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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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선양 버스서 여학생 폭행사건 벌어져
    [동포투데이=선양] 중국 현지 매체 유쿠넷에 따르면 일전 중국 요녕성 선양시 215번 버스에서 한 노인의 아들 내외가 노인한테 자리를 내준 여학생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전말은 버스가 해방군 463병원역에 도착했을 때 한 노인을 모신 아들 내외가 승차,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고 있던 한 여학생한테 자리를 양보하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마지 못해 자리를 양보하던 여학생이 “이 많은 사람 중 하필이면 나한테 양보하래”하고 투덜대면서 사달이 생겼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의 며느리가 다짜고짜로 여학생의 얼굴에 손찌검을 했고 이어 아들까지 가세해 여학생을 폭행했다. 여학생을 폭행한 뒤 노인과 아들 내외는 여학생쪽에서 먼저 손을 댔다고 발뺌해 승객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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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6
  • 中 시안 다단계판매집단 사출
    [동포투데이=시안] 지난 1일 오전 7시, 중국 시안시공안국에서는 경찰, 순찰대원, 공상국, 사회구역보안일군이 련합으로 다단계판매가 성행하는 사회구역 3곳, 아파트단지 24곳, 세집 27집을 불의습격하여 146명을 체포하고 31개 다단계아지트를 일망타진하였다고 현지 언론 화상넷이 보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다단계에 중독된 이 사람들은 거개가 완고하다. 다단계판매의 핵심인원에 대하여서는 형사구류처분을 주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비판교육을 진행한다. 다단계에 련루된 사람들 대부분은 가족단위인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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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6
  • 中 항주 종교계소방경기 거행
    [동포투데이=항주]일전, 중국 관영 언론 인민넷에 따르면 항주 영은사에서 종교계소방경기를 거행, 이번 소방경기는 항주시 민족종교사무국과 항주시공안소방국에서 공동으로 주최하고 전 시의 불교, 도교 및 각계에서 11개 대표팀, 근 6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경기종목에는 80m 짐지고 달리기, 소화연습, 30m 방독마스크 끼고 사람 구하기 등 종목들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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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6
  • 해외견문 시리즈(2) 쿠바에서의 20일
    ■ 김철균 일전 중앙CCTV를 통해 중남미의 쿠바를 소개하는 뉴스를 시청하게 되었다. 내용인즉 쿠바도 이제는 대외로 개방하고 있으며 미국을 포함한 서방나라들에서 각종 제재를 취소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순간 나의 뇌리에는 한국상선 “코리안스타(KOREAN STAR)”호를 타고 쿠바의 항구도시 산타아고데쿠바(圣地亚哥)에 입항해 있을 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1991년 9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말이다. 그때 중남미의 알루바도섬(阿鲁巴岛)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본선이 그리스(希腊) 나비니아 대리점으로부터 쿠바에 가서 밀감 3000톤을 적재하라는 팩스를 받은 것은 9월18일 오후였다. 그러자 뒤따라 선내방송은 쿠바 입항시의 유의할 점과 선원마다 갖고 있는 일체의 소지품과 달러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신고할데 관한 지시를 하달했다. 그만큼 그 때까지도 꾸바입항절차가 까다로왔던 모양이었다. 까다로운 입항절차 한편 쿠바에 대한 주변국가의 감시와 봉쇄도 강화되는 실정, 그날 밤 본선이 쿠바를 향해 닻을 올리고 3 ~ 4시간쯤 향행했을 무렵 갑자기 선박상공에서 헬리꼽터의 동음소리가 요란스레 울리더니 선박기관실의 엔징이 문뜩 멈춰서는 것이었다. 이어서 미국경찰의 헬리꼽터 한대가 거센 선풍을 일으키며 뎃기(갑판)에 내려 앉더니 전신무장한 경찰 5명이 뛰어내렸다. 그들은 내리자 바람으로 선원마다 침실의 문을 열게 하고는 측정의기로 한바퀴 검사하였으며 나중에는 기관실과 냉동창고까지 낱낱이 수색하고야 손을 뗐다. 듣는 말에 의하면 미국경찰의 이런 검사는 명목이 마약밀매를 사출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쿠바에 무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자는 뜻도 포함된다고 했다. 