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미국이 세계 최강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지난 30여 년간 스스로 개입하거나 주도한 주요 전쟁에서 뚜렷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이 미국 외교안보계 내부에서 제기됐다.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이보 달더(Ivo Daalder)는 “문제는 무기의 성능이 아니라 미국의 전쟁 사고방식 자체에 있다”고 지적했다.
달더 전 대사는 26일(현지시간) 유럽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 기고문에서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지만, 1991년 걸프전 이후 사실상 명확한 승리를 거둔 사례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 최근의 이란 관련 군사충돌까지 언급하며 “대부분의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졌거나 전략적 실패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현재 이어지는 대이란 군사 압박과 충돌 양상에 대해서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범한 가장 심각한 전략적 오판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달더는 미국의 전쟁 수행 방식에 구조적 결함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가장 큰 문제로는 정치 목표보다 군사 행동이 앞서는 구조를 꼽았다. 본래 전쟁은 정치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지만, 워싱턴은 압도적 군사력을 먼저 투입한 뒤 원하는 정치적 결과가 뒤따를 것으로 기대하는 오류를 반복해왔다는 분석이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대규모 폭격 작전인 ‘롤링 선더’, 이라크전의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최근 이란을 겨냥한 대규모 공습 사례 등을 거론하며 “미국은 매번 overwhelming force(압도적 무력)를 투입하면 상대가 굴복할 것으로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다”고 짚었다.
또 다른 문제로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전쟁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을 들었다.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 이식, 문명 전환, 테러 근절 같은 거대한 목표를 군사력만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실제 전쟁은 장기 혼란과 지역 불안정만 키웠다는 지적이다.
달더는 1991년 걸프전을 예외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했다. 당시 조지 H.W. 부시 행정부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축출한다”는 제한적 목표만 설정하고 바그다드 진격을 자제하면서 국제 공조와 전후 안정성을 일정 부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반면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 과정에서 정권 붕괴 이후의 통치 계획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이는 장기간 혼란과 중동 불안 심화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라크군 해체 이후 수십만 명의 무장 병력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반군화한 점은 대표적인 전략 실패 사례로 꼽혔다.
달더는 미국이 반복적으로 상대의 ‘의지’를 과소평가해 왔다고도 분석했다. 그는 “미국은 압도적 무력이 의지의 차이까지 극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현실은 다르다”며 “베트콩과 탈레반, 이슬람 혁명세력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1968년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의 ‘구정 공세’를 사례로 들며 “군사적으로는 미군이 버텼지만 미국 사회 내부의 전쟁 피로감과 반전 여론이 폭발하면서 전략적 균열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단기간 군사작전에는 성공했지만, 전후 질서 구축과 정치적 안정 전략 부재로 결국 장기 수렁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은 미국 전략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거론됐다. 2021년 탈레반이 재장악에 나서자 미군은 급박한 철수 작전을 벌였고, 카불 공항에서는 대규모 탈출 행렬과 혼란이 이어졌다. 당시 장면은 베트남전 종전 직전 사이공 철수 사태와 비교되며 미국 내에서도 큰 충격을 안겼다.
최근 이란 문제와 관련해서도 달더는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나 전후 시나리오, 실패 시 대응책조차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채 군사 압박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동 전체가 연쇄 충격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장기 전략보다는 단기 군사 행동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다.
달더는 해법으로 이른바 ‘와인버거-파월 원칙(Weinberger-Powell Doctrine)’ 복귀를 제안했다. 이 원칙은 미국이 핵심 국익이 걸린 경우에만 무력을 사용하고, 명확하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며, 국내외 지지를 확보하고, 출구 전략까지 준비한 뒤 마지막 수단으로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9·11 이후 미국은 신속 대응과 선제 행동 중심의 군사전략으로 기울었고, 이 과정에서 전략적 신중함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달더는 현 국방부 지도부 역시 과거 원칙을 언급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술적 우위가 곧 전략적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세계 최강 군대가 스스로 시작한 전쟁에서 반복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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