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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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우한에 있는 화중 과학기술 대학 퉁지의과대학 부속 세허병원(同济医学院附属协和医院) 서원이다. 사진은 의무일꾼들이 핵산검사 결과 음성으로 돌아선 코로나 19 환자를 간호하고 있는 장면이다.ⓒ신화사

 

(전번 계속)후베이, 우한이 전국의 코로나 19 저격 대응의 주 전장이었고 단계성 승리를 이룩했지만 코로나 19의 잠재적 위협은 여전히 존재했으며 전국 곳곳이 직면한 전염병 예방 통제의 형세는 여전히 낙관할 수 없었다.

 

3월 27일, 1명의 무증상 감염자가 경외로부터 입국함에 따라 헤이룽장 성 수이펀허시(黑龙江省绥芬河市)의 고요를 깨뜨렸으며 수이펀허는 점차 전국의 ‘대외유입 예방’의 화이라이트(焦点)로 되었다.

 

각 지의 전문가와 의무일꾼들은 긴급 지원에 나섰고 방역물자 또한 신속히 조달되었으며 후베이에서 귀환했던 백의전사들이 재차 출정, 핵산검사실험실이 신속히 건립되고…이렇게 수이펀허 통상구를 통해 입경한 코로나 19 환자들은 적시적인 구급 치료를 받게 되었고 변경 선에는 한 갈래의 생명 수호선이 구축되었다.

 

5월 6일, 0시부터 수이펀허시 전염병 위험 등급은 하향 조정되었고 생산과 생활은 점차 그 질서를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폭풍우는 전진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고 정확하고도 강력한 예방 통제의 대응조치는 코로나 19를 전승할 수 있었다. 수이펀허 외 수도 베이징(北京)의 급작스런 코로나 19 촉발 또한 인심 당황하게 했다.

 

6월 11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 신파디(新发地)에서 코로나 19가 집중 발생, 이에 베이징 시는 제 1의 시간대에 즉시 전시상태에 진입하면서 한 차례의 ‘반드시 이겨야 하고 져서는 안 되는 전쟁(只能赢不能输)’을 개시했다. 이 전쟁은 ‘물을 등지고 펼치는 싸움(背水之战)’이라 몹시 간고하고도 관건적인 전역이라 우한과 후베이에 이어 규모가 큰 코로나 19와의 한판 승부였다.

 

베이징의 의료진과 각 사회구역의 책임일꾼들은 단 시일 내에 코로나 19를 효과성 있게 박멸하여 당 중앙과 수도인민들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신속하게 호응하여 강력하고도 정확하게, 높은 효율 그리고 과학적인 예방과 통제로 26일이란 짧은 기간의 간고한 노력을 통하여 7월 6일 베이징 본지의 코로나 19 사례가 ‘0 증장’으로 되게 만들었다.

 

7월 19일, 베이징시 정부 해당책임자는 코로나 19 예방 통제 보도 브리핑에서 “2020년 7월 20일 0시부터 베이징 시 공공위생 돌발사태 비상대응 급별을 2급에서 3급으로 하향 조정한다”라고 선포했다. 이로써 한 차례 근 40일간에 거친 베이징시의 코로나 19와의 전쟁은 단계성 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중국 국내의 코로나 19 예방 통제 형세는 여전히 준엄하고도 복잡하였다.

 

베이징에서 공공위생 돌발사태 비상대응 급별을 2급에서 3급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선포하던 당일, 7월 19일, 신장 위그르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 코로나 19 예방 통제 사업 지휘부에서는 연구 끝에 우룸치시(乌鲁木齐市)의 텐산구(天山区)와 사이바커구(沙依巴克区)를 고 위험 지역으로, 우룸치 경제기술개발구, 고신기술 산업개발구, 수이머거우구(水磨沟区)를 중등 위험지역으로 했으며 기타 현(시와 구)를 저 위험구역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7월 22일 새벽, 랴아오닝성 다렌시(辽宁省大连市)에서 1건의 코로나 19 본토사례가 발견, 30분 후 확진사례가 출현한 다련 카이양(大连凯洋) 세계 해산물주식 유한회사 직원과 가족들이 원 지점에서 격리되었고 기업은 전면 봉쇄되었다.

 

한 쪽은 동쪽이고 다른 한 쪽은 서쪽이었으며 하나는 연해지구였고 다른 하나는 내륙지구였다. 신장과 다렌의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19의 출현에 직면하여 중국은 대응의 경험이 더욱 풍부해졌고 더욱 파악이 있게 됐다.

 

중국의 다렌과 신장에서는 과학적으로 위험등급을 확정하고 ‘관할 통제권(管控圈)’을 엄하게 틀어쥐는 한편 전면적인 핵산검사를 추진, 이는 일장 바이러스와의 밀고 당기는 ‘조우전’이었다.

 

드디어 25일이 지난 후인 지난 8월 16일, 다렌 전역이 저 위험지구로 하향 조정되면서 경제와 사회질서가 전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같은 희소식이 신장으로부터 전해오기도 했다.

