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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가자지구 재건 돕겠다"
- [동포투데이] 억만장자 머스크가 가자지구 재건을 도울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27일,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머스크는 이스라엘 방문 중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대화를 나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에는 관련 영상이 올라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대화 도중 하마스가 패배한 뒤 평화 정착과 가자지 재건, 지속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머스크는 살인을 꾀하는 자들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사형집행인의 길로 이끄는 선전을 중단하고, 가자지구를 번영시켜야 한다며 이스라엘 총리의 의견에 동의했다. 네타냐후는 머스크가 도움을 줄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머스크는 "기꺼이 돕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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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가자지구 재건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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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언론인 57명 사망
- [동포투데이] 28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비정부기구 언론인보호위원회가 지난 주말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기자 4명이 추가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언론인보호위원회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이후 50명의 팔레스타인인과 4명의 이스라엘인, 3명의 레바논인을 포함해 57명의 기자가 사망했으며 19명의 기자가 추가로 체포됐다고 확인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언론인보호위원회는기자들이 살해, 체포, 상해 또는 협박을 당했다는 수많은 미확인 보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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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언론인 57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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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빙산 남극 수역에서 표류
- [동포투데이] 27일, AP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빙산이 남극 수역 밖으로 떠내려가면서 표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남극탐사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빙산이 남극 수역에서 좌초된 지 30여년이 지난 현재 이 수역에서 표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A23a로 불리는 이 빙산은 1986년 남극 필히너 빙붕에서 분리된 것이다. 하지만 해저에 갇혀 웨델해에 수년간 머물렀던 이 빙산의 면적은 약 4000km2로 뉴욕시의 3배이고 그레이터런던의 2배가 넘는다. 영국 남극탐사대 전문가 앤드루 플레밍은 최근 1년간 천천히 움직이던 빙산이 바람과 해류에 밀려 남극반도의 북쪽 끝을 통과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BBC에 전했다. 플레밍은 이 빙산이 1986년 좌초됐지만 결국 해저와 닿지 않을 정도 로 작아지며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플레밍은 2020년 이 빙산이 움직이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고 밝혔다. 영국 남극탐사소는 빙산이 해저에서 떨어져 나와 해류를 따라 사우스조지아 쪽으로 표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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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빙산 남극 수역에서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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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임시 휴전 이틀 연장 합의
- [동포투데이] 27일(현지 시간), 카타르 외무부 안사리 대변인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인도적 휴전을 2일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하마스 측을 인용해 가자지구 임시 휴전이 2일간 연장되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휴전 조건은 종전과 동일하다고 전했다. 24일 오전 7시(한국시간 14시), 이스라엘-하마스 휴전협정이 발효되어 가자지구에서 4일간 임시 휴전이 이루어졌다. 한편 26일, 이스라엘타임스, ‘로이터통신 등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 임시 휴전 합의 연장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스라엘 측이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더 석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26일 기준 팔레스타인 억류자 117명이 석방됐다. 같은날 이스라엘 TV 채널 12는 바이든 미 대통령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 통화를 갖고 임시 휴전을 연장하는 내용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통화에서 임시 휴전 연장에 대해서는 열린 입장이지만, 휴전이 끝나는 대로 이스라엘 지상군 작전이 전면 재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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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임시 휴전 이틀 연장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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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학 인근 저수지서 중국인 유학생 숨진채 발견