하긴 남의 나라로 입항하는 선박까지 수색하는 걸 보면 미국은 경찰마저 세계패권을 부리는 것이 분명했다. “코리안스타”호가 산따아고데꾸바항에 입항한 것은 이튿날 점심무렵이었다. 아니나다를가 쿠바의 세관경찰 역시 지나치게 까근할 정도로 우리들의 신분을 남김없이 확인하고는 일체 소지품과 돈까지 체크하였는데 그 것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엄한 입항절차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 때 본선에는 무협지를 비롯한 많은 한국 도서와 잡지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런 인쇄물까지도 차봉하고는 출항 후에야 개봉할 수 있게 했다. 중국산 자전거천국 그날 저녁 우리는 밥술을 놓기 바쁘게 외출했다. 우리가 항구입구에서 외출등녹을 하고 밖에 나서자 곧바로 시내로 통하는 공공버스가 있었다. 버스에 오르자 세관경찰들과는 달리 버스의 승객들은 우리한테 매우 우호적이었으며 우리들속에 나를 포함한 몇몇 중국선원이 있음을 알자 “닌호우?(您好)”하고 중국말로 인사하며 악수를 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의 자리를 내주는 사람도 있었다. 헌데 이상한것은 우리가 버스표를 떼려고 달러를 내밀자 승무원은 한사코 받지 않 것이었다. 다른 나라들 같으면 외국인들한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상투적 수단이겠는데 그들은 왜 그러는지? 후에 볼라니 승객들은 모두 작은 카드 하나만 보이고 내렸는데 우리에게 그런 카드가 없고 하니 그대로 내버린 모양이었다. 우리는 스페인어로 (쿠바는 스레인어가 통용됨)술마실 곳이 어디인가를 물은 뒤 버스가 제일 호화로운 섭외호텔인 하와호텔에 도착하자 그 곳에서 곧바로 내렸다. 아무리 봉페정책을 실행한 쿠바였지만 하와호텔만은 디스코바, 커피점, 슈퍼마켓, 전자유희청 등 있을 것이 다 있어 이른바 “자본주의 세계”였으며 이를 이용하는 이들 또한 거개가 외국인들이었고 국내손님은 특수카드에 의해서만 출입이 허용됐다. 우리는 그 곳에서 거의 세시간이나 술을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 곳의 양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값도 싸고 또한 가짜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땅콩과 건포도로 안주해서 마시는 술맛은 각별히 좋은듯 했다. 밤 10시가 좀 지나자 우리는 소풍하러 밖으로 나왔다. 중국같으면 그 시간에는 행인이 적으련만 열대국가인 그 곳은 그 때가 제일 흥성할 때였다. 특히 여느 나라들과는 달리 그 곳도 중국처럼 자전거행렬이 물결쳤는데 자세히 볼라니 그 자전거의 절반 이상이 우리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영구(永久)”, “비둘기(飞鸽)”, “봉황(凤凰)” 등 명표들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국과 쿠바사이도 무역래왕이 잦음을 알 수 있었다. 후에 볼라니 본선선원들이 하와호텔 슈퍼마켓에서 산 침대카바와 운동화 등도 모두 중국제품임이 확인되자 우리는 또 한번 놀랐다. 쿠바의 자전거타기열은 경제위기로 석유가 긴장하여 많은 기동차들이 뛰지 못하자 일기 시작했고 자전거수입 파트너도 중국으로 됐다고 한다. 한편 우리가 호텔을 나와 얼마 안되어 불현듯 본선의 제3기관 조리수인 박치국씨가 헐레벌떡 달려오며 “저 담장밑에 아가씨들이 줄쳐 앉아 있어요”라고 흥분되어 부르짖었다. 그러자 모두들 그 쪽으로 쓸어갔는데 아니나 다를가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남미계의 세뇨리따(아가씨) 5~6명이 얌전히 앉아서 뭔가 기다리는 듯 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그토록 이쁠수가 없었다. 선원들은 대뜸 아가씨들한테 달라붙어 찧고 박고 했다. 여자를 되게 밝히는 한국의 “배놈”들, 어쩔 수 없었다. 헌데 이튿날 오전에 들을라니 그들 모두가 단속 때문에 호텔행을 하지 못하고 바다가나 길가의 잔디밭속에서 뒹글었다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값이 싸고 순진해서 좋았어”, “여기선 에이즈는 근심할 필요가 없어”라고들 하는 것이었다. 밀감 상역작업은 9월 20일부터 시작됐다. 헌데 수송시설이 낙후하여 차량속에 마차까지 동원되다 보니 작업효율이 빠를리 만무했다. 그런즉 작업양 체크만 하는 본선 선원들도 팔자가 늘어져 교대로 낮잠 자기가 일쑤였다. 그러니 저녁엔 뭘하랴. 또 외출해야지. 술 처먹고. 아가씨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그날 저녁 우리는 길도 익숙하기에 버스를 타지 않고 구경삼아 걷기로 했다. 그래서 전날에 스쳐지났던 거리풍경들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듣는바에 따르면 쿠바는 물산이 매우 풍부한 나라이다. 지하에는 철, 동, 아연 등이 풍부하여 중공업발전에 유리했고 지상은 커피, 사탕수수, 여송연, 코카인 등을 대량 재배할 수 있는 산지이다. 헌데 이렇듯 경제발전의 우세를 갖고 있는 나라였으나 수백년에 달하는 스페인사람들의 통지와 그 후에 있는 전쟁의 세례 또한 사회주의에 진입하여서도 오래동안의 봉쇄정책으로 말미암아 그 때의 쿠바현실은 그닥 낙관할 바가 못되었다. 