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윤동주 집안이 1886년 종성군 동풍면 상장포에서 북간도의 자동紫洞 현재의 자동子洞으로 이주하였다는 설법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 견해는 자동紫洞과 자동子洞을 동일한 지명으로 착각한 그릇된 주장이다. 사실 자동紫洞은 지배굽이 현재 개산툰을 말하고 자동子洞은 자동골을 말하는 것으로서 서로 다른 지리적 공간을 뜻한다.
오랜 옛적부터 개산툰 기차역으로부터 종이공장일대에 이르는 산굽이를 따라 바위너덜이 수직절벽을 이루며 병풍처럼 둘러서있었다. 초라한 땅막집과 농막집들이 띄엄띄엄 들어앉았고 북으로 앞 물학성(지금은 폐촌)과 뒤 물학성 사이에 국시당 언덕이 자리하고 봄이 오면 과일 꽃들이 구름처럼 만발하였다. 옛 선인들은 일찍 이 일대를 지배 혹은 지배굽이라고 불러왔다. 오늘날에 와서 지배굽이라는 땅이름은 역사 뒤안길에 사라진 죽은 지명으로 되어 있지만 먼지가 두텁게 쌓인 문헌자료에서 확실한 증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계림유사』에는 紫曰質背이라는 글이 적혀있는데 자색을 뜻하는 옛 사람들의 말은 지배質背였다는 것이다. 지배 소리와 근접한 제비는 중국 고서에서 紫燕으로 적혀있고 제비꽃은 그 빛깔이 자주색과 보라색으로 피어난다. 지배굽이 바위들을 유심히 관찰하여 보면 특유의 붉은 자색 빛깔이 눈에 띤다. 먼 옛날부터 차곡차곡 쌓이고 깎이고를 반복한 자색바위마다에는 파란만장한 선인들의 골곡 진 삶이 묻어나 그 부스러기마저 신비의 징표로 느껴진다.
두만강 유역에는 안주인을 부르는 호칭으로 호세미라는 낱말이 오래 동안 사용되어 왔다. 호세미는 여자 집주인을 높이 이르는 말로 알려지고 있으나 원래는 점쟁이 무당 비구니를 말한다. 골짜기마다 삼밭과 뽕나무가 자라고 집집마다 베틀로 베와 명주를 짜는 소리가 들려왔던 두만강 유역에서 호세미들의 발놀림, 손놀림에 쿵터덕 쿵, 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베틀에서 나오는 명주천은 흔히 보라색 물감으로 염색한다. 이들이 오래전부터 자색 옷을 선호하게 된 것은 두만강 유역 재가승들이 승려를 존귀한 존재로 여기고 자색 옷을 입으면서 유래된다. 민간에서도 여자들의 저고리 자색 옷고름과 동정. 자색 댕기, 이불깃과 베개의 붉은 자색 헝겊, 손발톱에 물들이는 봉선화 보라색 빛깔 등은 모두 불교에서 말하는 축귀와 벽사의 의미가 담겨있다.
화학염료가 등장하기 이전에 오랜 역사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선인들은 풀뿌리로 재가승들은 진주조개로 염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인근 사찰과 놀랄 정도로 한데 뒤얽혀 있는 지배굽이 지명은 불교적 색채가 짙게 깔려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은 사람아“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찔레꽃’노래는 오늘날에 와서 2절까지만 불리지만 원래는 3절까지 있었다.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연변과 함경도에서는 노루를 놀가지라고 부르듯이 찔레꽃을 찔구배꽃이라 말한다. 노래 작사가가 황해도 신천군 태생임을 감안하고 우에 가사에서 꾀꼬리는 예조리(노질이)로 바꾸어 음미하여 보면 “찔레꽃”노래는 그 옛날 알구배꽃 천지꽃 백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연분홍 봄 물결이 흘려들던 지배바위와 비슷한 두만강연안의 풍경을 펼쳐 보여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세월의 무게가 두텁게 쌓이고 쌓인 지배바위굽이에서 우리 선인들의 이민사가 힘겹게 걸어 나왔다. 아무리 위대한 역사도 그 역사를 지킬 능력과 의지가 있는 후손이 있어야 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릇된 역사에 끌려가다 보면 우리 역사는 결국 빈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오늘도 훼손 방치되어 빛을 보지 못하는 이주역사의 일번지 지배바위굽이는 잡초만 무성한 채 내버려져 있어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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