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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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절 연휴 기간, 중국관광객 6만 8천명 한국 온다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오는 5월초 중국 노동절 기간에도 중국 관광객으로 한국이 떠들썩할 전망이다. 한국관광공사(사장 변추석)는 이번 노동절 연휴는 공식적으로 3일간(5.1-3)이지만 연휴를 전후하여 1~2일 더 쉬는 현지문화를 감안할 때 4월 30일에서 5월 4일까지를 중국 노동절 특수기간으로 보고 동 기간 중 약 6만 8천명의 중국인이 방한할 것으로 예측,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상속자들’,‘별에서 온 그대’등 한국 드라마가 중국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난 1~2월 방한한 중국인은 전년 동기 대비 40% 가량 증가한 62만 3천여명이다. 이에 공사는 드라마‘별에서 온 그대’촬영지를 연계한 코스를 중심으로 중국지역 언론인 및 여행업자를 초청, 전국의 드라마 촬영지 명소를 두루 소개하고 있으며 관련 상품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4월15일에는 개별관광객 비중이 높은 베이징·상하이·광저우 지역의 주요 언론사 기자 12명을 초청 하여 취재를 지원할 예정이며, 관련 상품개발을 위해 중국 주요도시의 여행업자 초청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공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국 개별관광객들의 편의를 증진하기 위해 4.1-5.11 기간 중 케이티스와 공동으로 통신·교통·쇼핑·관광 및 문화체험을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상품 [상품명‘观光护照(관광여권, 2nd Passport)]’의 온라인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공사 중국팀 서영충 팀장은“청명절이나 노동절 등의 단기 연휴에는 한국과 같은 근거리 목적지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높다. 한반도 안보환경 등의 잠재변수가 있지만 현재의 방한추세나 현지의 한류 열기 등을 감안했을 때, 이번 노동절 기간에도 많은 중국인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이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들을 친절히 맞아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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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2014-04-08
  • 독일 3사의 고성능 자동차 모델은?
    [동포투데이 국제] ] 외신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업계에서 브랜드 3개 회사의 고성능 자동차 판매량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BMW의(宝马)의 시리즈와 아우디(奥迪)의 “S” 라인, 그리고 벤츠의 시리즈 모델 등은 매년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BMW 뉴 N6 쿠페 뉴 N6 쿠페(双门箱式轿车)는 엔진과 브레이크, 변속기, 서스펜션(减震器) 등 차량 전반의 성능을 대폭 승화시킨 자동차를 말한다.주요 자동차업체들은 스포츠카 경기 등을 통해 검증된 기술력을 소수의 고성능 자동차에 집약시켜 내놓는다. 이처럼 브랜드를 대표하는 고성능 자동차는 기본 모델보다 가격이 1.5~2배 이상 비싸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 가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아우디 S7 아우디의 고성능 모델 중 최초의 스포츠 효익차량(SUV)인 이 자동차는 출시 6개월 만에 판매 2위 자리에 올랐다. 르망(勒芒) 24시를 제패한 이 차는 3.0 TDI 엔진이 장착돼 있다. 벤츠 E 63 AMG 4MATIC벤츠는 고성능 모델인 AMG 판매양이 지난해에 그 전년보다 17.4% 줄었다. 독일 3사 중 유일하게 감소했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글로벌 수요 증가로 물량이 줄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실적이 나빠진 경우였다. 팔고 싶어도 물건이 없어 못 팔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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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8
