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일정이 임박한 가운데, 중동 정세와 미중 전략 경쟁의 연관성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확산하고 있다. 미국 일각에서는 이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협조를 요청하는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현지시간) 전직 미국 중동 담당 고위 관리들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5월 중순 예정된 중국 방문 전에 이란 전쟁을 조기에 마무리하기 위해 외교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 중동정책 담당 전 부차관보이자 전 주이스라엘 미국대사였던 다니엘 샤피로(Daniel Shapiro)는 “트럼프는 다음 주 베이징 방문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할 강한 동기를 갖고 있다”며 “전쟁이 계속된다면 그는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으로 방중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샤피로는 이어 “전쟁이 종결되면 트럼프는 자신이 가장 중시하는 경제 협상에 집중할 수 있다”며 “반면 이란은 이런 미국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한적 합의만을 선호하며 협상 지렛대를 쥐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걸프 지역 충돌이 장기화될 경우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대중 견제력도 약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을 ‘불안정 요인’으로, 자신은 ‘책임 있는 대국’으로 부각시키는 외교적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샤피로는 최근 자신의 X(옛 트위터) 게시물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긴장 완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최근 대만 무기 판매 승인 속도를 늦추고, 중일 갈등에서 일본 편을 공개적으로 들지 않았으며,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도 강경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잇달아 대이란 군사작전 종료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이란이 미국 조건을 수용한다면 ‘오퍼레이션 에픽 퓨리’ 작전은 종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루비오 장관 역시 “2월 말 시작된 대이란 군사행동의 현재 단계는 끝났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측 전문가들은 이란 문제가 미중 관계의 핵심 변수라는 해석에는 선을 긋고 있다.
중국 상하이외국어대 중동연구소의 뉴쑹 연구원은 관영 성향 매체 관찰자망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방중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미중 관계 자체”라며 “이란 문제는 외교 일정과 환경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미중 관계의 중심 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미국이 설정한 외교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미국식 압박 외교 논리에 휘말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작전을 조기에 종료하려는 배경으로 ▲속전속결 전략 실패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갈등 장기화 ▲미국 내 정치 부담 등을 꼽았다.
그는 “미국은 협정 체결에도 실패했고, 동시에 임시 휴전이 완전히 깨지는 것도 원치 않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며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국내 정치 역시 트럼프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더위크(The Week)도 6일 “트럼프 방중 의제에서 이란 문제가 다른 현안을 압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중 양국 모두 세계 경제가 심각한 위기로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평가했다.
미 정치전문지 더힐(The Hill)의 칼럼니스트 브라마 첼라니(Brahma Chellaney)는 “트럼프는 이번 방중에서 이전보다 훨씬 불리한 패를 쥐고 있다”며 “대이란 군사행동이 오히려 글로벌 에너지 시장 충격과 미국 군수품 고갈, 경제 부담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의 이번 방문은 힘을 과시하기 위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위기관리 성격에 가까워질 수 있다”며 “중국이 미국에 무엇을 양보받을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중국 측은 중동 문제와 미중 관계를 지나치게 연결하는 시각 자체를 경계하고 있다.
뉴 연구원은 “중동은 중동 국가들의 중동”이라며 “중국은 특정 진영을 만들거나 대리세력을 키우지 않으며, 역내 국가 간 대화와 공존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란 정세가 완화되면 트럼프에게 보다 안정적인 방중 환경이 조성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란 문제가 미중 관계와 깊게 결합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실제 트럼프 방중 계획이 거론되는 시점에 맞춰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도 먼저 중국을 방문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6일 베이징에서 “정치적 위기는 군사적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 이미 입증됐다”며 “이란은 국가 주권과 존엄을 지키면서도 평화 협상을 통해 포괄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회담에서 “중국은 전쟁 발발 이후 줄곧 휴전과 대화를 촉구해왔다”며 “걸프 및 중동 국가들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과 이란은 각각 새로운 휴전안을 제시했지만 입장 차는 여전히 큰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기존 9개 항목의 협상안을 통해 2개월 휴전을 요구했지만, 이란은 최신 14개 항목 제안에서 모든 문제를 30일 안에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측은 ▲추가 군사공격 금지 ▲미군 철수 ▲해상 봉쇄 해제 ▲동결 자산 해제 ▲배상금 지급 ▲대이란 제재 철폐 ▲레바논 포함 전 전선 평화 구축 ▲호르무즈 해협 새 관리체계 수립 등을 요구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 연구원은 “양측 제안은 근본적 간극이 매우 크다”며 “핵심 쟁점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활동과 장거리 미사일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하려 하고 있으며, 이란은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며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압박전 역시 양측 모두 상대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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