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8(화)
 


■ 김철균


이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항구란 항상 마도로스들한테 로맨틱한 꿈을 안겨주는 곳이다.

 

그 수많은 “배놈”과 항구의 아가씨들한테 사랑을 주고 짜릿한 쾌감과 더불어 눈물도 주었던 코리아의 제일항 - 부산항구.

 

여기까지 쓰고보니 여태껏 나는 본선의 아무개가 어느 아가씨와 어떻게 여차여차 했소. 어떻게 징글스러웠소 하며 남들의 로맨스만을 언급했지 나 자신의 사생활은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말해서 나 역시 칠정육욕이 있는 인간이며 2년여간 “배놈”으로 있으면서 여자를 점해보지 못했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위선자가 아니다. 하다면 30살 푼한 한창 나이에 그 황홀한 세계에서 나 역시 무슨 용빼는 수가 있단 말인가?!

 

부산항에 입항한 뒤 나는 오랜간만에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것은 본선의 대부분 선원들이 부산출신이기에 부산입항 후 집으로부터 통근하여 밥먹는 선원이 몇 명 안되는데다 또한 회사에서도 3명의 아줌마를 본선에 배치하여 전문 주방일과 청소, 세탁 등을 도맡아주었기에 나는 모든 것에 일절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창의 화물을 하역한 뒤 도크장(선박정비장, 태풍을 만났을 때 부분적으로 크게 파손됐음)에 오른다기에 나는 오래간만에 팔자가 늘어진 셈이었다.

 

나는 낮이고 밤이고 그 동안 미처 쓰지 못한 일기를 정리하는 한편 “여명의 눈동자”, “장군의 아들” 등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생활이 허전해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책을 읽거나 비디오를 보는 것만으로는 달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필경은 사내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때 이미 감정파열로 아내와 이혼한 몸, 고향도 아닌 타관향에서 여자를 찾는 것이 딱히 양심에 걸릴 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라도 고향땅으로 휴가를 맡고 갔던 3타수가 불현듯 귀선했다. 덜먹총각인 그가 집에 가봤자 부모외에는 별로 반가와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 부모 역시 하루밤 자고나자 “사내란 녀석이 배만 타고 장가는 안 들려느냐”하며 책망을 하기 시작, 참 누구든 장가들기 싫어 배타러가는가보지. 부모를 따라 농사를 지어봤자 먹을 알이 별반 없고 또한 아가씨들이라고는 쌀독의 뉘만큼도 없는 고향에서 장가는 어떻게 간단 말인가? 그래서 배타고 돈벌어 부산이나 여수 같은 큰 도시에 자리를 잡고 장가를 들려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일이 뜻대로 잘되지 않아 오늘까지 끌어왔던 터였다. 그럼에도 무턱대고 장가만 들라는 부모님, 그래서 3타수 김종래씨는 만류하는 부모님을 뿌리치고 귀선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나와 그는 술상을 차려놓고 신세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김형, 나 한국서 살지만 장가들어 자식까지 본 형이 한참 부럽능기라. 이 시팔 불알차고 장가도 못가는 이눔의 한국, 선진국은 무슨눔의 선진국인고?”

 

“그런 말 말어. 우리 연변도 마찬가진거야. 인젠 그 곳도 얼굴이 반반한 계집애들은 다 도시로 몰켜들고 머슴애들은 장가들지 못해 지랄염병할 때가 된거라구.”

 

“김형, 나한테 연변아가씨 한명 잡아서 붙여줘, 나 그럼 오늘밤 완월동 가서 술 한잔 사고 형을 즐겁게 해주는기라.”

 

그날 밤 나와 3타수는 무슨 충동에서인지 약속이나 한듯 택시를 잡아타고 부산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이름난 완월동으로 향했다.

 

얼마 후 우리가 택시에서 내리자 미리 대기라도 하고 있는듯 요염하게 치장한 아가씨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아저씨, 잠간 들려 놀다가세요. 즐겁게 해줄게요.”

 

“아저씬 아마 이런 곳에 처음인가 보죠? 어서 오세요. 화끈하게 해드릴께요.”

