽(卢盛荣) 부교수는 “이는 도시병이 초래한 결과로서 최근 몇년간 샤먼 특히 섬도내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교통, 교육, 위생과 의료 등 방면에 커다란 압력을 조성하고 있기에 적시적으로 인구통제를 하지 않으면 전반 도시운영이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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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6
  • 과외촬영 취미로 석양 수놓는 할머니
    [동포투데이] “철도 할머니”라 불리는 이해숙 노인은 오늘도 붉은 촬영복 단장으로 84세 연령을 감추며 렌즈속에 담긴 작품을 정리하는 일과로 웃음 짓는다. 일찍1979년 연길기차역에서 정년 퇴직한 후 주민위의 서기직을 맡았고 지역사회의 치안주임 노인협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직장에서 다 하지 못한 기여를 가두사업에 바쳤다. 그러던 2005년의 어느날 카메라를 멘 몇몇 로인들이 노인협회 활동실을 찾아와 자기네들도 이 곳에 와 활동하자고 청구하자 이해숙은 쾌히 승낙하고 그들의 활동을 살폈다. 멋진 사진들을 내놓고 소감을 나누는 이들을 보며 할머니는 손녀가 일본으로부터 가져온 자그마한 카메라를 들고 촬영에 대한 미지의 세계를 추구하며 그 행렬에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카메라 뚜껑도 열줄 몰라 꺼꾸로 들고 찍으려 했고 첫 사진은 사람의 얼굴 절반을 찍기도 했었다. 이렇게 사진찍기를 배우며 촬영팀의 야외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하였고 젊은이들과 경쟁하며 부지런히 묘한 장면을 포착, 자신만의 안광으로 렌즈를 돌리던 끝에 드디어 2007년 제1회 연길시 “석양미컵” 촬영콩쿠르에서 3등상을 수여받게 되었다. 2009년9월, 연길시촬영가협회에서 훈춘에 가 취재할 때 모두들 연세가 많은 이해숙 할머니더러 거리가 멀고 산길이 험하니 가시지 말라고 말렸으나 노인은 앞장서 차에 올랐고 현장에서는 겨우 몇 사람밖에 오르지 못한 벼랑가에까지 올라 “6각석림 (六角石林) ”이라는 연변의 특이한 자연풍모를 찍어내였다. 2011년 화룡에서 펼쳐진 진달래축제에 참가하여 수십명이 함께 포착한 풍경에서 이해숙 노인이 찍은 “민족단결” 촬영작품이 3등의 영예를 따내였다. 또한 할머니는 사회복리원을 찾아가 노인들을 위문, 노인들에게 무려 200여장에 달하는 행복사진을 찍어 선물하기도 하였다. 한편 촬영팀에 참가하여 10년간 병원출입 한번도 하지 않아 의료카드의 돈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며 큰 돈 벌고 있다는 느낌을 향수하는 “철도할머니”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뿐이다. 즐겁게 샤타를 누르는 이할머니는 매양 사랑의 마음으로 들끓고 있다. 베푸는 느낌이 그토록 즐거워 자꾸 자꾸 주고 싶다는 할머니이다. 양로원의 노인들에게 한복만도 벌써10벌을 사서 선사하였고 치아 때문에 고생하는 빈곤 할머니를 억지로 데리고 가 틀이빨를 해넣어 드린 일, 난방주택개조 때 돈없어 창문을 바꾸지 못하는 극빈호들을 위해3000여위안이나 기부하여 전반 개조공사를 제때에 마무리하게 도와준 일, 돈을 대여 독거노인의 온수온돌을 고쳐드려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게 한 일, 이 외에도 김해연으로 하여금 대학공부를 마치고 지금 인민교원으로 사업하도록 도와준 일, 연변대학 촬영학부에 입학했지만 사진기도 갖추지 못한 김나 학생한테 카메라를 사주며 졸업 때까지 도와준 일… 이젠 어려운 노인들을 돕는 일이 이할머니의 습관처럼 되었다. 샤타를 누르며 석양을 빛내가는 이해숙 할머니의 사적은 2014년 4기 “민족화보”에도 멋지게 홍보되었다. 박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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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6
  • 中 신강서 교통사고로 22명 사망 38명 부상당해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신화망, 중앙CCTV등 현지 언론의 26일 보도에 따르면 24일 23시 27분경, 신강위글자차구 아킬고속도로 파초현 경내 3012노선에서 버스 한대가 옆으로 전복되면서 22명이 숨지고 38명이 부상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 현지 정부에서 부상자 구급에 전력하고 있으며 사고 원인은 계속 조사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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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6
