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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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연재 페사로 월드컵 개인종합 5위
    한국의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20·연세대)가 국제체조연맹(FIG) 페사로 월드컵에서 개인종합 5위를 차지했다. 12일, 손연재는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열린 대회 개인종합에서 후프(18.100점)-볼(17.400점)-리본(17.316점)-곤봉(17.600점) 합계 70.416점을 받아 5위를 기록했다. 74.616점을 받아 1위에 오른 야나 쿠드랍체바(러시아) 보다 4.200점 뒤진 기록이었다. 리본 연기에서 나온 실수가 살짝 아쉬웠다. 손연재는 아라비아풍의 음악인 “바레인”에 맞춰 리번 연기를 펼쳤지만 리본에서 마지막에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17.316점으로 8위에 그쳤다. 곤봉에서도 수구를 한차례 떨어뜨리는 실수를 한 것이 감점으로 이어졌다. 17.600점을 받아 7위에 올랐다. 리본과 곤봉 1위는 쿠드랍체바의 차지였다. 하지만 손연재는 전 종목 결선에 진출해 또 한번 종목별 메달에 도전하게 된다. 손연재는 전날 후프에서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며 월드컵 개인 최고점인 18.100점을 받은 바 있다. 볼에서도 17.400점으로 결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다음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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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3
  • 2014 중국축구협회컵 경기일정
    《2014중국축구협회》컵 경기는 3월 22일부터 11월 29일까지 7라운드의 66껨 경기를 치르게 된다. 올시즌 축구협회컵은 64개 팀으로 확정, 1라운드부터 5라운드까지 단껨경기로 승부를 가르게 되며 준결승과 결승은 홈어웨이드식으로 경기를 치르게 된다. 올시즌 축구협회컵에 참가하게 될 팀들로는 슈퍼리그의 16개 팀, 갑급리그 16개 팀, 을급리그 12개팀, 과외리그 12개팀과 중국축구협회컵 자격경기 승자 8개팀들이다. 2014 중국축구협회컵 경기일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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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3
  • 中 축구협회컵, 연변 강서연성과 첫 대결
    [동포투데이 김철균] 16일 오후 3시,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이 남창올림픽체육센터에서 강서연성팀과 중국축구협회컵 제2라운드 첫 원정경기를 펼치게 된다. “2014중국축구협회컵”은 지난 3월 22일 개시, 11월 29일까지 7라운드의 66껨 경기를 치르게 된다. 올시즌 “축구협회컵”은 도합 64개 팀으로 확정, 1라운드부터 5라운드까지 1경기로 승부를 가르게 되며 준결승과 결승은 홈원정으로 경기를 치르게 된다. 올시즌 축구협회컵에 참가하게 될 팀들로는 슈퍼리그의 16개 팀, 갑급리그 16개 팀, 을급리그 12개팀, 과외리그 12개팀과 중국축구협회컵 자격경기 승자 8개 팀들이다. 축구협회컵 연변팀 첫 상대인 강서연성팀은 제1라운드에서 3 : 0으로 산동등정팀을 전승, 제2라운드 홈에서 연변팀과 대결하게 된다. 그날 연변팀은 강서연성팀전에서 2진 선수들이 출전할것으로 보이고 있으며 그날의 승자는 오는 7월 중순께 대련아르빈팀과 격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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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3
  • 최종 3분의 “흑색기록” 연변팀 심수홍찬에 0 : 1 석패
    [동포투데이 김철균]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의 원정 1승이 끝내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12일 저녁 7시 30분,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5라운드 심수홍찬과의 원정경기에서 연변팀은 최종 3분의 추가시간내 상대방에 한골(결승골) 허락하며 아쉬운 패전을 기록했다. 이날 연변팀의 이호은 감독은 4231포메이션으로 수비역습의 기전술을 구사했다. 심수홍찬팀은 경기 초반부터 홈장우세를 빌어 기선제압에 나섰다. 경기 6분, 9분, 11분 홍찬팀은 연속 코너킥과 프리킥 기회를 만들어내며 연변팀 문전을 위협했으나 연변팀의 밀집방어와 골키퍼 윤광의 선방으로 득점까지는 이어가지 못했다. 이어 전반 20분과 26분경, 홍찬팀의 바바카와 주사패 선수가 연속 슈팅을 때렸으나 역시 득점에는 실패했다. 전반 39분경, 연변팀은 최인 대신 한국용병 김도형을 교체멤버하면서 서서히 공격에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후반들어 연변팀은 밀집방어에 치중하는 한편 역습기회를 노렸으나 늘 어딘가 카드 한장이 모자라는듯한 감을 주었다. 