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8(토)
 
 
[동포투데이]1974년 중국이 처음으로 테헤란(이란)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지금까지 무려 40년의 여정을 걸어왔다. 당시 제7회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순위 세번째에 오르며 첫도전에 “동아의 병부”란 오명을 벗어버렸다.
 
일전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신화사 기자는 4가지로 나누어 아시안게임에서의 중국팀 현상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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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도전”에 아시아가 “경악”
 
“자세를 낮추고 힘있게 밀어붙이는 것”은 중국인의 우량한 전통이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대표단을 파견했다.
 
역대의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이 줄곧 메달수 선두에서 달려왔다. 하지만 테헤란 아시안게임부터는 일본의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중국대표단은 일본에 향해 맹렬히 도전했고 세계에 향해서도 “굴기(崛起)”의 신호탄을 내쏘면서 “동아의 병부”란 오명을 일거에 벗어던졌다.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중국대표단은 33매의 금메달 획득으로 25개 대표단 중 순위 3번째에 올라 아시아는 물론 세계가 놀라게 하였다.
 
중국의 금메달 획득수 “토호들의 은행저축”과 흡사
 
1974년 금메달 순위 세번째, 1978년 금메달 순위 두번째, 1982년 드디어 금메달순위 최선두…아시안게임에서의 중국의 질주는 노도와도 같았다. 그러다 드디어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의 금메달수는 183매, 그것을 계기로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의 금메달수가 100매이하로 내려가본적이 없었다.
 
어슬렁, 어슬렁 거리며 “아시아의 정상체육점검행사”에서 뒤늦게 선보인 중국은 완미한 “3도약”을 실현, 그 뒤 금메달수를 점점 늘이다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1매가 적은 200매의 금메달을 획득해 이젠 그 어느 나라도 추격할 수 없는 아시아체육계의 “패왕”으로 군림하였다.
 
한편 이젠 아시아게임 금메달총수가 중국의 것으로 중국의 금메달은 중국토호들의 “은행저축”처럼 늘어나고 또한 부단히 경신되는 수자에 불과하게 됐다.
 
중국체육의 “굴기”
 
199년 베이징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183매의 금메달을 획득, 이는 제2에 오른 한국과 제3위에 오른 일본이 획득한 금메달 합계의 2배가 되었다. 베이징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또 4개 종목에서 세계기록을 깨뜨렸고 42개 종목에서 아시아기록 및 98개 종목의 아시안게임 기록을 돌파하였다.
 
베이징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중국은 정식으로 “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로 나아가자”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재반성해보는 중국체육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후 중국은 20년만인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주최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재차 아시안게임사상의 여러가지 “최고”를 만들어냈다. 최고로 많은 항목, 최고로 많은 금메달, 최고로 큰 규모, 최고로 많은 길상물 등이었고 그번 대회에서 중국은 199매의 금메달을 획득해 중국의 경기체육의 “굴기”를 재차 과시했다.
 
하지만 한차례의 열광적인 “금메달 숭배붐”이 누그러지자 사람들은 냉정하게 반성하기 시작했다. 많은 체육계 인사들은 경기체육의 위치확립을 분석, 체육에 있어서 허다한 치중점을 대중체육발전에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인천아시안 게임에 중국대표단은 도합1328명으로 구성, 이중 선수만 897명에 달한다. 중국대표단의 선전과 휘황한 성과를 기대한다.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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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중국이 걸어온 아시안게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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