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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친일파, 딸은 항일투사…총구로 갈라진 부녀의 운명

  • 허훈 기자
  • 입력 2026.10.1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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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총 들고 일본군과 맞선 조선인 여전사 허성숙, 24세에 산화

[인터내셔널포커스] 아버지는 일본 괴뢰정권의 무장조직을 이끌었고, 딸은 일본군에 맞서 기관총을 들었다. 같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두 사람이 선택한 길은 정반대였다. 동북항일연군에서 '여장군'으로 불렸던 조선인 여성 항일투사 허성숙(许成淑·1915~1939)의 이야기다.


허성숙은 1915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 차조구 중평촌에서 태어났다. 소학교 3학년을 마친 뒤 조선인 혁명가들이 운영하던 야학에서 공부하며 항일운동에 눈을 떴다. 1930년 반일활동에 참여했고, 이듬해 소년선봉대에 들어갔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 괴뢰정권에 협력하던 자위단 단장이었다. 일본군의 지배를 뒷받침하는 아버지와 이에 저항하는 딸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1933년 8월 허성숙은 집을 떠나 연길 항일유격대에 합류했다.


유격대에서 그는 기관총 사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무거운 기관총을 메고 험준한 산길을 이동했고, 전투가 벌어지면 앞장서 적진을 향해 사격했다. 뛰어난 사격 솜씨와 대담한 전투력으로 전우들 사이에서 '여장군'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36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그는 동북항일연군 제2군에서 활동하며 안도와 돈화, 임강 일대의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때로는 적진 깊숙이 들어가 병력과 진지를 살피는 정찰 임무도 맡았다.


1937년 9월에는 남편이자 항일부대 중대장이었던 박광규가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동료들은 후방으로 물러나기를 권했지만 허성숙은 전선에 남았다.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항일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939년 4월 안도 서북차 전투에서는 적진으로 돌격해 기관총 한 정을 노획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기관총반장을 맡아 부대의 화력을 책임졌다.


그러나 그해 8월 안도현 대사하 일대에서 부대의 철수를 엄호하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본군 측에 붙잡혔다.


일본군은 항일조직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고문과 회유를 거듭했다. 끝내 뜻을 꺾지 못하자 아버지까지 불러 투항을 설득하게 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허성숙은 끝내 굴복하지 않았고, 스물네 살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허성숙이 활동한 동북항일연군에는 중국인과 함께 수많은 조선인 항일투사가 참여했다. 여성들도 후방 지원에 머물지 않고 무기를 들고 전투에 나섰다. 허성숙은 그 가운데 기관총 사수로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그가 싸웠던 만주의 산과 계곡에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에 맞서 총을 들었던 조선인 여성들의 이름은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친일에 협력한 아버지와 결별하고 항일전선을 선택했던 허성숙 역시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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