양측 변선을 이용하거나, 득점전야의 센터링까지는 좋았으나 최종 공처리가 완벽하지 못해 수차 득점에 실패했다. 한편 연변팀 문전을 자주 괴롭히던 홍찬팀은 드디어 경기 추가시간의 프리킥 기회를 빌어 임붕선수가 헤딩으로 득점에 성공했고 연변팀은 최종 3분간의 “흑색기록”으로 상대방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경기결속후에 있은 정기 프리핑에서 연변팀의 이호은 감독은 “마지막 3분을 지켜내지 못해 아쉽다”면서 패전원인을 재차 “상병요소”라고 밝혔다. 12일까지의 갑급순위를 보면 석가장영창이 4승 1패 12점으로 갑급선두를 달리고 있고 연변팀은 1무 4패로 갑급꼴지에 머물러 있다. 오는 19일, 연변팀은 신강천산팀을 불러 들여 올시즌의 첫 홈장경기를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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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3
  • 66세 생일을 맞는 리피 광저우 헝다 감독
    12일 리피 감독의 66세 생일 축하 파티가 열렸다. 중국 광저우 헝다 구단은 4월 12일 공훈감독 리피의 생일을 위해 특별히 케잌과 샴페인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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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2
  • 관악구, 주민과 함께 불합리한 규제 걷어낸다.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관악구는 지난 4일 구청 기획상황실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규제개혁 토론회’를 개최했다. 구는 불합리한 규제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관악구에 살면서, 사업을 하면서 규제로 인해 불편했던 사항을 말하기 위해 지역주민, 기업인, 소상공인 등 45명이 참가했다. 참석자들은 재개발, 재건축을 지연시키는 불합리한 법규, 주정차 단속 문제, 전통시장 활성화 애로사항 등 약 40여 건의 규제관련 사항을 개진하였다. 동일 장소 약국 개·폐업에 따른 양수·양도 처리기간이 2~3일 소요돼 주민이 불편을 겪고 있어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의견과 1종 지구단위계획 구역상 건축물 증축시 단순한 횟수제한의 불합리성, 영리법인 설립시 10억 이하는 공증을 면제하는데 반해 사단, 재단 법인은 규모와 관계없이 공증을 필수로 하고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구는 이날 건의 내용을 검토하여 즉시 처리 가능한 규제는 담당부서를 통해 개선하고, 법령개정 등이 필요한 사항은 서울시와 중앙부처에 개선을 요청할 예정이다. 한편, 구는 최근 부구청장 직속의 규제개혁 추진단을 신설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오는 2017년까지 각종 규제를 20% 이상 감축하는 정부의 목표에 맞춰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불합리한 규제를 발굴해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자치법규 중 상위법령과 일치하지 않거나 법적근거가 없는 규제에 대해서는 일제 정비를 실시하고, 민원처리 지연 사례 개선 등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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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2
  • 월드스타 성룡의 전재산은 얼마?
    [동포투데이=연예] 사천성 지역신문 화서도시보(华西都市报)는 성룡의 전재산을 대략적으로 추정했다. 보도에 따르면 성룡은 미국 로스안젤스 비버리힐즈에 호화주택을 소유하고 있는것을 비롯해 시드니, 꾸알라룸뿌르, 싱가포르 등 지역에 10여개의 빌딩을 소유하고있다. 성룡은 또한 1천만 위안에 달하는 스포츠카 30대를 소유하고있으며 2억 위안 상당의 개인전용기도 보유하고있다. 신문은 "성룡이 이전에 자신의 한달 수입이 일반인의 1년치 수입이라고 말한적이 있다"며 "현재 추정하기로는 이보다 많을것"이라 전했다. 한편 포탈사이트 등신넷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일 상해에서 열린 "성룡 영화예술관" 개막식에 참석한 성룡은 최근 20억 위안의 자산가라는 설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웃으며 "여러분들도 생각해보라"며 "분명 마운(马云, 알리바바 창업자)보다는 적겠지만 그래도 적지는 않으며 내가 가난하다고 해도 여러분들이 믿지 않을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몇년전에 이미 내 재산의 절반을 자선단체 기부했다"고 덧붙였다. 성룡은 지난 2011년 북경에서 열린 "제5회 오락대전(娱乐大典)"에서 "내가 죽으면 전재산을 자선재단에 기부할것이며 내 아들 방조명(房祖名)에게는 단 한푼도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고 발언해 화제를 모은바 있다.
