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판 “스탈린그라드 전역” – 석패보위전 (1)
[동포투데이 김민 기자] 제2차 세계대전시기 스탈린그라드전역은 구 소련홍군이 수도 모스크바를 보위하기 위해 진행한 가장 치열한 전역으로서 이 전역은 제2차 세계대전 유럽전장에서의 중대한 전환점으로 되었다.
하다면 아주 멀고 먼 극동전장에서 역시 스탈린그라드 전역과 비슷하게 치열한 방어전이 있었는바 이 전쟁은 어떤 각도로 보면 중국과 일본의 생사를 가르는 전역이기도 했다.
중경과 전반 중국의 운명과 관계되는 전역
석패는 인가 100호도 되지 않는 작은 옛진이었다. 석패진은 이창현(지금의 이창시 이릉구) 경내에 위치, 장강삼협의 오른쪽에 있으며 장강이 가까이에서 흐르고 산에 둘러싸이어 있다.
석패는 이창현성과 30여리 떨어져 있고 장강천험의 요충지로서 역래로 모든 군사들이 서로 쟁탈하던 곳이었다.
고진 석패는 사방 70리가 되며 위에는 삼두평으로 항일전쟁시기의 군사요충지로서 국민당군의 제6전구 전진지휘부와 강방군 총부가 설치되어 있었고 아래에는 평선파가 있었는데 석패의 초소로서 이창현성과는 30여리 상거해 있었다.
1938년 일본군은 이창을 점령한 후 석패는 중경을 지키는 첫 방어벽으로 전략적 지위가 매우 중요했다. 일단 석패가 함락되기만 하면 일본군은 수륙공(水陆空)의 배합으로 중경과 전반 중국을 위협할 수 있었다.
제2수도인 중경을 지키기 위하여 1938년 겨울 중국해군은 석패에 제1포대를 구축, 좌우로 제1, 제2포대에 도합 10문의 대포를 설치하여 장강삼협 요새포대군의 최전선으로 되게 하였다.
당시 석패를 지키는 중국 해군장병은 100여명으로 석패로부터 이창에 이르는 구간에 주둔해 있었으며 포대의 요새는 남진관 상류의 장강 강면을 봉쇄할 수 있었다.
이 구간을 지켜내기 위하여 당시 중국군은 정예 포병부대를 석패에 주둔시켰다.
당시 일본군 역시 중경을 점령하려면 반드시 이 요새를 넘어야 하기에 천방백계로 이 요새를 노렸다.
1941년 3월 상순, 일본군은 많은 병력을 집중하여 이창 대안으로부터 석패 정면의 평선파와 측면의 조가판을 진공하였지만 모두 중국수비군한테 큰 타격을 받고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일본군은 감히 석패에 대해 소홀한 무력행동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코 이 요새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석패요새에 대한 보위전은 중경 혹은 전반 중국을 지켜내는가 지켜내지 못하는가 하는 관건으며 중국군은 전선에 부채형 진지를 구축하였는데 이는 항전초기 서주전역의 대아장과 비슷하였다. 이 부채형 진지를 고수하면서 일본군의 정면진공을 견제하기 위하여 장개석 위원장은 제6전구의 진성과 장강수비군의 오기위한테 수없이 많은 전보를 보내어 석패요새의 견고성을 확보할 것을 강조하였다.
5월 27일, 장강수비군에 대한 작전포치가 떨어졌다. 장강수비군은 장양, 이창 2개현 사이에 있는 도초평, 고가댐, 여가파, 조가판, 석패 등을 결전의 요새로 구축하였다.
결전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진성은 제10 집단군과 제94군 주력을 장양과 자악으로 전이시켜 장강수비군의 우측을 엄호하게 하였으며 동시에 공군전투기가 동원되어 육군과 협동작전을 하게 하였다.
5월 말, 중경의 장개석 위원장으로부터 재차 지령이 떨어졌다. 장개석 위원장은 석패전역을 중국의 “스탈린그라드”라고 하면서 장강수비군의 호련 등 장병들에게 영용하게 적을 무찌르며 석패요새를 사수할 것을 요구, 석패요새의 제11사 사장 호련 또한 석패요새와 생사를 함께 할 것을 전 사에 명령하면서 자기의 지휘부를 화선과 가까운 충객마포에 설치하였다.
“승패여하를 불문하고 결심은 있어야”
당시 적아 쌍방의 병력대비를 보면 다음과 같았다.
일본군, 2개 사단, 1개 여단으로 도합 10만명. 중국군은 호련이 인솔하는 18군 제11사가 핵심진지를 고수하고 제10집단군 제94군 병력이 엄호가고 공군전투기가 협동작전을 하게 되였다.
호련은 산악작전에 유명한 장군이었다. 그는 석패주위의 우중충한 산세, 깎아지르듯한 절벽, 계곡과 산골짜기, 무성한 수림 등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였으며 아울러 요도의 층층마다 장애물을 설치하여 석패진지로 하여금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다.
5월 28일, 일본군 제3사단과 제39사단이 석패를 향해 진격해오기 시작했다. 이 날 일본군 제3사단은 장양의 고가댐으로부터 이창현 경내로 진입, 중국군 제11사의 첫 방선인 남림파진지에 향해 공격을 발동하였다. 동시에 우측의 18사 진지 또한 일본군의 습격을 받았다.
이를 서막으로 석패요새를 둘러싼 중국군과 일본군 사이의 혈전이 전면 개시되었다. 전투는 매우 격렬했는바 중국의 8년 항전중 이 전역은 특히 관건성을 띤 전역으로 되었다. 중화민족의 존엄을 위하여 중국군 제18군 용사들은 일본군의 한차례, 또 한차례의 진공을 물리치면서 육탄으로 강철의 장성을 만들었다. (다음에 계속)
ⓒ 인터내셔널포커스 & www.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다문화 사회 20년… 지방의회엔 왜 이주여성이 없나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은 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후보 명단에는 변화한 한국 사회의 현실이 충분히 담기지 않는다. 특히 이미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이주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여전히 미약하다. 우선 현실부터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다... -
‘TACO의 순간’에도 물러서지 못하는 트럼프의 전쟁
요즘 국제 정치에서 ‘타코(TACO)’라는 말이 유행한다. 원래는 멕시코 음식 이름이지만, 지금은 “트럼프는 결국 먼저 물러난다(Trump Always Chickens Out)”는 조롱 섞인 정치 은어가 됐다. 문제는 이번 이란 전쟁에서는 그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 없는 전쟁에 들어섰다.  ... -
“동포라 부르지 마라?”… 이름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동포라 부르지 마라.” 한국 사회는 지금, ‘같은 민족’보다 ‘다른 나라 사람’을 먼저 선택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그들은 한국말을 하는 중국인일 뿐”이라며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동포’라는 말에는 거부감이 따라붙고, ‘조... -
“이 나라는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한국에서 본 현실”
나는 한국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본 적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밤이 되면 유리처럼 반짝이는 도시, 완벽한 얼굴을 한 사람들, 사랑과 성공이 정교하게 배치된 이야기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한국은 어... -
시속 300km의 고속철, 금연 정책은 정지궤도
중국 출장길,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첨단 고속철에서 내린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의 잔상이었다.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승강장을 가득 채운 매캐한 담배 연기가 밀려왔다. 줄을 선 승객들 사이, 열차 출입구 주변, 이동 통로까지 곳곳에서 당연하다는 듯 불꽃이 일었다. 처음에는 단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