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4(토)
 


■ 연변 리포터 김철균


1


중년남자 덕화한테는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40세 중반을 넘어 섰음에도 얼굴은 물론 몸매 또한 아직 30대 초반의 맵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아이는 자기의 아이가 곱고 아내는 남의 아내는 이쁘다”고 덕화는 여전히 그 아내한테 썩 만족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덕화가 바람기 있는 사내인 것도 아니었다.


기실 아내는 여느 여자한테 짝지지 않았고 그의 뜻을 곧 잘 따라주기도 했다. 헌데 왜 그런 아내가 자꾸 못 마땅해질까? 젊었을 때는 애를 키우고 살림을 춰세우느라고 다른 녀자와 아내를 별로 비교해 보지도 않았지만, 이젠 애도 대학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고 보니 어딘가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중년에 들어서면서 자주 번민에 빠지는 자신을 두고 몰래 반성해 보기도 했다.


하긴 덕화한테는 오래 전부터 애모해 오던 고중시절의 여동창생이 있었다. 활발하고 시를 잘 읊고 춤도 잘 추는, 그야말로 학급에서는 활약가였던 그런 동창생이었다. 하냥 웃는 듯한 얼굴이었고, 웃을 때마다 볼에 보조개가 생기군 했던 그녀, 덕화는 당시 마음이 약해 그녀한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됐다. 지금도 덕화는 당시 슬쩍 리드만 해도 그녀가 자기한테 무너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고교시절 학급반장이었으며 축구선수었던 그는 그만큼 여고생들한테서 인기만점이었고, 은근히 딴 눈치를 보이는 여고생도 몇 명 잘됐다. 하지만 그 때도 교정에서의 연애는 금물이었던만큼 정치발전을 추구했던 덕화로서는 더욱 그녀한테 딴 눈길을 팔 겨를이 못됐다.


그러다가 고교졸업 후 이렇게 저렇게 서로 다른 지구로 하향하게 됐고, 그뒤 도시로 다시 올라온 뒤에도 그녀의 소식을 줄곧 모르다가 언젠가 그녀가 집체호에서 당지 농촌청년과 눈이 맞아 결혼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듣고서야 덕화는 몹시 놀랐었다.


그렇게 생각은 간절했지만 이룰 수 없었던 사랑, 그래서인가 덕화의 마음속에는 중년이 될 때까지도 한쪽 구석을 그녀가 계속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애모의 불찌가 한순간에 사그라져 버렸으니 그 때인즉 지난 봄에 있은 동창모임에서었다. 그 때 모습을 드러 낸 그녀, 덕화가 그토록 애모하던 그 녀의 모습은 그제날 천진란만하던 소녀인것이 아니라 완전히 “러시아 아줌마”와 같은 여인이었다.


얼굴은 살이 잔뜩 올라 군턱이 져 옛날모습이 오간데 없는데다 커다란 젖가슴에 팔을 내걷고 소리를 질러대는 걸 보노라니 3 년 전 먹은 추어탕이 올라 오는듯 했다.


“야, 무슨 개떡같은 소리라고 해라. 지금 돈이면 할배다 할배. 자 마셔라 마셔!”


(저 여자가 그래 내가 20여년 전 그렇게도 마음속으로부터 그려오던 여인이었단 말인가?!)


차라리 그 모임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영원히 덕화 마음속의 우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덕화는 한동안 모진 허탈감에 빠졌다. 그토록 애모해 오던 여인이 글쎄 현재의 아내에 비해 그렇게도 무식하고 돈밖에 모르는 녀인이었던 것이다. 그 때로부터 덕화는 현재의 아내에 대한 관점을 달리했다.


2


다른 한 중년남자 순호는 문화거리에 있는 “OK 찻집”의 마담 여인의 매력에 마음이 끌렸다. 30대 후반의 여인답게 근사한 얼굴에 근시안경을 건 모습이 문화인다운 기질이 엿보이는듯 하기도 했다. 순호는 저도 몰래 퇴근 후마다 OK 찻집으로 발길을 돌리군 했다.


순호의 가정은 비교적 “여존남비”의 가정이었다. 딸 둘이 있었는데 아내까지 3명이 함께 늘 순호를 핀잔하군 했다. “누구네 남편은 얼마나 돈을 잘 벌고 부지런하오”, “어느 애의 아빠는 자녀와 대화를 잘 하오” 하는 식으로 집에만 들어서면 항상 궁지에 몰아놓군 했다.


순호는 이러한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그러니 자연히 OK 찻집으로 발길이 가군 했고 그 때마다 마담 여인은 살갑게 맞아주면서 말동무가 돼주군 했다.


순호는 그 마담 여인과 마주앉으면 늘 마음이 편해졌다. 세상물정에 대한 얘기로부터 가정상황, 나중에는 심리고충까지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는 저도 몰래 자신이 그 마담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군다나 그 마담 여인 역시 남편과 사별하고는 외기러기의 신세었다.


