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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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조선의 건축기술 세계일류”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이제 곧 준공될 송도원국제소년단 여름캠프를 시찰했다고 중국신문망이 이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여름캠프내의 극장, 등산지식보급실, 전자오락실, 도서실, 국제우의실, 소년단실, 미술실, 수공예전람실과 입체율동영상원 등을 일일이 돌아보고나서 매우 흡족해 하며 조선(북한)의 건축기술은 이미 세계일류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새로 건설한 노천운동장, 실내체육관, 실내수정관, 노천물놀이장, 노천양궁장 모두가 출중하게 건설됐으며 운동장의 인조풀, 관중석의 걸상과 파도형의 남색처마가 잘 조화되었다면서 모든 건축이 명실상부한 예술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매우 흡족해 하며 여름캠프의 각 건축물과 시설들은 그 규모나 형식, 내용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선(북한)의 면모에 부합된다면서 매 요소마다 조선의 풍격을 체현했고 주체의 건축미학사상 요구에 따라 편리하고도 미관이 아름다운 원칙을 보장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여름캠프의 원만한 개건은 조선인민군 제267군부대 군인건설자들의 충성분투와 갈라놓을 수 없다며 그 자신 군인건설자들과 관계부문 간부들이 후대들을 위해 한 커다란 공헌과 공로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보도는 장정남, 서홍찬, 한광상, 황병서, 마원춘이 김정은을 배동해 함께 시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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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1
  • 중국 25개 성, 기업퇴직인원들의 양로금 인상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4월 18일까지 중국 전국의 25개 성(구, 직할시)에서 기업퇴직인원 기본양로금 수준을 인상하기로 했다고 중국신문망이 21일 보도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25개 성(구, 직할시) 가운데서 북경, 청해, 신강, 하북, 감숙, 강소, 운남 등 8개 성에서 2014년 기업퇴직일군 월 인당 양로금수준을 공포했으며 그 가운데서 북경시의 월 인당 양로금수준이 3050위안에 달해 제일 높다. 청해성은 2593위안, 신강은 2298위안, 하북은 2100위안, 감숙은 2065위안, 강소는 2027위안, 운남은 1820위안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1월 8일, 중국 국무원 상무위원회는 2014년 1월 1일부터 기업퇴직인원 기본양로금 수준을 재차 10% 인상하기로 결정, 아울러 그중의 특수곤난 군체에 적절하게 더 올려주기로 했다. 이로부터 전국 7400여만명의 기업퇴직인원들이 혜택을 보게 된다. 지금까지 공포한 수치를 보면 각 성(구, 직할시)마다 인상수준이 다른바 해남성에서는 기업퇴직인원 기본양로금을 매인 매월 70위안을 올리고 강소성은 40위안을 올려 전국적으로 제일 적게 올린 성으로 된다. 각 성(구, 직할시)내에서도 부동하다. 평균 양로금수준이 제일 높은 북경시를 놓고 보면 퇴직인원 2013년 말까지의 기본양로금이 4개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양로금이 월 4770위안 이상 되는 퇴직인원은 이번에 월 60위안씩 오르고 양로금이 월 3770위안―4770 사이는 인당 월 70위안씩 오르며 양로금이 2773위안―3770위안 사이는 인당 월 100위안이 오르고 양로금이 2773위안 이하는 인당 월 150위안씩 오른다. 그리고 무릇 최저양로금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퇴직인원들의 양로금수준을 최저표준으로 올린다. 25개 성들에서는 양로금수준을 보편적으로 인상하는 외 퇴직 전 양로금납부 년한에 따라 매 1년에 월 2~5원씩 부동하게 더 올리며 또 부동한 년령대의 고령자에게 양로금을 더 올리기로 했다. 북경시의 경우, 보편인상과 양로금납부 년한에 따른 인상 외 65주세―69주세 퇴직자는 인당 월 90위안을 더 올리고 70주세―74주세 퇴직자는 인당 월 110위안을 더 올리며 75주세―79주세의 퇴직자는 인당 월 130위안을 더 올리고 80주세 이상 퇴직자는 인당 월 150위안씩 더 올린다. 중국은 2005년부터 기업퇴직자들의 양로금을 해마다 올렸는데 이번이 10년째이며 기업퇴직자들의 월 평균 양로금은 2005년의 714위안으로부터 2014년의 2000위안 좌우로 제고되었다. 국가인력자원및사회보장부 신문대변인 리충은 비록 양로금이 해마다 오르지만 물가상승 요소를 고려하면 양로금은 생활을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라며 양로금 인상의 함금량은 그리 높지 않다고 시인했다. 아울러 그는 중국의 양로금 차이는 홀시할 수 없는 문제라면서 그 차이는 기관사업단위 퇴직자들과 기업 퇴직자들 간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적지 않게 국영기업 퇴직자들의 양로금이 비국영기업 퇴직자들의 양로금보다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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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1
