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9(일)
 

내가 대한민국에 가서 제일 뚜렷한 차이를 느꼈던 것은 한국인들의 깍듯한 예절문화와 우리 중국인들의 도저히 예의라고 이름할수도 없는 무덤덤이 문화였다. 우리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예의 방면의 교육이 너무 모자랐음을 실로 뼈아프게 깨달은 것이다.

물건사러 시장이나 슈퍼같은데 가더라도 한국에서는 먼저 인사부터 서로 나눈다. 고개를 어느정도 숙여서 물건파는 이에게 먼저 안녕하세요 그러면 물건까지 사주는 고마운 이가 그러는데 가만 있을리 없다. 그래서 어서 오세요 라든가 같은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답한다. 또 물건을 다사고 떠날때는 많이 파세요 그렇게 덕담 한마디 하면 답례로 감사합니다가 대뜸 따른다. 이게 얼마나 정답고 화기애애한 모습들인가, 허지만 우리는 물건을 사면서 인사나 덕담같은 걸 종래로 해 본적이 없다. 오히려 서로가 물건값 때문에 옴니암니 따지다가 수틀리면 원쑤같이 되어 버릴때도 더러있고………..

어디가든 귀여운 아기들을 많이 만나는 한국이다. 한데 고렇게 어린것들이 벌써 인사법에 아주 능통하다. 영 낯선 이들이라도 어느 어른이 만나서 몇살이냐 예쁘구나 그렇게 한두마디 알은체를 하면 조그마한것이 걸음마 겨우타고 말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는데도 공손히 고사리손을 배에다 마주갖다 대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곱게 머리까지 숙여서 배꼽 인사를 한다. 참말로 귀엽지 않은가?

또 한중 두나라 문화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는 뉴스프로가 끝이나면 두 앵커가 관중을 향해서 먼저 깍듯이 머리숙여 인사를 하고 자기들끼리도 좌우로 몸을 돌려 마주보며 서로 허리 굽혀서 인사들을 나누는 장면에서 화면이 서서히 사라지는데 우리 중국에선 앵커들이 그냥 빤히 관중을 바라보는 상태 아니면 관중은 아예 무시하고 자기앞에 널린 서류들을 정리하느라 여념없는 상태에서 화면이 사라진다. 이것도 그러니까 오래된 두나라 문화의 차이라고 해야겠다.

한국에 가서야 나도 그걸 똑똑히 느꼈고 그래서 우리들의 부끄러운 점을 다시 체크해 보게 된것이다. 나의 관찰에 의한다면 우리 중국인들은 낯선사람을 만났을때 인사를 하지 않을거면 차라리 쳐다 보지나 말든가 참말로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민망하고 창피할 정도이다. 그사람 얼굴에 흠집이 있는것도 아니건만 남의 얼굴에 구멍이 뚫리도록 염치도 없이 그냥 빤히 쳐다보거나 아예 투명인간 취급으로 무시하거나 그 둘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좀 심하다고 나를 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속해있는 중국인들의 군체가 공교롭게도 그런류의 사람들 뿐이라서 그럴수도 있다) 내가 알기로는 대체로 그러하다.

그렇게 우리들은 인사에 몹시도 등한한 사람들이다. 다 큰 어른들이 그럴진대 그 어른이 낳아서 키운 아이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냥 낯선이를 만나면 기껏해서 웃기나 하면 제일 큰 인사요 집에 어느 어른의 친구나 친척이 와도 달려나가 깍듯이 경례를 하거나 또 손님이 떠나갈때 예의를 지켜 배웅하거나 그런일이 없거나 아주 드문것 같다.

한국인들한테서도 사실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중국 사람들은 인사법을 모른다고…..나는 그것이 틀린소리가 아님을 스스로도 많이 느끼고 확인을 했다

나하고 십년이상 나이 차이가나는 외사촌언니한테 열다섯살난 외손녀가 있다. 언젠가 그 언니네 집에 놀러갔었는데 아이가 방에서 컴으로 게임을 하면서 한참이 돼도 그냥 뒤등만 바라보일뿐 알은척을 안한다. 기분은 나쁘지만 언니와의 사이를 생각해서 내 인사치례는 해야 할것같고 또 미운 뒤통수에다 용돈을 던져 줄수는 없어서 내가 아무개는 왜 이모 할머니가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냐 그랬더니 제어미와 외할머니가 억지로 아이등을 떠 밀어다가 내앞에 세워 놓았다. 외동딸이 귀하다고 하도 잘 먹여서인가 얼굴도 예쁘장하게 잘 생기고 키역시 나이 또래의 평균키에 비해 머리 하나는 웃돌게 큰것이 인사는 커녕 그 긴몸을 거머리 모양으로 구불구불 늘어뜨리고 흰자위 가득한 눈을 흘기면서

“아참 왜들 그러는데 나 지금 게임이 점수 올라 간단 말야….” 그렇게 정이 떨어지게 군다. 아이들은 예쁘게만 생겨서 남들한테 귀여움을 받는게 아닌것을 난 그날에야 똑똑히 알았다. 예쁜 그얼굴이 아주 대조적인 미움으로 금방 변할줄이야!

