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개석의 투항 유도하려 했던 모택동의 “실수”?
1950년 5월 16일, 국민당군이 주산(舟山)에서 철거한 뒤 장개석한테는 금문도와 마조군도에 대한 수비문제가 골치거리로 나섰다. 당시 이 2개의 섬도를 사수하느냐 아이면 포기하느냐를 두고 국민당군 내부에서는 논쟁이 가시화되었다. 장개석과 국민당의 고위층은 확실한 계획을 잡지 못하였고 이 2개 섬의 백성들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바로 이 때 모택동과 중공은 이미 대만을 해방할 결심을 확정하였다. 중공중앙에서는 1950년의 해방군 임무를 해남도, 대만과 서장을 해방하고 이 경내의 국민당 잔여세력을 소멸하는 것이라고 명백히 규정하였다. 하지만 당시 외계에서 알지 못하고 있은 것은 모택동은 일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바로 그 것이었다. 아울러 모택동은 장개석에서 회생의 길을 마련해 주려고 했었다. 당시 해방군이 한창 전쟁준비를 진행하고 있을 때 모택동은 적당한 인물을 파견하여 장개석과 접촉함과 동시에 평화담판의 가능성을 탐색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 때 모택동이 선택한 인물은 장치중 장군이었다. 장치중 장군은 원 국민당의 고위관원으로서 육군 2급 상장이었고 선후로 호남과 신강 등 2개 성의 성주석이었으며 장개석의 위원장 비서실 주임까지 한적이 있었기에 장개석과 사인관계가 아주 밀접했다. 한편 그와 중공과의 관계 또한 양호하였는바 일찍 국민당을 대표하여 국공 양당간의 담판에도 수차례 참가하였었다.
1950년 3월 11일, 모택동은 화남지구에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장치중한테 “대만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데 관한 장치중 선생에게 보내는 전보”에서 “선생이 대만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매주 적합하고 중요할 것 같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고심히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생각밖의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썼다. 그 뒤 3월 20일, 모택동은 재차 장치중한테 전보를 보내어 한번 만나 구체적으로 연구해보자고 제의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엽검영한테 지시하여 장치중의 경호사업을 잘할 것을 부탁하였다.
그 뒤 장치중이 북경으로 오자 모택동은 직접 중앙군위의 모 책임자를 배치하여 장치중의 경호사업을 책임지게 하였으며 한편 장치중과 회담하면서 일단 대만이 평화적으로 해방될 수만 있다면 장개석의 인신안전은 물론 기타의 정치와 행정분야에서도 출로를 마련해줄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려 주었다. 그러자 장치중은 모택동의 계획에 좇아 장개석한테 마지막 회생의 기회를 줄수 있는 내용을 편지에 담아 정성들여 썼으며 홍콩의 한 유명인사를 통해 편지가 대만의 장개석한테 전해지도록 부탁하였다.
헌데 이 편지가 장개석의 손에 들어간 것은 수개월 뒤인 7월 19일이었다.
국민당군이 주산군도에서 철수한 뒤 장개석과 대만의 군민들은 의연히 중공측에서 평화담판의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크나큰 공포와 긴장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후에 원 국민당군의 장령이었던 주굉도는 장개석이 이 편지를 받았을 때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회억하였다.
1957년 7월 27일, 이 날은 한반도 내전이 발발한지 1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장개석은 연회를 차려 국민당군의 여러 원로들을 청해서는 한국전에 개입할 뜻을 전달하였다. 연회도중 국민당 장령인 하응흠이 돌연히 장치중이 3월 16일에 쓴 편지가 7월 19일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공개하였다. 하응흠은 “67페이지에 달하는 이 편지는 참모총장 주치유를 통해 장개석한테 전달되었다가 19일 다시 나한테 보내졌다”면서 장개석은 당장에서 중공의 제의를 거절하였다고 밝히었다.
그러면서 하응흠은 장치중의 편지내용을 공개,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았다.
국민당은 10여년간 “공산비적토벌”에 나왔지만 정치의 부패로 필연적인 실패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현재 국공간의 힘을 비교해볼 때 인민해방군은 긍정코 대만을 해방할 수 있으며 아울러 국민당은 대만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대만은 필연코 국민당의 무덤으로 될 수밖에 없다.
장치중은 편지에서 또 만약 위원장께서 원한다면 자기 자신이 홍콩에서 만날 수가 있으며 이 편지는 모택동의 동의하에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
하응흠의 보고가 끝나자 진성, 장군, 오충신 등은 모두 이는 대만공격 전야에 있게 되는 중공의 상투적인 정치공세라고 하는 한편 장치중을 혁명의 배반자라고 하면서 마땅히 제재하여야 한다고 흥분해하였다.
주굉도는 그 때의 정경을 회상하면서 장개석이 당시 사적으로 편지를 처리하지 않고 하응흠더러 공개장소에서 읽게 한 것은 자신이 복국중임(复国重任) 을 짊어졌기에 자신이 중공한테 머리를 돌린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지 그한테 평화담판의 생각이 없은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였다.
한편 장개석이 모택동의 평화담판제의를 거절한 것은 다른 두가지 방면의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한반도전쟁이 발발하고 대만을 돕지 않던 미국정부의 태도가 크게 전변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개석 본인이 장치중과의 개인감정에서 크게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장치중으로 놓고 말하면 1949년 북평에서 있은 국공양당간의 평화담판시 북평에 간지 얼마 안되어 공산당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국민당내에서 공산당에 투항한 장령중의 일원으로 되어 장개석한테는 가장 큰 수치이기도 했다.
한편 장치중이 쓴 편지가 4월이나 5월에 대만에 도착했더라면 역사는 혹시 다르게 씌여질 수도 있었는바 이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당시 해방군은 주산군도와 해남도를 해방한 후 즉시 대만에 대한 공격준비를 다그쳤다. 당시 해방군은 화남 각지에 30개에 달하는 군용비행장을 수건하여 400대의 전투기가 이미 비행장에 진입했으며 복주, 하문, 산두 등 항구에 대량의 등륙정 및 기타 군함을 배치해 놓고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장개석 등 국민당 수뇌부는 7월경에 이르러 대만해협의 풍랑이 적게 일 때 중공의 수십만 대군이 해협을 건너오면서 공격을 개시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5월말의 대만은 완전히 미국의 “제28호 특별명령”에서 지적한 것처럼 “모두들 이 섬이 곧 함몰되고 중화민국이 섬도에서 기타 지구와 마찬가지로 쉽게 공략된다”고들 했다.
한편 5월 27일, 대북의 “중앙일보”는 사론을 발표하여 대만이 이미 전례없는 위기가 도래하였다고 승인, “중앙일보”의 이사장 동현광 역시 “중국이 이미 이 지경에 도달했으니 오직 의지상의 기적만이 이를 만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와중 오직 장개석만이 매우 견정했다. 당시 장개석은 “만약 대만을 지키지 못해도 나는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미 “살신성인(杀身成仁)”의 각오를 가졌다고 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만약 당시와 같은 사태가 재차 벌어져 모택동이 장치중이 아닌 다른 사람한테 위탁해 “살신성인”이 지경에 이른 장개석에게 편지를 쓰고 또한 한반도 전쟁같은 “대사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결과의 역사는 긍정코 다시 씌어질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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