  • 가수 송천, 中 호남위성TV 정월보름날 예능프로 사회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호남위성TV는 25일, 왕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정월 대보름날 저녁 즐거운 오락프로를 방송하며 사회자(MC)들로는 허지웅이 주도하는 여러 명의 유명 사회자들 외에 한국 인기그룹 f(x)의 팀장 송천(빅토리아)도 사회자팀에 합류하며 그녀는 “아름다운 신” 역을 맡는다고 선포했다고 경화시보가 26일 보도했다. 호남위성TV의 정월대보름날 예능프로에서 송천은 “아름다운 신”으로 분장해 사회를 맡지만 노래하고 춤추며 진행하는 패션쇼에도 도전한다. 비록 높은 무용실력을 갖고 있지만 노래하고 춤추며 패션쇼를 한다는 것은 송천에게는 처음 하는 일이다. 한편 송천은 1987년 2월 중국 산동성 청도에서 출생, 북경무용학원을 졸업하고 2007년 북경시 무용콩쿠르를 통해 한국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체결했으며 한국 스타 이중기, RAIN 등과 함께 광고촬영을 하는 등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2009년 송천은 정식으로 한국 (X)조합팀의 팀장으로 발탁되었으며 에프엑스 디지털 싱글 앨범 “라차타”를 냈다. 2010년부터 한국 TV프로에 자주 출연해 시청자들의 깊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연예·방송
    2015-02-26
  • [김혁 칼럼] 황제의 수라상
    ●김혁 (재중동포 소설가) 1 제60회 아카데미 수상작 “마지막 황제”가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다시 개봉되었다. 여기서 리마스터링이란 과거의 영상이나 음원을 디지털로 복원하여 화질과 음질을 향상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필름에 붙어 있는 먼지를 제거하고, 파일의 색과 음향을 보정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필름이 손상된 고전 영화는 복원 작업까지 더해진다. 대부분의 극장들이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돼 필름 영화는 아예 틀 수 없게 된 지금, 리마스터링은 문화재 보존의 차원과 초고화질 환경에 대한 콘텐츠 공급에 대한 차원의 작업으로 부상되고 있다. 2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생전에 집필한 자서전 “나의 전반생”을 바탕으로 이딸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에 의해 엄청난 제작비와 물량이 투입되여 제작된 영화는 1988년 제 6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색, 음악, 촬영 등 9개 부문을 대거 수상, “그저 놀랄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우리가 다신 볼 수 없는 역사드라마”, “강력하고, 장엄한 역사적인 전기영화” 등 엄청난 찬사 속에 불후의 명화로 손꼽힌다. 1906년, 청나라 최고의 권력자인 80세의 서태후는 병상에 누워있는 광서제 대신 광서제의 동생 순친왕의 아들인 네살의 푸이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준다. 장엄한 황제 즉위식조차 하나의 놀이로 밖에 여기지 않는 어린 푸이는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황제의 존호와 궁전 및 사유재산만 인정받은 채 퇴위하게 된다. 자금성에서 연금생활을 하며 푸이는 16살때 완용을 황후로, 문수를 후실로 맞아들인다. 1924년, 풍옥상의 군사혁명으로 푸이는 자금성에서조차 추방된다. 중국침략의 야욕에 찬 일제의 사촉으로1934년, 푸이는 세상의 반대와 비난을 무릅쓰고 만주국을 세우고 황제의 보좌에 오른다. 하지만 일본군의 조종하에 위만주국에서 그는 허울뿐인 “꼭두각시 황제”노릇을 한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이 되자 일본 탈출을 시도하던 푸이는 만주에 주둔한 쏘련군에 의해 포로가 되며 중국인 전범수용소에 갇힌다. 1959년, 특사령에 의해 10년의 형기를 마치고 수용소에서 나온 푸이는 평범한 공민이 되여 만년을 보낸다. 영화는 력사의 도도한 흐름아래 몰락해가는 왕조, 그속에 굴절된 인간의 삶과 영욕을 그리고 있다 3 영화에서는 푸이가 일제의 사촉하에 지금의 창춘에 허울뿐인 위만주국을 세우고 강덕황제로 등극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나온다. 