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족을 선족이라 약칭해서는 안돼
[동포투데이] 일부 한족들은 일상생활에서 조선족을 “선족(鲜族)”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서류자료, 기관공문, 신문잡지, TV프로에서도 “선족(鲜族)”이라는 두 글자가 빈번히 나타나며 일부 조선족음식점의 간판도 “선족음식점(鲜族餐厅)” 으로 표기되여 있는가 하면 일부조선족도 스스로 "我是鲜族人" (나는 선족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굴욕적인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역사를 돌이켜보면 1910년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을 강점하고 급급히 우리 민족을 말살하여 완전히 일본인과 동화시키려 시도했다. 그러면서 일제는 “내선융합”, “내선일치(内鲜一体)”와 “내선여일” 등 주장의 식민화한 정책으로 일본과의 합병을 감행하였는데 여기서 “내”는 일본을 가리키고, “선”은 당시 조선을 가리켰던 것이다. 또한 일어에서 “태양”을 나타내는 “조(朝)”라는 신성한 글자를 조선사람들이 쓸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일제는 또 우리 민족의 이름과 말 대신 전적으로 일본이름에 일본말까지 쓰는 법을 제정하여 억압했는데 이때부터 우리 삼천리 강산은 완전히 일본의 한개 성으로, 또 우리 부형들은 “선족”으로 되였던 것이다. 그후 일제는 또 중국을 침략하고 일본인은 1등민족, 선족은 2등민족으로 제정해 3등민족인 한족과 조선족 사이에 민족 리간을 시키기도 했는바 당시 중국인들은 조선족을 꺼려하고 심지어 “얼꾸이즈(二鬼子-둘째 일본악귀)”라고 욕설까지 하였다.
때문에 “선족”이란 절대 조선족의 약칭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제강도들이 우리 민족에게 들씌운 기시와 오멸, 치욕과 탄압의 낙인이 찍힌 대명사이다. “선족”의 유래가 이러할진데 우리는 어찌 스스로 자신을 “선족”이라고 부르겠는가?
사실 중국정부는 일찍 1951년에 소수민족의 이름과 그 부름에 대하여 정령을 발포해 함부로 시기, 오멸하는 뜻이나 그 작법을 엄금하도록 하였고 또 소수민족 약칭은 그 민족의 첫 글자를 쓰도록 규정했다. 례를 들어 몽골족은 몽족(蒙族), 위글족은 위족(维族)으로 한어로 약칭한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족의 약칭은 마땅히 조족(朝族)이라야 맞다.
그 역사를 돌이켜보면 1910년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을 강점하고 급급히 우리 민족을 말살하여 완전히 일본인과 동화시키려 시도했다. 그러면서 일제는 “내선융합”, “내선일치(内鲜一体)”와 “내선여일” 등 주장의 식민화한 정책으로 일본과의 합병을 감행하였는데 여기서 “내”는 일본을 가리키고, “선”은 당시 조선을 가리켰던 것이다. 또한 일어에서 “태양”을 나타내는 “조(朝)”라는 신성한 글자를 조선사람들이 쓸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일제는 또 우리 민족의 이름과 말 대신 전적으로 일본이름에 일본말까지 쓰는 법을 제정하여 억압했는데 이때부터 우리 삼천리 강산은 완전히 일본의 한개 성으로, 또 우리 부형들은 “선족”으로 되였던 것이다. 그후 일제는 또 중국을 침략하고 일본인은 1등민족, 선족은 2등민족으로 제정해 3등민족인 한족과 조선족 사이에 민족 리간을 시키기도 했는바 당시 중국인들은 조선족을 꺼려하고 심지어 “얼꾸이즈(二鬼子-둘째 일본악귀)”라고 욕설까지 하였다.
때문에 “선족”이란 절대 조선족의 약칭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제강도들이 우리 민족에게 들씌운 기시와 오멸, 치욕과 탄압의 낙인이 찍힌 대명사이다. “선족”의 유래가 이러할진데 우리는 어찌 스스로 자신을 “선족”이라고 부르겠는가?
사실 중국정부는 일찍 1951년에 소수민족의 이름과 그 부름에 대하여 정령을 발포해 함부로 시기, 오멸하는 뜻이나 그 작법을 엄금하도록 하였고 또 소수민족 약칭은 그 민족의 첫 글자를 쓰도록 규정했다. 례를 들어 몽골족은 몽족(蒙族), 위글족은 위족(维族)으로 한어로 약칭한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족의 약칭은 마땅히 조족(朝族)이라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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