  • “배놈”의 세계
    ■ 김철균 1992년 3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에서 승선할 때는 5명, 1994년 9월, 스페인 라스팔마스항에서 하선할시엔 3명… 한명의 친구를 진눈까비 흩날리는 남대서양의 차디찬 바다에 수장하고 또 한명의 친구를 태평양의 군도 - 싸이판의 유치장에 남긴채 환고향하는 학송이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1 부산항구, 제2부두 무역선이 오고 가는 배길 따라 원양송출선 “프리오이워니오”호가 고동을 뽑으며 부두에 닿은 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부산, 꿈결에도 안기고 싶던 조상의 산천이다. 그 시각 중국 조선족선원인 학송이는 이름할 수 없는 정감세계에 사로 잡혔다. 고향인 경남 울산에도 가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아버지를 대신해 이 땅을 밟는다는 행운이랄까? 그의 눈시울은 어느 덧 축축히 젖어 들었다. 학송이 외 기타 조선족선원들은 고국이고 뭐고 그닥 흥미가 없어했다. 흉터많은 얼굴에 항상 성난 표정인 “안도망치” - 덕수, 담배를 꼬나물면 한숨만 내쉬는 정택이와 용철이 그리고 총각인 봉남이, 그중 학송이와 함께 외출하고 싶어하는 친구는 용철이였는데 목적은 집에서 갖고 온 우황청심환을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입항절차가 완료되고 모두들 샤와까지 마치자 1항사로부터 중국선원들만 식당홀에 모이라는 통지가 방송됐다. 1항사의 통지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교포친구들, 미안하군요. 회사본부로부터 교포선원들을 상육시키지 말라는 지시가 있습니다. 아마 아르헨티나 탈출사건 때문에 이런 조치가 내려진 모양입니다.” 아르헨티나 탈출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중국선원 4명을 고용해쓰는 기름탕크선 한척이 아르헨티나의 어느한 부두에 입항, 그 이튿날 저녁 그 배의 중국선원들은 악덕 한국선원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돈도 더 벌기 위해 선박탈출을 시도했던 것이다. 헌데 머리가 그토록 돌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탈출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글쎄 탈출한다는 친구들이 그까짓 옷과 비누와 라면따위를 놓은 보따리를 둘처메고 항구정문을 빠져 나왔으니 의심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행처는 야간 택시기사들과 연락하니 인차 드러났다. 결국 그들은 멀리도 가지 못한 채 어느 한 창녀촌에서 덜미를 잡혔다. 그런 전례가 있은 즉 회사에서 다른 곳도 아닌 한국에서 중국선원들이 상육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상육금지에 애석해하는 선원은 2명, 한명은 고국정에 울고 있는 학송이었고 다른 한명은 우황청심환을 팔지 못해 속이 탄 용철이었다. 2 “자넨 인격도 없는 인간인가? 왜 그까짓 한국옷 때문에 치사하게 놀아! 그들이 싸구려옷들을 주면서 우릴 거지취급한단 말이야. 정신차려 이 친구야.” “자네는 너무 자존심이 강해. 약하면 굽어들기 마련 아니야? 약소민족한테는 외교도 없다고 했어.” 한국옷을 놓고 바다에 처넣으러느니 못그러겠다느니 싱갱이질하는 학송이와 용철이, 그 광경을 차마 그냥 볼 수 없어 그 옷가지들을 확 나꿔채여 바다에 날려 보내는 덕수, 학송이한테는 말대꾸도 하고 제법 성낼줄도 알지만 덕수앞에서는 찍소리 한번 못하는 용철이다. 아니, 덕수란 이 “안도망치”앞에서는 감판장 김만길마저도 은근히 두러워 하는 편이었다. 포클랜드해상에서 전재작업을 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어창에서 뒤가 나오도록 긴장히 일하는데 덕수가 진짜 뒤를 보겠다고 간청했다. 이에 반신반의하면서 응낙하지 않는 갑판장. “아이구, 갑판장님, 진짜 참을 수 없수다. 정 안되면 여기서 바지를 벗게 되겠는걸요.” “그래 이 새끼야, 꾀부리는게 아니면 네 엉뎅이 한번 구경하자꾸나.” 그러자 덕수가 정말 바지를 벗더니 똥 한무더기나 내 갈길줄리야. 순간 역한 구린내가 공기가 희박한 어창안에서 지독하게 풍겼다. 괄시당했다고 느낀 갑판장은 성이 나서 길길이 뛰였다. 거기에 동조하여 덕수한테 물매를 들이대는 한국선원들, “미욱하기로 돼지같다”느니, “인간성없는 빨갱이”라느니 하며 별의별 욕설이 다 튀여 나왔다. 하지만 이에 굴복할 덕수가 아니었다. 그가 물매속을 헤치고 고기박스더미위로 뛰쳐올라 갔을 때는 이미 옷도리를 팽개친 뒤였다. “이 쥐불알같은 남조선 새끼들아, 내몸의 칼자리만 봐라. 언제 네깐놈들을 무서워한 나였더냐! 다 함께 덤벼들어봐라, 너 갑판장 네놈부터 내 손에 죽어봐라!” 