- [동포투데이] 25일 경북 경산시 한 저수지에서 중국인 유학생 1명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산경찰서에 따르면 사망자는 22세로 경산시 소재 대구대학교에 재학 중이며 교내에서 숙박하고 있다. 25일 오후 1시 5분쯤 대구대학교 인근 저수지에서 유학생이 숨진 것을 행인이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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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학 인근 저수지서 중국인 유학생 숨진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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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예무역으로 거액의 클레임에 직면할 수도
- [동포투데이]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최근 서아프리카 국가인 가나에서 55개국으로 구성된 아프리카연합(AU)과 20개국으로 구성된 카리브공동체(CARIG)가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역사적으로 서구 노예무역의 피해를 입은 수백만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사과와 연체된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글로벌 펀드를 설립하기로 했다. 지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1,2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유럽 국가들에 의해 아메리카 식민지로 강제로 밀매되어 각종 농장에서 노예 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상회의 주최국인 나나 아쿠포아도 가나 대통령은 노예 배상은 "세계가 반드시 직면해야 하고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노예무역을 이용해 부를 챙겼다고 비난하고 아프리카의 자녀들의 자유를 통제하고 노예로 팔아넘겼으니 이제 배상할 때가 되었다고도 강조했다. 두 달 전 제78차 유엔총회 전체토론회에서도 같은 비난과 호소가 나왔다. 당시 연설에서 아쿠포아도 대통령은 서구 역사상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에 끼친 피해를 엄중히 규탄하고 서구 국가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배상을 요구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많은 부분이 수 세기에 걸친 아프리카에 대한 잔혹한 착취를 기반으로 설립되고 발전했다며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이러한 극악무도한 범죄를 보상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러한 범죄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있다"라고 지적했다. 15세기부터 유럽 국가들은 약탈, 착취, 노예 제도 등을 통해 전 세계로 계속 팽창하며 글로벌 식민지 제국 체제를 형성했다. 형형색색의 식민제국 중에 후발주자인 영국이 있었다. 사료에 따르면 카리브해에서 영국의 식민 통치는 17세기에 시작되어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영국은 약 310만 명의 아프리카 노예를 이 지역으로 수송하여 사탕수수, 담배, 커피와 같은 수익 작물을 재배하는 농장에서 무급 노동을 하게 했다. 영국 '흑인 역사의 달' 웹사이트에 실린 연구 보고서는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이 신체적 학대, 문화적 억압 등 다양하고 잔인한 대우를 받았고, 상당수가 비명횡사했다고 지적했다. 대조적으로, 식민 통치는 영국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왔고 영국의 경제 발전과 글로벌 파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의 축적은 아프리카 노예들의 착취와 억압, 그리고 카리브해 현지인들의 이주와 소외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웹사이트의 조사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영국의 금융, 문화, 학술 분야의 유명한 많은 기관은 역사적으로 노예무역과 식민지 지배로부터 이익을 얻었다. 바클리즈와 로이드와 같은 많은 영국 은행은 노예제와 노예무역이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고 여전히 노예제 유산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인정했다. 대영박물관, 국민신탁재단 등 영국의 많은 박물관과 문화기관은 노예무역이나 식민 통치를 통해 불법적으로 취득한 소장품과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와 같은 영국의 많은 대학 설립도 노예 상인과 농장주의 재산 덕분이다. 심지어 일부 교수와 학자들도 노예무역에 직접 참여했다. 노예무역의 발원지인 아프리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암흑한 시기를 견증했다. 