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제날 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들(16) 세월과 더불어 새롭게 인식되는 역사
■김철균
내가 8살 때 소학교에 붙었으니까 그 해가 아마 1966년이었을 것이다. 그 시기 아버지의 생활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즉 내가 태어나던 1957년부터 그 때까지 아버지는 별로 “외출”을 하지 않았으며 어디에 갔다가도 밤만은 꼭꼭 집에 와서 자군 하였다. 또한 바깥에 나가 돌배 한알이라도 생기면 건사했다가는 꼭 집에 온 후 나를 주군 하였다. 그만큼 나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은 각별했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는 정치상에서도 크게 “진보”했다. 아버지의 “혁명경력”이 은을 냈던지 아버지는 촌 당지부서기로 일했던 것이다. 글공부를 거의 하지 못한 아버지가 촌지서사업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나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단, 아버지가 얘기를 잘한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중국어에 대해서는 청산유수였다. 조선어면 조선어, 중국어면 중국어 이렇게 중조 두가지 언어에 대해 막힘이 없는 아버지였으며 그 당시 촌에서 두가지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아버지외 별반 없었다. 아마 그래서 상급당조직에서는 아버지한테 촌지서사업을 맡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헌데 내가 어섯눈을 뜨면서 지켜볼라니 그 때의 아버지는 자주 한숨을 내쉬며 뭔가에 고민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자주 “내가 그러는게 아니었는데 참 왜 내가 그런 못된 짓을 했노?”라고 혼자말로 중얼거리군 했다.
그 때 아마 아버지는 그 무슨 폭풍우를 예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몇년 뒤 아버지는 문화혁명중에 반란파들한테 물매를 맞게 되었고 결국 그 때문에 세상을 하직한 것도 사실이었다.
사망하기 전 아버지는 나한테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아비가 남들의 봉창을 당한 거란다. 봉창을… ”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들려주었다.

1964년은 중국에서 사회주의교육운동이 한창일 때었다. 그 때 상급에서 사회주의교육공작대가 내려왔고 촌당지부에서도 정풍운동이 크게 벌어졌다. 바로 그 때 촌학교의 한 여성 당원교원이 당시 당지부의 부서기로 있던 김××와 눈이 맞아 돌아친 것이 탄로되었고 아버지는 당지부 지도부회의에서 그 여성당원을 호되게 비판하였으며 거수표결로 그녀를 당내 엄중경고 처분(당적을 보류하고 지켜보기)을 주었다고 한다.
“낸들 그러기 좋아서 그랬겠느냐?! 어쩔 수 없었다. 그 사람의 처가 그 일을 알고는 속을 태우다 못해 목을 매고 자결했으니 일이 데럽게 꼬였단 말이다. 그 여자를 보호할 여지가 없었단 말이다.”
한편 그 일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한테서도 많은 꾸중을 듣기도 했다.
“당신이 뭔데 시집도 가지 않은 남의 여자를 회의에서까지 망신시켜유?! 당신은 얼마나 깨끔한 사람인데 다 그런대유…”
“남들이 뒤에서 어떻게 손가락질을 하는지 알기냐 해유?! 나 참 챙피해서 그 말 입에 담지 못하겠수.”
어머니의 꾸중에 아버지는 한마디 대꾸도 없었다. 워낙 옛날의 성미가 많이 죽어든데다 아버지 자신 또한 그 일때문에 몹시 참회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헌데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66년 여름, 상해에서부터 시작된 문화혁명의 폭풍은 마침내 연변의 작으마한 농촌마을인 나의 고향에도 들이닥쳤고 아버지는 제일 선참으로 반란파들에 의해 붙잡혀나와 투쟁을 받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죄명은 여러가지였다. 지난날 술을 좋아하다 못해 공소합작사에 가서 외상술까지 받아 마셨으니 부화타락한 생활을 추구하는 “주자파”였고 문화혁명전 조선으로부터 민주연군시기의 전우가 찾아왔었으니 “외국스파이”었으며 조선에 있는 여인과의 일이 어떻게 새나갔는지 생활작풍상에서도 문제가 엄중한 “계급이색분자”였다.
당시 아버지를 가장 호되게 족친 사람은 다름 아닌 소학교의 당원교원인 이금자란 여자와 당지부 부서기었던 김정범이란 남성이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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