    • 연예·방송
    2014-04-12
  • 한국 최강 동안 1위 송혜교, 전지현 6위
    한국 최강 동안 1위 송혜교, 전지현 6위
    • 연예·방송
    2014-04-12
  • 동화 속 장면, 미녀와 야수 함께 ‘충격’
    최근 러시아의 인터넷 매체에 재미있는 사진이 올라와 화제다. 소녀와 숲속의 야수가 함께 찍은 사진인데, 온순한 야수가 다정하게 소녀의 곁에서 함께해 충격적인 장면을 이루고 있다. 신비한 화면 속 소녀의 평온한 모습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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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14-04-12
  • 희망은 발밑에 있다
    ■ 차영란 (중국조선족대모임 응모작품) 얼마나 잤는지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더듬어서 핸드폰을 잡는다. 눈을 비비고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가 다 되어 갔다. 이불을 젖히고 누르끄레한 광선이 들어오는 창문을 내다 보았다. 4월의 해빛은 그렇게 찬란하지만 반지하실을 들어오는 광선은 누르끄레하여 대낮이여도 전등빛을 빌지 않으면 안된다. 주방문을 열어 놓으면 그나마 밝은 빛을 볼수 있으련만 옆집 할머니와 공동으로 전기요금을 부담하기에 사람이 하나라도 늘면 전기요금때문에 분쟁이 생긴다고 한다. 엉거주춤 일어나 전등을 켠다. 밝은 전등불이 삽시간에 어둠을 몰아간다. 나는 불시에 옆에 포개져 있는 신문을 쥐고 방바닥을 탁-하고 내리쳤다. 신문지를 들고 보니 바퀴벌레 한마리가 뻐드러져 있다. 요놈이 하루밤에 고손까지 본다더니 또 얼마나 새끼를 쳤을까 하는 생각에 온몸이 오싹해난다. 이윽고 익숙한 솜씨로 신문지 한모퉁이를 대고 쓸어 쓰레기 통에 넣고는 씁쓸한 생각에 입을 쩝쩝 다셔본다. 축축한 반지하방이 바퀴들의 활무대였고, 그들과 한 공간에서 숨쉬는것이 어지간이 습관이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새삼스레 발견한다. 어둠이 깃들어 우리가 휴식을 취할때면 바퀴들의 왕성한 활동이 시작된다. 그러다 불을 켜면 오도가도 못하고 참사를 면치 못하는 바퀴들. 한국에 온지 두달이 되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바퀴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내 신세 또한 가련하다. 전등불빛에 9평이나 될가 말가한 둘째 이모의 간단한 세간살이가 수줍은듯 드러났다. 옛날 꽃밥통만한 전기밥솥이 냉장고 옆에 댕그러니 놓여 있고 냉장고는 고장났는지 전기를 넣어도 돌아가지 않아 그릇이거나 계란판을 올려놓는 찬장으로 쓰인다. 한쪽 귀퉁이에는 며칠전 큰 이모가 집부근의 작은 회사에서 버린 테블을 주어들여 가정기물이 하나 불었다. 그걸 둘째 이모가 깔끔히 닦아 이불을 올려놓고 서랍에 약과 화장품 같은 것을 넣으니 제법 훌륭했다. 그 밑에는 커다란 트렁크 두개가 누워 있다. 하나는 내거 다른 하나는 막내 이모거.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를 빼고는 외할머니 슬하에서 태여난 자식들이 다 한국에 와 있다. 나라에 개국신이 있다면 우리 외가집에서 큰 이모가 공신이라고 할수 있다. 한국남자와 결혼해 한국에 온 큰 이모는 우리가 조금만 큰 소리로 불러도 들을수 있는 바로 윗 층에서 살고 있었고 그 혜택을 받아 둘째 이모, 막내 이모도 초청돼 한국행을 이루게 됐다.큰 이모네가 잠시 있는 전세집은 대낮에 불을 밝히지 않아 좋다. 그래서 이모부가 안 계실 때면 이모집에 물방울이 해면 속에 스며들듯 소리없이 잦아들군 한다. 그럴 때면 왜 내 머리속에 <옥탑방>이란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떠 오를까?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었다면 오늘 나의 소망은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일까? 나는 자던 이부자리를 개여서 이쁘게 올려놓는다. 배가 촐촐 해난다. 싱크대에 가 손을 씼고 밥주걱을 들고 밥솥을 마주한다. 