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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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광저우 1700만위안 초호화 유람선 선보여
    [동포투데이] 펑황왕에 따르면 시가로 1700만위안 짜리 "어금룡"호 초호화 유람선이 26일 중국 광저우에서 첫 선을 보였다. 광둥 장먼시(江门市)에서 제조된 이 유람선의 길이는 23.20미터이고 너비는 6.10미터이다. 유람선은 중국 내륙, 홍콩, 영국 등 나라의 선진기술을 도입한 신형의 디자인으로 설계된 유람선이다. 유람선의 수도꼭지는 모두 황금으로 된 수제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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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8
  • 해외견문 시리즈 (5) 아프리카 인상기
    “연탄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 김철균 아비쟝에서 출항한 본선 “코리안스타”호는 계속해서 아프리카의카메툰, 가봉, 콩고 등 나라의 항구들에 들려서 며칠씩 머무르군했다. 참, 아프리카에서 고생한 일을 생각하니 진절머리가났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나 싶게 경찰과 도적이 한동아리가 되어훔치고 빼앗고 구걸하는가 하면 그 동네에서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선식점이 거의 없다 싶이 하여 우리 민족이 즐기는 된장, 간장과 김치는 물론 쌀마저도 구할길 없어 보리쌀처럼 길죽한 아프리카의 밭벼쌀(早稻)을 구해서 호구를 한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우선 주방음식을 장만하기가 제일 골치거리였다. 그 중 김치는 우리 민족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부식으로서다른 건 어찌됐더라도 그것만은 꼭 담그어야 했다. 헌데 처음 아프리카에서 김치를 담글 때 올라온 배추와마늘을 보니 기가 막혔다. 글쎄 배추는 그 어디 흙탕물에서 뒹군 것같은 시래기보다도 못한 것이었고 마늘은그 쪽마다 쥐잇빨만큼씩이나 작은 것이어서 그 껍질을 바르기란 여간 신경나는 일이 아니었다. 헌데 그것나마무등 애를 쓴 끝에 겨우 김치를 만들어 식탁에 올렸더니 또 골치 아픈 일이 뒤따랐다. 글쎄 그토록 씻고또 씻고 몇번이나 씻었건만 여기 저기서 바드득 바드득하고 돌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놈의 김치야?” “이러다간 며칠 안되어 잇빨이 몽땅 부러져 나가겠는 걸.” 이런 불평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의 얼굴은 확확 달아 오르군했다. 궁리끝에 나는 그 후부터는 포기김치를 담그지 않고 그냥 칼로 썰어서 씻은 뒤 담그었더니 보기는억망이었으나 그런대로 선원들이 돌씹는 일만은 거기서 종적을 감추었다. 그외 아프리카에서 오른 부식들을 보면 포장닭은 털이 듬성듬성그채로였고 야채와 과일류도 잘 정선하지 않아 올린 뒤 언제나 다시 다듬고야 창고에 넣을 수가 있었다. 특히주목되는 것은 농업과학기술과 축산업이 발달하지 못해서인지 배에 오른 파, 배추, 수박, 망고, 바나나등 류들은 그 크기를 말하면 수박은 두근 이상짜리가 별반 없었고 양파와 닭알 등도 작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본선에서는 돼지도 산 것채로 사다가 잡아먹군 했는데 그것들의 크기가 진짜 중국시장의 새끼돼지보다 좀 어떠할가 했다. 그런대로 비게가 적고 맛은 있었지만. 또한 여러번 언급됐지만 아프리카의 날씨란 무덥기가 말이 아니어서주방의 불앞에서 일하는 나의 목과 가슴은 늘 땀 때가 돋아 났으며 갑판과 기관실에서 일하는 선원들도 그 무더위로 하여 점도부동하게 신고를 했다. 그런가 하면 그 무더위로 하여 큰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그것은가봉에 있을 때의 일인데 하루는 내가 한창 주방에서 점심준비를 할 때 불현듯 바로 주방의 지척에서 “꽝!”하는요란한 폭발소리가 나면서 전반 선체가 세차게 흔들렸다 멈췄다. 이에 급기야 밖으로 뛰쳐 나가 봤더니배 2층 난간이 부러지고 갑판에 커다란 구멍이 팡 뚫려져 있었다. 알고본즉 그 때 본선에서는 기관실에 쓰이는 암모니아병을 주방 근처의 벽에 묶어 놓았었는데 그것이 고온에 속의 기체가 팽창하면서 끝내 폭발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인명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선박의 파손 정도는 비교적 엄중했는바 철판 두층이나 구멍이 뚫렸던 것이다. 그번 폭발사건이 있은 뒤 본선에서는 기관실의 일거리가 많은상황에서 가봉에서 근무하는 한국동아건설의 일군 몇명 모셔다 그 수리임무를 도맡겼다. 그것으로 우리는아프리카에서의 첫 한국인 단체와 접촉하게 되었는데 무료로 배수리를 도움 받은 건 물론 그들을 통해서 적지 않는 된장, 간장과 마늘지, 오이지, 깨잎지들 부식까지 넘겨 받을 수가 있었다. 또한 우리는 그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다녀오기도 했고 그들과 축구경기도펼쳤는데 비록 1대 6으로 진 경기였지만 마음은 유쾌하기가그기 없었다. 그밖에 가봉 리베비얼항에서 우리는 그곳으로 기름박으러 온본 회사의 탱크선 한척을 발견했는데 가본 결과 거기에 글쎄 우리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로부터 포클랜드로 함께 갔고 포클랜드에서도 늘 함께 전재작업을했던 한국선원 안장옥씨를 만나게 됐다. 