그런 강덕황제에게 진상한 수라상의 쌀은 바로 간도지역에서 생산되었음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당시 두만강지역은 인적이 드문 “봉금”지역으로 관헌의 눈을 피해 황무지를 개간하는것은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이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사직전의 가난한 조선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월강하여 황무지를 개척하였다. 용정시 개산툰진의 하천평은 조선인들의 벼농사가 비교적 일찍 시작된곳이었다. 이 마을에 최학출이라 부르는30여세의 조선인 농꾼이 있었다. 최학출은 1917년 2월 18일 충청북도 청주군 학사면 원평리에서 태어났다. 재해로 살길이 막연하여 지자 1935년에 이곳으로 이사하여 왔다. 그때만 하여도 이 고장의 벼농사는 주로 산종을 했고 벼모이식을 조금씩 하는 정도여서 벼의 생산량이 많지 못했다. 최학출만은 전부 모내기를 할 타산으로 당지의 한냉한 기후조건에 비추어 대담하게 온상육모를 시험했다. 1941년 봄, 유리창문처럼 간이 문창을 짜서 백지를 붙이고 콩기름을 발라 양광이 잘 들어가도록 투명도를 높인 다음 벼모판을 만들고 씨앗을 뿌렸다. 결과 모를 일찍이 키워냈을뿐만아니라 유별하게 벼모가 건실하게 자라났다. 이해 소출도 뜻밖에 아주 높았고 지어놓은 해쌀밥은 백옥같이 희고 기름기가 있어 그야말로 천하진미요, 천하진품으로 되었다. 그의 벼는 현과 간도성 농산품 전시회에 출품하게 되어 으뜸가는 호평을 받았고 점차 전 만주에 소문이 났다. 최학출은 만주국정부의 초청을 받고 신경(지금의 창춘)에 가서 만주국화페로 천원의 상금을 받았다. 그리고 특별히 강덕황제의 수라상에 오르는 쌀을 전문 생산하는 밭을 가꾸라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천자, 제후에 붙이는 높임말인 “어”에 곡식 “곡”자를 붙여 밭이름을 "어곡전(御谷田)"이라고 했다. 그가 맡은 "어곡전" 면적은 천평이나 되었다. “어곡전” 주위는 뺑끼칠을 한 널판자로 울타리를 하여 집짐승들이나 사람들까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촌공서와 경찰서, 현의 관원들이 "어곡전"을 호위해 주었다. 봄에 논갈이를 할 때만 소의 힘을 빌었을 뿐 그외의 일들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하였다. 논에 일하려 들어갈 때면 우선 손발을 깨끗이 씻어야 하였고 거름은 오직 삶은 콩과 두병만을 사용하였다. 가을이면 먼지가 없도록 까붐질을 한 다음 정미를 하고 온 마을 처녀들을 끌어다 쌀을 고르게 하였다. 처녀들은 유리판 위에 쌀을 펴놓고 한알한알씩 고르었는데 쌀알의 귀가 좀 떨어져도 안되고 쌀의 빛깔이 좀 달라도 안되었다. 황제의 수라상에 오르는 어곡을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참으로 세심한 과정이 었다. 이렇듯 만주지역의 논농사는 이곳으로 이주해온 조선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며 최학출은 만주 지역 벼농사의 전설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우리 민족의 뛰어난 벼재배 기술과 역사의 영욕을 고스란히 안고 오늘도 두만강 연안에서 나는 쌀은 당년 못지 않게 백옥같이 희고 기름기 돌며 밥맛도 참으로 구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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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26
  • 3·1절 및 광복 70주년 맞이 범국민 태극기 달기 캠페인 전개
    [동포투데이] 정부와 민간이 손을 잡고 전국적으로 동시에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태극기는 1919년 3·1운동과 1945년 8·15 광복의 기쁨 속에서 우리 민족을 하나로 모아주었으며,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서도,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에서도,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에서도 우리 민족의 역경과 영광을 함께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주변에는 국경일에도 각 가정과 거리, 주요 건물에 태극기가 게양되는 모습을 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이에 광복 70주년인 올해 첫 국경일인 3·1절을 맞이하여 태극기의 의미를 되살리고, 선열들의 자주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한 차원에서 범국민 태극기 달기 캠페인이 전국 17개 시·도에서 동시에 열렸다. 