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8(토)
 


dspdaily_com_20140331_125803.jpg■ 허길성

(전번기 계속)청산으로 갈 때 우리는 련대가 왜 그곳으로 가는지? 가서는 뭘하는지 등에 대해 역시 알수가 없었다. 허국선련장 또한 그저 상급의 지시에 따를뿐이지 상세한것은 알지 못하는것 같았다. 당시 전사들 사이에서는 변경지구의 병력증강을 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었고 농업생산을 지원하러 간다는 말도 있었지만 상급에서 왜 우리 련대더러 청산으로 가게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알수가 없었다.  

헌데 우리 련이 농업생산을 지원하러 갈것이란 말을 한 전사의 추측이 맞아떨어지기라도 한듯 우리가 청산에 도착하자 그곳의 농민들이 구호를 웨치고 북을 치면서 열정적으로 맞아주는것이였다. 그리고 붉은 천으로 된 프랑카드에는 “농업생산을 지원하러 온 해방군동무들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글발까지 새겨져있었다.  
 
 화룡 청산에 도착한 련대는 이튿날부터 농업생산지원에 나섰다 
 
아니나다를가 우리 련대는 청산으로 가자바람으로 이튿날부터 농업생산로동에 투입됐다. 그때 마침 농민들이 밭갈이를 시작했는데 소가 없자 우리 전사들이 농기구를 끌면서 밭을 갈아번지였다. 당시 한심한 두메산골인 청산은 전형적인 빈곤마을이였다. 우에서 언급하다싶이 부림소가 적어 밭을 인력으로 갈아번지는 그런 한심한 상황이였고 농민들이 먹는 주식도 일색으로 수수밥이나 조밥 그리고 옥수수죽 등 잡곡이였다.  

농민들의 소개에 따르면 이밥은 귀한 손님이 오거나 음력설기간에 한두끼씩 먹어볼뿐이라고 했다.  

촌민들의 차림새도 도시는 물론 도시와 린접된 농촌마을의 사람들과 비해도 많이 람루했다. 우리가 갈 때는 이미 4월 중순이 지나 날씨가 화창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때까지도 너덜너덜한 솜옷을 입은 주민들이 많았으며 녀인들은 흔히 크고 훌렁한 옷을 입은이들이 태반이였다. 입을만한 자기의 옷이 마땅치가 않아 남편의 옷을 입고 다니는것이 분명했다. 풋돈깨나 생기면 우선 남정네와 학교에 다니는 자식부터 챙겨주다보니 항상 축에 빠지는것이 아낙네들이였다. 그리고 5월달에 접어드니 아예 맨발로 다니는 애들도 많았으며 그런 애들은 맨발로 버들방천이고 산이고 다니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처로 쏘다녀도 발이 상하지 않는것이 이상한 일이였다.  

하지만 청산 역시 사람사는 곳이라 인정미가 돌았다. 아니 청산마을의 인정미는 버덕마을보다는 한결 더 후했으며 차고넘치였다. 마을사람들은 가끔씩 메돼지나 노루같은것을 잡으면 집에서 혼자 먹는 법이라고는 없었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잡을 때마다 그런것들을 삶아놓고는 동네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한편 우리한테까지 맛보라고 날라오기도 했다.  

그외 우리한테 하다 못해 김치나 된장을 가져오는 가정들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조선족임을 알게 되자 농민들은 나를 각별히 좋아했다. 농민들은 집에 색다른 음식같은것이나 있으면 곧잘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3대규률과 8항주의” 때문에 번마다 그들의 성의를 사절하군 했다.  

그러던중 한번은 마을에서 “요지부동”이라고 불리우는 황령감이 두부를 앗아놓고 나를 찾아왔는데 내가 아무리 사절해도 막무가내였다. 내가 “인민의 군대는 인민의 바늘 하나 실 한오리라도 다치지 말아야 한다”는 3대규률과 8항주의의 한구절을 알려주면서 사절했으나 로인은 오히려 “인민의 군대가 인민과 멀리 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하면서 말그대로 “요지부동”이였다.  