덕수가 쇠갈구리 하나를 주어들고 생사결단하니 뒤걸음치는 건 오히려 갑판장과 한국선원들이었다. “저 놈 완전히 미치고 돌아 버렸어. 관두자, 똥이 무서워 피한다더냐, 더러워 피하는거지.” 그 일이 있은 뒤부터 갑판장이 덕수를 대하는 품이 어딘가 달라졌다. 덕수가 좀 아프다고나 하면 “응, 그래? 오전에 약 먹고 푹 쉬렴” 하기가 일쑤였고 술처먹고 근무해도 머리를 돌리며 모르는체 하기만 했다. 덕수가 이렇게 무법분자인가 하면 용철이는 그 정반대였다. 그는 말그대로 돈이라면 인격도 없는 인간이었다. 예하면 자기보다 손 아래인 한국선원들의 구두를 닦거나 빨래를 하여 풋돈벌이를 하는것이었다. 3 “배놈”으로 생겨 오입 한번 못해보면 평생후회라는 말은 선원들의 입에 오래전부터 굳어진 말이다. 그러건 말건 학송이는 승선한지 1년이 다 되도록 창녀촌출입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이성이 싫어났고 풍류세계와 담을 쌓은건 결코 아니었다. 네델란드 항구도시 로톨담, 지구촌의 수많은 항구에 가닿았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던 학송이가 로톨담에 입항한 그날 저녁 선참으로 외출하자고 했다. 그 것도 유럽미녀들만 있다는 “해상천국”이란 창녀촌에 가서 몸이나 풀자고 했다. 학송이한테서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학송이와 동행한 사람은 용철이와 덕수였다. 그날 밤, 그들을 실은 택시는 항구주변을 요리조리 돈 뒤 다시 바닷가로 뻗은 방파제길로 몇분간 달리더니 바다가운데의 한 호화로운 건물앞에서 멈춰섰다. “하와이유, 굳나인(인사말).” 계단앞에서 싸롱뽀이의 안내를 받으며 그들은 3층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그들이 좌석에 둘러앉자 레지 한명이 메뉴안내서를 가져왔고 뒤따라 마담이 창녀들의 사진이 박힌 스크랩을 갖다 보이며 영어로 뭐라고 씨부렁댔다. 사달은 여기서 생겼다. 나름대로 사진 하나를 가리키며 흥정하는 용철이. “아임 차이나맨 스몰머니 원 한드레딸라 오케이?(중국인 돼서 돈이 적으니 100달러면 되는가?)” 엉터리 영어구사였으나 마담은 알아듣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차이나맨? 노, 노, 스몰머니 노터치 우먼!(중국인?돈이 적으면 아가씰 못다쳐!)” 마담은 가차없이 축객령을 내렸다. 옆에서 웃고 떠들며 비꼬는 양코배기들과 일본인들… 그날 밤 선박으로 돌아온 학송이는 정신없이 술을 들이켰다. 그러면서 노래를 불렀다. … 돌아 보면 그다지도 먼길도 아닌데/ 저 멀리 솟는 해는 날보고 웃네/ 취한 김에 껄걸 웃지만 웃는 눈에 맺힌 눈물은/ 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의 눈물… 아, 돈! 그 돈이 그다지도 중하다더냐?… 이튿날 저녁 학송이는 홀로 택시를 타고 “해상천국”으로 향했다. 그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은 뒤 미구하여 각양각색의 피부를 가진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그 속에는 본선의 한국사관 몇명도 끼어 있었다. 이 때라 생각한 학송이는 마담을 불러 제일 몸값 높은 아가씨를 자기 옆에 앉게 했다. 두시간쯤 흐른 뒤, 아가씨의 팔을 끼고 다시 나이트클럽 공개홀에 나타난 학송이의 모습, 한국인들은 물론 내노라던 일본인들마저 눈알이 뒤집혀질 지경이었다. 아가씨의 몸값은 2000딸라, 한국인 항해사의 한달 급여와 맞먹는 어마어마란 액수였다. 4 그들 일행이 “프리오이워니오”호에 승선하여 세상이 좁다하게 주름잡아 온지도 어언간 1년 6개월, 그 사이 조선족선원 거개가 정도부동하게 “중국똥포”란 딱지를 뜯을만큼 근사한 한국인으로 닮아갔는데 말씨부터 중국교포의 말씨라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중국에서 대학과정을 마친 학송이는 물론 정택이, 봉남이 그리고 “안도망치”덕수까지도 제법 선박생활에 잘 적응했다. 하지만 해와 달이 바뀌도록 고약한 습관을 고치지 못한 인간은 용철이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다거나 한턱 술 사야 돈주머니를 풀어 놓는다거나, 그외 1년 넘도록 고향서 갖고온 엽초를 피운다거나 하는 걸 보면 같은 중국선원들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깊은 밤, 갈매기도 지친듯 사라졌고 사위를 둘러봐도 어둠이 깔린 바다. 이 시각 “프리오이워니오”호는 남대서양의 차디찬 파도를 헤가르며 포클랜드군도를 바라고 배길을 재촉했다. 바로 이 때 웬 검은 몸뚱이 하나가 갑판에 나타나더니 살금살금 기름저장고 입구쪽으로 다가갔다. 용철이었다. 약 20분간 스파나로 싱갱이질한 끝에 뚜겅을 열어제친 그는 다시 한번 사위를 둘러보고는 그 속으로 사라졌다. 이 기름저장고는 새기름을 넣기 위해 낮에 반나마 청리하다가 그만 둔 것이었다. 기름저장고 청리작업이란 공기가 희박한데다 기름 자체의 독성이 강하기에 일반적으로 선박에서는 방독면을 쓰고서야 이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각 남몰래 기여드는 용철이한테 방독면이 있을지 만무했다. 