내손으로 밥을 뜨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안산에서 장장 일주일동안 하루에 두때도 먹지 못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어제 밤 늦게야 이모집에 돌아왔다. 말로만 듣던 한국생활의 고달픔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안산에서의 생활이다. 친구의 소개로 안산 <중국동포의 집>에 머무르게 되였다. 6평이나 될가 말가한 방에 5명이나 비집고 자야 했다. 헌데 나한테는 덮고 잘 이불이 없었다. 먼저 온 사람들은 몇개씩 차지하고 깔고 덮고 하는데 그 누구도 나한테 넘겨주려고 하지 않았다. 강집사님과 상황 이야기를 했더니 아직 오지 않은 언니 탄자를 하나 뽑아 나한테 주었다. 헌데 그 언니(한족)가 퇴근해 돌아온후 자기 물건에 동의도 없이 손을 댔다고 인상을 쓰며 난리다. 상황이 얼마나 위태롭던지…… 강집사가 와서 해석을 해야 일이 해결되였다. 한쪽 귀퉁이에서 탄자로 몸을 감고 새우처럼 꼬부리고 쪽잠을 청하는 내가 그때처럼 외롭고 처량하게 느껴본적이 없었고 자신이 이처럼 작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후~ 집이 그리웠다. 엄마, 엄마 하던 새끼가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갖고간 옷을 베개삼아 베고 누운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한국에 금방 도착해 한밤중에도 거리를 헤매면서 울었다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늘에야 그때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것이 침대에 누워서 단과자를 먹으면서 전생시대 이야기책을 보며 느낌 찾는 것과 같은 허무한 짓거리라는것을 알았다. 그때 그 친구가 얼마나 고달팠으랴? 일주일동안 일당을 다니려고 매일 아침 다섯시반에 중개업소에 갔다. 고정된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문어구에 주렁주렁 서있고 여자들이 건물안 걸상에 덕지덕지 앉아 일을 소개해주는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 광경은 중국 연길에 있을적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을 때 양쪽으로 쫙 깔린 아가씨들이 손님이 자기를 부르기를 바라면서 앉아 요염을 떨던 모습과 어쩜 이리도 흡사할가? 다만 화려한 장소가 아니고 이쁘게 차려입고 남자를 꼬시는것이 아닐뿐이다. 그러고 보니 튼튼한 신체를 가진 것이 밑천이였다. 일자리 없어 헤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장애인인 나를 고용해주지 않는것이 불보듯 뻔한 사실이다. 일당에 선정된 사람들은 즐거워 하면서 일하러 따라나서건만 일당이 차려지지 않은 사람은 열시가 지나도록 아침밥도 못 먹고 폭 절인 파김치처럼 후줄근해 집에 돌아갈 것이다. 연속 며칠동안 일당을 뛰지 못한 러시아 고려인 이모가 엉엉 소리내어 울던 일도, 불법체류 한족 아가씨가 온 하루 땅이 꺼지게 한숨만 쉬면서 누워 있던 심정이 이해된다. 노동의 진가를 생각하며 나는 씁쓸히 웃어본다. 옆에 있는 작은 그릇에 밥을 뜬다. 그리고는 밥솥의 밥을 살살 부풀려서 살짝 덮어준다. 밥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감추려는 나의 반사적인 행동이다. 늦게 일어났으니 아침이자 점심이니 한끼는 생략한 셈이다. 밥 한숟가락을 입안에 넣고 시군 김치조각을 씹으면서도 오늘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중이다. 내가 와서 두달동안 함께 생활했지만 둘째 이모는 반찬도 따로 없이 싸구려 돼지 살고기를 사다가 냄비에 미역국을 가득 끓여놓고 퇴근하면 덥혀 드신다. 김치쪼각도 윗층에 있는 이모가 식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가져다 주면 그날 반찬 한가지는 추가된다. 세 자식을 대학생으로 키우는 우리 어머니의 고된 모습이다. 큰 이모집에 가 컴퓨터나 놀가. 