나중에 로인은 련장을 찾아가 “귀한 손님을 집에 모시는것은 우리 조선민족의 미풍량속”이라고 하면서 화를 내기까지 했다. 그러자 련장마저 아주 두손을 들면서 마지 못해 나더러 황령감네 집에 가서 한끼 식사하고오라고 하면서 돈 2원을 내놓는것이였다. 뜻인즉 백성의 집에 가서 밥술을 들되 값을 꼭 치르라는것이였다.  

이에 나는 혼자서는 절대 안간다고 잡아뗐다. 그러자 련장 역시 별수 없이 나와 동행하는수밖에 없었다.  
 
그날 “요지부동”인 황령감네 집에 가서 두부를 먹으면서 볼라니 황령감한테는 당장 머리를 얹어야 할 딸이 둘씩이나 있었다.  

황령감은 술 한잔 얼근하게 되자 점차 말이 많아졌다. 

“젊은이 들라구, 사내대장부란 술 몇잔씩은 해야 사내답다구.” 
… 
“자, 젊은이 몇살인가? 정혼은 했는가?” 

한편 황령감의 마누라 심씨는 술상쪽으로 자꾸 다가앉으면서 나한테 자꾸 뭔가를 캐묻는것이였다. 그럴 때마다 황령감은 “아낙네가 뭘 안다구 남정네들의 일에 자꾸 끼여들어. 저리 썩 비키지 못할가!”라고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그때뿐이지 몇분이 안지나 심씨는 재차 술상쪽으로 다가앉는것을 수없이 반복했다.  

련장은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해 한마디도 말참견을 하지 않았으나 분위기를 통해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그저 나와 황령감을 번갈아보며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는 황령감이 술잔을 쳐들 때마다 따라 마실뿐이였다.  

음식을 해놓고 나를 청한건 황령감뿐이 아니였다. 그후에 볼라니 음식을 해놓고 나를 청하는 가정을 보면 거개가 시집을 가야 할 딸이 1 – 2명씩 있는 가정들이였다.  

그외 마을의 처녀들도 “책을 빌려보자”는둥, “한어말노래를 배워달라”는둥 하면서 각종 구실을 대가며 병영으로 찾아오군 했다. 그녀들은 그냥 빈손으로 오는것이 아니였다. 집에서 재배하는 살구나 앵두같은것을 따오기도 했고 어떤 처녀들은 담배쌈지 혹은 하다못해 손수건이라도 선물로 들고오군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도 이성세계에 대해 나는 아주 까막눈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령 그때 이성에 대해 어섯눈이라도 떴더라면 과연 후에 내가 어떻게 되였을가? 
 
6 
 
련대가 청산으로 들어간지도 몇개월이 잘되게 흘러갔다. 그동안 우리는 농민들을 도와 밭김을 매고 여름철의 소추수도 하면서 비가 내리는 날외엔 거의 휴식하는 날이 없이 팽이처럼 돌아쳤다. 밭일이 없을 때면 하다 못해 마을길을 닦거나 탈곡장을 수건하는 등으로 오히려 일을 찾아하군 했다.  
 
어느덧 가을이 왔다. 황금의 가을, 누렇게 익어가는 조밭과 옥수수밭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설레이였다. 거기에 우리의 땀방울과 정성이 스며있었으니 말이다. 헌데 가을이 되여 알알이 염근 곡식들을 수확할 무렵이 되자 난데 없는 “불청객”들이 농민들이 애써 지어놓은 밭들에 기여들어 “토벌”을 감행할줄이야. 바로 메돼지들이였다. 그것들이 특히 옥수수밭에 기여든다 하면 하루밤새에 밭 전체를 결단내기가 쉽상이였다.  

그러자 농민들은 총을 가진 군인들이 메돼지들을 잡거나 쫓아주었으면 했다.  

“간밤에도 옥수수밭에 메돼지들이 기여들었수. 어떡헌다우? 애써 지어놓은 농사를 그눔들때문에 망쳐먹게 됐구려.” 