낮에 작업할 때 한국인 3기사 김형모씨가 부주의로 손목시계를 기름깡치속에 떨어뜨렸는데 용철이는 그것이 탐나서였다. 이탈리아 로마제품인 그 시계는 순금이라 했다. 금시계란 말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용철이는 미처 모든걸 고려할 여지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7시경, 짙은 안개속을 헤치며 배가 계속 항행하는 가운데 갑판으로 조깅을 나갔던 기관장이 급기야 소리치며 식당에 들어섰다. “밤새 누군가 기름저장고 뚜껑을 열었어.” 선원들이 웬일이냐고 갑판으로 우르르 몰려가보니 열어 제친 뚜껑우에는 스파나 두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선원 3명이 방독면을 쓰고 그 안에 들어가 이미 숨져 굳어버린 용철이를 찾아낸 것은 그 때로부터 10여분 후였다. 용철이의 두손에는 손목시계와 그 때까지 켜진채로인 플랫시(손전등)가 쥐여져 있었다. “쯧쯧, 그까짓 시계가 얼마나 욕심이 났으면… 가난이 원쑤야.” 선장과 기관장 지어는 3기사마저 죽은 이의 소행을 너그럽게 용서해 줬으나 학송이한테는 그 말이 매를 들이대는 것보다 더 옹이 막히는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값없는 죽음을 당했지만 선내에서는 고인과 그 가정을 위해 의연금을 모았고 장례까지 치러 주기로 했다. 장례식을 하던 날, 흐리터분한 하늘에서는 진눈까비가 지궂게 흩날렸다. 항행을 멈춘 선박이 한바다에 정박한 가운데 장례식은 기독교신자인 선장의 설교로부터 시작됐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 불쌍한 인간을 끝까지 구하지 못한 죄많은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속죄하나이다. 너그럽고 자애로운 하나님께서 부디 자선을 베푸시여 가는 이는 눈을 감게 하고 살아 남은 우리들은 죄를 피하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장례식은 별다른 절차없이 간단히 진행되었다. 선장으로부터 술을 붓고 절을 한 뒤 크레인을 리용해 고인을 수장하기로 되어 있었다. 죽을 때까지 돈과 재물을 탐내다가 숨진 현대의 “수전노” - 용철이, 카톤박스안에 포장된 그의 시신이 크레인에 의해 하늘 반공중에 떴을 때 브릿치에서는 세번 고동을 울려 애도를 표했다. 가련한 목숨, 가도 이렇게 가다니… 평소엔 그토록 괘씸한 용철이었으나 무정한 현실앞에서는 학송이도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고인의 시신이 “철렁”하고 바다에 던져지자 그 것은 인차 파도속에 휘말려 들었다. 그 것이 다시 물우에 나타났을 때는 저 멀리 작은 점으로 되어 이리저리 표류했다. 그것도 잠간뿐, 미구하여 그 것이 끝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모든 것은 언제 그랬냐 싶게 원상태로 돌아왔고 선박은 다시 항행을 계속했다. 5 용철이가 죽은 뒤 겨우 심리균형을 찾고 안정됐던 덕수의 야성이 되살아 날 줄이야. 그 역시 용철이를 곱게 본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악덕 한국선원들이 용철이의 행위를 거론하면서 어진 정택이와 봉남이를 기시할 때면 가차없이 주먹맛을 보이군 했다. 이런 반상적 행위는 설사 그가 한국선원이라 해도 강제귀국범주에 속했겠으나 웬일인지 선내에서는 그한테 아무런 징계도 주지 않았다. 아마 오래잖아 근무만기가 되는데다 특히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선상에서 징계위원회라는 것도 그를 건드리기 싫어 내버려둔 모양이었다. 지중해와 수에즈운하 그리고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에 들어선 “프리오이워니오”호는 그 시각 싸이판을 바라고 항행하고 있었다. 싸이판, 일본군 점령지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학도병으로 말아 먹었고, 그 뒤엔 동맹군의 승리로 미국땅이 된 군도이다. 입항하던 날 저녁, 중국선원 4명은 집단적으로 외출길에 올랐다. 이제 싸이판을 떠나 다음 항구에 들어가면 근무만기가 될 그들이었으니 말이다. 야자수 우거지고 해풍이 가볍게 얼굴을 희롱하는 싸이판의 야경은 황홀했다. 에이젠트가 그들한테 알선해준 곳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모 디스코바였다. 깊은 밤이 아니어서인지 바홀안은 퍼그나 조용한 편이었다. 한국인 2남 2녀가 다정하게 소곤대고 있는외 필리핀선원 몇명이 들어오더니 한쪽 구석을 차지했다. 바의 댄서아가씨들은 일색으로 한국말에 영어가 짭뽕인 동양인아가씨들이었다. 오래간만에 상종하게 될 동질감을 느끼는 아가씨들이다. 일찍 한국이 가난하던 20여년전 일본선박에서 근무하던 반도의 마도로스들은 기시와 천대를 받을 때마다 섬나라 계집들을 정복하는 것으로 그 스트레스를 풀었다 한다. 