참 크고도 작은 것이 세상이고 죽지 않으면 만날 수 있는 것이세상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안장옥씨를 놓고 말하면 문화정도는 국민학교 중퇴생이고 “배놈”경력이 10년도 넘는 선원이었다. 하다 보니 “배놈”생활에 미립이 틀만치창녀들을 다스려본 사내로서 남녀 사이의 육담을 엮을라 치면 청산유슈였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중국선원들이그한테 “좆박사”라는 별명을 달아 주었는데 그것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한국선원들의 말에 따르면안장옥씨의 섹스솜씨는 그들중에서도 으뜸인바 한번은 부산의 완월동에서 남녀 두쌍이 함께 한방에 들었는데 그가 얼마나 힘차고도 끈질기게 방아를 찧어대는지아가씨가 너무 흥분하여 나중에는 자기를 그채로 죽려 달라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사내의 머리고 가슴이고 닥치는대로 잡아 뜯더라는 것이었다. 한편 그는 작업시에도 늘 우스개를 잘하여 피로한 선원들의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야참, 이 아저씨깡깡 말랐지만 연장만은 큼직하게 잘 키웠겠네. 워낙 뚱뚱한 사내일수록 그것이 작고 마른 사내일수록 그것이큰 법이라니깐.” “왜 여자들을 처녀, 아주머니, 할머니 이렇게 나누는지 아세요? 처음 해본다고 처녀이고 아주 많이하기에 아주머니이며 할만치 다 했기에 할머니라고들 한대요.” “우리 나라가 36년간이나일본 쪽바리들한테 당해서 전반 대한민국에 일본의 태양기가 휘날렸거든. 그래서 나는 일본년들을 만날 적마다그 년들의 사타구니에 태극기를 꽃아 놓았다니까요.” “깜둥이년들과 놀아대는게 왜 신나는지 아세요? 해빛에 짙게 타서 보기 흉하지만 속은 맞춤하게 익었기에 잘 삶아놓은 돼지고기처럼 맛이 구수하다구요.” 들어보면 그 모두가 얼토당토치도 않는 지껄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힘겨울 때 이런 우스개소리를 듣는다는 건 일종 위안이고 기분좋은 일이였으며 안장옥씨 역시 힘겨울때마다 일부러 그런 우스개를 피우는 모양이였다. 참 “배놈” 생활10여년에 집 한채 마련하지 못했다는 안씨, 하지만 마음씨만은 무척 좋아 술도 곧 잘 사고작업시에도 남을 잘 도와주군 했다. 그래서 술군과 오입쟁이 속이 독한 놈 없다고들 했는가? 하긴 마음씨 고와 돈과 연장까지 여자들한테 잘 주니 집 한채 마련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다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우리가 만난 이들로는 우리 나라의 상해에서간 어선의 선원들이었는데 그들은 80톤짜리 어선 두척을 몰고 중국을 떠나 카메룬의 해상에까지 와서 조업하면서만선만 되면 입항하군 했던 것이다. 글쎄 그 100톤도 안되는배를 몰고 태평양과 인도양을 지나 대서양으로 들어오다니 그들이야말로 죽음이란 뭔지 모르는 모험가들이었다. 또한그들의 생활환경을 보면 한방에 10여명씩이나 들어있었고 작업조건도 본선에 비하면 억수로 차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를 만나자 그렇게도 반가와하며 선내식당에 청해 한끼 잘 대접하면서 한국선박에 승선하여 얼마나고생하는가고 위안해 주었고 돌아올 때는 또한 목숨을 걸고 잡은 참치(일본어로 “마구로”라고 하는 물고기인데매우 귀함)4마리나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그외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이들로는 아미잔에서 선식점을경영하는 성이 리씨라는 한국인 일가였고 콩고에서 “북경술집”을 경영하는 중국인일가 등등이였다. 와리에서 당한 봉변 참, 아프리카에서고생한 일을 생각하니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본선이 아프리카를 떠나 라스팔마스에 오자 나는 다음번의스켓쥴만은 제발 남미나 동남아 더 좋기는 한국이나 일본쪽으로 정해줍시사 하고 마음속으로 수십번이나 기도를 드렸다. 헌데 일이 탈리느라고 그러는지 아니면 내가 드린 기도가 하느님을감동시키지 못해서인지 한국 본부로부터 날아온 텔렉스에 따르면 다음 항차가 또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라는 것이었다.에이쿠, 또 아프리카, 선원들 모두가 질려버렸다. 뿐만 아니라 본선은 령에 의하여 몇년전 본선에서 잡부로 근무한 적 있는 흑인선원 죤과 죠셉이란 두 녀석까지편승시키게 했다. 배가 라스팔마스항을 떠나자 여태껏 고분고분하던 두 흑인편승자가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인즉 이전에 본선에 승선하여 일한 보수로 수십박스(BAX)에 달하는 냉동물고기를 가지기로 했는데 그것을 받지 못했다면서 전임 선장의 싸인까지 내보이며 이제 나이지리아에가면 그 걸 꼭 받아내겠다는 것이였다. 이에 현임선장이 그것이 자기와는 상광없다고 잡아떼자 그들은 그것을트집 잡으며 물고 늘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화근이었다. 특히 죤이란 녀석은 여러해동안 트롤선, 참치선, 새우선 등 한국선박에만 굴러가니며 일하다 보니 한국말은청산유수였다. 헌데 일은 묘하게도 번져져 선장방에서 두 흑인편승자를 처리할데 대해 선장, 기관장, 1기사, 1항사, 통신장이 토의한 것을 그가 엿들었던 것이다. 그 토의내용인즉 항행도중 라스팔마스로 가는 본회사의 다른선박과 접선하게 되는데 그때 가서 그 두 녀석을 강박적으로 전선(转船)시켜 라스팔마스로 되돌려보내는 것이었다. 헌데 그 비밀이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죤의 귀에 직접 흘러들게 되었으니 난리가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두 흑인편승자는 미치광이처럼 날뛰였다. 그놈들은 칼이고 몽둥이고손에 쥐우는대로 쥐고 흔들어대며 본선선원들을 위협했다. 