  • [진도 여객선 침몰] 원격수중탐색장비 동원해 선체내부 집중 수색
    [동포투데이]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21일 원격수중탐색장비(ROV) 등을 동원, 세월호 선체 내부에 대한 집중수색을 벌인다. 고명석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상황 브리핑을 통해 “보다 신속한 수색구조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이용, 3·4층 격실을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수색하고 필요시 격실내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작업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함정 213척, 항공기 35척이 사고해역을 수색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한 구조방안 논의를 위해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해경은 전날 조명탄과 채낚기 어선의 집어등을 활용해 야간 수색환경을 개선했다. 함정 214척, 항공기 35대를 이용해 해상을 집중 수색하는 한편, 151명의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30회의 수중 수색을 진행했다. 이날 새벽 5시 51분께는 식당 진입로를 개척했으며, 정오에는 진입을 시도할 예정이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선체 내부를 집중 수색해 이날까지 총 64명의 사망자를 수습했다. 이중 남성 사망자는 37명, 여성 사망자는 27명으로 집계됐다. 또한 사고해역 주변에서 발견된 갈색 유막은 총 23척의 방제정으로 방제작업을 진행중에 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단 한명의 소중한 생명이라도 구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정부도 현장의 원활한 수색구조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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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1
  • [합동대책본부] 안산 중·고교 학생 대상 심리치료 실시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경기도 합동대책본부가 심리적 불안으로 고통 받고 있는 단원고교 학생과, 안산시내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에 들어간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21일 정신과 의사 200명과 심리상담가 600명으로 통합재난심리지원단 구성을 완료했으며 안산시내 29개 중학교와 23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심리상담 신청에 대한 안내공문을 발송했다.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은 학교별로 심리상담 신청이 들어오면 의사 50명과 전문심리상담가 200명을 배치해 학교별로 심리안정교육을 실시할 방침이다. 안정교육은 학교 당 5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원고등학교에는 심리지원센터가 교육청 주관으로 별도 설치된다. 단원고에는 소아정신과 전문의 135명이 대기 중으로 24일부터 등교를 시작하는 단원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매일 20명의 전문의가 심리안정지원교육과 심리상담을 실시하게 된다. 생존학생은 1:1로 정신과 전문의의 집중상담을 받게 되며 교사와 재학생은 별도 심리안정교육이 이뤄진다. 한편, 경기도 합동대책본부는 기존 고대 안산병원 2개소에만 있던 심리상담소를 안산시 관내 장례식장 8개소와, 이동상담버스 등에도 설치해, 총 11개로 확대했다. 대책본부는 향후 도내 31개 시·군 전역에도 시민상담소를 설치할 방침이다. 문의 : 경기도 안산시 통합재난 심리지원본부 031-413-1822 경기도 합동대책본부 가족지원팀 031-8008-8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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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1