숟가락을 손에 든채로 저켠에 댕그러니 놓여있는 핸드폰을 잡고 큰 이모댁 전화번호를 누른다. <뚜~뚜~>하는 발신신호가 가는데 받는 사람이 없다. 그제야 오늘이 수요일이어서 이모가 여성회관에 가는 날임이 생각났다. 얼마전에 이모가 다니는 여성회관에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이모는 그렇게도 열심히 살풀이 춤을 익히고 있었다. 큰 이모는 손을 감싼 긴 천을 흐느적거리면서 구슬픈 젖대소리에 어우려져 있었는데 보는 내가 그렇게도 처량할수가 없었다. 마치 지나온 세월을 절규하는듯한 몸짓이었다. 이모부의 헛풍스런 씀씀이에 빚을 걸머져 파리떼처럼 달려드는 빚군들 땜에 부득이 이혼을 선택해야 했고 중학교교원 자리마저 자퇴하고 두 어린 자식을 고향에 남겨 두고 한국길을 걸아야만 했던 고달픈 삶. 큰 이모는 어린자식을 그렇게 떼어두고 온 속병이 심장으로 넘어 자리에서 일어도 못나고 장장 삼년동안 앓았다고 한다. 헌데 작은 딸이 관광비자를 맡고 한국에 엄마보러 와서부터 기적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큰 이모의 말을 듣는 나의 가슴은 짠해진다. 자식이 뭐길래? 큰 이모는 또 교통비라도 아끼겠다며 걸어서 장보러 다녔으며 이모부가 생활비를 주면 천원이라도 모아 중국에 계시는 외할머니한테 보내느라 애썼다. 어떤땐 이모부 자식들이 밝혀서 얼마 안되는 돈을 안 신는 신발에 넣어 두거나 또 신발을 버릴 것 같아서 눈에 안 띄우는 곳에 치우느라고 애썼다고 한다. 그러다 집식구들이 느닷없이 들이 닥치면 가슴에 참새를 감추듯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은 두 딸이 다 일본유학을 갔다. <한국은 나한테 아무 미련도 없어. 나 한몸 훌쩍 떠나면 뒤 돌아볼 것도 없지만 또 떠날 수 없었다. 가까이에 새끼들을 두고 보살필 수 없지만 꿈속에서도 두고 온 자식들을 찾아 헤맸어.> 큰 이모가 눈굽을 찍으면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큰 이모도 집에 안계시니 먹은 그릇을 대수 가시고 나는 무작정 길거리에 나섰다. 어디론가 가야만 했다. 골목마다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집에서 갖고 온 한화도 얼마 안 남았다. 일자리 찾을 때까지 며칠이나 더 버텨야 할지 알수 없어 아껴 써야만 했다. 4월을 마감하는 뜨거운 해볕이 정수리를 지진다. 큰 길에도 오가는 차량들로 꽉 메운다. 조금 지친 나는 어디 들어갈 곳이 없나고 살핀다. 그리 넓지 않은 길 양편에는 각양각색의 음식점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불고기집 창 너머로 지글지글 고기굽는 소리가 들리는듯 싶다. 고향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불고기집을 잘도 다녔는데 지금은 불고기 맛이 어떻던지도 가물가물해난다. 시원스레 마당을 차지한 생회집 수조에는 낙지들이 유리벽을 벗어나려듯 꼬불거린다. 그것을 보니 한달전에 이모부랑 함께 제부도에 광어회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제부도에 도착하니 금방 잡아들인 생선을 회쳐서 파는 편의 음식점들이 그렇게도 많았다. 대륙에서만 살아온 내가 그렇게 살아 있는 별의별 희구한 생선들을 보기에는 처음이다. 바다밑 세계를 옮겨다 놓은 듯 현란하였다. 함께 간 일행이 한 테블에 앉았다. 광어회가 식탁에 오르기전 꼬불거리는 낙지회가 먼저 올랐었다. 생회먹는 것에 습관이 되지 않은 나는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저가락으로 작은 낙지다리를 집으니 저가락에 착 달라 붙었다. 온몸이 다 근질거리는 것 같아서 도무지 입에 넣을수 없었다. 이모랑 이모부랑은 초장에 찍어서 참 맛있게 드셨다. 나도 집은 낙지를 초장에 찍었다. 토막은 났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몸부림인듯 꼬불거리는것을 보니 저도몰래 도전장을 걸고 싶었다. 그래, 한번 먹어보자! 입에 넣으니 꼬불거리는 것이 좀 그렇긴해도 생각보다 맛있었다. 자연산 광어회도 얼마나 단백하고 맛있던지 진짜 회맛을 그날에야 제대로 느낀 것 같았다. 그래, 모든것은 직접 체험하고 느껴야 해. 먹거리를 지나니 지하철역이 나타났다. 