그리 미웠지만 언니의 외손녀라 나의 오랜 습관같은 견면례见面礼로 용돈 삼백원을 당장에서 쥐여 줬더니 돈만 내 손에서 후딱 뺏듯이 나꿔채고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게임기를 향해 달려간다. 한참을 더 있다가 떠날때까지도 난 그넓은 등짝만 기분나쁘게 바라보다가 떠났다. 그래도 어른들은 아이가 그러는 것이 틀린줄 절대로 모른다. 그게 자랑인듯이 멋적게 한마디 한다는 소리가

“.쟤는 늘 저렇다니까. 할수 없어.” 그게 할 소린가 말이다. 왜 할수 없겠는가? 그게 잘못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게 어른의 몫이고 그래서 아이가 그런 행동이 부끄러운줄 알게 키워야 하는데 어른이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니까 옳게 일러 줄수도 없는 것이다.

또 나하고 이십여년을 막역한 사이로 지내는 어떤 언니가 있다. 그 언니한테 박사 학위까지 따낸 딸이 있는데 서른살은 착실히 되겠구만 제 어미의 오랜 친구인 내가 언제 가도 인사하는 법이 없다. 그냥 컴퓨터앞에 엎드리면 엎드린대로, 책보고 있으면 보고 있는대로, 방바닥에 누워있으면 그냥 누운채로 알은체는 커녕 눈꺼풀 한번 달싹이지 않는다. 백화점에 세워놓은 마네킹을 닮았다고 하면 어떨가 생각해 봤지만, 마네킹은 그런대로 예쁜옷을 입혀서 곱게 세워 놓은 거니까 그다지야 사람 기분을 더럽게 흐려주랴. 실로 밥맛이고 재수가 없다. 물론 그렇게도 예절이 빵점인 인간은 중국인들 치고도 좀 드물긴 하지만도…….

그날은 오랜만에 또 언니를 만났는데 두루 얘기하다 보니까 글쓰는 말이 나왔고 내가, 내 노트북은 한족지구에서 대충 옛날판 시스템을 깐것이라 우리글로 된 문장수개文章修改 같은것이 자동으로 되지 않아서 엄청 힘들다고 그랬더니 언니가 그런 서비스가 지금은 많이 발달되어 있어서 어디가 알아보면 새 시스템 깔아주는곳이 있을거라고 했다. 그런 와중에 그박사 마네킹이 저쪽책상에 엎드린채로 뭐라고 입속으로 웅얼거린다. 그래서 우리가 웬 영문인가 말하다 말고 건너다 보게 됐고 언니가 딸을 향해서 뭐라 했냐고 물으니까 그냥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고

“갖고 와라구…..”그렇게 졸음이 가득 실려있는 어조에 꼬리 대가리도 없이 짜증 섞인 반말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내가 어안이 벙벙해 하는데 딸의 말을 잘 이해 하는건 그래도 엄마인가 언니가 날 보고 웃으면서 노트북을 한번 갖고 오면 딸이 봐준다고 그런 소리라고 통역해 주는 것이었다. 이런?! 도리대로 하면 내 당면한 곤란을 해결해 주겠다는 그 박사--마네킹님이 고마워야 할건데도 나는 전혀 고맙지 않고 오히려 더한 무시를 당한것 같은데다 조금은 이름모를 모욕감까지 느껴져서 기분이 이상했다.

자매지간으로 살갑게 지우는 친구의 딸이긴 하지만 내가 사람이 무능해서인가 서로의 감정이 상할것 같아 까발라 놓기는 그렇고 참으려니까 번마다 개무시당하는 느낌이여서 기분이 나쁠때 많은지라 속으로 언니를 자주 욕해서 기분을 풀군 했었다.

