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7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중국과 대만의 66년 만의 정상회담은 1949년 국공내전 이후 성사되는 첫 정상회담으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마잉주 대만 총통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동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내년 1월로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는 물론, 작금의 동아시아 세력구도에도 일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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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대만=게티/포커스뉴스) 지난해 3월 19일 대학생 등 시위자들이 대만 입법원을 점령하고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강행 처리한 국민당에 항의하고 있다. 2015.11.04 ⓒ게티이미지/멀티비츠 photo@focus.kr

◆ 친중 - 국민당 vs 반중 - 민진당

포커스타이완의 4일 보도에 따르면 정윈펑 민진당 대변인은 마 총통과 시 주석의 회동 시기가 의심스럽다며 마 총통이 왜 이 시기를 선택했는지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선거를 몇 달 앞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국민당 소속 마 총통와 시 주석의 회동이 이뤄지는 것이 자칫 민진당에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여당인 국민당과 야당인 민진당은 1992년 대만과 중국이 합의한 '일중각표(一中各表,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대만과 중국이 각자 중국을 대표한다)' 원칙에 대해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

2008년 집권한 국민당 출신의 마 총통은 친중 정책을 펴왔다. 양안 교류에 역점을 두고 2010년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했다. 하지만 야권과 청년층은 대만이 중국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지고 성장의 열매가 기득권층으로만 집중되고 있다는 이유로 우려와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민당이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강행 통과시켰을 때 대만 대학생들은 입법원 본회의장을 점령하는 등 강력한 시위가 일으키기도 했다.

내년 1월 16일에 실시되는 총통선거는 이처럼 '국민당 심판론' 분위기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치러질 확률이 크다. 대만의 독립을 주장해온 민진당은 야권과 청년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차이잉원 민진당 총통 후보의 지지율은 주리룬 국민당 후보를 크게 앞서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 총통과 국민당은 자신들에게 크게 불리한 총통선거를 시 주석과의 회담으로 돌파해보겠다는 전략이다. 지나치게 중국으로 기울어 있다는 비판이 쏟아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상회담으로 승부수를 띄워볼만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민당은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대만에게 매우 중요하며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에게 일깨워 지지를 호소할 생각이다.

중국과의 갈등이 전면적으로 부각되는 것 또한 민진당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이전부터 강력하게 독립 노선을 취해오긴 했지만 현실적으론 '92 컨센서스'에 대한 '사상 검증'이 요구될 수도 있다. 현재 민진당은 직설적인 '대만 독립' 언사를 자제하고 '현상 유지'를 천명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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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중국=신화/포커스뉴스)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텐안먼 성루에서 ' 항일전쟁 승리 및 반 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2015.09.03 신화/포커스뉴스 photo@focus.kr

◆ '하나의 중국'을 향한 중국의 노림수

중국 입장에선 국민당이 내년 선거에서 집권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반중 성향이 강한 민진당이 집권할 경우 자신들의 '하나의 중국' 노선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중국'이란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 마카오가 궁극적으로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에 속한다는 개념이다. 중국은 홍콩·대만의 자본주의 체제와 중국 대륙의 공산주의 체제의 병존을 '일국양제'라는 원칙 아래 인정하고 있지만 대만과 홍콩의 통치가 자신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중국의 속내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홍콩·대만이 중국 본토로 흡수통일되는 건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껄끄러운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대만의 교과서 파동이 있다. 지난 8월 대만 정부가 역사·사회교과서를 친중 성향으로 서술하도록 개편했을 때 대만 학생들은 '대만과 중국은 다르다'며 시위를 열고 강력히 항의했다. 중국은 이때의 시위가 지난해 홍콩의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 수준으로 확대될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중국은 대만 총통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1996년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한 경험도 있다. 대만 유권자들을 위협함으로써 공공연하게 대만의 독립 노선을 주장한 리덩후이 후보의 총통 당선을 저지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대만의 반중 정서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리덩후이는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총통에 당선됐고 중국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중국은 대만의 반중 정서를 자극하면 외려 반중 성향이 강한 후보자가 당선된다는 역사적 경험을 '교훈'으로 가지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선 대만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않고 민진당을 견제하는 적절한 수단이 중국-대만 정상회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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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구축함 '라센호'는 지난 10월 남중국해 내 중국 인공섬인 스프래틀리 군도(난사 군도) 12해리 내 해역에 접근한 바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25일부터 동해에서 진행된 한미연합훈련 '불굴의 의지(Invincible Spirit)'에 참여한 라센호의 모습이다. 2015.10.27 ⓒ게티이미지/멀티비츠 photo@focus.kr

◆ 중국·대만 간 '갈등 불씨' 꺼뜨리고 싶지 않은 미국

미국은 공식적으론 대만과 단교한 상태다. 1972년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1979년 공식 수교를 맺은 이후 미국은 대만과 교류를 중단했다. 대신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만들어 미국이 대만을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고 대만 해협에서 유사시의 군사 충돌이 일어났을 때 자동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대만을 중국 견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구상이다.

당선이 유력한 차이 민진당 후보가 지난 5월 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대만 활용 전략은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이제까지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대만 정치인들과의 회담은 비공식적으로 처리해왔다. 그러나 차이 후보의 방미 기간에 미국은 매우 이례적으로 그를 국무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 청사에서 접견하도록 했다.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날로 격화하는 가운데 대만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번 회담에서 중국이 대만에게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갈등을 자제하기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대만-중국 정상회담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미국이 군사적 대립, 필리핀이 상설중재재판소(PCA)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대만 중국문화대의 타이슈엔양 정치학 교수는 중국에게 이번 회담은 남중국해 분쟁에 관한 한 중국이 이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중국과 대만이 남중국해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미 워싱턴포스트의 4일 보도에 따르면 조시 어니스트 미 백악관 대변인은 3일 정례 브리핑에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양안 관계"를 지지한다고 표명했으나 "이번 회담에서 실제로 나오는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은경 기자 songss@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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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 정상회담, 대만 선거·동아시아 세력구도에 어떤 영향 끼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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