올해 7월 초 AU 대표들은 바베이도스를 방문해 유럽 국가들이 '역사적 대규모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공동으로 촉구하기 위해 카리브해 국가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카라 바넷 카리브 공동체 사무총장은 이번 가나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글로벌 클레임 운동의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며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카리브 공동체는 포괄적인 공식 사과 및 채무 탕감을 포함한 10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웨스트 인디스 대학 추산에 따르면 영국은 카리브해 국가들에 대한 수 세기에 걸친 식민지 착취에 대한 보상으로 총 18조 8천억 파운드를 지불해야 한다. 고통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는 최소한의 배상액조차 산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아프리카의 주장을 지지하는 정의로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에서도 글래스고대와 영국 성공회가 각각 2,000만 파운드와 1억 파운드의 배상을 약속했고, 영국의 일부 노예주 후손들도 배상을 지지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가나 정상회의에는 영국 노동당의 아프리카계 의원 벨 리베로 아디가 참석했다. 그는 아프리카연합과 카리브해 공동체의 협력이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 결정권자의 태도는 정반대다. 가나 정상회의에 상징적으로 관계자를 파견한 영국 외무부는 이번 회의에 사람을 파견하는 것은 "표준적인 외교 접촉의 일부"일 뿐이며 영국 정부는 여전히 "배상"이라는 개념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수낙 영국 총리는 “노예제와 식민주의에 대한 영국의 역할에 대해 포괄적이고 의미 있는 사과를 하고 보상을 약속하느냐”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분명히 대답했다. 수낙은 또 “영국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며 우리가 집중할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영국 왕 찰스 3세는 최근 케냐를 방문했을 때 영국이 역사적으로 케냐인들에게 가증스럽고 비합리적인 식민지 폭력을 자행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공식 사과는 하지 않았다고 영국 언론이 전했다. 영국은 1886년 독일과 동아프리카를 '분할'한 후 케냐를 '분할'했고, 1888년 영국 동아프리카 회사의 관할하에 두었고, 1895년 영국 정부가 직접 관리하도록 변경했다. 케냐가 1963년 독립하기 전, 영국은 이 동아프리카 국가를 수십 년간 식민 지배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식민 통치 기간 케냐 서부 케리코 인근 마을 주민 50만 명 이상이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케냐 측의 배상 요구를 논의하기를 꺼려 왔다. 이번 케냐 방문에서도 찰스 3세는 의도적으로 케냐 서부 지역을 피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찰스 3세의 방문에 항의하는 케냐인들은 영국이 케냐에서 저지른 식민지 잔혹 행위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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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예무역으로 거액의 클레임에 직면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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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미스 유니버스, 미녀들의 민족 의상 쇼
- 산살바도르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각국의 미녀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민족 의상 쇼.(AP 사진/모이세스 카스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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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미스 유니버스, 미녀들의 민족 의상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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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세계 최초 혁신형 드론 개발
- [동포투데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 드론 산업 기술은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25회 중국 국제첨단기술성과전시회에서 중국산 최초의 쌍 날개 수직이착륙 고정익 드론이 공개됐다. 이 드론은 수직이착륙이 가능하며, 이륙 후에도 정상적인 수평 비행이 가능한 드론이다. 이 신형 드론은 중국과학원 창춘광학기계소(长春光机所) 연구팀이 독자적으로 개발·제조한 것으로, 세계 최초의 듀얼윙+멀티콥터의 공기역학적 레이아웃을 적용했다. 연구팀은 구동시스템·센서데이터융합·비행제어시스템·알고리즘 등 전기술 링크를 확보해 드론이 영하 40°C, 해발 5500m, 7등급 강풍에도 정상적으로 이착륙 비행할 수 있는 여러 드론의 성능 한계를 혁신적으로 뛰어넘었다. 또한 이 드론은 '대적재 + 저에너지 소비'로 효율적인 항속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현재 이 드론은 주로 신에너지 리튬배터리를 이용해 동력을 공급하고 있는데, 회전날개는 수직 이륙 시 위로 들어올리는 힘을 제공하지만, 수평 비행으로 바뀌면 회전날개는 수평 추력으로 전환된다. 이밖에 높은 에너지 효율 이용률은 더 나은 하중 용량과 지속 시간을 제공한다.드론의 전체 적재 중량은 50kg, 적재 용량은 약 17kg, 항속 시간은 최대 4시간으로 향후 전력, 임업, 응급, 측량 분야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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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세계 최초 혁신형 드론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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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수면시간' 8시간 아니다?
