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8(토)
 

[동포투데이]  20여년간 한길만 걸어온 김춘희! 그녀는 우리가 몰랐던 조선족 쥬얼리전문가입니다.


조선족사회에서 외면당한 한 '우물'을 20여년간 파는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였습니다


올리버 크롬웰의 이런 명언이 떠오릅니다. "성공은 높은 점프도 긴 점프도 아니다. 성공은 마라톤의 발걸음들이다.'...그녀 김춘희(41세)씨가 바로 이 성공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94년 연변대학 리공학원 기능학과 귀금속전문학과를 다닌 그녀는 그때 배운 전문지식을 이순간까지 놓은적 한번도 없습니다. 한창 려행업, 외국어학과, 컴퓨터학과, 회계학과 등등이 인기학과라고 온 중국이 떠들썩하는 90년대에 김춘희씨는 오히려 귀금속전문학과를 선택했고 그 선택에 따라 오늘까지 달려왔습니다. 미래에 대한 100%의 확신이 선것은 결코 아니였습니다. 먼 바다길에 나선 항행사처럼 예측할수 없는 삶의 '바다길'을 그녀는 오직 성실, 노력, 근면함으로 선택을 반복하면서 조심스럽게 헤쳐나왔습니다. 언제 부딛칠지 모르는 삶의 "암초"를 내심 두려워하면서도 한걸음한걸음 열심히 걸어왔습니다. 참으로 참답게 한발한발 걸어온 그녀였습니다.


2000년 류학 떠난 남편 따라 한국으로간 그녀는 자신의 배운 전문지식을 놓지 않았습니다. 대전세이백화점 쥬얼리전문점에 취직한 리유도 쥬얼리탐구를 위한것이였습니다. 귀금속세공, 보석감별을 배웠던 그녀였기에 대전세이백화점에서의 8년동안 근무에서도 막힘이 없었습니다. 매니저직을 마무리로 그녀는 8년동안 머물었던 쥬얼리전문점을 떠나 2008년 귀국하면서 그녀는 차츰 작품연구에 몰입하게 되였습니다. "모든 준비는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작품만을 연구하고 진주리폼을 하면서 꾸준히 작품만 완성했습니다. 그러다가 번화한 백화점이 아닌 조용하지만 나름 공방으로 리용 가능한 신세기광장 11층 33호에 소은방쥬얼리디자인작업실을 오픈하게 되였습니다. 첨에는 아는 지인분만 찾아오는 작업실이였습니다. 지금은 동호회도 운영하면서 차츰 고객들의 인정을 받게 되였습니다. 혼수장만하는 분들도 저의 작업실에 찾아오셔서 진정한 명품을 구입하시기도 하고 또 제가 여러가지 문의하신 전문지식을 알려드리기도 합니다. 돈보다는 쥬얼리에대하여 우리 조선족들이 좀 더 많이 알고 정확하게 알기를 바라는게 제 소망입니다. "

연변! 쥬얼리문화전파에 평생을 기여할터 


"연변 쥬얼리는 아직 원점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남방의 상인이나 한국인들이 하는게 그게 전부인데다가 연변조선족분들은 쥬얼리를 마냥 어려운 상식으로 알고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알아야 하는 쥬얼리지식마저도 우리조선족들은 모르는 실정입니다. 비싼 진주목걸이는 좀 더 이쁘게 착용하면 미적효과를 극대화시킬수 있지만 그냥 년세가 지극한 로인분들이나 착용하는걸로 압니다. 안타까울때 많습니다. "


맹목적인 고가구입을 반대하는 리유도 바로 그것이였습니다. "기본상식이라도 알고 사면 사기를 당하는 일이 적지만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가격에 따라 맹목적으로 구입을 하면 손해를 보는것은 조선족들입니다. "