  • 박 대통령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
    [동포투데이]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 “법과 규정을 어기고 매뉴얼을 무시해서 사고원인을 제공한 사람들과 침몰 과정에서 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사람들, 또 책임을 방기했거나 불법을 묵인한 사람 등 단계별로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엄정히 수사를 진행해서 국민들이 의혹을 갖고 있는 부분에 대해 한점 의혹 없도록 철저히 신속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주에 검찰은 선장 이준석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이준석은 토요일에 체포되고 여객선침몰과 관련한 기소가 제기되였다. 죄가 증명되는 경우 이준석은 5년으로부터 종신까지의 징역형을 언도받을 수 있다. "세월"호는 인천을 출발하여 제주도로 가던중 4월 16일에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했다. 여객선에는 모두 476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안산시 단원고 학생들이였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64명이 죽고 174명이 구원되였으며 302명이 실종되였다. 200척의 선박들과 34대의 비행기와 직승기, 550명의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전에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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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1
  • 베이징모터쇼 벤츠 쿠페형 SUV 첫 공개
    베이징모터쇼 벤츠 쿠페형 SUV 첫 공개21일, 메르세데스-벤츠회사가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하는 '2014 베이징모터쇼'에 쿠페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休闲越野车)을 최초로 공개했다. 벤츠의 콘셉트 쿠페 SUV는 4도어 상시 4륜구동 모델로 그간 세단형 쿠페의 디자인과 비슷한 외관을 지녔다. 라디에이터 그릴(快速散热器)을 장착하고 창문의 프레임(框架)을 없앴으며 측면 B필러(填充符)부터 차량 뒷부분까지 이어지는 흐르는듯한 직선의 실루엣(剪影)을 보여준다. 뒷쪽은 처음 선보인 가늘게 뻗은 후미등, 입체적인 차등 등이 적용됐다. 신형의 S클래스 쿠페(高级双门箱式轿车)는 이번 모터쇼를 통해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 차는 4663㏄ V8 바이터보(涡轮)엔진이 들어갔으며 최대출력 455마력의 성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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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1
  • 경찰, 유언비어·괴담 유포 수사 착수
    추적·검거해 엄정 대응…민간잠수부 사칭 홍 모씨 사법처리 예정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경찰이 유언비어 유포 행위 수사에 본격 착수하는 등 유언비어·괴담 유포 행위에 대한 엄정한 대응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경찰은 우선 민간잠수부를 사칭한 홍 모씨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사법처리할 예정이다. 또 안산 단원고에서 발견된 ‘종북장사 멈취야 합니다’ 라는 내용의 유인물 유포한 행위와 실종자 성적 모욕·비하 혐의에 대해서도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또 지난 17일 인터넷 방송에서 실종자에 대해 성적으로 모욕하고 비하하는 표현을 한 개인방송 운영자(BJ)에 대해서도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이 사례 외에도 시중에 떠돌고 있는 유언비어에 대해 전국 사이버수사요원, 지능수사요원 등을 총동원해 내사에 착수, 위법사실이 발견될 경우 엄정히 사법처리할 예정이다. 경찰은 특히 세월호 사고를 이용해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것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행위인 만큼 자제를 당부했다. 또 국민들에게도 근거없이 떠도는 각종 괴담 등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고, 유언비어 유포자에 대해서는 경찰에 적극 신고해 줄 것을 부탁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 02-3150-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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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1
