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불과 30여년 전까지만도 우리는 기업을 하는 사람은 잘 먹고 잘 입으며 돈을 종이장처럼 뿌리고 다니는가 하면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이 여유작작한 인생을 보낼 것이라고 인정해왔다.

 

정말로 그럴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점차 그런 시각을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벼락부자”로 된 사람이라면 돈을 마구 뿌리며 다닐지는 몰라도 우리가 보아온 많은 기업인들은 극력 아꼈고 사업이라면 밤을 패가며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럼 오늘 소개되는 주인공 연길 카이시자양품공장 박옥련 공장장이 바로 그런 부류의 기업인이었다.

 

알로에와 우연하게 인연맺아

 

박옥련 공장장이 알로에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어릴 때 그녀는 몸에 이러저러한 질병이 많았다. 수술만 해도 6차나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수술이란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났고 삶에 짜증이 날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몸을 춰세우기 위해 좋다는 보약도 많이 써봤지만 별로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88년 그녀는 우연히 의학서적을 통해 알로에가 질병치료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 당시로서는 얻기 힘든 알로에 두포기를 겨우 얻어 화분통에 심고는 정성들여 키운 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복용하였더니 상상외로 지겹게 몸을 괴롭히던 질병들이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알로에를 통해 되찾은 건강ㅡ 그녀는 그것을 혼자서만 향수하기엔 너무나도 아까왔다. 원체 시원시원한 성격에 통이 큰 그녀는 1996년에 4000여평방미터가 되는 땅을 사서 알로에재배기지를 세우고는 본격적으로 알로에생산에 들어갔다.

 

헌데 세상일이란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우선 열대식물로 집안의 화분통에서만 자랄 수 있던 알로에를 대면적으로 재배하니 애로사항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아무리 비닐하우스안에서 일정한 온도를 보장했으나 1년에 수개월씩 되는 과동기를 넘긴다는 것이 여간만 여러운 것이 아니었다.

 

1999년 겨울 한차례 내린 폭설로 그녀의 비닐하우스 전체가 그대로 내려앉았으며 몇년간 정성스레 키웠던 수많은 알로에가 하루 사이에 꽁꽁 얼어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되었다.

 

치명적인 좌절이었다. 실패의 정도가 아니었고 절망적이었다. 이렇듯 엄혹한 현실앞에서 웬간한 여인들 같으면 그 자리에서 기혼해넘어가지 않으면 병원에 실려갈 정도였겠으나 박옥련 여인만은 입술을 옥물었다. 다시 대규모의 알로에재배를 할만한 자금이 없으니 작은 영업길에 나섰다.

 

식당, 세탁소 등을 운여하면서 돈을 모으다보니 어느덧 4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정도 계획이 잡히자 그녀는 알로에로부터 병치료효과를 본 8명의 사람들한테서 이자를 주기로 하고 100만원이란 자금을 빌려서는 알로에생산 재창업에 나섰다.

 

알로에의 제품화에 성공

 

재창업에 달라붙자 박옥련 공장장은 모든것을 깐지고도 빈틈없이 달라붙었다. 일명 “식물의사”, “만병초”로 불리우는 알로에는 80여가지의 유효성분을 갖고 있다. 알로에의 탁월한 효능은 동서양의학계에서 모두 공인하는 사실로서 수천년래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광범위하게 응용해온 걸로 알려지고 있다. 알로에에는 살균작용, 항궤양, 세포부활  작용, 강심, 혈액순환 촉진, 동맥경화 연화, 혈관생성 촉진, 모세혈관 확장, 내분비 안정 및 추진 작용이 있다. 그리고 뛰어난 소염작용이 있어 항암, 이상세포파괴, 피부개선, 해독작용이 있으며 신장염, 방광염, 기관지염 등도 치료될 수 있고 항알레르기 작용도 있다.

 

한편 알로에는 그냥 그대로 먹기가 쓰고 떫은 식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는 하면서도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알로에재배에 성공하자 박옥련 공장장은 그것을 그냥 그채로 시장에 내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것의 독특한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는 제품화하기로  결심, 근 4년간의 꾸준한 연구개발 끝에 국가발명특허권까지 따낸 자양제품 “카이시알로에엿”을 시장에 내놓아 폭발적인 인기를 몰아왔다. 이어 그녀는 알로에 계열제품들인 알로에사탕, 알로에캡슐, 알로에된장, 알로에간장 등 연속 개발해냈는데 그 중 알로에된장은 환자들뿐만 아니라 광범한 대중들 가정들에서도 즐겨먹은 보건품이자 식료품으로 늘 가정의 식탁에 오르군 했다.

 

박옥련 공장장이 개발생산해낸 알로에계열제품들이 시장에서 각광을 받아 수요자가 많아지자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는 국면”이 나타났다. 그녀가 갖고 있는 1만 6000여평방미터에 달하는 재배기지로는 생산라인에 원료를 공급하기가 태부족이었다. 하지만 박옥련 공장장은 원재료의 질에 대해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리 원료공급이 딸려도 5년생이 되지 않는 알로에는 절대 쓰지 않았고 알로에재배에 있어서도 화학비료 대신 유기농비료를 썼고 살초제를 일절 쓰지 않고 풀도 몽땅 손으로 뽑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 공장의 알로에계열제품에는 절대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금은보석은 녹쓸지 않아”

 

“현재 시장에 저의 공장제품과 양식이 비슷한 모조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것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아요. 금은보석은 녹쓸지 않는다고 소비자들은 언제나 그것의 진가를 알아볼 것이 아닌가요?! 저는 소비자들을 믿고 그저 저의 공장제품에 대해 책임지고 생산할뿐이죠.”

 

박옥련공장장의 말마따나 현재 세상에서 어느 제품이 인기를 몰아온다고 하면 며칠 안가 그 모조품이 생겨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조품이란 그것이 들통나기 마련이고 생명력도 길지 못하다는 것이 박옥련 공장장의 설명이다. 알로에계열제품만 봐도 아무리 근사하게 모방한다고 하더라도 재배기지가 없이 시장에서 파는 알로에를 마구 사들여 제품을 만든다면 그 원료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건 물론 생산라인 또한 10여년간 품들인 연길카이시자양품공장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 박옥련 공장장의 굳은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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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카이시장양품공장은 1996년의 창업스타트로부터 현재까지 10여년동안의 창업과 실패와 재성공의 길을 더듬으면서 걸어왔다. 그동안 이 공장은 1만 6000평방미터의 알로에재배기지를 확보하고있으며 직원 총수의 37%가 기술인원진영으로 재배기지, 생산과 판매 등이 일체화로 된 우리 길림성에서 최고의 알로에전문기업으로 발돋음했다.

 

하지만 박옥련 공장장은 사업의 대성공으로 거부로 되는 것보다는 먼 후날 장백산지구 알로에제품개발의 선두자로 남고 싶다고 솔직하게 그 소망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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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에 재개발에 인생을 건 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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