- [동포투데이]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수면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은 우리가 정력과 몸을 회복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최적의 수면 시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최적의 수면 시간이 8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개념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기사에서는 최적의 수면 시간에 대한 논란과 다양한 연령대와 개인별 수면 요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수면시간이 어떤 것이 최선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최적의 수면 시간은 수면의 질을 보장한다는 전제 하에 몸과 뇌가 충분히 회복되고 복구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말한다. 그러나 최적의 수면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는 생리적 특성, 연령, 성별, 생활 방식 및 기타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에는 8시간이 최적의 수면 시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개념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잘못 잔 것이다. 이는 연령대와 개인별 차이가 수면 요구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먼저, 다양한 연령대의 수면 수요를 살펴보자. 신생아는 수면 수요가 높아 하루 16-18시간을 자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아동의 수면 수요는 점차 감소하고 사춘기가 되면 수면 수요가 최저점에 도달해 하루 7~9시간 정도 자야 한다.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수면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노년기에는 다시 수면 수요가 높아져 하루 9~11시간을 자야 한다. 그러므로, 수면에 대한 욕구는 연령대에 따라 다르다. 나이 외에도 개인별 차이도 수면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어떤 사람들은 몸과 뇌를 회복하기 위해 긴 수면 시간이 필요한 반면, 어떤 사람들은 짧은 수면 시간만 필요하다. 개인의 생리적 특성, 생활 패턴, 건강 상태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8시간을 자야 한다고 일반화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에 따라 얼마나 자야 할까? 일반적으로 성인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7~9시간의 수면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간은 여전히 개인의 신체적 특성과 삶의 방식에 달려있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너무 길어 낮에 정신 상태가 좋지 않거나 몸이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수면 시간을 조절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수면 시간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밖에 수면의 질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좋은 수면의 질은 신체와 뇌의 회복과 회복을 촉진하여 신체의 면역력과 정신건강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안정적인 일정 유지, 과음 및 흡연 자제, 조용하고 쾌적한 수면환경 조성 등 좋은 수면습관을 유지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최적의 수면시간'이 고정적으로 변하지 않는 8시간은 아니다. 연령대와 개인별 차이는 수면 수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의 생리적 특성과 생활 패턴에 따라 최적의 수면 시간을 결정해야 한다. 동시에 좋은 수면 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수면 욕구를 충분히 이해하고 좋은 수면 습관을 기를 때 건강한 삶을 더 잘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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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수면시간' 8시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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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영원한 사랑을 안고 세상과 작별
- [동포투데이] 작가 정아오톈(郑敖天)이 20일, 홍콩 펑황망을통해 ‘영부인, 영원한 사랑을 안고 이 세상과 작별’이란 제목으로 전 미국 대통령 카터와 로잘린 카터와의 77년에 달하는 기나긴 혼인 생활에 대해 대서특필하였다. “지난 77년 동안, 우리는 매일매일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현지시간으로 11월 19일, 미국 전 대통령 카터의 부인 로잘린 카터가 가족들과 함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카터는 로잘린의 사망을 알리는 편지에서 “내가 이룬 모든 일에 로잘린은 내 파트너였다. 그녀는 내가 가장 필요할 때 나를 지도하고 격려했다. 로잘린이 살아있는 동안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영원히 알게 될 것이다. 카터와 로잘린 카터는 77년 동안 가장 오래 동안 결혼생활을 한 미국 대통령 부부였다. 결국 96세의 로잘린이 먼저 가고 말았다. 지난 2021년 로잘린에게 사랑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로잘린은 “우리는 서로에게 공간을 주는 법을 배웠고, 새를 관찰하고 낚시를 하는 등 늘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함께 책을 쓰던 그 시간은 최악이었고, 바로 이혼과 가장 가까웠던 시기였다”고 웃으며 농작을 했다. 함께 백악관에 입주하고 함께 중국을 방문한 대통령 내외가 스쳐 지나갈 뻔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영부인은 영원한 사랑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바로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야!” 