  • 제34회 한국어능력시험(TOPIK) 역대 최다 지원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교육부(장관 서남수)와 국립국제교육원(원장 이병현)은 4월 19일(토)~20일(일) 국내ㆍ외 46개국 226개 시험장에서 제34회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일제히 시행하였으며 총 72,079명이 지원하였다고 밝혔다. 한국어능력시험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외국인 및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국어 사용능력을 측정ㆍ평가하는 국가 시험이며, 1997년 연 1회, 4개국에서 처음 시행한 이래 올해로 18년째 실시해 오고 있다. 한국어능력시험 성적은 우리나라 국적 및 영주권 취득, 외국인 유학생의 국내 대학 입학 및 졸업 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 한국기업에서 현지인의 채용 및 인사상 우대 등에 활용되는 등 유용성이 점점 증대되는 추세에 있고 또한 국내ㆍ외에서 외국인과 재외동포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교육 확대 등의 영향을 받아 지원자가 날로 증가하여 2013년 1월 누적 지원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이후 현재까지 1,259,467명이 지원하였다. 매년 증가하는 지원자의 응시 편의를 제고하기 위해 금년에 4개의 국내 시험장(이번 시험에서는 1개 시험장 증설)을 늘려 24개 시험장을 운영하였고, 국외에서는 전년도 대비 3개국이 증가한 65개국(누계)에서 시행하였다. 특히 이번 시험에는 우리나라와 공식 외교관계가 없는 쿠바 에서도 83명이 지원하여 시행하였다. 앞으로도, 한국어능력시험 시행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시험장 및 시행국가 수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금년 하반기부터는 외국인 유학생 유치ㆍ관리 인증제 수요 반영 및 언어사용능력 중심 평가 전환 등을 위해 연간 시험 횟수를 확대함과 동시에, 이미 다수의 모의시험을 통해 검증된 개편된 시험을 시행할 예정이다. 지난해까지 총 4회(국내 2회, 국내ㆍ외 2회) 시행해오던 시험 횟수는 올해 총 5회(국내 3회, 국내ㆍ외 2회)로 확대 시행한다. 시험체제도 기존의 초ㆍ중ㆍ고급 3종에서 초급 수준의 한국어 능력시험Ⅰ(TOPIKⅠ)과 중ㆍ고급 수준의 한국어능력시험Ⅱ (TOPIKⅡ)의 2종으로 개편된다. 평가영역*은 어휘ㆍ문법, 읽기, 듣기, 쓰기의 4개 영역에서 읽기, 듣기, 쓰기 3개 영역 이하로 조정하여 응시자의 수험 부담을 줄이면서 실질적인 언어사용 능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개선된다. * [현행] 4개 영역(어휘ㆍ문법, 듣기, 읽기, 쓰기) → [개선] 초급 2개 영역(듣기, 읽기), 중ㆍ고급 3개 영역(듣기, 읽기, 쓰기) 특히 초급 수준의 한국어능력시험Ⅰ(TOPIKⅠ) 체제는 읽기와 듣기 영역만 평가하여 한국어 입문 학습자들이 부담 없이 한국어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기존의 중급과 고급 시험이 통합되는 한국어능력시험Ⅱ(TOPIKⅡ) 체제는, 기존에 중급과 고급에 각각 응시하였던 지원자에게 시간과 비용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립국제교육원의 관계자는 한국어능력시험의 시행 횟수 확대, 시험장 증설, 개편체제 적용 등 일련의 조치를 통해 한국어능력시험이 한국어 보급과 국가 브랜드 가치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의 ☎ 044-203-6798 재외동포교육담당관 과장 이병석, 사무관 김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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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1
  • 연변축구 잘할 수 있는 무형산업(3)
    편집자의 말: 연변축구는 전통이 있고 역사가 길며 중국 축구사상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좌절, 곡절과 진통 그리고 억울함도 많이 당했으며 서기 1965년엔 전반 중국축구리그를 평정한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동포투데이”는 민함 선생과 예약하여 “연변축구 잘 될 수 있는 일종 무형산업”이란 제목으로 연변축구 특별기획으로 된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연재기간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갑급리그에서의 연변팀 현황 분석도 하게 됨을 알리는 바이다. 편집자 ■ 민함 연변축구팀과 중국 국가축구대표팀이라 하면 벌써 차원이 다르다. 