“나한테 총 한자루만 있어두 그눔들이 얼씬하지 못하게 혼빵내주련만 쯧쯧…” 

이는 분명 우리 군인들 특히는 조선족군인인 나더러 들으라는 얘기였다.  

결국 나는 농민들의 리익을 위하여 메돼지나 곰을 잡자고 련장한테 청시하게 됐고 허국선련장 또한 진작 그 타산을 하고있었다. 련장이 사단본부에 청시하여 얼마 뒤 과연 사단본부로부터 그 메돼지들을 잡기 위해 총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때로부터 우리는 밤마다 농민들의 밭을 순회하거나 간혹씩 밭에 포진하고 있으면서 곡식을 지켰다. 그러면서 우리는 될수록 메돼지무리를 쫓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한두마리씩 잡아서는 농민들과 함께 근사한 생활개선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였다.  

그날따라 하늘공중에 달이 떠있었기에 그닥 어둠지 않았으며 옥수수밭속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기 알맞춤했다.  

그날밤 우리는 산비탈에 있는 옥수수밭에 포진하고 있으면서 메돼지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이 밭은 전날밤에도 메돼지들한테 “소탕”당한 밭이였다.  

자정이 되였을가 말가 할 때였다. 문득 옥수수밭에서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가끔씩 났다. 야밤중이 아니고 낮이라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소리였다. 메돼지가 내려오면 무리를 지어다니기에 그 소리가 요란했으나 가끔씩 나는 소리이고 또 그 소리가 요란하지 않은것으로 보아 메돼지 무리는 아닌듯 싶었다.  

옥수수밭머리에 있는 한 웅덩이에 엎드린 나는 숨소리조차 죽이고 앞을 주시했다. 아니나다를가 미구하여 옥수수밭속으로부터 한 검은 물체가 나타났다. 덩치가 몹시 컸다. 대략 200킬로그람 정도는 될것 같았다. 그리고 한마리인것으로 보면 메돼지는 같지 않았고 움직이는 모양을 보아서는 어쩐지 곰이 같았다.  

덩치가 큰 그 검은 물체는 옥수수밭에서 뚱기적거리며 나오더니 웬 냄새를 맡았는지 문득 멈춰서더니 몸을 일으키면서 주위를 살피는것이였다. 그 거동을 보아 곰이 분명했다.  

바로 이때라고 판단한 나는 지체할세라 침착하게 목표물을 겨냥하고는 한방 갈겼다. 곰은 몸을 움칫했다. 총알에 맞은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치명적이 아닌것 같았다.  
 
이어 나는 재차 한방 갈기려고 방아쇠를 당겼다. 헌데 이번에는 불발탄이였다. 곰은 나를 인차 발견했고 나한테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나는 재빨리 장탄하고는 세번째 탄알을 날렸다. 아뿔사 이번에는 헛방으로 곰을 명중하지 못했다.  

뒤이어 곰은 나한테 덮쳐들었다. 순간 나는 잽싸게 피했으나 웅덩이안이라 곰을 뿌리치지 못했다. 나는 총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전우들을 보고는 곰한테 깔렸으며 그뒤의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얼마후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였으며 나의 얼굴과 오른쪽팔에는 붕대로 수없이 감겨져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순간 심한 동통이 느껴졌다.  

“그대로 누워있어. 이만해도 다행이야. 하마트면 큰일날번 했다구.” 

허국선련장이였다. 련장의 말에 따르면 나의 첫발의 총소리가 나자 다른 곳에서 포진하고있던 전우들이 달려왔고 전우들은 자동보총으로 나를 깔고앉은 곰한테 련발 사격을 들이대 곰을 잡았다는것이였다. 

나의 상처는 그닥 중하지 않았다. 곰한테 여러곳이 핧키고 긁히였지만 외상만 생겼을뿐 뼈가 상하거나 팔다리가 부러진건 아니였다.  

7 

병원에서 며칠간 치료를 받자 나의 상처는 재빨리 아물기 시작했다. 외상치료라 매일 소염제를 바르고 일정하게 처치를 하니 상처자국에는 새살이 돋아나기도 했다. 10여일이 되자 병원생활에 갑갑해진 나는 며칠만 더 입원해있으면서 완쾌될 때까지 치료하라는 의사의 만류도 마다하고 기어코 퇴원하겠다고 했다.  

