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한때 미국 사회를 상징하던 ‘아메리카 드림(American Dream)’이 흔들리고 있다.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은 오랫동안 미국 사회를 움직여 온 동력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당수 미국인이 그 약속을 더 이상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가 여론조사기관과 함께 지난 5월 6일부터 11일까지 미국 성인 4,1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는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인이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기 어렵다”고 답했다. 6%는 “사실상 누구도 실현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반면 아메리카 드림이 여전히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믿는 비율은 전체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조사 결과에는 미국 사회의 달라진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과거에는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지만, 이제는 개인의 힘만으로 넘기 어려운 벽이 높아졌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공을 향한 사다리가 예전만큼 넓게 열려 있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생활비 부담이 꼽혔다. 조사 응답자의 약 80%는 생활비 상승을 아메리카 드림 실현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로 지목했다. 이어 높은 주택 가격과 의료비 부담, 정체된 임금 수준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의 72%는 경제적 안정을 아메리카 드림의 핵심 조건으로 꼽았다. 안정적인 소득과 자산 형성,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뒷받침돼야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자가 주택 보유 역시 여전히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중요한 기준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런 조건을 갖추기가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미국은 최근 몇 년 동안 높은 물가 상승을 경험했다. 인플레이션 상승세는 다소 둔화됐지만 식품과 에너지, 주거비 등 생활과 직결된 비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시장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2025년 말까지 미국의 식료품 가격은 약 30% 상승했다. 같은 기간 임금도 올랐지만 체감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월급은 올랐지만 남는 돈은 줄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주거비와 보험료, 식비 부담이 동시에 커지면서 체감 생활수준은 오히려 낮아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산 격차 확대도 아메리카 드림을 흔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연방준비제도(Fed) 관련 자료를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미국 상위 1% 가구가 전체 부의 약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이 특정 계층에 집중될수록 교육과 주거, 투자 기회 역시 불균형하게 분배될 가능성이 커진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성실하게 일하면 중산층 진입이 가능하다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모의 자산과 교육 환경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냉소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변화는 세대별 인식 차이에서도 확인된다. 조사 결과 30세 미만 응답자 가운데 아메리카 드림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답한 비율은 22%에 그쳤다. 반면 60세 이상에서는 46%가 여전히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현실을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주택 시장은 이런 세대 간 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첫 주택 구매자 평균 연령은 1981년 29세에서 최근 40세 안팎까지 높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값 상승과 높은 대출 금리, 부족한 공급이 맞물리면서 내 집 마련은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6%를 웃도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중산층 가정조차 주택 구입을 미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이 함께 커지면서 자산 축적 속도는 둔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승진과 소득 증가가 생활 수준 향상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가계 부채 증가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국 가계 부채 총액은 사상 최고 수준인 18조5,9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신용카드 대출과 자동차 할부금, 학자금 대출, 주택담보대출 등이 누적되면서 상당수 가정은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현재의 지출을 감당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쓰고 있다.
물론 아메리카 드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을 이룬 사례는 존재한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이 과거보다 성공의 문턱이 높아졌다고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한다는 믿음이 약해질수록 아메리카 드림의 설득력도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메리카 드림은 여전히 미국 사회를 상징하는 단어다. 다만 지금의 미국인들은 과거 세대와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열심히 일하면 정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그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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