 

이렇게 아가씨들이 어깨에 매여달렸건만 김종래씨는 홱홱 뿌리치며 나의 손목을 이끌고 갈 길만을 재촉했다. 아마 단골로 다니던 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미구하여 우리가 들어선곳은 “대마도”란 네온싸인이 반짝이는 어느 스탠드바 같은 곳이었다.

 

우리가 홀안에 들어서자 은은한 음악이 흘렀는데 그것인즉 마도로스 - “배놈”의 노래였다.

 

무역선 오고가는 부산항구 제2부두

술취한 마도로스 항구가 무정터라

닻줄을 올리며는 기적이 울고

뱃머리 돌리며는 사랑이 운다

아~아~ 항구의 아가씨

울리고 떠나가는 버리고 떠나가는

마도로스~ 아메리칸 마도로스

… …

아니나 다를가 홀안을 둘러보니 저마다 아가씨 한명씩 끼고서 술처먹는이들로는 필리핀, 파키스탄, 구소련 등 나라에서 온듯한 사내들로서 그들 역시 “배놈”들임에 틀림없었다.

 

이윽하여 김종래씨를 알아보고 히프를 내휘두르며 다가오는 40대 초반으로 돼보이는 마담.

 

“아이유, 총각 왔네그려, 그래 언제왔어? 집에는 가보구? 총각이 이런 곳 다니면 망친당께. 왜 자꾸 오능고?”

 

“누님, 무슨 말이 이리 많은고? 빨랑빨랑 술상 차리고 이쁜애들 둬명 붙혀달라잉께. 이 형씨는 중국서 왔는데 우리 동포잉기라 오늘 즐겁게 해주라잉께!”

 

“뭐?! 중국서 온 아저씨. 그렁께 이리두 순지해보이는기라. 참 이런데 물젖으면 안된다잉께.”

 

그러면서도 “미쓰리! 미쓰신!”하고 부르며 어딘가 사라지는 마담. 보아하니 김종래씨와 마담사이는 한 고향사람 아니면 아주 잘 아는 사이인듯 싶었다.


 캡처.PNG

뒤이어 마담이 아가씨 2명 데려오자 둘은 각각 나와 김종래씨옆에 나누어 앉았다. 미쓰리는 내옆에 앉고 미쓰신은 김종래씨옆에 앉고 헌데 종래씨한테서 들을라니 더 이쁘게 생긴 미쓰신이 나의 파트너라나? 서로 마주앉으면 구애없이 얼굴을 쳐다보기도 좋고 또한 서로 술잔을 마주치는데도 쉽가는데 일리는 있는 것 같았다.

 

큰 홀에서 술상을 파하자 우리는 서로 남녀 한쌍씩 짝을 지어 3층에 있는 아가씨들의 방으로 올라갔다.

 

미쓰신의 방은 전기온돌방이었는데 이불궤, 옷궤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살림집 방안을 방불케 했다.

미쓰신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와락와락 벗고는 이불우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 거동은 몸을 파는 남미나 동남아의 창여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아저씨, 옷 벗지 않고 뭘해요? 자, 어서요! 나 억수로 피곤한데요.”

 

하긴 서로 돈으로 여자몸을 팔고 사는 이런 교역장소에서 무슨 말과 가동작이 필요하랴. 그저 덮치고 받아주면 되는 판인데. 하지만 남미나 동남아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이 곳 한국에서는 왜 서로 얘기라도 나눌 수 없겠는가. 나는 미쓰신과 그렇게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미쓰신, 급해말고 우리 술 한잔 더 나누고 볼까?”

“뭐 할 말이 있다고 그래요? 아저씬 여길 왜 왔어요? 너무 착한체 하지 마세요. 뱃놈들은 다 그 따위들인걸요.”

 

“아니 미쓰신 날 뱃놈들과 동일시하면 안되는거야 하긴 뱃놈무리에 가담했다만 나 금방 배에 승선한 중국조선족이라구.”