하늘과 땅 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 국가축구대표팀이란 말 그대로 중국내 각 성과 직할시 및 자치구들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로 선발되며 물론 그 중에는 우리 조선족 선수도 적지 않게 선발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집계에 따르면 건국이래 조선족이 국가축구대표팀, 국가올림픽축구대표팀을 비롯해 각종 국가급 축구대표팀에 선수를 수송한 수자는 무려 40여명에 달하였다. 그리고 1992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때 중국 국가축구팀에는 고종훈, 김광주, 이홍군 이렇게 연변적 조선족 선수 3명이나 입선되었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국가축구대표팀에 축구 엘리트들만이 모인 구단이라 할 때 선수 개개인의 신체소질이나 축구기술 등은 말할 것도 없이 출중할 수밖에 없다. 원칙대로라면 국내의 그 어느 팀도 국가축구대표팀과는 견줄 것이 못되어야 했으며 또한 여태껏 국내의 많은 축구팀들이 감히 국가축구대표팀과 평가전같은 것을 치러볼 엄두도 내지 못하군 했다. 헌데 세상일이란 흔히 상상밖의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바로 다른 팀들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국가팀과의 평가전에 연변팀이 가끔씩 도전한다는 것이다. 간이 크게도 말이다. 아니, 도전할뿐만 아니라 자주 국가팀을 꺾어버리기도 했다. 지난 세기 50-60연대에 그랬고 그 뒤의 80연대에도 그랬으며 그것은 90연대에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럼 최근에는? 최근에도 물론 해남도나 운남 곤명의 동계훈련 때면 연변팀에서 국가팀과 평가전 제의를 하지만 국가팀에서 거절한다는 것이다. 그도그럴 것이 명색이 국가팀으로 연변팀과 이겨도 광채롭지 못하고 지면 망신살이기 때문이다. 연변팀에서 평가전 제의를 하면 국가팀 감독은 흔히 계획을 잡지 못했소. 선수들이 상할가봐 걱정이요 하기가 일쑤라 한다. 지난 세기 80연대 중국축구계에는 한동안 “깔람도이! 꼬까도이!(광동방언-吉林队! 国家队!)” 란 구호가 나돌았다. 뜻인즉 길림팀 실력이 곧 국가팀 실력이란 것이었다. 바로 원 연변팀의 감독으로 있었던 고훈 선생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1983년엔가 길림성팀(기실 연변팀)이 광주에서 국가팀과 평가전을 치르게 됐다. 그때도 국가팀은 중국내에서는 내로라 하는 쟁쟁한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자기의 소속팀에 있을 때 길림성팀과 경기를 치러본지라 길림성팀 선수들의 강한 투지에 겁부터 먹고 경기초반부터 매우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국가팀 선수들은 자기 앞에 굴러온 공이나 차는 정도였고 근본 길림성팀 선수들과 공쟁탈 같은 것은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는 길림성팀 선수들의 활무대가 되었고 국가팀은 전반전에 벌써 0 : 2로 뒤진 상황이었다. 후반전에 들어 길림성팀은 재차 득점기회가 있었다. 당시 고훈선생은 스트라이커(前锋)였는데 공을 몰고 상대방 문전까지 돌입했다가 꼴을 넣지 않고 공을 되는대로 차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국가팀인데 너무 몰려주는 것 같아서였다. 그 때 경기장 관중석에서는 “깔람도이! 꼬까도이!” 란 구호가 터져 나왔는데 이 구호는 삽시간에 전국에 퍼지면서 중국인들이 국가팀 축구를 비난하는데 자주 이용되군 했었다. 현재 중국축구는 이렇게 저렇게 많이 발전했다. 그 사례로 광저우헝다가 지난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보좌에 올랐다. 헌데 이는 어디까지나 외적용병이 가맹하는 클럽축구의 성적이지 중국 국가팀의 성적은 아니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중국 국가팀의 수준은 아시아 일류는 못가도 2류 수준의 선두는 차지했었다. 아시아축구에서 한국, 일본, 이란, 사우디 등이 당시 일류였다면 중국은 카타르, 이라크 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1류에는 못미치고 2류라고는 좀 아깝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몇해간은 이라크나 카타르 같은 소국한테도 자주 패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태국의 청년팀한테조차 1 : 5로 패한 적이 있다. 한편 최근 몇년간 연변팀은 중국내 2부리그인 갑급권의 중류수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성적을 보아 절대 갑급의 제1그룹에는 들어가기 힘든 수준이다. 헌데 이런 연변팀과 국가팀은 평가전을 하기 무서워한다. 왜서인가? 하지만 이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시기 많은 중국팬들은 중국 국가축구대표팀이 연변팀을 진정으로 이길 때면 중국축구가 어느 정도 발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 스포츠