내가 퇴원하여 련대로 귀환하자 련장은 “너 정신이 있느냐”며 한바탕 훈계하더니 이번에는 한달간의 휴가를 줄테니까 룡정에 있는 집에 가서 푹 휴식하라는것이였다.  

집으로 가게 된다고 하자 나는 뛸듯이 기뻤다. 어린애도 아니고 20대가 된 성인이 되였건만 집이란 항상 그립고 가고싶은 곳이였다.  

집으로 보내준다고 하니 왜 그렇게도 기쁘고 좋았던지. 나는 “알겠습니다” 라고 하며 차렷 자세로 련장한테 거수경례를 붙였다.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님이 반겨준건 두말할것 없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부모님한테 곰한테 다쳤다는 실말을 하지 않았다. 상처는 그냥 훈련하다가 다친것이라고 둘러댔다.  

집은 그냥 옛모습 그대로였다. 하나도 변한것이 없었다. 집안이 크게 변했다면 나는 다소 생소할수도 있었겠지만 몇년전까지 나의 손때가 묻어있던 그대로 있으니 어딘가 더 정이 갔고 좋기만 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나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한테는 례의를 갖춰 깍듯이 대했으며 내가 요행 집으로 왔다고 일을 시키지 않았으나 가끔씩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집에서 있자니 어딘가 갑갑증이 났다. 왜서였을가? 아마도 오래동안 부대생활을 하며 긴장하게 보내여 그렇게 된것 같았다. 또한 집에 온지도 며칠 안되여 이번에는 어쩐지 부대생활이 그리워졌고 전우들도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가 많이 어른스러워졌다고 대견해했고 어머니는 나한테 맛갈스러운 음식을 해주느라 닭을 잡기도 하고 하루 건너 떡방아를 찧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부대에서 전보가 날아왔다. 

“중대사연, 부대 속귀!” 

한달간 휴가를 준다더니 왜 며칠도 안되여 부대에 속히 귀환하라는걸가? 부대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걸가 아니면 부대가 또 긴급전쟁준비상태에 진입하는걸가? 

나보다 더 초조하고 불안해하는건 부모님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보문을 들고있는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는 내외간이 서로 무슨 말을 할듯 하다가는 다시 입을 봉하는것이였다.  

“별일 없을겁니다. 부대가 다른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새로운 임무가 내려왔으나 그렇겠지요 뭐. 부대란 항상 그렇답니다.” 

내가 이렇게 안심시켰으나 불안해하는 부모님의 얼굴모습은 여전했다. 그리고 내가 떠나자 부모님은 큰길가까지 바래주며 오래동안 손을 저었다. 그 모습은 어쩐지 내가 부대를 떠날 때보다 더 진지한것 같았다… 

이튿날 내가 부대로 귀환되자 어디로 이동하려는 분위기가 아니였다. 병영은 여전히 조용했다. 오히려 전우들은 한달간 집에서 놀기로 한 내가 나타나자 놀라하는 모습이였다. 전우들은 내가 이렇게 빨리 귀대하리라고는 상상밖인 모양이였다. 그들도 부대에서 집으로 간 나한테 전보문을 날린것을 모르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얼마후 련장이 집무실로 나를 불렀다.  

허국선련장은 인차 말하지 않고 흐뭇해하는 얼굴로 한동안 나를 응시하는것이였다.  

나는 그것이 더 궁금해났다.  

“련장동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내가 다그쳐 물었으나 련장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뿐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것이였다.  

“자, 급해말구 물이나 한컵 마셔.” 
 
내가 련장이 내미는 고뿌를 받아쥔 뒤에야 련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사단본부에서 장병들의 문화시험을 치기로 했는데 우리 련대에서는 널 추천하기로 했다구. 아무리 올리 훓고 내리 훓고 해도 너밖에 없었어. 요즘 며칠 잘 준비해갖고 시험을 잘 치라구. 우리 련대를 위해 영예를 빛내라구…” 

“뭐라구 제가요?!” 