로잘린은 1927년 미국 조지아주 플랫타운에서 태어났다. 카터의 어머니 릴리안은 그녀의 분만 간호사였다. 카터도 로잘린이 태어나자마자 그와 알고 지냈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딸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로잘린의 아버지 에드거 스미스는 적은 월급에서 5달러를 꺼내 로잘린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정교한 금화 목걸이를 사줬다. 플랫타운은 인구 600명이 채 안 되는 가난한 남부의 작은 마을로, 궁핍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친분이 있었다. 로잘린은 카터의 여동생 로즈와도 친한 친구였고 자주 카터의 집에 놀러 갔다. 로즈는 둘을 엮어주려고 노력했지만 두 사람은 분명히 감정이 없어 로즈를 무척 고민하게 만들었다. 로잘린도 카터는 자신의 어린 시절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1930년대 미국은 보수적인 사고방식으로 여성들이 학교를 다니고 취업하는 길이 험난했지만 로잘린의 부모는 그녀가 대학에 입학해 마을을 벗어나길 바랐고. 로잘린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건축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며 그림책에 온통 로잘린의 집을 그렸다고 한다. 그녀는 비행기에도 관심이 많았다. 우리 선생님의 남자친구는 비행기 조종사였는데… 그녀는 학교를 지날 때마다 손수건으로 만든 작은 낙하산을 떨어뜨렸다. 그 밑에는 애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가 묶여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훈훈한 어린 시절을 보낸 로잘린은 가족 모임 때 어머니가 구워주신 작은 케이크의 달콤한 향과 음악 수업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자주 떠올렸다. 1940년 로잘린의 아버지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행복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 순간 끝났다. 맏딸로 가족을 돌보는 중책을 맡은 13살 로잘린은 아버지가 막 돌아가셨을 때 집 근처 숲에 숨어 한참을 울다가 눈물을 닦고 집으로 돌아와 동생들을 돌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로잘린의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가문의 재봉 사업을 이끌며 “네가 자신한테 차례진 운명적인 일은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가르쳤고, 몇 년 뒤 로잘린은 우등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지아 사우스웨스턴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1945년, 운명적인 만남처럼 로잘린과 카터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 카터는 미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며 플랫타운으로 휴가를 떠나던 중이었다. 그날 그는 조지아주 미인대회 우승자인 그린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그린은 집안 사정으로 약속을 어겼다. 잃어버린 카터는 교회 앞에서 로잘린을 만나 영화를 보자고 청했고, 로잘린은 흔쾌히 승낙했다. 이는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지 10여 년 만의 첫 데이트였다. 몇 년 후, 카터는 로잘린과의 데이트를 행복하게 회상했다. 삐걱거리는 픽업트럭 좌석에서 내가 키스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카터의 키스에 놀랐지만 로잘린 카터는 여전히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첫 데이트에서 남자애가 키스하게 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때 카터의 어머니 릴리안은 아들에게 “어젯밤에 어디 갔었니?”라고 물었다. 카터는 “영화를 보러 갔다”고 대답했다. 릴리안이 다시 물었다: “너 혼자 스스로 갔니? 나는 그린이 어젯밤 가족 모임에 갔다고 들었어.” 이에 카터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냐, 난 로잘린과 함께 영화를 봤어.” 릴리안의 눈썹이 펴졌다. “로잘린은 어때?” 이에 카터는 웃으면서 “그녀가 바로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야!”라고 대답했다. 영부인은 영원한 사랑을 안고 세상과 작별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 지난 2015년 미국의 유명 MC 오프라가 방송 인터뷰에서 카터에게 물었다. “왜 데이트 한 번 하고 로잘린이 당신의 짝이라고 생각했어요?” 카터는 “그녀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조용하고 얌전하고 똑똑하고 아름다웠으며 그녀에게는 뭔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대통령님은 얼굴이 빨개졌어요.” 카터가 대답하기도 전에 오프라가 웃으며 말했다. 카터가 행복한 어조로 말했다. “안녕, 나는 이 순간 나를 통제할 수 없어.” 첫 데이트 후, 로잘린과 카터는 사랑에 빠졌다. 양가 가족들도 그들의 로맨스에 도움을 주었다. 1946년 2월 갓 군사학교를 졸업한 카터는 용기를 내어 로잘린에게 청혼했지만 뜻밖의 거절을 당했고, 며칠 뒤 로잘린은 아버지의 병상 앞에서 대학 졸업 전까지 결혼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고 카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카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로잘린에게 계속 연애편지를 썼고 기회가 닿는 대로 전화를 걸었다. 1946년 7월 로잘린은 대학을 졸업하고 카터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몇 년 후 카터는 “로잘린과 결혼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일이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정점이었다”고 회고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카터가 근무했던 해군기지 옆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로잘린은 수줍음이 많아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에서는 카터를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로잘린은 사람들을 대하는 데 노련해졌다. 