하다면 오늘 학송이네도 반도계집들의 배를 타보는 것으로 지겹고 짜증나는 “배놈”생활에 종지부 찍는 것이 목적이었다. 학송이가 머리를 끄덕이자 총각인 봉남이가 담도 크게 제일 이쁜 것들로 4명 골라잡고 끌고 왔다. 사내들한테 안기다 싶이 몸을 밀착시킨 여인들. “아저씨들 참 멋져요. 이 아저씬(덕수) 꼭 마치 야쿠자같아도 진짜 사내다와요.” “임잔 숫총각인가베? 이것보지 이 누님이 오늘밤 사내로 만들어줄가베. 마이프런드 사랑해.” 세계를 메주밟듯 해온 “배놈”들보다도 한술씩 더 떳다. 술을 붓고 떠드는 혼탁한 무드속에 화제는 또다시 덕수한테로 돌아왔다. 그녀들은 덕수의 배가 크고 히프와 가슴도 커서 탐난다느니 하며 찧고 까불어댔다. 이에 흥이 나서 제딴에 우쭐대는 덕수. “나 말이야, 못살고 가난한 중국서 왔지만 세상서 제일 멋진 마도로스란 말이야.” 그 말에 아가씨들의 눈이 화등잔처럼 됐다, “쳇, 똥포들이구만. 그러게 어딘가 표가 난다 했지. 우리 이걸로 끝내는게 좋잖어? 얘들아, 자 일어들 나자.” 이렇게 자리를 뜨던 중 한 아가씨가 엉겁결에 “참, 썅디메이야”라고 지껄이였다. “썅디메이(想得美)”란 한마디에 학송이는 문득 짚이는바 있었다. “이 계집년들아, 흉내를 낼터면 근사해야지. 썅디메이가 다 뭐야? 네 년들이야말로 진짜 중국똥포년들이구나.” “뭐야?” 죄꼬만 눈에 살기를 내뿜는 덕수, 싸이판이란 이 낯선 땅에서 같은 조선족년들한테서까지 “똥포”취급을 받다니 “펑”하는 맥주병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 아가씨의 머리에서 선지피가 콸콸 쏟아졌다. 이지를 잃고 칼날처럼 예리한 깨진 맥주병을 계속 휘둘어대는 덕수, 한국인 남자 둘이 말리려다가 둘다 덕수의 발길에 채이어 저만치 뿌리워 나가 뒹굴었다. 홀안은 삽시에 수라장이 되었다. 학송이는 어떡하나 덕수를 구슬려 피하려 했으나 녀석이 어찌나 기운이 센지 도무지 용빼는 수가 없었다. 어느 결에 경보를 울리며 들이닥친 경찰차,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덕수는 흑인경찰 2명이나 때려눕혔다. 그날 밤 그들 4명은 모두 경찰들한테 연행됐다. 2일 후 학송이,봉남이와 정택이는 풀려 나왔으나 덕수만은 예외였다. 맥주병에 얻어터진 아가씨가 출혈이 심해 병원에서 숨진데다 녀석이 경찰까지 때려 눕혔으니 옥살이를 면치 못하게 됐다. 배가 출항하던 날 덕수는 2명의 경찰한테 이끌려 부두까지 왔다. 죄수복에 수쇄까지 찼건만 겉으로는 여전히 개잡은 포수마냥 우쭐대는 덕수. “학송형,나 한놈의 옥살이로 우리의 본때를 보여 줬으니 그래도 통쾌해 하하하…” 그러면서도 눈확을 적시는 억대우같은 사내의 눈물, 그 역시 참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닻줄을 거두어 들인 “프리오이워니오”호가 육지와 떨어지는 순간 덕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땅바닥에 꿇어 앉으면서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함께 가자. 왜 나 혼자를 두고 너희들만 가는거냐?! 엉엉… 이 괘씸한 녀석들아!…” 완전히 실성한 덕수, 그한테 무슨 위안을 해줘야 할지 학송이는 도무지 적절한 말구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부두가 멀어지고 덕수의 모습이 하나의 점으로 가물거리다가 점차 사라지자 학송이는 재차 용철이를 보낼 때의 그 이상야릇한 감정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 × × 1992년 3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에서 승선할 때는 5명, 1994년 9월, 스페인의 라스팔마스항에서 하선할시엔 3명… 한 친구를 진눈까비 흩날리는 남대서양의 차디찬 바다에 수장하고 또 한 친구를 태평양의 군도 - 싸이판의 유치장에 남긴채 환고향하는 학송이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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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8
  • 中 훈춘서 일본군 요새로 추정되는 유적 발견
    [동포투데이=연변]중국 훈춘시 춘화진 초평촌 동쪽 이도관 산속에 중국침략 일본군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큰 규모의 요새유적이 발견됐다고 중국 현지 언론 연변조간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초평촌의 촌민 마연파, 장본용 및 장고봉사건기념관 관장 유충지, 춘화 변방파출소 부소장 유군 등이 유적지를 답사한 뒤 초보적으로 중국침략 일본군이 만든 군사요새로 추정했다. 답사 중 현지에서는 일본군의 망대기좌가 보였고 이도관 동쪽언덕위와 산기슭에서 일본군이 로시아 쪽을 향해 건설했던 토치카 유적과 요새지 통풍구로 짐작되는 잔해물, 동쪽산 중심부에 비행기 투하점과 훈련장으로 보이는 장소, 물탱크자리, 요새의 주요 출구 등이 발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사에 요해가 깊은 유충지 관장은 일본군이 이 곳에서 요새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보인다며 역사자료에서는 이 두 토치카가 1945년 소련군에 의해 폭파된 것으로 기록됐다고 했다. 