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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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유적의 자료
 
소속대륙: 아시아, 소속국가: 터키, 지점 터키 트로아스평원
함의: 호메로스가 쓴 동화색채가 충만된 옛성 유적
 
기원전 9세기 고대그리스의 호메르스() 사시() 중에는 트로이(特洛伊)전쟁을 제기한적이 있는데 이로하여 트리오성이 유명해지게 되었다. 트로이는 기원전 3000년과 기원전 2000년 기간에 일찍 한 왕국의 수도였다. 그러다가 그것이 버려진지 몇 세기 후 그리스인들이 다시 자리잡기 시작, 후에 이 지방은 선후로 페르샤인 알렉산드르 황제와 로마인이 통치하게 되었다. 324년 후 이곳은 점차 삭막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트로이유적에는 오래된 성곽, 옛성 등으로 형성됐던 층층의 폐허와 여신 아테네(雅典娜)의 무덤이 모셔져 있으며 트로이로 하여금 가장 매력적인 세계 문명고적의 하나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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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이목마
 
호메르스() 사시()의 기재에 따르면 트로이왕자 패리스(帕里斯)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아내 헬렌()을 빼앗아갔다고 한다. 그러자 아내를 다시 빼앗아오기 위하여 스바다(斯巴)왕은 형제 아가멘놈阿伽门农한테 간청하여 그리스 연합군과 합류하여 트로이를 치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장장 10년간 지속된 전쟁이었는데 최종 그리스군대가 숨겨져있는 한 거대한 목마()를 통해 몰래 트로이성내로 진입해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현재 트로이 로구역입구에는 재건된 거대목마가 있으며 이미 터키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풍경선으로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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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개 성의 중첩
 
고고학자들의 발견에 따르면 트로이유적은 9개의 부동한 시기의 유적들이 중첩돼 함께 형성된 것이다. 그 중 유적의 제일 아래층으로부터 5층에 이르면 이 트로이성이 부단히 확대되었던 상황을 볼 수가 있다. 6 층의 폐허는 트로이문화에서 하나의 전변기로 이 때 북방의 초원민족이 트로이로 진입하면서 도시의 면모가 이전과 다르게 되었다. 7 층의 페허는 호메로스()사시에 기재된 트로이성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제 8 층과 제 9층 은 그리스인들이 거주하던 시기와 로마 통치시기의 도시면모를 갖고 있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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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명기적 시리즈(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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