그럼에도 그 숱한 한국선원들은 그 두놈의 행위를제지시킬 수가 없었다. 뒤에서는 “그저 제놈들을 바 콱 처넣었으면”하고 이를 갈면서도 그 놈들앞에서는그들이 도리어 슬금슬금 피하였고 그 두놈이 고분고분 할 때 제일 우쭐렁거리며 큰 소리 치던 사람 또한 겁은 제일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해상에서 본회사의 “프리오라스팔마스”호와 접선했을 때도 그놈들을 넘겨줄 수가 없었다. 글쎄 그 놈들의 위엄에 선장부터 쩔쩔 매고서야 어떻게 일을 성사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프리오라스팔마스”호의 선원들은 깜둥이들이 제멋대로 설치는 본선을 보며 몹시 안타깝다고 하는 것이였다. 하긴 두 흑인녀석은 유독 우리 중국 조선족선원들과는 아무런 위협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도 얽매인 몸이라 평소에 그들을 잘 대해줬던 까닭이라 할까? 여하튼“죄는 지은데로 간다”는 속담이 그런데 없었다. 본선이 나이지리아의 와리항에 입항하자 시내에 집까지 있는그놈들의 기염은 하늘을 찌를듯 했다. 헌데 어창에 쌔고 버린 것이 물고기였고 또한 진작 그들한테 줘야할 것이 번연했음에도 선장은 대체 무슨 궁리를 하는지 질질 끌며 주지 않는 것이었다. 평소에 냉동기를쉬우기 위해 수백박스씩 되는 포장물고기를 바다에 처넣는 걸 보면 그들이 요구하는 수자는 새발의 피나 다름 없겠는데 공연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것이 아닌가. 터질 일은 끝내 도래하고야 말았다. 하루는 주방에서 점심밥을 짓던 중 밖에서 하도 법석이며 떠들어대기에 브릿치쪽으로 올라가 봤더니 창피스럽기로 글쎄 선장이 브릿치안의 쇠기둥에 꽁꽁 묶이워 있었고 권총을 빼든 웬 흑인사나이 한명이 제복차림을하고는 버티고 서서 곁사람은 얼씬 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한편 갑판을 내려다보니 몇몇 깜둥이들이 갑판장한테서어창열쇠를 빼앗아서는 어창뚜껑을 활짝 열고 물고기 박스를 날라내고 있었는데 갑판장을 강박하여 크레인까지 돌리게 했다. 완전히 무법천지였다. 한국선원들은 물론 대리점의 에이젠트와 근무경찰마저도 속수무책으로눈을 펀히 뜬채 보고만 있을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해군제복을 입고 총을 빼든 사나인즉 편승자였던죤의 형님이었는데 해군함대의 함장이었으며 그의 세력이 어찌나 센지 와리시내에서 그라 하면 흑인들 모두가 설설 긴다고 했다. 다쳐도 큰 범을 다쳐놓은 셈이었다. 일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위낙 도적놈들이 욱실거리는 와리였지만 이전에는 죤네형제의 세력이 본선을 보호해 주었기에 부두에 아무리 정박해있어도 별로 물건이 잃어지는 일이 없었다 했다. 하지만 그 사달이 생긴 후부터는 무엇이나 달랐다. 죤네형제와 갈등이 생기고 그것이 점점 격해지자 따라서 점점 물건이 연속 부절히 잃어지기 시작했다. 전날에 TV와 비디오가 잃어졌는가 하면 다음날에는 호사줄과 단정뽀트의 엔징까지 잃어졌으며 또 그 이튿날에는 주방의 창밖에있는 프로팬 가스통까지 들어갔다. 주방에 전기밥솥과 곤로까지 있었으니 말이지 그런 시설이 없는 선박같으면밥도 지어먹지 못할 번 하였다. 하루라도 빨리 그 곳에서 벗어나야지 사람이 불안해서 일이손에 잡히지 않았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어쩐지 더 큰 봉변을 당할 것 같은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 그때 본선은 와리항에서 그리 멀지 않는 위스키포란 곳에서 닻을 내리고 기름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라스팔마스같으면이틀이면 만재할 수 있는 것을 열흘이 넘도록 절반도 채울 수가 없었다. 그 원인은 우리한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름빠지(전문 기름만 싣고다니는 작은 배)는 주로 밤에만 오군 했는데 방정맞게도 그번 항차만은 왜서인지 모든 일이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아 갑판부 선원들은밤마다 그 기름빠찌를 기다리다가 잠자리에 들어가기가 일쑤였다. 그렇게나마 기름양을 거의 채우던 어느날, 갑자기 죤네 형제가 한무리의 깜둥이들을 데리고 또 본선에 들이 닥쳤다. 이유는뻔했다. 그들이 우리 회사의 비밀을 손금보듯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본선에서 받는 기름은 유전의 주인과 우리의 선주가 몰래 짜고 들어 그 생산양 및 수출양을 속이고 팔고 사는 즉 나라의 세금납부수속도 없는 국제적밀수였다. 그러니 권세가 큰 어른들을 끼지 않고서는 벌일 엄두도 낼 수 없는 도박이었다. 헌데 죤네 형제의 세력도 그보다 못지 않았기에 그 낌새를 알아차렸던 것이다.그러니 그 놈들이 그 약점을 틀어쥐고 본선에 협박을 들이대지 않을 리 없었다. 그들은 선박에오르자 마자 비법적으로 퍼올린 기름을 몽땅 몰수할텐데 자기들이 곧바로 그것을 인수한다는 것이었다. 그기름을 그 자리에서 몰수당한다는 것은 회사를 놓고볼 때 그 손실정도를 한두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와리근처의 해상유전의 기름은 근본 잡질이 섞이지 않은 것으로 라스팔마스의 기름보다 질이 좋아 그것을 작업선에 공급하면 기본상 엔징이 꺼지는 사고가없었고 또한 값도 싸서 일단 그것을 받아서 작업선에 되넘겨 팔면 우리의 선주는 대단히 폭리를 얻는 셈이었다. 하지만그 통에 녹아나는 것은 되려 본선의 선장과 선원들뿐이었다. 죤네형제가 야단을 치는 그 복새판에 마침 회사본부로부터 텔렉스가날아왔다. 