먼저, 이날 14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행정자치부, 새마을운동중앙회,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중앙협의회, 새마을금고중앙회 관계자와 일반시민 등 150여명이 캠페인에 참여하였다. 특히, 많은 어린이와 대학생들도 참여하여 세대를 초월한 태극기 사랑의 마음을 한데 모았다. 이날 캠페인에서는 참여한 어린이들 모두에게 태극기를 전달하는 행사를 통해 미래세대에게 국기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는 한편, 대학생들과 함께 캠페인 참여자들이 준비된 나무에 소형 태극기를 직접 다는 ‘태극기 나무’ 만들기 퍼포먼스도 진행하였다. ※ 태극기 나무는 이번 제96주년 3·1절 기념식장 및 정부 서울청사 로비에 전시 예정 이어서,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 인근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직접 나눠주고, 태극기의 의미와 게양방법이 담긴 홍보자료를 배포하면서 태극기 달기 운동에 동참을 호소하였다. 또한, 지역에서도 해당 자치단체와 국민운동 3단체 지부 및 새마을금고 지역본부가 협력하여, 다채로운 태극기 사랑 퍼포먼스와 태극기 달기 홍보운동을 전개했다. 시민이 참여하여 손도장으로 대형 태극기 만들기, 태극기 관련 플래시 몹(flash mob), 차량용 태극기 스티커 부착, 태극무 공연 등 흥미로운 행사가 진행되어 시민들의 관심과 눈길을 끌었다. 서울 광화문광장 캠페인에 직접 참여한 행정자치부 정재근 차관은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존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하고 민족 자긍심을 지켜낸 우리 선열들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상징물”이라며, “태극기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곧 우리나라의 자긍심을 지키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많은 국민들이 이번 태극기 달기 운동에 동참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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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15-02-26
  • 2014년 말 中 대륙 총 인구 13억 6782만명
    그 전해 동시기에 비해 710만명 증가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국가통계국이26일 발표한 “2014년 국민경제 및 사회 발전 통계공보”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중국의 총 인구는 13억 6782만명으로 그 전해 말에 비해 710만명이 증가되었다고 중국신문망이 26일 전했다. 2014년 말, 중국 대륙의 총 인구는 13만 6782만명으로 그 전해보다 710만명이 증가했다. 그 가운데서 남성인구가 7억 79만명이고 여성인구가 6억 6703만명으로 남성인구가 여성인구보다 3376만명이 더 많았으며 도시진 상주인구가 7억 4916만명으로 총 인구의 54.77%를 점했다. 지난해 전 년에 걸쳐 출생한 인구는 1687만명으로 그 출생율은 12.37‰였고 사망인구는 977만명으로 사망율은 7.16‰였으며 자연증가율은 5.21‰였다. 전국적으로 집을 떠나 있는 인구는 2억 9800만명이며 그 가운데서 유동인구가 2억 5300만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다른 한 보도에 따르면 통계된 중국 대륙 339개 시 가운데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로는 중경시로 3376만명이고 다음으로 상해시가 제2위로 3376만명, 북경시가 제3위로 1961만명, 성도시가 제4위로 1404만명, 천진시가 제5위로 1293만명, 광주시가 제6위로 1270만명, 심천시가 제10위로 1035만명, 청도시가 제19위로 871만명, 항주시가 제20위로 870만명이며 동북3성에서 할빈시의 인구가 제8위로 1063만명, 심양시가 제28위로 810만명, 장춘시가 제31위로 767만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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