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연안!
너 장엄하고 웅위로운 옛성이여
가는 곳마다 항적의 노래 울려 퍼지고
아, 연안!
너 장엄하고 웅위로운 옛성이여
끓는 피 네 가슴에서 용솟음친다.
... ... ...
아, 연안!
너 장엄하고 웅위로운 성벽은
철같은 항적의 전선 이루었나니
너의 그 이름 세월과 더불어
역사에 찬란히 길이 빛나리.“
이는 우리 민족의 천재적 성악가이며 작곡가인 정율성(1918.7--1976.12)이 스무살 때 창작한 "연안송(가)"의 한 구절이다.
1938년부터 항일근거지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연안송(가)"! 장개석통치구의 수많은 열혈청년들과 학생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국민당의 봉쇄선을 목숨 걸고 뚫고 넘어 만난을 무릅쓰며 혁명의 성지-연안으로 찾아왔다. 그중에는 우리 조선민족의 열혈청년들도 있었다.
연안성에서 동쪽으로 연하강을 따라 10여리 걷느라면 쵸얼거우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과 연하강을 사이 둔 건너편엔 리가평이란 마을이 있었다. 바로 이곳에 조선의 우수한 아들딸들을 교양하는 조선혁명군정학교와 조선독립동맹이 있었다. 그때 그곳에 있은 조선 사람은 약 200여 명 되었는데 그중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 여성들 중에서 명망이 높았던 이로는 허정숙(许贞淑)이였다.
허정숙은 당시 연안군정학교의 조직교육을 책임진 부과장이었다.
조선의 유명한 애국자 허현선생의 큰딸로 태어난 허정숙은 서울에서 소학과 중학을 마치고 일본에 가 대학문과를 공부하고 “동아일보”기자로도 활약하였고 후엔 잡지“신여성”을 편집하며 사회활동에 투신하였다.
1925년엔“서울여자청년동맹”을 조직한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 1927년 5월엔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각 종교단체와 통일전선조직-“근우회(槿友会)”를 창립하고 서울의 여자학생운동을 지도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각 여자학교의 학생시위를 지도한 것으로 하여 일제에게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2년만에 석방된 그녀는 다시 항일활동을 하다가 재차 체포되어 1936년에야 석방되었다.
출옥 후 허정숙은 최창익, 한빈 등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들은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청년들을 조직하여 선후로“조선공산주의청년전위동맹”,“조선청년전지(战地)복무단”을 건립하였으며 활발한 항일 활동을 진행하다가 1939년 6월 연안으로 들어갔다.
연안에서 그녀는 항일군정대학을 다녔고 졸업 후에는 팔로군 120사에서 정치지도원 등 사업을 하다가 1944년 태항산조선혁명청년학교가 연안에 옮겨와 군정학교를 성립할 때 허정숙은 조직교육과 부과장으로 임명 되였고 직접 정치과목 강의도 맡아하였다. 그의 이론수양이 높은 강의는 언제나 생동하고 실제적이여서 학원생들의 환영을 받았다.
8.15 후 허정숙은 연안에서 나와 심양을 거쳐 조선(북한)에 귀국했으며 그 후 수차 조선당정대표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다녀갔고 조선대표로 국제여성회의에 출석하기도 했다.
허정숙과 때를 전후하여 연안에 들어선 다른 한 여성으로는 난영(김영숙)이였다.
조선 함경북도의 한 지주집 딸로 태여 난 그는 망명한 연인을 따라 중국에 들어와 혁명에 참가하였다. 그는 일본어에 능숙하여 중경에 있을 때엔 일본어방송 아나운서까지 담당하였다.
후에 연안에 들어간 그녀는 태항산 129사에 배치되어 사업하였다. 당시 팔로군 115사가 산동성 양산에서 평형관 전투의 승리로 일본군을 포로하였는데 그중에는 일본동경대학출신인 고급군의가 있었다.
팔로군전선총사령부에서는 그 고급군의를 태항산에 호송하여 난영에게 교육임무를 주었다. 난영의 도움 밑에 그 고급군의는 “일본인반전동맹”의 중요한 간부로 성장하였다.
1941년 1월 무정이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창설할 때 난영이는 129사의 조선인 대표로 회의에 출석하였고 그 후 조선혁명청년학교와 독립동맹의 도서관관리원 겸 무정의 비서로 있었다.
성격이 활달하고 활약적인 난영이는 예술에서도 장끼를 보여주었다. 학교에서 신입생환영식이나 기념일 공연에는 그가 당연히 주역이 되었으며 김창만 편극으로 된 대형화극“조국의 딸”의 여주인공 역도 그녀가 맡았고 의용군이 화북에서 처음 겪은 호가장전투를 반영한 극“태항산우에서”의 여병 역도 그녀가 맡았다.
1944년 음력설 직전 난영(김영숙)은 조선독립동맹 조직부 조직과장으로 승진 되었고 8.15 후 조선(북한)에 귀국하여 무정과 결혼하였다. 6.25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북경대학 유학생으로 파견되여 전문적으로 중국과 조선의 문화교류와 역사를 연구하였다.
조명숙(赵英)은 현처양모형의 여인으로서 비행사 출신인 윤공흠(尹公钦)의 부인이다. 항전 전에 남편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였는데 1941년 조선청년연합회 창립활동에 참가하였고 그 후 줄곧 태항산에 있다가 1944년초에 연안에 들어가 독립동맹의 간부로 되었다.
8.15후에는 조선(북한)으로 귀국하여 어느 도의 당책임 일군으로 있었다.
이 외에도 연안에 들어가 항일전쟁에 참가한 조선민족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
미인으로 불리던 석영(石英, 조직교육과 주춘길과장의 부인), 그리고 1938년 10월10일 한구(汉口)에서 조선의용대의 유일한 여성으로 참가했던 김위나(金威娜)는 중국 영화계의 황제로 불리우는 김염의 누이동생이였다.
그리고 독립동맹의 간부였던 최의(崔毅,연안군정학교 부교장이며 조선의용군 부사령원 겸 정치위원인 박일우의 부인)도 있었는데 8.15 후 연변에 왔다가 남편과 함께 조선(북한)으로 나갔다.
이 외에도 “조선공산주의청년전위동맹”의 한 지도자인 한빈 동지의 부인 문정원(文贞元), 민족주의자 김두봉선생의 딸 김귀숙(金贵淑, 여성대대 부대장)과 김해엽(金海烨)이 있었고 태항산“3.1병원”에서 간호부사업을 하다가 조직의 파견을 받고 의과대학 공부까지 한 이화림 등 20여 명의 조선민족 여성들이 있었다.
일제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우리민족의 독립을 위해 단연 혁명의 길에 나선 겨레의 여성들, 그 가열처절한 전쟁의 년대에 그들은 남성들과 어께곁고 국경을 넘나들며 이국땅에서 청춘을 바쳤다. 그녀들의 장거는 청사에 길이길이 빛날 것이며 우리민족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류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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