내용인즉 죤네형제를 잘 구슬려서 보낸 후 즉각 출항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선장은 대뜸 큰 보따리를 벗어놓은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뒤이어선장은 죤네 형제한테 담배와 위스키, 닭고기와 물고기 등 따위를 주라고 지시하고는 이미 회사에 다 연락했으니래일 다시 와보라고 죤네 형제를 구슬렸다. 이에 죤네형제 역시 물고기를 뺏아내려고 벌인 수작이었던만큼더는 트집을 잡지 않고 눈을 희번떡거리며 으름장을 놓고는 물러갔다. 또한 기름을 도로 퍼준대도 기름빠찌가없는 그들이 갑자기 어디에 싣고 가겠는가. 그날 저녁, 밤장막이무겁게 드리우자 본선은 지꿎게도 우리를 괴롭히고 불안하게 하던 와리항을 떠나 라스팔마스를 향해 선수를 돌렸다. 하지만 시름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죤네 형제가 쾌속정을 타고 뒤쫓아오지 않는가 해서 선수와 선미에 선원들을 대기시켜 놓고는 몽둥이나 쇠망치등을 나누어주었다. 일단 그들이 쫓아와 선박에 오르려 할 때면 사정없이 족치라는 것이었다. 이는 일종 사색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였다. 과연 우리의 약점을 찾아쥐고협박하며 을러메고 빼앗는 죤네 형제가 무지하고 야만스러운지, 아니면 그 녀석들을 구슬려서라도 밀수기름을싣고 도망가는 우리가 인색하고도 탐욕스러웠던지?... 그렇게 황망히 도망치기에 급하다 보니 브릿치에서 항행지휘를하는 선장 역시 통 제정신이 아니었다. 와리항에서 바다까지 나오자면 강을 따라 몇시간 내려와야 했는데강과 바다 사이 합수목 어구에는 양쪽으로부터 쌓은 방파제가 있었고 그 두 방파제 사이 즉 물이 제일 깊은 곳으로 배가 지나가도록 되어 있었으며그 방파제 두 끝에는 위낙 등대가 있었다. 헌데 그 등대의 전등이 고장났는데도 게으른 흑인들이 수려할념을 하지 않아 있으나 마나 했다. 그렇게 등대가 제구실을 못하는데다 밤이 되자 바다의 밀물이 강에까지올리 뻗치여 낮에나 겨우 보이던 방파제까지 잠그어놓았다. 어두운 밤의 항행, 보이지 않는 등대불, 거기에 제 정신이 아닌 선장의 지휘, 배는 미처 어쩔 사이도 없이 원 배길을 벗어나 방파제위에 매달렸다. 그러자 160미터가 되는 그 육중한 선체도 기능을 잃고 파도가 치는대로 기우뚱거렸다.선내는 삽시에 수라장이 되었고 바빠 맞은 것은 선장과 1항사였다. 하지만 엔징을 아무리 돌려며 후퇴하려 해도 그 힘으로는 방파제에 걸린 선체를 조금도 뒤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럴 즈음 그 곳을 지나던 스페인 선박 한척이 마침 본선을 발견하고는 구원의 손길을 뻗쳤다. 스페인 선박이 본선 선미에 두줄로 와이야샤스를 건 다음, 두 선박의엔징이 동시에 힘을 쓰며 약 반시간 가량 모지름을 써서야 본선은 간신히 방파제에서 미끄러져 내려갈 수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선박밑창에 구멍이 뚫리는 수밖에 없었다. 치명적인 손상은 아니나 구멍난 곳은 다름 아닌 기름탱크가 있는 곳 밑이었는데 이튿날에 볼라니 배가 지난 뒤의바다에는 기름이 한줄로 덮이며 본선을 따라오는 것이었다. 다행이도 기름탱크안에 밀봉한 칸들이 많았기에대부분의 기름은 살릴 수가 있었으며 선장 역시 본부에 답복할 이유는 충분했다. 에필로그 아프리카, 오늘도그 때 아프리카에서 지내던 자초지종을 생각하노라면 소름이 끼치며 진짜 어떻게 지냈던가 싶어진다. 유럽과미주의 많은 선진국들에서 바다밑과 우주에까지 탐구와 개발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오늘, 아프리카는 왜아직도 그 모양, 그 꼬락서니인지? 과연 그네들한테는 언제가야 현대문명과 첨단과학기술이 보급될는지? 그 중 우리가 돌아본 아프리카에서 가봉과 남아프리카공화국등 나라는 그래도 백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사회경제와 그 문명정도가 기타 나라들과는 앞섰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곳 흑인들 역시 수천년간 내려오면서 습관화된 노예근성과 훔치고 구걸하는 버릇은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있었다. 그외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는 해상에 새우, 게, 갈치 등 맛좋은 물고기들이 깔려 있음에도 불구, 자기네는 잡으려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빌어먹고 있었다. 특히 보편적으로 아프리카를 보면 남자들이 빈둥거리며놀고 아낙네들이 야생과일을 따거나 매생이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본 와리 시내에서도 아낙네들이 아이를 업은 채 보짐을이고 다니는 것이 수없이 많았다. 또한 해상유전의 그 많은 시추탑가운데서 나이지리아 자국의 것이 별반없는가 하면 석유자원이 풍부한 반면에 와리시의 많은 기동차량들은 기름이 없어 달리지 못한다 했다. 나이지리아처럼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이러할진대 자원이 결핍하고 불모의 땅인 에티오피아나 소말리아, 우간다 같은 나라들은더구나 어떻겠는가?! 가보지는 못했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남한테만굽어들고 의거해서는 나라가 부강하고 국민들이 잘 살 수가 없는 법이다. 남이란 언제든지 크게 부려먹고적게 주려 하기 마련이다. 마치 본선에서 흑인들한테 밥이나, 기껏해고기박스나 몇개씩 주고 얼려서 일을 시키듯이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홀로서기에 열중하고 나라는 자립, 자존, 자강에 기초하여 세워져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곳. 게으르고나태하고 빈궁한 아프리카 - “연탄동네”여 각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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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4-04-28
