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어머님, 안녕하세요?

오늘 밖에서는 철없는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면서 날씨가 많이 스산하니 오늘따라 어머님이 너무너무 그립습니다. 그리움에 마음이 많이 슬픈 하루입니다. 어머님, 그간 잘 지내셨지요? 어머님 생각을 떠올리니 불시로 목이 꽉 메여옵니다!

어머님, 제가 결혼사진에 한이 맺인 사람이여서 결혼초에는 사진이라는 말만 나오면 스트레스를 받고 사진 찍기를 꺼려했습니다.

남편과 한 3년 연애하다가 결혼까지 이른 우리가 드디여 량가 부모님들의 허락을받고 결혼날자를 잡아 결혼식을 올리게 되였지요. 여느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혼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과 솜처럼 부풀어 오르는 둥둥 뜬 꿈을 안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였습니다.

정말 잘 살아보자고 백년 가약을 맺은 우리들이지만 생각밖의 작은일로 결혼초 부터 둘사이에 감정 마칠이 생기는것을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그럴듯이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 즉 결혼식날에 결혼 사진을 못 찍었던 것입니다. 그 일때문에 저는 엄청 화가났고 신랑도 저를 보기가 너무 민망해서 화가 나있는 저를 달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변명하는것이 "다들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잊고 사진사를 부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이되는 소리를 하라고 그 변명에 더욱 화났고 신경질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육형제에 막내로서 위로 세 형님과 두 누님이 계셨지요. 위의 형제들이 다 결혼했는데 모두가 결혼식때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사진기도 흔하게 갖고있고 사람들마다 스마트폰을 쓰고 있으니깐 수시로 필요할때 사진을 찍을수가 있는데 그때는 사진기가 귀할때라 사진관에 미리 연락해서 사진사를 청해서 결혼 사진이나 회갑잔치사진, 그리고 애기돌 사진도 찍고 그랬지요. 그랬던 시절이였으니 미리 예약만 했더라면 사진사가 안올리가 만무한데 사진사가 안왔다는것은 예약을 안했다는 말이되니 그게 저의 마음에 더욱 큰 서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집 사람들은 왜 나한테 이렇게 무심하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새 색시인 제가 그일 때문에 시댁식구들 앞에서 떠들썩 화를 내기도 그렇고, 그런 내색을 못내니 속은 더욱 부글 거렸습니다. 그저 죄없는 애매한 신랑한테만 화내고 투덜거렸지요.

그런대로 지지고 볶고 하면서도 우린 아들 하나를 낳고 살았지요. 저는 그후로는 사진에 한이 맺여서 가족사진을 찍자고 해도 사진 찍기가 싫어서 애가 거이 20살이 되도록 가족사진을 한번밖에 안 찍었습니다. 그것도 아들이 너무 사진 을 같이 찍자고 졸라대서 아들 얼굴보고 찍었습니다. 남편은 내가 사진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줄 알고 언녕 가족사진을 찍고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나보고 감히 사진 찍자는 말을하지 못하였습니다.

한번은 애를 데리고 우리 가족 셋이서 여름 방학에 태산에 여행을 가게 되였습니다. 엄마가 사진때문에 스트레스가 있다는것을 전혀 모르는 애는 여행가서 기분이 좋와서 좋은 풍경만 보면 "엄마 아빠 빨리와요, 여기서 우리 셋이서 같이 사진 찍어요" 하면서 졸라댔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아니 내가 찍어줄게 너하고 아빠가 찍어 하면서 극력 사진찍는 기회를 회피했습니다. 그래서 여행하고 돌아와서 사진을 빼보니 거이 전부가 남편과 아들이 찍은사진, 아니면 나와 아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였습니다. 멋 모르는 아들은 사진을 보면서 우리셋이 여행갔다는것이 우리셋이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고 못내 아쉬워 했습니다.

그런 저의 서러운 마음을 읽으신 어머님께서는 힘겹게 지으신 얼마 안되는 햇 감자를 파서는 머리에다 이고 시장에 나가셔서 팔아 푼돈을 한잎두잎 모으시고, 또 강냉이 철이되면 풋강냉이를 삶아 팔아서 푼돈을 한잎두잎 모으셨다가 어느날인가 저를 조용이 부르시더니 속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서 모아두셨던 돈을 꺼내서 저의 손에 쥐여주면서 "아가야 돈이 적다만 이걸로 애랑 애비랑 셋이서 나가서 사진도 찍고 맛있는 국수도 한그릇씩 사먹고 들어오너라, 너한테는 해준것이 너무 없어서 정말 너무너무 미안해!" 라고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거렸죠. 제가 돈이있다고 안받으려고하니 어머님이 "내가 너희들의 결혼사진을 못찍어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아나? 이걸 해주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도 영원히 눈을 감지 못할것이라"고 하시면서 극구 그 돈을 제 손에 쥐여주었지요. 저는 그만 목이 꽉메여 어머님품에 안겨 슬피슬피 울었고 어머님도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많이많이 우셨지요. 비록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그것은 정녕 어머님의 자식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저는 그 돈을 손에 꼭 쥐고 어머님의 그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 그때는 왜서 그렇게 가난 했던지...

그후로 몇일뒤에 저이 세 식구가 가족사진을 찍어서 액자에다 넣어가지고 어머님에게 가져다 보여드렸어요. 어머님은 그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시면서 보고 또 보고 손으로 연신 사진을 어루쓸면서 또 눈물을 지으셨지요...

살면서 시댁의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막내인 우리들의 결혼식을 억지로 올렸다는것을 알게되였고, 그렇다보니 사진을 찍어줄 엄두를 못냈던것이고, 자식은 많고 생활은 어렵고, 그때당시 시어머님의 입장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이 오늘날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생활해 보니깐, 그것도 자식을 많이 낳아 키운것도 아니고 고작 애 하나를 낳아서 키우면서도 남들 흉내를 다 낼려니 어려운데 자식을 옹기 종기 않여 놓으신 시어머님의 얼마나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머님이 고충이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항상 자기보다 며느리들을 많이 생각해주셨고 한번도 남들 앞에서 며느리들의 흉을 보지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며느리된 우리가 다 잘해서가 아니라 다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넓은 도량으로 며느리들을 자기 자식처럼 보듬어 끓어 안아 주셨던 어머님이시였습니다. 그런 어머님이 너무 고맙고 지금도 가끔은 하늘 나라에 계신 어머님이 너무 너무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어머님이 저에게 남겨주신것은 가난이 아니였고 부모 자식간의 사랑하는 마음이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나는 어머님이 떠나가신후에 결혼 사진을 못찍은것에 대해서도, 그러는 어머님의 마음인들 오죽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졌던 응어리들이 다 풀리게 되였습니다.

가끔은 아! 내가 왜 일찍 이런 어머님의 마음을 깨닿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자책감으로 가슴을 탕탕 쥐여 박을때도 있었습니다. 살아 생전에 어님한테 더 잘해드려야하는데 못해드린것이 너무 너무 후회되고 아픔으로 가슴이 짜릿하게 내마음을 적셔 줄때도 있었습니다.

오늘도 구질 구질 싸늘한 가을비가 내리는날 저는 어머님 생각을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조
용이 되뇌입니다. " 어머님 하늘 나라에서 부디 평안하시고 더는 가난때문에 속끓이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며느리도 이젠 결혼 사직을 찍어주지못한 어머님의 아픈 마음을 충분이 이해할 수 있으며 더는 이 일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잘 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어머님 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보고싶습니다!"

어머님을 그리는 막내 며느리올림

박 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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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사진에 맺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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