카터의 어머니 릴리안은 “카터와 로잘린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잠수함 장교로 오랫동안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집안일을 모두 로잘린이 도맡게 했던 카터는 1953년 퇴역 후 로잘린과 함께 아들 3명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농업회사를 운영했다. 로잘린은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회계학을 독학하고 회사 재무와 운영을 맡았다. 카터는 사업적으로도 아내에게 의지하게 됐다. 1961년, 카터는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로잘린이라는 당시의 수줍은 소녀는 단상에 올라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카터의 오랜 정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해온 로잘린. 카터는 “나는 그녀가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은지 몰랐다”며 “시사를 분석하고, 자금을 배분하고, 전략과 선거 루트를 짜는 과정을 그녀는 나보다 더 좋아했다”고 말했다. 로잘린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남편을 위해 중도 유권자들의 신뢰를 많이 얻었다. 카터는 “나는 로잘린의 결단에 의지하고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정치판의 전방위 파트너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1976년 카터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로잘린은 곧 백악관에 사무실 가방을 들고 들어가는 미국 역사가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영부인이 되었다. 그녀는 각료회의에 참석해 중요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로잘린은 1977년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카터가 중남미 7개국을 방문했을 때 남편으로부터 자랑스럽게 ‘비밀병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터는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주는 것이 목표”라며 “나는 문제를 봤고,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잘린의 관심사 중 하나는 정신질환 치료였다. 1980년 로잘린의 노력으로 미국은 지역사회 정신건강센터를 설립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정신질환 치료를 정부 의료보험에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2008년에야 통과됐다. 영부인은 영원한 사랑을 안고 세상과 작별했다. “우리 함께 모든 것을 이겨 내자요.”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카터. 그날 밤 로잘린은 고개를 숙인 카터를 바라보며 남편의 무릎에 걸터앉아 “우리 함께 모든 것을 이겨내자요”라고 속삭였다. 몇 달 후, 카터 가족은 백악관을 떠났다. 퇴임한 많은 대통령들과는 달리, 로잘린에게는 그곳이 그녀의 진짜 집이었던 플랫타운으로 돌아갔다. 카터 대통령이 재임하면서 미국과 중국은 수교를 맺었고, 퇴임 후인 1981년에는 초청을 받아 로잘린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면서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이후 40여 년간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에서 태극권은 로잘린의 흥미를 끌었고, 그녀는 곧 태극권이 심신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카터와 함께 태극권을 적극 홍보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아침에 태극권을 연마하는 습관을 길렀다. 1986년 로잘린은 남편과 함께 노숙자들에게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기 위한 ‘해인의 집 수리’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이후 18년간 매년 이 행사에 부부가 직접 나서서 나무를 깎고 집을 짓곤 했다. 로잘린은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나도 작은 목수가 된 셈”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로잘린은 백악관 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지만 남편에 대한 동경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지미 카터가 하는 모든 일은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로잘린은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내가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잘린은 카터와는 생활 습관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녀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일어나면 태극권과 명상을 좋아했고, 카터는 수영과 조깅을 좋아했다. “가끔 카터가 나와 커피를 끓이는 솜씨 때문에 명상이 엉망이 되기도 했다.” 비록 평소에도 티격태격 하지만 부부는 여전히 금슬이 좋았다. 카터는 그 비결을 “매일 밤 잠들기 전 우리는 먼저 소통하고 화해했으며, 삶의 갈등을 다음 날로 가져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카터는 또 “우리는 4명의 자녀와 11명의 손주가 있으며 그들은 일이 생기면 로잘린에게 먼저 전화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로잘린이 더 잘 들어주고 이해심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카터는 2023년 2월 호스피스를 시작했고, 같은 해 5월 로잘린도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77년 결혼생활을 함께 한 부부는 인생의 마지막 장을 함께 하게 됐다. 돌아가시기 전 로잘린의 기억은 모호했지만 손자는 “로잘린은 남편이 누구인지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만년에 로잘린은 늘 소파에 함께 앉아있었다. 이들 부부는 77년 동안 매일 서로를 더 사랑하며 살았다. 카터는 많은 부부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했다면서 미소를 지으며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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