  • 중국인 관광객 해외 쇼핑 부가세 중국 국내 은행에서도 환급 가능
    [동포투데이] 늘어나는 중국 관광객의 해외 쇼핑에도 불구하고, 부가세 환급 절차를 모르거나 일정이 여의치 않아 부가세 환급을 받지 못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 최근 다수의 중국 국내 은행이 해외 부가세 환급 대행사와 협력, 부가세 환급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세금 환급 전문 대행사인 Global Blue의 조사에 따르면 ‘13년 중국 관광객 중 30%는 부가세 환급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푸동발전은행(上海浦東發展銀行)과 우정저축은행(郵政貯蓄銀行)은 부가세 환급 대행사 Premier Tax Free와 협력,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로 EU 국가 부가세 환급 서비스를 대행하고 있으며 공상은행(工商銀行)은 부가세 환급 대행사 Global Blue와 협력, 한국, 싱가포르,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30개국, 27만개 Global Blue 가맹점에서 구입한 물품에 대해 부가세 환급 서비스를 대행하고 있다. 중국은행(中國銀行)은 이탈리아 현지 밀라노 중국은행 지점에 영수증을 제출하면 부가세를 환급 받을 수 있다. 중국 국내 은행의 부가세 환급 서비스 외에도, 전자상거래 지불플랫폼인 즈푸바오(支付寶)도 ‘13.10월부터 한국 등 해외 쇼핑 부가세 환급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해외 쇼핑 영수증에 즈푸바오 계정을 기입한 후 공항 및 기타 부가세 환급 창구에 제출하면 즈푸바오 계정으로 부가세를 환급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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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8
  • 中 환경보호법 25년 만에 첫 수정, ‘15년부터 시행 예정
    [동포투데이] 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8차 회의는 환경 위법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를 강화한 환경보호법 수정안을 통과시켰으며 내년 1월 1일 부터 시행 예정이다. 그간 환경법은 입법(89년) 이후 한 번도 수정되지 않아 경제·사회 발전에 따른 환경보호 요구사항을 반영하지 못하고 불법 야생동물 포획 근절, 식량 안전 확보 등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새 수정안에는 △환경부의 법적 권한, △환경보호 관리감독, △신고자 보호 강화 조치 등 규정이 신설되었다. 과거에는 환경오염 기업에 대해 벌금형 등 미미한 처벌만이 가능하였으나 동 수정안에 근거해 환경부는 오염기업 폐쇄 명령, 기업 시설 및 설비 몰수도 가능해졌다. 또한 생태보호 관련 정책이 강화되어 국가중점생태구역, 생태환경민감구역, 생태환경취약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는 오염물 배출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진입할 수 없도록 했다. 이 외에도 시민의 환경보호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신고자 보호 강화 조치 및 환경 소송 주체 확대 등의 조치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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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8
  • 원코리아페스티벌 '코리아' 영화 시사회 도쿄서
    [동포투데이 도쿄 김하나 기자] 올해로 제 30회를 맞이하는 원코리아페스티벌 실행위원회에서는 4월 26일, 도꾜 재 일본 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홀에서 세계탁구선수권동경대회 기념행사로 '코리아' 영화 시사회를 가졌다. 행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먼저 참가자 전원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고잠시 침통한 시간이 흐른 후,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후반 부로 갈 수록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마지막 크라이막스에서는 영화를 관람하던 거의 전원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보였다. 영화 상영 후에는 현정화 감독과 함께 하는 토크쇼로 이어졌다. 현정화 감독은, 본인은 금메달을 딴 직후, 21살 어린 나이에도 우리 나라는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고 하면서, 일본에서 30년 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문화와 축제를 통해 통일 운동과 재일 동포의 화합을 위해 노력해 온 원코리아 페스티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홍보대사로서 본인도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응원하겠다는 멧세지를 전했다. 