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어머님의 편지
    


글/훈이
    

어디 가서든 거퍼 백날을 넘기시지 못하던 어머니신데 우리집에 정착하신지 삼년이 넘었다. 헌데 요즘 어머님은 또 안절부절 못하신다. 또 어디로 떠나고 싶으신 걸까? 하긴 어머님께서 어디든 가시고 싶으시다면 마지막 요구인셈 치고 만족드릴수 없는건 아니지만 사방 수천리 땅 여기저기 널려있는 다섯딸 집을 떠돌아 다니시면서 수토와 기후 차이로 감기를 밥드시듯 자주 하셨고 나중에는 치매증에까지 걸리셔서 우리 젊은이들이 고생한 것은 그만두고 당신 자신도 얼마나 괴로우셨는지 모른다. 그래서 입이 닳도록 설복한 끝에 겨우 어머니를 우리집에 모시게 되였는데 왜 또 떠날 생각을 하시는 걸까?


그런 어머님을 만류할 만단의 준비를 다하고 매일 어머님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그날 퇴근해 돌아온 나를 보고 뜻밖에도 어머님께서 편지를 쓰시겠다며 편지지와 펜을 내놓으라는 것이였다. 광복후 문맹 퇴치때 야학을 좀 다니셨다는 밑천으로 갑자기 편지라니? 반신반의 하면서도 소설가나 시인이 되시겠단들 그요구를 무시할 이유가 나한테는 조금도 없는지라 원고지와 볼펜을 어머님께 드렸다.

 

인생 팔십에 실로 글귀라도 트시는지 어머님은 그날부터 꼬박 이틀 동안이나 식사시간 외에는 방안에서 나오시지 않으시더니 삼일째 되는날 아침 따로따로 접은 편지 네통을 나한테 넘겨 주시는 것이였다. 봉투에 넣어서 오늘중으로 당장 부쳐라 그렇게 호령이시다. 편지를 펼친 나는 억이 막혔다.

 

“옥자 다 무사하냐? 에미는 이제 가고 싶은데도 없고 보고싶은 사람도 없다. 그냥 섧기만 하다. 대학까지 공부하구두 글이 모자라 엄마한테 편지두 못하느냐? 데리구 가다가 죽을가봐 데리러두 못오지, 데리구 가다 죽으문 목당강에 칵 처넣구 가문 되지 무서울게 뭐냐. 에미를 여기 막내한테 맡기구 죽기를 기다리냐? 손에 풀이 있을때는 어미구 풀이 없으문 어미두 아니냐? 당장 돈을 보내라. 회답을 해라!”

 

이는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내가 다듬은 큰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이다. 다른 언니들에게 보내는 편지들도 이와 내용이 대동소이 했는데 중간에 쌍년을 넣어서 욕한것도 한가지고 손에 풀이 있으면 엄마고 늙어서 쓸모 없으면 엄마가 아니냐 당장 돈을 보내라는 어구로 결말을 맺은 것도 꼭 같았다 하지만 돈을 보내라는 그 호령이 혹 나의 뜻으로 오해될 것 같아 나는 아예 편지를 깔아 두기로 작심했다.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께서 오래 기다리셨다는 듯이 반색을 하신다.

“편지를 부쳤느냐?”

“네 아침에 말미를 맡고 우편국에 가서 다 부쳤습니다!” 나는 낯 가려운 줄도 모르고 .슬쩍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는 무척 기뻐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한술 더 떴다.

 

“참 어머니두 재간이 이만저만 아니세요. 그런 재간 썩이지 마시고 이후엔 자주 편지를 쓰세요.”

그소리에 어머니는 몹시 흐뭇해 하시면서 말씀 하셨다.

 

“재간이야 뭘. 하긴 전에 야학교 선생님이 나를 머리가 좋다고 치하는 많이 했니라.”

헌데 그것으로 얼렁뚱땅 넘어갈줄 알았던 일이 여운이 길기도 했었다.

편지가 장춘까지 갈려면 며칠이 걸릴까 연변까지는? 편지를 “부친”지 이삼일이 지나자 어머니께서 나한테 물어 오셨다.

집일에 바삐 돌아치는 나한테 그러시자 나는 별 생각이 없이 닷새면 족하겠더라는 실말을 해 버렸다. 어머니의 편지가 나의 서랍에 들어간지 꼭 열흘만에야 나는 아차하고 나의 실수를 깨닫게 되였다.

그날 퇴근해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반색을 하시면서 나한테 묻는다.

 

“어디서 편지가 왔더냐?”

이런 어두운 밤에 홍두깨 같이!? 나는 어정쩡해서 되물었다.

“편지라니요?”

“내 편지를 부친지 열흘이 지났으니 넷중에 한년이라두 그날로 회답을 했을것 같으면 한통쯤은 안 왔을까?”

나는 가슴이 덜컥했다. 어머님께서 이토록 진지하게 편지를 기다리고 계실줄을 생각도 못했으니..........

 일단은 어머닐 속여 넘겨야 했다.

“호호. 어머니두 손가락 꼽으시며 기다리셨구만요. 편지라는게 우편국과 우편국 사이에선 어김없이 닷새지만 배달부가 단위까지 전해, 또 단위에서 본인한테 전해지려면 하루 이틀, 그리고 언니들도 시간나지 않으면 또 며칠 그렇게 지체되는 거랍니다. 그러니까 아직 일주일쯤은 더 기다려야 될거예요.”


“그런걸 난 애나게 기다렸구나.”


어머니는 퍼그나 실망하셨다. 이튿날 아침 어머니는 또 그편지 이야기시다. 이제 엿새면 되겠지. 어린애처럼 그렇게 손가락까지 꼽으시면서. 그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측은해 나기도 했다.