유충지 관장은 역사자료의 기재상 초평 동산에 확실히 군사요새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해방전 일본군 통역으로 근무한 적 있던 당지 “최헌병”이란 사람이 지난 세기 60연대 말 공안기관에 연행되어 두가지 문제를 진술한 적이 있었다. 한가지는 초평 동산에 확실이 일본군이 건설한 산굴이 있었다는 것, 다른 한가지는 산굴이 준공되기 전날 일본군은 요새건설에 끌어온 인부들에게 “물고기 연회”를 베풀어 몰살시켰다는 사실을 진술했다고 한다. 그 당시 공안기관에서는 “최헌병”과 함께 초평 동산에 가서 산굴의 출구를 찾은 적 있었지만 수십년 뒤이고 숲이 무성한데다 일본군 철거시 산굴을 폭파했고 또 위장해 놓았기에 요새출구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후부터 초평촌 동산은 당지 사람들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국가로부터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요새에 대해 중시해서부터 당지 사람들은 다시 초평요새의 미스터리를 풀려고 시도, 2011년 춘화진 당위서기로 근무한적 있는 이보상이 초평촌민들을 이끌고 요새출입구 발굴을 시작, 뜻밖의 사망으로 요새찾기가 일시 중단됐다가 후에 다시 마련파, 장본용 촌민이 오늘날까지 그 “작업”을 계속해 왔다. 당지 촌민들의 증언 그리고 “최헌병”의 진술로 보아 초평 동산은 일본군의 군사금지 구역으로 획분되었었고 외지 인부들을 대량 투입해 은밀한 군사건설을 진행했다면 그것이 요새건설가능성이 컸다. 다른 한편 일본에서 출판한 “관동군”에서 보면 분수령 맞은 켠의 바라바쉬는 소련군의 39군 군부, 92보병사 사부, 59국경경비부대가 주둔해있었다. 이는 당시 춘화진에 한 개 중대를 주둔시킨 일본군에게도 초평 동산을 군사요충지로 설정했을 가능성이 많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이 곳은 북쪽에 있는 동녕요새, 남쪽의 오가산요새와 서로 사이를 두고 상통하며 호응할 수 있는 곳이기에 그 필요성을 한층 말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료상으로 보면 일본전쟁범 전 수상 도쵸히테키가 “일본군 주력부대를 만주의 동부 지역에 집중했다가 소련의 우수리스크(双城子), 블라지포스토크, 이만 등지를 점령하고 더 나아가 하바롭스크를 점령하려 했다”고 자백한 것을 봐도 소련을 향해 침공하는 것이 일본이 획책했던 음모중의 하나였다. 만약 일본이 당시 “북진”한다면 소련 원동지역의 가장 큰 항구이고 원동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소재지었던 블라지포스토크는 긍정코 일본의 주공격 목표였을 것이라 판정할 수 있다. 유충지와 촌민들은 초평 동산의 침묵을 깨뜨리는 것은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부여한 과제라며 정부 해당 부문에서 초평촌 동산에 대한 답사를 진일보 추진해 이 미스터리를 풀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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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7
  • 中 ,“단독 2자녀” 정책실시후 산후도우미 임금 직상승
    [동포투데이=상하이]지난 3월부터 상하이에서 도입된 “단독 2자녀” 출산정책이 산후도우미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로운 정책의 시행으로 둘째 출산을 계획 중인 예비부모들이 산후도우미 지원에 나섬에 따라 그들의 몸값이 올라가고 있는 추세라고 일전 신문신보가 보도했다. 가사관리서비스 전문기관에 따르면 요즘 둘째 출산을 계획 중이라며 산후도우미 관련 정보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이들은 애를 낳아본 경험이 있어 산후도우미에 대한 요구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반드시 저장(浙江), 장쑤(江苏) 등 지역 출신이어야 한다, 3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한다 등이다. 산후도우미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파트타임 파출부, 입주 도우미들도 산후도우미로 신분을 바꿔볼까 고민하는 있는 분위기다. 예전에는 산후도우미 교육 과정이 복잡하고 신경도 많이 쓰여 포기했지만 지금 정도의 월급이라면 도전해 볼만 하다는 것이 그들의 솔직한 마음이다. 입주 도우미로 일할 때의 3500~4500위안 내외 월급에 대비해 산후도우미로 일하게 되면 초보일지라도 6000위안은 받을 수 있으며 3년 이상 경력자의 경우는 8000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존에 공급이 부족한데다 “단독 2자녀” 출산정책 시행으로 수요가 몇배 이상으로 뛰어올라 일자리 찾기가 쉬울뿐더러 골라서 할 수 있다는 욕심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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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7