행사 관계자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행사를 취소할까도 고민했지만 해외에서 살고 있는 재외동포들이 용기를 잃지않고 더욱 당당하게 사는 모습이 희생되신 분들의 몫까지 대신해서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그냥 진행했다고 전했다. 또한, 영화배우 하지원씨, 이종석씨, 최윤영씨등 많은 연예인들이 응원 동영상을 보내오고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많이 참가하고 있는 이번 30주년 기념 원코리아페스티벌 행사를 통해서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과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되새겨 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사단법인 원코리아와 일본의 공익재단법인 원코리아페스티벌이 공동으로 함께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27일에 메이지대학 리버티타워 홀에서 제 30회 원코리아페스티벌 기념 행사를 개최하며 그 다음날인 28일부터는 동경 요요기 체육관에서, 북한 선수들도 참가하는 세계탁구선수권동경대회에 국적을 초월한 "하나 응원단" 을 만들어서 합동 응원을 할 예정이다. 북에서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일본에서는 야스구니 참배뿐만이 아니라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와 재특위 일본 우익들의 코리아타운에서의 끊이지 않는 데모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재일코리안의 생계 위협의 문제등, 남북 관계도, 한일 관계도 매우 어려운 지금 이 때에, 이렇게 일본 땅에서 국적을 초월하여 민간 차원에서 함께 펼치는 우정의 아름다운 응원들이, 그리고 문화 예술과 스포츠로,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재일코리안의 작은 노력들이 조금이라도 코리아 남북간의 화해와 한일 , 한중의 우호관계 및 나아가 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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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8
  • 경찰청장,‘피해자 가족 상대 범죄 발생 방지에 만전’ 당부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경찰청(청장 이성한)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26일 경찰청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개최하여 ‘피해자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범죄 발생 방지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진도 실내체육관 등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구호물품 도난, 부당수령에 대해 순찰 및 형사활동을 더욱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안산지역 임시분향소 등에서 희생자 가족이 혼란한 틈을 이용한 범죄가 생길 수 있으므로 면밀히 살펴 예방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SNS 비방 등 많이 줄었으나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엄정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검시관 증원 및 헬기 지원을 통한 신속한 희생자 확인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을 강화하라고 지시하였다. 경찰은 25개 중대, 여경 2개 제대, 광주특공대를 지원하여 최대한 실종자 수색지원, 교통관리, 질서유지 활동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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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8
  • 연변축구 잘할 수 있는 무형산업 (4)
    편집자의 말: 연변축구는 전통이 있고 역사가 길며 중국 축구사상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좌절, 곡절과 진통 그리고 억울함도 많이 당했으며 서기 1965년엔 전반 중국축구리그를 평정한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동포투데이”는 민함 선생과 예약하여 “연변축구 잘 될 수 있는 일종 무형산업”이란 제목으로 연변축구 특별기획으로 된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연재기간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갑급리그에서의 연변팀 현황 분석도 하게 됨을 알리는 바이다. 편집자 ◐민함 연변축구의 순수하다는 것은 잡질이 적다는 것이다. 금을 놓고 말하면 함금양이 높다는 것일 수도 있다. 연변축구의 순수함을 말할라치면 여러 가지로 나열할 수 있으며 또한 길어진다. 주지하다싶이 연변은 중국 내에서 작디 작은 지역에 불과하다. 인구는 200여만, 그 중 조선족 인구는 현재 80만명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 원래의 이치대로 연변에서 축구팀을 만들자면 내지의 한족도 데려오고 한국이나 조선 혹은 일본에서 데려오며 또한 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에서도 데려와야 할 것 같다. 