스르르 올라가는 계단식 엘리베터에는 사람들이 자석에 붙은듯 <1>자로 오른쪽에 찰싹 붙어 오르고 왼쪽은 갈길이 급한 사람들이 달음쳐 오르고 있다. 엘리베터에 실었던 몸을 내린 나는 매표구로 천천히 걸어간다. 앞에 아직도 몇사람이 있다. <무임권>을 받으려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과 교통카드를 충전하려는 사람들이다. 나는 일부러 늦장을 부리며 여유를 갖는다. 표를 파는 사람이 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걷는다. 충전한지 얼마 안된 교통카드는 바지 호주머니에 있지만 매표구에 섰다. 나의 차례다. 매표구에서 <무임권> 한장을 쑥 내민다. 살짝 목례를 하고 그것을 받아 들고 달려가 입구에 넣는다. <무임권>이 쓱 빨려들어가고 작은 문이 열린다. 작은 문을 통과하며 출구로 빠져나오는 <무임권>을 다시 받아 쥔다. 이 모든것이 익숙하게 진행된다. 언젠가 표파는 아저씨가 나를 한국장애인으로 착각하고 <무임권>을 내 밀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무임권>을 받아가지고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서울권 전철을 마음대로 탈 수 있는 혜택을 누리게 되였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정말로 간사한것이다. 백원도 아껴써야 할 시점에 낯에 철판을 깔아야만 했다. 플래트 홈으로 1호선이 들어온다. 열차가 들어오니 안전에 주의하라는 안내방송도 흘러나온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좁은 문을 통해 나오고 대기 하고 있던 사람들은 흡진기에 먼지가 빨리듯 빨려 들어간다. 어디에 앉을가? 렬차에 앉으면 항상 하는 고민이다. 노약자석은 그대로 비어 있다. 그래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일반석에 앉았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으면 오해를 받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니 또 많은 사람들이 올랐다.그때면 나는 노약자석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긴다. 노인들이 오르면 또 살그머니 일어서 자리를 비워드린다. 그러기를 반복하다보면 결국 의자에 엉덩이를 별로 붙이지 못한다. 어디에 가나 내가 머무를 곳이 아닌듯 그렇게도 불편하다. 이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타향살이>라는 흘러간 옛 노래가 은은히 울려퍼진다. 내가 목을 빼들고 소리나는 그 쪽을 바라보니 멋을 이상하게 부린 한 아저씨가 녹음테프를 팔고 있었다. 흔하게 보아 오던 풍경이다만 그 노래를 듣고 있노라니 눈에서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주르르 흐름은 웬 까닭일까? 모두들 눈을 감고 지친 몸을 달래느라 나를 주시하는 이는 없다. 그래도 소매치기 하다 들킨 사람처럼 나는 인츰 차창밖에 눈길을 던진다. 흐릿한 시야로 언뜰언뜰 지나가는 모든 것이 흐릿하다. 언젠가 한 장애인이 전철에서 구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돈잎을 동냥한 적이 있다. 모두들 백원짜리 쇠돈을 넣어주는데 나 만은 모르쇠를 놓고 있었다. 사실 나한테는 그를 동정할만큼 여유가 없었고 가능하다면 나도 엎드려 구걸하고 싶었다. 누가 나한테 일자리를 구해 주십소 하면서. 그만큼 나한테는 일자리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절박하였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찾는다고 일자리 찾기 위해 겁도 없이 마산에 무작정 달려갔던 일, 간난신고 끝에 찾아간 곳은 콜레스텍이라고. 연변에서 말하면 무도장이라고 하면 적당할가? 그런 곳이였다. 지배인은 정수리 머리가 훌렁 뻣어진 칠십대를 훌쩍 넘긴 시각장애인이었는데 한달 월급은 30만도 안되지만 대신 DJ과 비슷한 음향기술을 배워주겠다고 하였다. 