  • 화웨이 에릭슨 제치고 세계최대 통신장비공급업체로
    [동포투데이=국제]일전, 중국 화위(華爲)사가 발표한 2013년 재무보고에 따르면 화위는 지난해 세계매출이 2390억위안에 달해 지난해 동기 대비 8.5% 증가했고 210억위안의 순이익을 창출하면서 에릭슨(Ericsson)을 초월해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 공급업체로 등극했다. 최근년간 세계통신장비 공급업체순위에서 화위는 제2위를 고수하는 한편 업계 일인자인 에릭슨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지난해 재무보고서에서 보면 화위가 드디어 수입규모나 이익창출에서 전부 에릭슨을 초월해 세계통신장비시장에서 새로운 거두로 부상했다. 최근 에릭슨이 발표한 년간보고서 따르면 2013년 에릭슨의 영업수입은 2193억위안에 달하는 353억달러로 2012년과 비슷한 상황이며 순익이 19억달러로 약 118억위안에 맞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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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7
  • 일본축구 U-17 여자월드컵 우승
    [동포투데이=스포츠]중국 신화넷에 따르면 일본 17세 이하 여자축구대표팀이 2014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첫 우승고지에 올랐다. 5일, 일본은 코스타리카 산호세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스페인을 2 : 0으로 물리쳤다. 전반 5분 메이카 니시다가 문전 혼전중 선제골을 터뜨린 일본은 후반 33분 후카 코노가 리카코 고바야시의 패스를 받아 추가골을 성공하면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일본은 공점유율에서는 47 : 53으로 밀렸지만 슈팅차수에서 15 : 6으로 크게 앞섰고 유효슈팅도 상대보다 7개 많은 9개나 되는 등 효율적인 공격축구를 구사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은 단 한번도 지지 않는 기쁨도 누렸다. 지난달 16일 스페인을 2 : 0으로 꺾은 것을 시작으로 파라과이전 10 : 0, 뉴질랜드전 3 : 0 등 조별리그를 3승 무패로 통과한 일본은 8강에서의 멕시코전 2 : 0, 4강에서의 베네수엘라전 4 : 1 승리를 거둬 이번 대회 23득점, 1실점의 괄목할만한 파괴력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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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7
  • 연변을 사랑한 졸라, 아들을 연길학교에 다니게 해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연길 북산소학교에 가면 흑인어린이 한명이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흑진주”처럼 생긴 그 애가 바로 당년에 연변오동팀 전포를 입고 중국축구 갑A무대를 주름잡던 졸라의 아들 올해 13살에 나는 앨리아이다. 앨리아가 태어난 곳은 중경이다. 중경과 연길, 연길과 중경ㅡ 생활환경이나 공부환경 모두가 연길은 중경과는 비길 바도 못된다. 하지만 졸라는 사랑하는 아들을 연길에서 공부하게 하고 있다. “산간오지”에 속한다는 연변이지만 그는 연변이 좋았고 연변사람들한테 정이 들었기 때문에 아들애가 8살 때인 2009년에 연길시 북산소학교에 전학시키기에까지 이르렀다. 앨리아는 공부를 잘한다. 특히 그는 시간집중이 좋고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반급규율도 잘 지킨다. 그리고 앨리아는 영어와 프랑스어에 유창할뿐만 아니라 중국어구사도 중국애에 못하지 않다. 그 외 앨리아는 천성적으로 아빠를 닮아서인지 축구를 잘한다. 앨리아와 한 반급에 다니는 오진우 학생은 “앨리아가 어느 팀에 가맹하면 그 팀이 곧 이긴다”고 말한다. 그래서 기타 반급애들은 “흑진주” 앨리아가 다니는 반급을 몹시 부러워 할 정도라 했다. 한편 앨리아는 연길생활에 몹시 만족하고 있다. 특히 그는 연변조선족들의 민속음식인 찰떡을 아주 즐겨 먹는다. 그리고 반급에 몇명 안되는 조선족애들과도 무척 친하고 있으며 어느덧 연길이란 이 작은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언젠가는 나의 조국 콩고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나 그 때 가서 그 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가봐 걱정돼요.” 어찌보면 이는 앨리아의 진실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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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7