이른바 “8국 연합군”을 구성해야 내지의 축구팀들과 대결이라도 벌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를 아니하다. 내지에서 축구하러 연변으로 오기보다는 연변선수들이 내지로 진출하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그제날 1950연대에는 중국내 조선족 선수가 없는 구단이 별로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도 중국내 몇몇 구단에는 박성, 김경도, 한청송, 최영철, 배육문, 문호일 등 선수들이 활약하며 지난해에는 축구명장 고종훈의 아들 고준익군이 일본프로축구에 가담하면서 중국조선족 중 첫 “해외파” 선수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럼 연변은 중국에서도 유명한 “축구의 고향”이라는데 왜 중국 내지의 선수들과 외국선수들이 오지 않거나 오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꺼리는 걸까? 여기에 그럴만한 이유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축구운동이 활발하고 보급이 잘 된 반면에 프로축구가 발전할 수 있는 외부환경이 비교적 열악하다. 경제환경으로 놓고 볼 때 2013년 북경시의 GDP는 1950만 6000억 달러가 되고 연변의 GDP는 고작 853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 차이를 비교해보면 경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구단에 대한 투자가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북경에는 슈퍼리그 구단과 갑급리그 구단을 포함해 3개 구단이 있는데 그 중 슈퍼리그인 북경국안은 1년 투자액이 인민폐로 수억위안에 달하고 기타 갑급구단인 북경팔희와 북경이공 역시 수천만원위안에 달한다. 하지만 연변은 이 몇년간 갑급구단인 연변팀에 1000만위안 정도밖에 투입하지 못했으며 그것도 정부의 도움에 크게 의뢰하다가 올해에 들어서야 겨우 스폰서(贊助商)를 찾아 제대로 된 시장화로 나가기 시작한데 불과하다. 선수들한테 차례지는 대우 역시 정비례가 된다. 연변에서 내지로 진출한 부분적 선수들에 따르면 그들은 연변에서 1년간 벌 돈을 내지의 구단에 가면 2개월이면 벌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례로 현재 북경국안에서 뛰고 있는 박성이 연변에 있을 때 연변팀의 절대적 주력으로 6년간 연변축구를 위해 6년간 의바지해 왔으나 그 6년간 번 돈으로 아파트 한채도 구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편 중국 내지의 선수들과 외적용병들이 연변으로 와서 축구하기를 꺼리는 다른 한가지 요인은 훈련이 고된 것이다. 연변조선족 축구선수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발기술이 내지의 선수들보다 못하고 신장도 보편적으로 작다. 그러기에 이 페단을 미봉하기 위해 연변구단은 강훈련으로 체능과 정신력 향상에 모를 박고 있는 상황이기에 훈련이 고될 수밖에 없다. 대우가 보잘 것 없는데다 훈련까지 고된 선수생활, 누구나 오기를 저어하며 혹간 연변구단에 가담하는 선수들을 보면 내지에서 주력멤버에 들지 못하거나 다른 기타 이유로 오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여하튼 이런 저런 요인으로 우리 연변팀은 그제날에도 그랬거니와 현재도 기본상 조선족들로 선수진영을 이루고 있으며 외적용병 또한 지난해부터는 한국으로부터 데려 왔기에 국적만 다를뿐 혈통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다 같은 조선족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그 순수도가 중국내 축구단계열에서는 물론 세계 각국의 구단중에서도 아마 손가락안에 꼽힐 것 같은 생각이다. 이렇듯 중국축구무대에서의 순수한 연변축구이다. 기타 지방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중국축구무대를 놓고 볼 때 북경, 상해, 료녕, 광동 등 몇개 지구의 구단들에 자지방 출신선수들이 좀 있을뿐 많은 지방의 구단은 자지방 출신선수가 전혀 없는 이른바 “오합지졸”들로 구성, 그 중 가장 돌출한 구단이 심수, 섬서, 귀주 등 지방의 구단들이다. 이러한 순수함으로 하여 우리는 연변구단이야말로 진정 연변을 대표하는 연변팀이며 특히 중국조선족축구를 대표하는 조선족팀이라고 감히 내놓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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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8
  • 연변팀 예비팀 4 : 1로 중경역범팀 대승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27일 오전 10시, 연길시 연변대학 서쪽 경기장에서 펼쳐진 2014 중국축구 갑급리그 예비팀 제7라운드 경기에서 연변장백산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4 : 1로 중경역범팀을 대승하면서 1선팀과는 확연히 다른 기백을 보였다. 이날 연변예비팀을 지휘한 리재호코치는 4-2-3-1포메이션을 운영했다. 연변팀은 초반부터 공격주도권을 장악하고 짧은 패스를 위주로 공격활로을 열어나갔다. 경기 21분 왼쪽변선에서 드리블 돌파를 하던 김현이 센터링(传中)하자 27번 김파선수가 그대로 슈팅을 날려 선제골을 뽑았다. 전반 25분 26번 문학이 오른쪽 변선에서 센터링한 공을 23번 원태연이 헤딩슈팅을 날린 것이 빗나갔고 1분후 프리킥기회에 김파선수가 날린 슈팅을 상대 꼴키퍼가 쳐내자 원태연선수가 달려들어가며 보충 슈팅으로 2 : 0으로 앞섰다. 후반들어 쌍방간의 공방전 중 후반 9분 역범팀의 풍경선수가 한골 만회했고 16분 23번 원태연선수가 침착하게 중거리 슈팅을 날려 두번째 골을 뽑았다. 이어 연변팀은 선수교체를 하며 진영을 조절했다. 후반 34분, 원태연선수가 재차 골을 터트리며 올시즌 연변행에서 첫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경기결속을 앞두고 역범팀도 한차례 멋진 배합으로 연변팀 문전을 노렸지만 꼴키퍼 지문일이 잘 막아내면서 최종 4 : 1로 연변예비팀이 홈장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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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8