 

“뭐 중국교포요?!”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나앉는 미쓰신. 그녀는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고는 아래층 카운터에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그녀가 중국조선족이라고 나를 내쫓아달라는 영을 내릴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술상주문이었다.

 

미구하여 뽀이가 간단한 술상을 차려오자 우리는 또 술상에 마주앉았다.

 

술을 마시는 한편 내가 본인이 신분과 살아온 경력 그리고 “뱃놈”으로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녀 역시 “그러게 아까 남보다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라고는 자기의 약력에 대해 소개했는데 그것을 간추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그녀 미쓰신은 경남 마산 부근의 어느 한 어촌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고래잡는 배와 이 업종에 출중한 재간을 갖고 있는 아버지의 신근한 노동으로 미쓰신의 동년은 매우 행복하고 세상에 부러움이 없었다. 헌데 후에 정부에서 고래잡이에 대한 금지령을 내린데서 아버지는 고래잡이배를 아주 헐값으로 처리하고는 조기를 잡는 어선의 말단선원으로 고용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로 나간 아버지는 영영 다시는 돌아오지를 아니했다. 태풍에 배가 뒤집어져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뒤 살림은 점점 쪼들려갔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엄마는 매일 부두에 나가 물고기를 되넘겨 해물시장에서 팔았지만 그날 그날 입에 풀칠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차 동생이 부산 영도에 있는 해양대학에 붙게 됐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 출세시켜야 하는 법. 그러다가 미쓰신이 생각해낸 것은 여자가 힘들지 않고도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비결은 이쁜 얼굴과 싱싱한 몸뚱아리가 밑천이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돈벌어 동생의 뒤를 대주기 위해 엄마를 속이고 나선 것이 바로 이 직업창녀로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몸팔아 동생한테 뒤바라지를 해주었는데 어느 날 동생이 글쎄 누나가 준 돈으로 이 완월동거리에 나타날 줄이야. 미쓰신은 너무도 분하고 억울해서 그날로 엄마한테 달려가 모든 비밀을 고해바쳤다. 그러자 엄마는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더니”하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제야 엄마는 딸한테 아버지의 비밀까지 털어놓았는데 이전에 그토록 존경이 가던 아버지마저 돈을 벌면 하루 건너 여자를 찾아가는 늑대었을줄이야. 아, 세상의 사내란 몽땅 이런 따위들이었구나. 그때로부터 미쓰신은 결혼같은건 아예 포기해버리고 어떻게 하면 사내들한테서 돈을 빨리 그리고 많이 우려내겠는가에 대해서만 신경을 써왔다…

 

“아저씨가 중국교포이고 또한 이런 곳에 처음 왔다고 하니 말해주네만 이런 곳에 다닐바가 못돼요. 제가 사내들을 곱게 보지 않을듯이 이곳의 아가씨들 모두가 그래요. 여긴 사랑이란 있을 수 없어요.”

 

나중에 미쓰신은 나한테만은 화대를 받지 않을테니 맘껏 즐기라고 했다. 참 나한테 무슨 매력이 있는지? 또한 그녀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끝내 그녀를 점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녀와 너무나도 일찍 운명에 순종하여 생소한 남자한테 시집가던 누나의 얼굴이 서로 교체되면서 끝내 마지막 양심의 방선을 허물수가 없었다. 그러자 자기를 묵묵히 보며 고민하고 있는 나의 무릎위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미쓰신.

 

“세상에 자기같은 아저씨도 있군요. 사랑해 아저씨. 우리 결혼할 수 없을가요?”

이에 내가 억지웃음을 보이며 머리를 흔들자 그녀는 “그래 그래 집에 사모님 있을테죠? 참 그 사모님 부러워요.”

 

그러는 사이 7월의 새벽하늘은 일찍이도 밝아왔다.

 

아침식사로 해장국으로 요기를 끝내자 미쓰신은 기어코 나를 부두까지 바래다주겠다면서 택시를 세내는 것이었다. 헌테 택시는 부두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해운대쪽이었다. 거기서 우리는 시원한 바다공기를 마시며 한동안 거닐다가 다시 택시에 앉아 남포동을 걸쳐 부두로 향했다.