그렇듯 진지한 어머님을 속이다니? 죄의식이 들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그 편지를 언니들한테 보낼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였다. 무슨 수든 대야 했다. 생각던 끝에 나는 어머님께 가짜 편지를 드리려 작심했다.


이레째 되는날 아침 어머니는 출근을 서두르는 나한테 다가 오셔서 특히 귀띔 하신다.

“나가거든 명심해서 편지를 찾아 보거라.”그동안 준비해 놓은지라 나는 아주 속이 든든해서 어머님께 여쭸다.

“오늘은 꼭 편지가 도착할 거얘요.”


퇴근해 집에 들어설때 나의 손에는 그럴듯한 편지 네통에 송금단까지 네개 들려 있었다.

“이봐요. 어머니. 편지 네통에 돈까지 한꺼번에 다 왔어요! 마치도 언니들이 약속이나 한것 같아요.”

“그것봐라. 오늘 아침에 그렇잖아두 머리금으로 새끼거미가 줄쳐 내려 오더라니까!”


어머니는 기쁨에 겨워 어쩔줄을 모르신다.

어머니의 재촉에 못이겨 나는 신을 벗기 바쁘게 자기의 “걸작”을 낱낱이 읽어 드렸다. 내용은 한결같이 어머니의 편지를 반가이 받았다는것, 어머니께서 편지를 그리 잘 쓰실 줄을 몰랐다는것, 자주 편지를 쓰시면 꼭 회답을 드리겠다는것. 그동안 등한해서 편지 못해 어머님의 노여움을 샀으니 널리 양해 하시라는 것. 그리고 적지만 돈을 좀 보내 드리니 어머님께서 드시고 싶은걸 사서 드시라는 등 내용이였다.


편지를 다 읽어 드리자 어머니는 흡족한 기색으로 송금단을 하나하나씩 만져 보시면서 묻는 것이였다(송금단은 우편국의 친구한테서 한다발이나 가짜 날인 도장까지 찍어서 가져다가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있었다.)

“돈들은 얼마씩 보냈더냐?”

“네, 큰언니한테서 이백원 오고 다른 언니들은 모두 백원씩이예요.”

벌써 내일 우편국에 가서 찾는답시고 어머님 손에 쥐여드릴 돈 500원을 난 그새 다 마련해 두었었다.

“근데 어머니, 담부터 편지 쓰실 때에는 돈을 보내라는 말씀만은 하시지 마세요. 어머니를 핑게삼아 제가 돈벌이를 한다고 언니나 형부님들이 오해하면 어쩌겠어요. 돈 때문에 제가 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아닌데 또 용돈으로 저와 빈이 아버지가 드린것도 다쓰시지 못하시면서……”


어머님의 기분이 좋으실때 나는 그렇게 살짝 진정을 내뱉았다.

“내사 너들이 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하는데 돈을 해서는 뭘하겠냐만 딸들을 숱해 뒀다는게 문안 편지두 자주 오고 쓰든 안쓰든 돈깍지(송금단)두 부지런히 와야지 안그러면 늙어 위촌(위신을 돌보아하는 관심)이 없는것 같아 내내 섭섭하고 같이있는 사위 보기두 부끄럽단 말이다.”


오! 원래는 그런 일이였다.

인생의 막고개에 오르신 어머니! 언제부턴가 그처럼 극성이시던 나의 뒷시중도 꼼짝 못해 주시는 가련한 신세시다. 하니까 노년의 자비감은 나날이 더 심하게 어머님을 괴롭힐 것이고 그래서 생겨난 과시욕이 결국 이런 형식으로 발로된 것이 아닐까? 헌데 그걸 알리 없는 언니들이라 설명절 때에만 어머니한테 문안 편지와 함께 용돈을 좀 보내고는 평소엔 잠잠하니까 자연히 섭섭하고 노여운 것이다. 나는 갑자기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울컥 치솟았다.


한창때 어머니는 살림살이는 물론이고 작식 바느질에 밭일 논일 막힘이 없으셔서 우리 고향에서는 꼬리없는 소라고 쇠소리 나는 여자라 소문이 났었다. 또 맨딸이라고 남한테 무시 당하지 않게 키우시느라 어머니는 그처럼 일손이 바쁜 와중에도 딸들의 단장에 엄청 신경을 써주시군 했었다. 명절이면 돈이 없어 새옷을 해 입히지는 못해도 낡은 옷이라도 뒤집어 새옷처럼 만들어 입히군 하셨고.... 언니들이 대학시험 칠때면 또 남다 자는 첫새벽 어둠을 헤가르고 우물 귀틀을 더듬어가며 “숫물”을 길어다 정성껏 밥을 지어 먹임으로써 딸들에 대한 엄마의 커다란 기대와 정성을 내 비치군 하셨었다.


그모든 것이 마치 어제 일이런듯 새삼스럽건만 어머니는 어느새 세상 만사에 관심이 없는, 일심으로 딸들의 “위촌”에만 희망을 걸고 사시는 늙은 아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나는 금세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아 눈물을 훔치고 갑삭하게 여윈 어머니의 조그만 체구를 살며시 끄당겨 안으며 말씀 드렸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우리들을 위해 귀중한 한생도 다 바쳤을라니 다섯이나 되는 딸들이 어머니의 그만한 요구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할라구요?!"

 

 #붉은기와를 얹은 옛스런 단층 벽돌집에서 삼대노소가 아기자기 행복하게 살았던 때의 옛 이야기 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천방야담"같아서 눈물밖에 안납니다. 어머님께서는 99년도에, 남편은 2004년에 각각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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