    2014-04-21
  • [단독] “굽이굽이 인생길 하많은 사연들” (10) 일신의 에너지 발산하며
    ◐ 허길성 (전번기 계속) 연길시라지오방송국방송중계소의 건립공정은 내가 이 단위에 입문하자마자 가동되였다. 우선 방송중계소를 세우자면 그 설계방안부터 나와야 했다. 그런데나 본인이 예전에 북경공정학원에서 기계및건축공정설계를 전공했지만 방송중계의 설계만은 아주 생소했고 이 방면에 들어서는 우리 모두가 초보자였다. 그러니 대도시들에 있는 방송중계소를 참관하면서 이런 설계들에 대해 전문적으로 학습해야 했다. 어쩔수 없이 나는 연길시라지오방송국에 출근한 며칠뒤부터 출장을 다녀야 했다. 출장에 대해 말하면 심양군구 공정병사령부에 있을 때 많이 다녔고 또 연길에 와서도 부대에 있을 때는 팔도, 훈춘 등지를 자주 다녔었다. 그리고 총각시절에는 출장다니는것이 그닥싫지 않았다. 홀몸이고 부담이 없으니 기분이 좋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결혼하고 또 자녀 둘씩이나 있고 보니 출장다니는것이 썩 좋은 일만은 아니였다. 출장가면 고생할 때가 많았다. 특히 음식이 입에맞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가 허다했다. 음식이란 그래도 같은 된장국이래도 집에서 안해가 끓여주는것이제일 입에 맞고도 구수했다는것을 나는 결혼뒤에야 진정으로 터득할수 있었던것이다. 안해는 나를 극진히도 보살폈다. 매번 출장을 갈때마다 나의 트렁크속에 고추장, 명란젓갈과 말린 누룽지 등을 넣어주군 했으며 때시걱을 절대 거르지 말라고간곡히 부탁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 출장간 뒤 매일 아침마다 함께 간 동료들이 나의 려관방으로몰려오기가 일쑤였다. 모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였다. 그리고그럴 때마다 동료들은 나의 안해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 한편 나를 부러워하는 기색도 력연했다. 그러던중 나는 실로 10여년만에 처음으로 북경출장길에오르게 됐다. 도문 – 천진행 기차를 타고 천진에 도착한뒤 천진에서 기차를 다시 갈아타고 북경으로 향하는 등으로 그때의 출장은 비행기는 고사하고 기차를 타고 가는것도 몹시 번거로웠다. 북경에 도착하니 그때까지만 해도 북경은 옛모습 그대로였다. 북경역도그대로였고 천안문광장과 그 광장을 가로지르는 장안가 량측의 건물들도 거의 그 모습 그대로였으며 장안가로 흐르는 거대한 자전거물결도 10여년전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 10년사이 크게 변한것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모습이였다. 개혁개방을 맞으면서 사람들 거의 모두가얼굴에 웃음기가 어리여있었고 그 걸음걸이는 씩씩하고도 활기찼다. 북경에 오게 되자 나는 문득 만나고 싶은 한사람이 있었다. 그가바로 북경공정병학원시절의 동창생이였고 지금은 외교부에서 근무한다던 그 량희원이란 사람이였다. 북경에서 국가외교부를 찾아가는것은 그닥 힘든 일이 아니였다.1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북경의 주요 거리에 대해선 거의 손금보듯 잘 알고있는 나였다. 2 국가외교부 정문앞에 이르자 초병 2명이 버티고 서있었다. 그들은 내가 나타나자 나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찾아온 용건부터 물었다. 이에 나는 량희원이란 그 친구와 북경공정병학원 시절의 동창생이라고 나서 이번에 어쩌다 수도 북경으로 왔던 김에한번 꼭 만나보려 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초병은 “그분은 지금 사무가 몹시 바쁘기에 될수록그의 사무에 방해가 되지 말아줬으면 한다”며 그닥 마뜩치 않아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럼 그한테 전화라도 걸어주면 안되겠는가고 사정했다. 그러자초병은 할수 없었던지 초소안에 들어가 전화를 거는것이였다. 그 초병은 “연변에서 허길성이라고 하는 중년남성이찾아왔는데 아는가”고 확인하고 난 뒤 만날 의향이 있는가고 했다. 그러고 나서야 초병은 나한테 돌아서며거수경례를 붙이고는 “손님, 미안합니다. 공무가 공무인만큼…조금만기다려주십시오”라고 했다. 미구하여 그 외교부 주건물의 출입문쪽에서 한 중년남성이 나타났다. 그 남성은 머리를 들고 우리가 서있는 대문쪽 한번 바라보더니 인차 부랴부랴 걸어오는것이였다. 그가 가까히 다가와서야 그제날 량희원의 모습이 조금 알리는듯 했다. 그 역시 한참이나 나를 뜯어보더니 그제야 “동창생 허길성동무구만”하며 와락 나를 끌어 안는것이였다. 량희원은 나를 몹시 반겼다. “허동무, 정말 마침 잘 왔소. 방금 어디론가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던 참이였는데 만약 나갔더라면 진짜 자네가 초병들한테 괄시당할번 했소. 하지만 저 초병들을 원망하지는 마오. 국가외교부는 국가의 기밀단위라그들도 어쩔수 없이 출입자단속을 엄하게 할뿐이오.” “그래그래 그렇구말구.” 아무리 국내의 “촌변두리”인 연변에서 상경했지만 그만한 상식마저 모를 내가 아니였다. 나는 량희원을 따라 건물 2층에 있는 그의 집무실로올라갔다. 