  • 中, 중년에 외동자식 잃은 가정 100만세대 초과
    그들의 정감세계와 양로 문제 절박하게 제기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에는 “자식을 키워 양로한다”는 말이 있다. 헌데 중년 이후에 사고, 질병 등으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잃고 더는 자식을 낳지 못한 채 고독하게 노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두고 중국에서는 독신자녀를 잃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실독자(失独者)”라고 한다. 그들은 정감상에서 고통을 겪고 또 고독하게 보낼 뿐만 아니라 여생을 의탁할 데 없이 어렵게 보내고 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실독가정은 이미 100만가구가 넘으며 매년 7만 6000가구에서 자식을 잃는 증가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중국 관영언론 신화망이 보도했다. 그들은 자식을 앞세운 고통과 정감상의 고독뿐만 아니라 양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 근거하여 각지에서는 보조정책을 제정하고 있는바 2013년 12월, 항주시정부에서는 항주시계획출산공익금에서 실독가정에 일차적으로 보조금 5000위안을 발급하기로 결정, 각 구와 현(시)에서도 당지 상황에 근거하여 일차적으로 보조해 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일차적인 보조금 5000위안은 상징적인 의미로밖에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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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7
  • 中, 북경시 묏자리 평방미터당 최고 25만위안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에서 지난 몇 년간 주택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헌데 북경시에서 적잖은 묏자리들의 가격이 같은 지역 주택가격의 몇배나 높아 북경시민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고 가슴아프게 하고 있다고 중국 시나닷컴이 보도했다. 조사에서 최근 몇 년간 북경 묏자리의 가격은 거의 해마다 10%―15%씩 상승했는바 저그마한 면적의 묏자리는 인민페로 몇만위안으로부터 몇십만위안으로 부동하며 가장 비싸서 평방미터당 25만위안으로 현재 북경시 새로 건설하는 상품주택의 평균 가격과 얼마 차이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경시 모 릉원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공동묘지와 릉원 묘혈의 가격은 면적과 지상, 지하에 따라 부동한바 면적이 클수록 골회함을 많이 봉안할 수 있어 가격도 높으며 지하의 혈위 가격은 더욱 높다. 북경 해전구와 창평의 일부 산을 의지하고 앞에 물이 흐르는 묏자리의 가격, 즉 면적이 2평방미터밖에 안되는 가족묘혈의 가격은 50만위안을 초과한다. 청명절을 계기로 릉원에 찾아와 묏자리를 구입하는 시민들이 매우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식들은 부모님들께서 평생을 키워주셨는데 어쩔 수 없다며 전 재산을 다 털어 부모님묏자리를 구입하고 있다. 한 시민은 5년 전에 5만위안을 주고 부모님묏자리를 사두었는데 지금은 거의 10만위안이 된다고 했다. 적지 않은 시민들은 북경의 묏자리를 감당할 수 없어 멀리 하북성에 가 묏자리를 구입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하북성의 묏자리 가격이 수도 북경보다는 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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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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