이는 아주 상상밖이였다. 평소에 내가 공부에 열심한건 사실이였으나 그렇다고 계통적으로 배운것도 아니고 또한 내 스스로 나의 수준을 가늠할수 없었다.  
하지만 련장은 막무가내로 나의 등을 떠밀었다.  
… 
며칠뒤 나는 련대를 떠나 교하에 있는 사단본부로 향했다.  
사단본부에 도착하니 문화시험을 치는 장병은 모두 26명이였다. 그러니 사단 산하의 각 련대에서 선발돼온 아주 쟁쟁한 장병들이라 할수 있었다. 나는 어쩐지 슬며시 속이 떨려나기 시작했다.  

시험은 간단한 수학시험과 한어문으로 된 작문짓기였으며 그중 작문의 제목은 “련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모자라는 화식비를 보충하는가”였다.  

첫시험은 수학이였다. 내가 시험지를 들여다보니 생각밖으로 아주 쉬운 문제들이였다. 초중을 졸업한 나였던지라 그런것쯤을 풀어내는것은 식은죽 먹기라 할수 있었다.  

나는 정한 시간이 되기 전에 선참으로 수학시험지를 바쳤다. 만점에 자신이 있었던것이다.  

이어서 작문시험이 시작됐다. 수학시험은 자신이 있었지만 작문에 들어서만은 파악이 없었다. 그것도 조선문이 아닌 한어문으로 된 작문이였으니 더욱 그랬다. 나는 학교시절에 별로 작문에 중시하지 않았던 자신이 어느 정도 후회되였다. 그리고 부대에 온 뒤 책은 그런대로 많이 보군 했지만 한어문으로 된 문장은 단 한편도 써보지 못했으니 진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험지를 백지상태로 바칠수는 없었다. 이내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던것이다. 한참 궁리하던끝에 나는 련대의 일상생활을 적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문득 나의 뇌리속에는 련대에서 자체로 돼지치고 남새를 재배하는것으로 부식을 보충하던 일들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 련대에 지급되는 부식비는 전사당 한끼에 13전씩이였고 하루 39전이였는데 이는 그때의 그 시기에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였다. 그래서 련대에서는 련장 허국선의 인솔하에 키우던 돼지를 잡아서는 화식에 보태고 재배한 남새로 시장에서 사오는 남새를 대체하면서 련대의 화식을 개선하는 한편 화식비도 절약했다. 그리고 계획적으로 식단을 짠데서 전사들이 배불리 먹게 하고도 남아서 버리는 밥이나 채소가 거의 없도록 했다.  

나는 이것을 작문소재로 하고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나는것을 써넣다보니 쓸것이 많기도 했다. 

요구대로 다 써서 정한 시간내에 바쳤으나 서두와 결말 등의 순서가 잘 맞지 않은것 같았고 어쩐지 문장의 심도 역시 깊은것 같지 못했다.dspdaily_com_20140331_130000.jpg  

“에라 모르겠다. 내가 뭐 문필가가 되겠나 아니면 대학에라도 가겠나. 그저 사단본부에서 우리의 수준을 검사해보려는 뜻일거야.” 

그후 련대에 돌아온 나는 련대일상에 복종하느라 신경쓰다보니 시험성적이 어떻게 됐을가 하는것은 념두에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름대로 계속 책을 읽고 한어글쓰기련습도 하면서 자질제고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헌데 며칠 안되여 천만 뜻밖으로 사단본부에서 통지가 왔다. 내가 이번 시험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냈기에 전 사적으로 2명을 선발해 강소성 무석에 있는 해방군문화학교에 추천됐다는것이였다. 알아본 결과 이번 시험에서 나는 수학 만점에 작문짓기가 76점을 맞았던것이였다.  

그렇듯 당시 힘들고 고달프고 또한 곰한테 핧기우기도 하는 부대생활속에서도 나의 모든것은 비교적 잘 풀리는 셈이였다. 물론 나의 노력과 동반되는 결과이기는 했지만. (연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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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굽이굽이 인생길 하많은 사연들"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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