  • 中 상하이 교민 세월호 희생자 애도
    [동포투데이=상하이저널] 세월호 참사로 이곳 상하이 교민사회도 슬픔에 잠겼다. 한국 뉴스를 보며 애도와 분통을 함께 터뜨렸던 교민들은 SNS를 통해 노란 리본 물결을 이뤘다. 또 한국의 합동분향소를 직접 찾지 못하는 교민들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인터넷 사이버 분향소에 추모와 헌화를 통해 마음을 전하고 있다. 상해한국상회(한국인회)는 오는 28일부터 열린공간(현윤빌딩 612호)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소중한 목숨을 잃은 학생, 교사, 승객 등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키로 했다. ' 상해한국상회(회장 안태호)는 “함께 아파하고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할 때 인 것 같다”라며 “이 국가적 재난이 단순히 하나의 사고로 묻히지 않길 바란다. 안전과 생명을 다시 원점에서 함께 고민하는 깊은 반성과 아픔의 시간 후에 정확한 원인규명과 대책을 끊임없이 촉구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해·화동 한국IT기업협의회(회장 백현종) 회장단은 29일 3시 한국상회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함께 추모의식을 갖기로 했다. 한국상회 분향소는 4월 28일부터 4월 30일, 5월 4일부터 6일까지 운영된다. 또한 비록 해외에 있지만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상하이 교민사회도 대내외 행사를 자중하는 분위기다. 상해한국학교는 이번 5~6월로 계획된 초중고 졸업여행을 전면 취소할 방침이다.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과반수 이상이 반대의사를 보여 올해 졸업여행은 취소하기로 결정됐다. 다행히 한국 경우처럼 여행사와의 취소 위약금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해한인성당도 상반기 가장 큰 행사인 본당 체육대회를 취소하고, 스카우트의 야외활동을 자제하는 등 희생자와 유가족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애도 추모물결은 인터넷 추모공간에서도 일고 있다. 상하이저널은 상하이 교민들이 세월호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애도하는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인터넷 홈페이지 ‘상하이방(www.shanghaibang.net)’에 추모 게시판을 마련했다. 누리꾼은 “세월호 참사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제가 참 수치스럽고 힘들고 미안하네요”, “대한민국이 안전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우리의 몫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니까요. 그래서 너무도 미안합니다” 등 애도 메시지를 남겼다. <상하이저널 고수미 기자> 한국상회 분향소 기간: 4월 28일~4월 30일, 5월 4일~5월 6일 시간: 10:00~19:00장소: 열린공간(우중루 1100호 612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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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7
  • [감독초대석] 리호은, "외적선수 경기에 적응 못해 전체 실력에 영향 주었다"
    왕보산(중경역범팀 감독): 오늘 경기 아주 간고했다. 작년에 우리는 큰 점수 차이로 연변팀을 전승했었다. 경기전 우리가 분석한 것이 도리가 있었다. 연변팀은 이호은 감독이 지휘하는 특색있는 팀이다. 오늘 원정에서 승리한 것은 운도 따라준 것 같다. 후반들어 연변팀은 우리 팀에 많은 압력을 주었다. 패스 등은 연변팀한테서 따라 배워야 할 바다. 리호은(연변천양천팀 감독): 우선 중경역범팀의 원정승을 축하한다. 왕보산 감독의 지휘하에 올시즌 슈퍼리그에 진출할 것을 미리 축원한다. 우리가 분석해 본 결과 중경역범팀은 슈퍼리그실력을 갖춘 팀이다. 오늘 우리 팀은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홈장우세를 빌어 공격을 강화, 두번째 홈장경기도 이기려고 했다. 결과 상대팀에 패했다. 몸이 금방 회복된 두 외적용병이 아직 경기에 적응하지 못해 전체 실력에 영향을 주었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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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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