량희원의 집무실은 그닥 화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외교관의 집무실답게 기품이 있었다. 그의 사무상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가꽂혀있었다. 이는 그가 전문 조선담당 외교관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이어 그가 사무상우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자 인차 녀비서 한명이 들어왔다. “커피 두잔.” 녀비서는 우리 두사람한테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하고는 나갔다.아주 세련된 모습이였다. 그 사이 그는 나한테 담배 한가치 권했다. 그때는그 담배가 무슨 담배인지 모르고 피웠지만 후에 알고보니 그 담배가 바로 유명한 명표담배 “말보루”였다. 그리고이윽하여 우리는 녀비서가 타온 커피도 마셨는데 이는 내가 생전 처음으로 마셔보는 커피였다. 우리는 한동안 지난 세기 60년대 당시 북경공정병학원에서갈라진 후의 일과 최근년간의 사업상황 및 가정생활 그리고 자녀들의 상황 등을 서로 주고 받으며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후 점심때가 가까워오자 나는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량희원동무, 우리 밖에 나가 식사나 하면서 계속얘기하기요.” 그때 나는 점심식사는 내가 그한테 대접할 타산이였다. 헌데 그는 급해하지 말라며 계속 나한테 이것저것 묻는것이였다. (아니, 이 친구가혹시 자기더러 돈쓰게 할가봐 이러나?! 아무리 시골인 연변에서 왔어두 내가 그처럼 짠 사람은 아닌데?…) 그러나 나는 그를 오해해도 크게 오해했던것이다. 시계바늘이 11시20분을 가르키고 그가 초인종을 누르자 또 아까 들어왔던 그 녀비서가 나타났다. 량희원은서랍에서 메뉴판을 꺼내들더니 몇가지 료리를 체크해서는 그 녀비서한테 넘겨주는것이였다. 녀비서는 역시 종전대로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하고는 방에서 나갔다. 미구하여 량희원의 사무실옆에 딸린 응접실 탁상에는 3-4가지의볶음료리가 올랐다. “허동무, 여기에 여러가지 술이 있는데 어떤 술을좋아하는지 한병 골라보오.” 그가 어느 한 궤에 달린 유리미닫이를 열자 그 안에는고급술만 수십병이 있었다. 나는 두눈이 휘둥그래질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의 생활수준은 아무때건술생각이 나면 마실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돈으로 한병에 수십원씩 하는 술을 사먹을 수준은 아니였으며 한병에 수백원씩 하는 더구나 쳐다볼엄두도 못내는 상황이였다. 그런데 량희원은 이렇듯 수백원씩 하는 고급술을 수십병씩 진렬해놓고 마시다니…말그대로 나와 량희원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사는 존재인것만 같았다. “빨리 한병 골라잡으라니까. 뭘 그리 구경만 하오?!” 나는 아무래도 마시는바 하고는 좋은 좋은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귀주의 모태주 한병 골라잡았다. 이어 우리는 탁상에 마주앉았다. 량희원의 말에 따르면그를 비롯한 많은 외교관들은 아주 특별한 사정외에는 일반적인 식당이나 료리집같은 공개장소로 드나들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 술에 취한 뒤 외교관원의 형상을 망가뜨리거나 실수로 비밀루설을 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 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될수록이면 생활외 자신의 사업에 대해서만은 적게 물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에 나는 그의 사업에 대해서만은 일절 묻지 않기로 했다. 나역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편 나는 그가 좋아하겠는지도 묻지 않은채 그저 나의 성의대로 가방안에 있던 고추장과 명란젓갈그리고 도라지무침 등을 내놓았다. 그러자 대뜸 희색이 만면하여 그는 대단히 반가워했다. “허동무, 이거 참 좋은거요. 이걸 진작 내놓을거지. 참.” 량희원은 볶음료리는 별로 다치지도 않고 내가 내놓은 반찬만 골라집었다. 그러고는 이마에 돋은 땀을 연신 닦으면서 “어허, 참 맛이 있소. 조선족은 그래도 얼큰한 반찬을 먹어야 군이 뚝 떨아진다니까” 라고 하며 하던 말을 자주 곱씹군 했다. 술이 몇순배 돌자 그는 속심말도 털어놓는것이였다. 그는북경공정병학원에 있을 때 내가 북경대학으로 가는것을 거절하였기에 자신이 선택될수 있었다고 하면서 그때의 일을 회고하는것이였다. “그때 북경대학에 전학한 후 나를 데려갔던 그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는데 당시 그분들이 진짜 욕심냈던학생은 자네 허동무였다더구만. 만약 그때 자네가 응했더라면 내가 선택되지 못했을수도 있었을게 아니우?…그러다 후에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외교부에 배치받게 되자 어쩐지 자네한테 미안한 생각까지 다 들더군.