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어의 의미'에서 AI 시대 상상력까지…2026년 가오카오 작문에 담긴 중국 교육의 방향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의 대학입학시험인 가오카오(高考)는 단순한 선발시험을 넘어 사회가 미래 세대에게 요구하는 가치와 역량을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로 평가받는다. 올해 가오카오에는 약 1290만 명이 응시했다. 특히 작문 문제는 교육정책의 변화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영역으로 주목받는다.
2026년 가오카오 작문 문제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정답을 맞히는 능력'보다 '생각하는 능력'을 중시하는 흐름이 한층 뚜렷해졌다. 전국 공통권과 베이징, 톈진, 상하이 등 지역별 문제는 서로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공통된 방향성을 보여준다.
올해 출제된 문제들은 단순한 입시 과제를 넘어 중국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던지는 질문에 가깝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지키며,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시대, 변화하는 언어
전국Ⅰ권은 언어와 성장의 관계에 주목했다.
문제는 "성장 과정에서 의미가 달라진 단어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단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창이라고 전제한다.
수험생들은 '성공', '자유', '책임', '행복', '도전' 등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단어를 선택해 성장 과정 속에서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출제 의도는 특정 단어를 해석하는 데 있지 않다. 변화하는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새롭게 이해하는지를 평가하는 데 있다.
세계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기술 혁명이 일상을 바꾸는 시대에 기존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기의 시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전국Ⅱ권은 올해 가장 철학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시문은 "해와 달은 본체를 잃지 않기에 다시 빛나고, 강과 하천은 근원을 잃지 않기에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는 고전 구절을 인용했다.
문제는 개인의 성장과 사회 발전, 문명 진화 과정에서 어려움과 위기는 불가피하지만 본질을 잃지 않는다면 결국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수험생들은 이를 개인의 삶에 적용할 수도 있고, 사회와 국가, 문명의 발전 과정에 대입할 수도 있다.
최근 중국이 경제 구조 전환과 기술 경쟁 심화, 국제 정세 변화라는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문제는 단순한 인생론을 넘어 위기 속에서도 정체성과 가치, 원칙을 지키는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계획만으로는 부족하다
베이징권 논설문 주제인 '계획 세우기와 공들이기(做规划与下功夫)'는 목표와 실천의 관계를 묻는다.
문제는 원나라 학자 정단례(程端礼)의 독서법을 소개하며 체계적인 계획과 꾸준한 실천이 성장의 핵심이라는 점을 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개인의 독서와 학습을 넘어 국가와 사회 발전까지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계획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결과를 만드는 것은 결국 실행력이다. 계획과 실천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 메시지다.
이는 최근 중국이 추진하는 첨단산업 육성 정책과 과학기술 자립 전략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 장기적인 비전과 지속적인 노력이 함께할 때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깊이 읽기의 가치를 되묻다
베이징권의 또 다른 문제인 '함영저화(含英咀华)'는 올해 가장 인문학적인 문제로 평가된다.
함영저화는 꽃을 입에 머금고 향기를 음미하듯 시문과 예술작품의 정수를 반복해 되새기고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짧은 영상과 인공지능이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제공하는 시대에 이 같은 주제가 출제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문제는 독서량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작품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최근 중국 교육계가 고전 읽기와 전통문화 교육을 강화하는 흐름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정보의 양보다 이해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교육 철학이 반영된 출제로 볼 수 있다.
순응과 창조 사이
톈진권은 '조(调)'라는 한 글자를 중심으로 문제를 구성했다.
화가가 물감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남수북조(南水北调) 프로젝트를 사례로 제시하며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능력과 새로운 변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동시에 조명했다.
'조'에는 현실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적응하는 의미와 기존 틀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출제진은 순응과 혁신이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중국이 강조하는 혁신 발전 전략과도 맞물린다. 현실을 무시한 급격한 변화도, 변화를 거부하는 경직성도 아닌 균형 잡힌 혁신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시대 인간의 상상력을 묻다
상하이권은 올해 가장 큰 관심을 모은 문제였다.
문제는 "모든 사람은 세상에 대한 상상을 갖고 있으며, 과학기술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상상력도 변화시킨다"는 제시문을 통해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도록 했다.
생성형 AI가 일상 속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로봇과 가상현실, 양자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현재 인공지능과 반도체, 로봇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경쟁력만으로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
AI가 정보를 생산하고 분석하는 시대에는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보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 더욱 중요해진다.
상하이 작문 문제는 이러한 시대적 고민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한 문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래 인재를 향한 중국 교육의 청사진
올해 가오카오 작문 문제들을 하나로 연결해 보면 중국 교육이 지향하는 미래 인재상의 윤곽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국Ⅰ권은 변화하는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을 강조했다. 전국Ⅱ권은 위기 속에서도 본질을 지키는 힘을 이야기했다. 베이징권은 계획과 실천,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자기 성찰과 실행력을 요구했고, 톈진권은 창의성과 적응력을 조명했다. 상하이권은 AI 시대에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상상력과 통찰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입시 문제가 아니다.
중국 교육부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핵심 소양(核心素养)' 교육과 맞물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제시하는 하나의 청사진에 가깝다.
과거 제조업 중심 성장기에는 정해진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이 중요했다면, 기술 혁명과 산업 전환이 가속화되는 오늘날에는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1290만 명의 수험생이 마주한 올해의 질문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며, 어떻게 미래를 상상할 것인가.
2026년 가오카오 작문은 중국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던진 교육적 질문이자 미래 인재상에 대한 청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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