 

그 사이 핸들을 잡은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앞만을 주시하면 차를 몰았다. 허나 나는 그녀가 눈물을 떨군다는 것을 육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두에서 나를 내려놓은 미쓰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르릉 하며 차를 몰고 앞으로 대달렸다.

 

그 사이 갑자기 내가 미워졌을까? 아니 그것은 분명 내앞에서 연약한 여자의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였을 것이었다.

 

그후 나는 그녀를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 사이 세월도 흘렀다. 허나 나는 지금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성만 알뿐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미쓰신, 그건 단지 내가 그녀를 점하지 못해서 오는 아쉬움뿐만은 결코 아니었다.

 

※                        ※                     ※

 

사나이와 바다와 그리고 인생 마도로스로 일하던 2년 남짓한 사이, 나는 선박과 더불어 세계의 30여개 나라의 50여개 항구를 드나들어 보았다. 그러노라니 힘들고 짜증나는 일들도 많았지만 재미있고 신기한 현상도 많이 보았다. 풍차로 바다물을 밀어준다는 네덜란드의 로톨담과 암스테르담의 풍경, 도시복판의 다리가 한쪽으로 쭉 밀리면서 그 사이로 만톤급윤선도 지나가는 중남미 알루바도섬의 기이한 현상, 그리고 도마뱀들이 길가나 집주위 지어는 호텔의 천정에까지 붙어서 기여다니는 희한한 일, 이러한 것들은 우리 중국에도 과연 있을가? 또한 한국에서 출항하여 싸이판과 오스트랄리아를 거쳐 남미에 갔다가 다시 대서양과 인도양을 에돌아오노라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이론만이 아닌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 그외 이전에 TV로만 보아오던 많은 것들을 직접 지척에서 볼 수가 있었는데 예하면 포클랜드군도의 펭긴과 물범, 아프리카해상의 돌고래의 집체무용 같은 헤염동작 이러한 것을 목격할 때면 확실히 배를 헛타지 앟았구나 하는 자부감이 생기군 했다.

 

한편 선원생활이란 필요시에는 목숨도 내걸어야 하는 모험을 해야 하는 법이다. 작업선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남극주 가까이에서 조업하는 오징어채낚이선은 늘 바다에서 떠다니는 얼음산을 피하면서 조업해야 하는데 그것들과 부딪칠 위험이 시시각각으로 있으며 일단 부딪치기만 하면 십중팔구는 고기밥으로 되기가 일쑤라 한다. 그럼 다른 해역에도 오징어가 많을텐데 왜 하필 남극주근처에 가서 고기잡이를 하는지? 그것은 단지 그곳의 바다가 오염이 없어 고기가 더 맛있고 그 값이 높다고 해서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남이 개척하지 못한 어장을 자기네들이 재척한다는 뜻과 죽음과 박투하면서 잡은 물고기를 육지에 보내준다는 마도로스의 용감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고기무리를 따라 조업하노라면 알게 모르게 남의 나라 영해에 들어갈 수도 있는바 그러다가 일단 해상경비정한테 발각되어 총포소리를 들으며 쫓기울 때면 바지에 똥오줌을 내싸기가 일쑤라 한다. 그만큼 넋이 떨어졌으면 다시 배를 탈 기분고 나지 않으련만 바다생활에 이골이 튼 “배놈”들은 또 다시 그 일이 언제였더냐 싶게 배를 탄다고 한다. 그만큼 배를 타면 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인간애를 맛볼 수 있고 또한 바다와 같은 성미를 키울 수도 있는 법이며 바다는 그만큼 사나이들의 육신을 단련시키는 드넓은 무대였던 것이다.

 

그렇다. 젊은이들여, 배를 타보자. 배를 타고 세계를 돌면서 바다밑세계도 개발하고 바다수수께끼도 풀어헤치자. 그러면 그대는 육지의 그 어느 젊은이보다 도량이 넓어질 것이고 용맹해질 것이며 더욱 사나이다운 사나이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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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견문시리즈(12) 젊은 마도로스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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