달랑 주소 하나 가지고 한가닥 희망의 끈이라도 잡아 보려고 찾아 갔는데 그때 당한 허무함은 억장이 무너진다고 표현해야 할가? 이미 늦은 밤이라 안하겠다고 박차고 나올 수도 없고 그냥 어두컴컴한 한쪽 방에서 테불위에 달랑 놓여 있는 성경책을 붙들고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 온 밤 뜬눈으로 새워야 했던 나. <다음 내리실 곳은 신도림, 신도림역입니다.> 전철에서 흘러나오는 상냥한 말씨다. 안양에서 앉았는데 벌써 신도림? 나는 광역전철 노선도를 꺼내들고 갈 곳을 정하려고 애썼다. 그래 뚝썸에 가 시원한 한강 바람이나 맞자, 갑갑한 가슴이 뻥 뚤리게. 나는 신도림에서 내렸다. 2호선을 갈아 타려는 인파에 섞여 함께 흐른다. 이럴때 만큼 나도 한국의 국민들과 같이 동등한 위치에서 숨쉬고 있다. 녹색선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니 자연스레 2호선 플래트홈에 도착했다. 일부로 반대쪽으로 가는 전철에 앉았다. 될수록 멀리로 돌아 가는것이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2호선은 대림,신흥,신대방 등 역을 지나고 역마다 골물이 터진듯 인파들이 쏟아져 나가고 또 오른다. 전철노선도에 동그라미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나는 그다음에 거칠 곳을 외워본다. 내 주위에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로 학생이 중년으로 수없이 바뀐다. 드디여 뚝섬에 도착했다. 다른 곳에서도 한강을 볼 수 있으련만 친구가 이곳에서 써핑을 하기에 한번 온적이 있었으니 익숙한 쪽으로 선택한 것이다. 한강은 넓었다.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렇게 평온하였다. 맞은켠 높은 빌딩은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우월한 지리적 위치때문에 돈이 무진장하게 많은 부자들이 아니면 살수 없다던 친구의 말이 떠 오른다. 한강 뚝 여기저기에 철쭉이 활짝 피여 말그대로 핑크빛 축제였다. 연변의 진달래와 너무 흡사하여 가까이에 가 보니 이른 봄에 피여나는 파르르한 여린 진달래와 달리 억세게 보였다. 화창한 날씨여서 가족을 단위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 앉아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누비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 또한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우리 아들은 지금쯤 유치원에서 돌아 왔을까? 어린 자식을 몸도 겨우 운신하시는 어머님께 떠 맡기고 한국행을 했는데 이게 무슨 짓이람? 정오의 해도 저만큼 갔다. 눈부신 해빛이 한강의 물에 부서져 무수히 반짝인다. 연인들이 강뚝에 밀착해 앉아 사랑을 속삭인다. 이때 핸드폰에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누구지? 나는 핸드폰 액정화면에 떠오른 낯선 번호를 의심하면서 받는다. <여보세요?> <차영란씨 핸드폰 맞죠?래일부터 일당으로 박스 접는 회사에 나올 수 있으십니까?> <네. 그럼요. 혹시 제 신체 정황에 대해 아세요?> <네, 일단 오셔서 한번 가보세요. 래일 7시 전에 우리 업소에 도착해야 합니다.> <네. 알… 알았어요.> 나는 불시에 말까지 더듬었다. 안산에 있는 중개업소 몇군데다 핸드폰 번호를 남겼더니 연락이 온것이다. 답답하게 막혔던 나의 가슴이 한꺼번에 뻥 뚫린다.믿기지가 않지만 이번에는 꼭 믿어야 했다. 다시 한번 한강을 바라보았다. 지난 일들이 넘실대는 한강에 씼기워 나가는 듯 싶다. 그리고 웨치고 싶었다. 래일 일하러 나오래요. 래일부터 일 하래요. 나는 목표없이 가던 방향을 되돌려 도로 전철역으로 향한다. 고르롭지 못한 걸음이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힘차고 활기찼다. 희망은 분명 내 발밑에 있었다.
    • 오피니언
    201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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