그는 그녀한테 진짜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 그는 무섭기도 했다. 이는 결코 자신의 아내를 버리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마음이 끌리면서도 감히 사랑을 고백할 수 없는 그녀가 어딘가 자기보다 너무나도 우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가령 그녀한테 맘속말을 털어놓았다가 거절이라도 당하면, 또한 앞으로 “자아감각만은 좋군” 하면서 만나도 주지 않으면? 순호는 그 것이 무서웠다. 그는 차라리 마주앉아 얼굴이라도 기껏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현재가 좋다고 생각했다. 하긴 그녀가 어딘가 뜻을 내보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여자 혼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고독하고 힘든지 남성들은 알 수 없어요.”


이는 분명 그 마담 여인이 내비친 말이었다. 하지만 순호는 그 것이 자기한테 뭔가 바라는 말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뒤에도 순호는 여전히 그 OK 다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와 마주앉아 얘기를 나눴지만 그녀한테 츄피터화살을 날려 볼 생각은 털끝만치도 해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순호가 퇴근하자 바람으로 OK 다방으로 향했다. 헌데 다방문을 떼고 들어서니 웬 다른 여인이 카운터에 서있었던 것이다.


“이젠 이 다방주인이 바뀌었어요. 그 언니는 이전의 단골이던 영철이란 남성과 새 가정을 뭇고 다방을 그만 뒀어요.”


그러면서 다방의 새 주인은 순호한테 메시지 한장 넘겨줬다.


“순호씨, 더는 만날 수 없게 돼 아쉽군요. 지금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기실 제가 처음 기다린 분은 순호씨었어요. 순호씨가 가정이 있는 분이라 차마 제쪽에서 먼저 말을 입밖에 내지 못했을 뿐이었죠. 하지만 지금의 남자도 괜찮아요. 운명의 신은 끝내 절 외면하지 않았는가 봐요…”


영철이란 역시 순호처럼 이 다방출입이 잦던 남자었다. 이혼하고 혼자 몸이란 걸 제외하고는 어디를 보나 순호한테 비길바가 못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순호가 담이 작은 연고를 마땅히 그의 품에 안겨야 했을 그녀가 결국 한차원 낮은 영철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3


중년남자 광철이는 워낙 회사의 중견으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회사의 부총경리 겸 판촉부 부장이었으며 외모상으로 봐도 분명 매너가 있는 사나이었다. 그는 원체 여자직원들한테도 분촌을 가려 할 말만 하고는 쓸데 없는 잡담은 극력 삼가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제한되고 문화적인 공간에서의 그의 자제력에 불과했다.


하지만  운명의 희롱이라 할까? 광철이는 끝내 같은 회사의 12살 연하의 여인과 애매한 이성관계를 맺게 됐다.


사달은 완전히 1년 전 그들이 함께 에너지개발을 목적으로 한 러시야행 때문이었다.


러시아 원동지구의 모 시에 도착하여 상대측과의 담판이 진행되던 3일 째 되던 날의 밤, 각각 호텔 한방씩 차지하고 막 잠에 들려고 할 때,


“딩동, 딩동”하는 초인종이 울리더니 문을 열자 바람으로 잠옷바람의 그녀가 엎어지듯 뛰어 들어오며 광철이한테 안겼다.


“부장님, 저 혼자 방에 있을 수가 없어요. 너무나도 무서워요. 중국에서 온 장사군 사내들이 쉴 새 없이 괴롭혀요.”


워낙 그들이 그 도시에 도착한 날 밤부터 이 호텔에 들어있던 중국인 장사군 사내들이 갖은 구실을 대고 그녀를 희롱하러 들었는데 3 일째 되는 날 저녁에는 한시간이 멀다하게 초인종을 울리며 그녀한테 “애정공세”를 들이댔던 것이었다.


그렇게 되자 둘 다 준비가 없었고 원했던 일도 아니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광철이와 그녀는 한 방에 들었으며 위에서 언급한대로 애매한 이성관계를 맺게 됐다.


남녀의 관계란 한 번이 있으면 두 번째가 있기 마련이다. 귀국한 뒤 그들 남녀의 관계는 급기야 봇물이 터진듯한 관계로 승화됐으며 얼마 안있어 처음에는 판촉부내 직원들 사이에서 쉬쉬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광철의 아내와 그녀의 남편한테까지 알려지게 됐다. 이렇게 광철이네 부부와 그녀의 가정도 하루가 멀다하게 싸움질이 잦던 중 그들 남녀는 막다른 벼랑가에 다닫자 어느 날 몰래 회사공금을 빼내 갔고는 실종됐다.


그들 남녀는 원래 계획했던 한국에로의 도피를 포기하고 동남아 모 국에 가서 은둔할 목적으로 운남의 어느 한 변강도시까지 갔었으나 거기까지 추적해온 경찰에 의해 나포됐고 둘 다 직무를 떼우고 감옥행을 하게 됐다.


※             ※            ※


이상 3명 남자들의 경우 아내밖의 여자와의 사연의 측면은 각각 부동하며 그 결과도 서로 같지 않은 양상을 보였다. 덕화의 경우 한 때 옛 동창생을 그리다가 원점으로 돌아왔고 순호의 경우는 자신의 결단성 부족으로 “암펌”같은 아내의 구속에서 해탈되지 못했으며 광철이의 경우는 자아의지로는 불가능했던 불륜으로 나중에 감옥행까지 했다.


여기서 필자는 이런 남성들을 칭찬 혹은 책망 먼저 인생이란 진짜 뜻대로 되지 않는 고행이란걸 언급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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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제] 알다가도 모를 남성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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