"혼수구입하는 분들은 돈을 아끼지 않더라구요. 관련 쥬얼리지식은 거의 백지라고 봐야하죠. 거금을 쓰면서 준비하는 혼수쥬얼리인만큼 먼저 기본상식이라고 알고 구입을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금만 신경쓰고 조금만 귀기울이면 충분히 가능한 지식습득이니 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에 찾아온 고객들에게 커피 한잔 드리고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재를 방불케하는 그곳은 쥬얼리를 학습하는 공부방이기도 합니다. 진주관련에 질문을 하자 막힘없이 진주 종류와 간단한 구별법, 진주제품 관리방법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하는 그녀입니다. 천연진주, 양식진주, 모패진주, 모조진주 우리가 일상에서 몰랐던 용어들이 쏟아져나옵니다. 김춘희씨는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하게 설명합니다. "상식이 번거로운것 같지만 한번두번 자주 들으면 듣기만 해도 금방 알수 있는 상식들입니다. 저의 작업실이 신세기 11층 33호에 자리를 잡은것도 바로 그 리유입니다. 일보러 나오셨던 분들이 다리쉼도 할겸 물 한잔 마실겸 저의 작업실에 들려 쥬얼리관련 이야기도 듣는 기회를 교통적으로 보다 편하게 만들어들이고저 하는데 있었습니다. 이젠 입소문을 타서 꽤 많은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쥬얼리를 모르는 분들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찾아오셔서 쥬얼리상식을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어서 일상에 피해가 없고 더 잘 활용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작업실 이름에도 그대로 묻어납니다. 소은방이라는 이름에는 이런 뜻이 포함되여있습니다. "소박한 은혜가 사방에 날리다" 김춘희씨는 큰 욕심이 없다고 합니다. 또 실제로 소은방쥬얼리작업실에 다니셨던 고객분들과 상담을 받아본 분들은 그 부분에 대하여 인정을 합니다. "돈이라는데 초점을 두었다기보다는 그 분야를 즐기는 편이 더 적절한것 같습니다. 정직하고 따듯하게 알려주고 쥬얼리관련 무료상담도 해드립니다. 혼수예물과 진주제품 위주로 주로 맞춤 주문,판매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 


맞춤 주문, 판매에 대하여 김춘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객들에게 거품가가 없는 가격을 제시할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지름길입니다. 소자본창업이라는 장점도 갖고 있지만 깔린 제품이 많다보면은 거품가격을 선정할 확률이 높습니다. 금, 은, 보석쥬얼리 제품을 판매하지만 주료 맞춤 주문 판매를 하는 리유는 불필요한 자본류실을 줄여 고객부담을 확 줄일수 있을뿐만아니라 천차만별이 고객들에게는 맞춤제품이 최상의 선택이기때문이지요."


오도가다 한번쯤은 발길을 돌려 쥬얼리DTY설계,제작, 수리, 리폼, 리셋팅 분야에서 월등한 전문기술력을 지낸 조선족 그녀 김춘희 소은방쥬얼리작업실(위챗 18943365900)에 찾아가보세요. 누구든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쥬얼리DTY설계, 제작하여 나만의 쥬얼리를 만들어보는것도 삶의 묘미는 아닐까 생각듭니다.


한우물만 판 조선족쥬얼리전문가 그녀가 착한 심성으로 연변사람들에게 다가온건 우리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행운이고 행복인것 같습니다. 하물며 평생을 쥬얼리문화전파에 올인한 그녀이지 않습니까?


20여년전 확신이 서지 않았던 귀금속전문학과를 전공했던 20살 애숭이 처녀가 지금은 40대 아름다운 녀인이 되여서 조선족들에게 쥬얼리문화를 정확하게 전파하고 있습니다다. 긴 세월만큼 그녀의 노력과 인내가 오늘날의 쥬얼리전문가라는 막강한 초능력을 가져다준건 당연한 결과인것입니다. 그녀의 바램대로 조선족분들이 쥬얼리 진품명품에 관한 정확한 상식을 모두가 다 아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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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아름다운 김춘희! 그녀는 우리가 몰랐던 쥬얼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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