 

국무원 코로나 19 대응 연합방지, 연합통제 기제의 해당 규정과 신장의 코로나 19 확산형세에 따라 자치구 코로나 19 예방 통제 사업지휘부에서는 8월 29일 0시를 기점으로 우룸치 텐산구, 사이바커구의 위험등급을 고 위험 지구로부터 저 위험 지구로 조정했고 우룸치 경제기술 개발구, 우룸치 고신기술 산업개발 그리고 수이머거우구의 위험 등급을 중등 위험 지구로부터 저 위험지구로 하향 조정하였다.

 

이렇듯 코로나 19와 대응 전쟁을 펼치는 위대한 실천 중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인민은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초인간적인 용기와 지혜를 과시하여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인민이 첫째이고 생명이 첫째’란 이념을 철저히 이행하였다.

 

서기 2020년 9월, 우한의 2800여개 소의 중소학교와 유치원이 개학을 맞았고 백만의 학생들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던 교당으로 회귀하였다.

 

중국 대륙 중부의 이 대 도시는 사통 발달한 9개성의 교통요도로서의 본색도 되찾아왔다. 하지만 2020년의 이 도시와 이 국가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세상에 남겼다.

 

시계바늘은 다시 경자 년 춘제로 되돌아가 보기로 한다.

 

1월 26일, 바로 음력 정월 초이튿날, 만가정의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나날, 바로 장수 옌청(江苏盐城)에서 춘제를 보내던 왠촨워이(袁传伟)은 우한을 지원하라는 한 건의 ‘전선지원 주문서’를 받아 쥐게 되었다. 그가 밤도와 수저우(苏州)에 있는 회사로 돌아갔을 때 그의 수하에는 단 1명의 직원도 없었다.

 

왠촨워이는 이전에 익혀두었던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라인을 가동했다…

 

10 후, 왠촨워이의 신근한 노동으로 이 회사에서는 생산된 100세트에 달하는 소독설비가 우한의 제 1선으로 보내 질 수 있었다.


이렇듯 코로나 19 저격전은 실제상에서는 후근 보장전쟁이기도 했다.

 

당 중앙의 통일적인 인솔 하에 여러 부문에서는 신속하게 연합행동을 개시, 전국이 ‘하나의 바둑판’처럼 되어 각 방면의 자원이 전력으로 공급 조달되었다.

 

하루 속히 생산을 회복하기 위하여 중점 기업들은 임시생산 관리 제도를 건립하여 기업의 원료, 직원과 물류 문제를 도와주었고 기업의 확대생산의 우려를 해소시키기 위해 국가임시 수납제도(收储制度)를 건립하여 많이 생산한 중점 의료방호물자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구입수납을 대리해 주었으며 이런 중점 기업에 대해서는 세수(税收)와 금융의 지지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단 시일 내 일선의 구급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국가에서는 통일적으로 산품조달을 배치, 엄격한 규정에 따라 의료용 방호복 등을 조달하게 했다…

 

생산기업들은 단시일 내에 만부하 생산에 돌입했다. 중국 항공공업그룹, 중국석유화학 공사, 비야디 자동차……수천 개 소의 기업들의 계선을 뛰어넘으며 완전히 다른 제품의 생산에 들어가기도 했다.

 

2월 29일에 이르러 중국의 마스크 단일 생산량은 1억 1600개에 도달, 2월 1일의 12배에 달했으며 4월 5일, 중국의 1차성 방호복 단일 생산량은 150만 건 이상에 달했으며 의료용 95 마스크의 단일 생산량 역시 340만 건에 달해 기본상 국내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우한 ‘봉쇄’후, 90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자가 격리에 들어가면서 매일 5400톤의 식량, 4000톤의 야채와 1200톤의 육류를 소모했다. 이에 중앙에서는 통일적으로 생활물자를 보장하기로 결정, 1월 27일부터 5월 30일까지 전국에서 후베이 지구로 운송된 방역물자 및 생활물자는 누적으로 173톤을 초과, 석탄과 연료 등 생산물자는 근 395만 톤에 달했다.

 

중외 역사상 큰 전염병과 재해 등은 흔히 사회질서를 교란시켰고 혼란한 사회질서 또한 전염병 방지 및 재해 방지에서의 설상가상으로 되었다.

 

코로나 19란 대 고험에 직면하여 중국의 생활필수품, 의료물자, 전력, 수돗물 등 기본공급은 총체적으로 안정했고 국계민생(国计民生)과 관련되는 중점항목은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었으며 14억 인구의 기본민생은 효과적으로 보장되고 경제사회의 발전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잠정 건(暂停键)’으로 잠시 나라를 지탱하고 있던 대국은 미구하여 기세 드높은 생산라인을 가동, 막힘이 없는 물류동맥을 유지했으며 크나큰 재난 중 역행에 나선 것은 의사, 간호사와 수많은 화물차 운전기사 그리고 사회구역 사업자, 자원봉사자, 배달원, 청결공과 건축 노동자 등이었다……

 

“나는 그들의 몸에서 자기의 가정과 자기의 사회구역, 심지어 전 세계 아주 먼 곳의 질병침해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일종 거대한 책임감을 분명 보아냈다. 또한 남한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몇 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간 사람들도 분명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나타난 영웅들이었다.”

 

이는 중국 - 세계위생조직 코로나 19 연합전문가 고찰 팀의 외국 측 팀장 브루스 엘워드가 감격에 젖어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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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결심, 인민의 호응과 단결 - 코로나 19 전승의 촉매제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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