“언니는 사람이 참 언제봐두 야무지구 나무릴데 없구만 딸년은 왜 저따위로 덜돼먹게 키웠수? 에익 진짜 재수없어, 에구 밥맛이야! 딸 키운것 하구는...!” 아니면 “제깟게 박사문 박사지 뭐가 그리 대단해서 잘난척이야 누가 인정이나 해 준담? 노는 꼬락서니하구는 한국의 세살잡이 꼬맹이보다두 못한것이 박사 좋아하구 있네. 어디가서 그 따위로…!”그렇게 속으로 욕을 마구 퍼붓다가도 그녀가 박사라는건 부정할수 없다는 사실에 주눅이 들군한다. 그래도 학술 방면에서 어디선가 인정을 해주니까 박사 아니겠는가. 나같이 아무런 학술 권위도 없는 어미친구야 맘대로 무시를 하더라도 박사는 어쨌든 의심 할바 없는 박사인데야. 하지만 실로 그 덜된 행동거지와 예절면에서만은 내가 어떻게 무시해줘도 성차지 않도록이 그녀는 너무 모자란것 같다. 한번 만나고 나면 적어도 한달 동안은 밥맛 뿐아니라 꿈에 그꼴을 다시 볼까봐 겁이날 정도로 만정이 다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또 제좋은 생각도 많이한다. 만약에 박사님이 그렇게 한결같은 마네킹이 아니고 전혀 박사냄새도 없이 내가 아닌 누가 오더라도 깍듯이 인사도 하고 커피나 녹차 한잔쯤 마련해서 웃는 얼굴로 예의를 갖춘다면 얼마나 더 고상해 보이고 예쁠까 그렇게….그게 학문을 닦거나 정진하는데 영향이 가도록 시간이 많이 낭비되는 일도 아니고 내가 제엄마와 이야기 하는 사이에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요란스레 켜거나 화장실 뻔질나게 드나드는 시간에서 조금만 참고 2~3분쯤 떼낸다면 족할건데 말이다.

내가 한국가서 삼년간 몸답고 일했던 서울역 사번출구의 어느 모텔 주인언니는 아들하나 딸하나 두자식을 두었는데 젊어서 남편이 죽고 혼자된 그언니지만 모텔장사를 해서 아이들을 훌륭히 출세 시켰었다. 하여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다가 대한민국의 일류급 엘리트들인데 아들은 더구나 훌륭해서 외국유학까지 갔다온 어느부문의 박사님이시다. 스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얼굴에 몸매들마저 한결같은 자식들이 엄마보러 집에 오면 그냥 일꾼에 천덕꾸러기인 나한테 친이모 이상으로 살갑게 대해준다. 만나면 일단 허리들을 굽혀서 깍듯이 인사부터 하는게 그들의 몸에배인 습관같았다. 그리고는 고생 많으십니다 이모님 많이 예뻐 지셨네요 저희들이 이모님 덕분에 홀로 지내시는 어머님 걱정을 안하고 삽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공치사가 한 두마디 아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어버이 날이면 또 제 엄마와 꼭같이 나한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고,,, 평소에 엄마와 함께 외식이라도 나가게되면 비울수는 없으니까 나한테 가게를 맡기고 맛 있는걸 일인분 포장해다가 주군 했었다. 그들도 다가 학술 부문에서 인정을 받는 훌륭한 사람들인데 너무나도 대조적이지 않은가. 사람은 많이 배울수록 겸손해야 더더구나 고상의 극치를 나타내는 법이라고 여겨진다.

학문과 예의범절은 서로 모순되고 대치 되는게 아닌것 같다. 오히려 예절바른 사람이 누구에게라도 인상이 좋으니까 같은 학문을 갖고도 설득력이 더 있을것 같고….

너무 깊은 도리같은건 내 수준에 모르겠지만 똑 같은 학위를 따낸 상황에서 그래도 예의범절을 제대로 잘갖춘 사람이 매너있는 신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다. 그렇지 않고 학위는 하늘만치 높다해도 기본적인 예의범절도 익히지 않은 사람은 어딘가 모자라는 느낌을 주고 또 실제로, 적어도 그 방면에선 많이 모자란게 아닌가 싶다. 틀린것은 어디까지나 틀린줄을 알아야고 또 틀린것을 알았다면 대담히 승인하고 고칠줄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인들의 예의범절을 많이 배워야 하리라고 여긴다. 우리들의 결점을 알고 그래서 부끄러워 할때가 왔다. 예의범절은 옛날 한반도를 떠나 중국에 와서 터를잡고 살았던 우리민족의 일세대---부모님들이 살아 계실때를 회억하더라도 원래 남의 것은 아니였는데 우리가 너무 다른 환경과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무감각하게 살다보니 잊은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인들을 거울 삼아서 잊고 살았던 우리민족의 예의범절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예의를 열심히 지키면서 살아갈 것을 중국동포분들께 권고하는 바이다.

/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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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따라배워 예의범절을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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