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수소문해 자네를 찾아본다고 했는데 말이야…” 그는 진정성이 고인 어조로 말했고 나 또한 그때의 일은 나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에 그럴 필요가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여보게 희원이, 그게 다 내가 선택한것이라네. 자네가 왜 미안해할거 있다구 그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와 나의 현실생활을 비교해보노라니 나 자신이 형언할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와 나는 아주 극적인 대조를 이뤘다. 나는 그한테자아소개를 할 때 연길시라지오TV방송국 TV방송중계소 서기로근무한다는 말만 하고 뻐스공장에서 로동개조를 할 때의 일을 밝히지 않은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 문화혁명시기에 겪은 나의 고초에 대하여동창생 량희원이 어떻게 알수 있으랴. 10여년만에 만난 동창생이였으니 우리 둘은 할 얘기들이 많고 또많았다. 이렇게 술이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보니 꽤나 시간도 흘렀다. 그리고나도 꽤나 주량이 있는 사람이였지만 량희원 역시 주량에 들어서는 두번째라고 한다면 서러워할 애주가였다. 그날 우리는 한사람이 한병씩 다 마시고서야 자리를 파했다. 드디여 술자리가 끝나 내가 려관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그는 “술마신 친구를 그냥 돌려보낼수 없다”고하면서 기어코 자기의 침대우에 나를 눕히는것이였다. 그러고는 해당일군을 불러 친구 한명이 자기의 침실에서하루밤 자게 된다는것을 신고하고 등록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의 량희원은 전혀 술마신 사람답지 않게 아주 정규적일군의 사업자세를 보였다. 그 며칠뒤 나는 북경에서의 볼일을 다 보고 연길로 돌아가게 되였다. 그날 내가 북경역에 도착해 뻐스에서 내리자 불현듯 누군가 “허동무”하고 조선말로 부르는것이였다. 그 소리에 내가 사위를 둘러보니 바로 량희원이 대합실출입문쪽에서 손짓하는것이였다. 나는 웬간히도 놀랐다. 내가 연길로 돌아간다는것을어떻게 알고 왔단 말인가. “아니, 자네 어떻게 알고 왔소?” 이에 그는 그날 술을 마실 때 내가 아무날에 연길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는것이였다. 기실 그날 내가 술을 마시면서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그한테 연길로 돌아가는 날자를 말했고 그 역시 그냥 머리를끄덕이며 지나가는 소리로 듣는듯 했으나 꼼꼼한 그가 그 말을 깊이 새겨들은것이 분명했다. 그때 나는량희원의 외교관다운 자질에 재차 한번 놀랐다. 이어 그는 찦차운전사를 시켜 차안에서 웬 커다란 트렁크 하나를 꺼내더니 나한테 내밀며 열어보라는것이였다. 열어보니 그안에는 몽땅 고급술이였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허동무, 뭘 그리 놀라는거요. 그날 보니까 자네도 나처럼 술을 좋아하는것 같더구만. 몽땅 연길로갖고 가서 친구들과 함께 마시오. 다만 친구들앞에서 나의 체면을 좀 세워주면 고맙겠구…” 아마도 그날 내가 궤안을 들여다보며 부러워한것을 그가 알아챈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나는 마실 술도 모자란데 자네는 이렇게 진렬까지 해놓고 살군”하고 롱담삼아 말한것을 그가새겨듣고 나한테 몽땅 선물한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친구의 성의가 무던히도 고마웠으며 수십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때의 일을 잊을수가 없다. 량희원 친구,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그때 정말 고마웠네. … 한편 연길시라지오발사탑을 세우는 동안 우리는 무척 고생을 했다. 당시 발사탑은 중앙인민방송국의 설계에 따라 건설되였는데 요구가 매우 높았다.그리하여 관건적인 설비는 북경 중앙인민방송국 산하의 기업에 가서 직접 가져오고 기타의 설비만 연변건축공사 기계공장을 통해 가공하게했지만 그것이 요구에 미달될 때가 많아 애를 먹었다. 그리하여 북경,장춘과 할빈 등 곳을 더 다니기도 했다. 한가지 사례를 든다면 지진과 번개를 방지하기 위해직경 120 메터내 땅속에 동선을 거미줄처럼 늘여야 하는데 3톤에달하는 동선이 수요되였다. 헌데 당시 연길실정에서는 동선 3톤씩구할수가 없었다. 아니, 설사 구할수 있다 해도 그 가격이어마어마할수 있기에 결국 우리는 비용절약을 목적으로 연길시안의 수구소를 돌며 페물속에서 동으로 된 물건을 몽땅사들였다. 그 다음엔 그것을 동선으로 뽑을 공장이 지방에 없으니 그것을 싣고 장춘의 철근가공공장에 찾아가 재가공으로 동선을 뽑아내기까지 했다. (연재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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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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