하긴 구소련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을 때만도 구소련의 보호밑에 그닥 어려움이 없었다 한다. 대외무역의 80% 이상이 구소련을 상대로 했다니까. 하지만 냉전이 결속된 후 구소련의 세계적 패권이 약화되면서 쿠바경제도 위기를 겪게 되였는바 이를 두고 한국인들은 사회주의국가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허나 사회주의국가라고 낙후하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개혁개방을 실시하는 우리 중국만 봐도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가. 한편 거리를 도보로 걸으면서 느낀 인상을 적어 본다면 야자수가 늘어선 거리의 양켠에 일떠선 건물들은 대부분 지난 세기 60~70년대에 지은듯 했는데 그 때는 중국에 비해 꽤 번영한듯 했고 거리의 도처에 쿠바수령 카스트로의 초상화가 있어 중국의 문화혁명시기를 방불케 했으며 달리는 차량도 적지만 택시는 더욱 적어 대부분 등불을 달고 깜찍하게 만든 마차가 택시대용으로 쓰이었다. 그외 빵점이나 야채가게마다 늘어선 행열과 어린이들이 맨 붉은넥타이를 볼 때마다 우리의 1970년대를 더욱 떠올리게 했다. 손님을 따뜻이 대하는 쿠바인 하와호텔밖은 그 전날보다 확연히 달랐다. 해가 지기도 전부터 어디로부터 모여들었는지 수많은 아가씨들이 향해 눈을 깜빡여 보였는데 여하튼 그 곳의 미녀들은 다 모인 것 같았다. 한편 아가씨를 전문 소개하는 거간군이 나타 났는가 하면 이를 감시하는 경찰들도 출동했다. 보아하니 “배놈”들의 외출은 거리구경이나 답사도 아닌 아가씨사냥에 불과했고 그 아가씨들 역시 여자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한국선원들의 돈주머니를 노리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쿠바사회의 한측면일뿐 외국인들을 위해 성실하게 봉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가 산따아고데쿠바항에 입항해 있던 중 10월 3일(음력 8월 26일)은 바로 나의 생일이었다. 그날밤 따라 바깥날씨가 하도 청신했기에 우리는 호텔밖 잔디밭에서 나의 생일파티를 열었다. 내가 호텔에서 산 “JB”표 위스키 네병과 배에서 갖고간 말린 오징어 따위의 안주를 내놓고 한순배 돌렸는데 불현듯 멋진 옷차림을 한 단체가 다가와 공연요청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우리가 일제히 좋다고 박수를 쳐주자 그들은 곧바로 야외공연을 시작했다.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 바이올린독주, 벨칸토창법의 여중음독창 그리고 스페인군무 비슷한 남녀쌍쌍의 민속춤…거기에서 알만한 음악은 녀중음가수의 “모스크바교외의 밤”뿐이었지만 음악이란 국경이 없다고 해외에 가있는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흥분시켰다. 특히 여중음가수의 매력은 이성에서가 아니라 예술이란 이 미적매력으로 우리가 감화되게 했다. 그날 본선의 정유식 선장이 그들한테 수고비로 200달러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딱 잘라 100달러만 받고 영수증까지 남겼는데 그것 또한 인상 깊었다. 그밖에 우리가 그 곳에 머물러 있는 기간 구소련선박 네척과 중국선박 두척, 그리고 조선의 선박 한척이 선후로 입항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구소련배는 목재와 기름을 하역하는 잡화선과 기름배였고 중국배 두척은 다 목화를 하역하는 컨터이너선이었으며 조선배는 시멘트를 하역하는 밀봉선이었다. 이로 보아 그 때까지도 쿠바의 대 무역국가가 몹시 제한되어 있는듯 했다. ※ ※ ※ 사람은 모든 것이 지난 뒤에야 이전의 유치함과 아둔했던 것을 깨닫는 법이다. 마치 우리가 30년전 강냉이죽을 먹으면서도 제일 잘 산다고 으시대던 것처럼 20여년전의 쿠바 현실도 마찬가지었다. 저로동효율에 단조로운 인민의 물질문화생활, 세계가 점점 하나의 지구촌으로 둥글어 가고 있다. 하다면 쿠바 역시 자본주의국가를 포함한 모든 나라들을 상대로 바다와 하늘 그리고 모든 시장까지 풀어 놓아야 한다고 느껴진다. 나의 일생에서 어쩌다 인연을 맺게 된 쿠바와 그 곳의 후더운 사람들, 후에 다시 가볼 수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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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4-04-06
  • FIFA, 2014브라질 월드컵 러시아 출전 금지 美 제재안 기각
    [동포투데이=국제] 국제축구연맹(FIFA)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미국 상원의원들이 요청한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러시아 출전 금지' 제재안을 기각시켰다고 러시아 언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3월 초 마크 커크, 덴 코아스 미상원의원들이 FIFA측에 러시아 회원 자격 정지와 더불어 2018 월드컵 경기 개최권 박탈을 요청했다. 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 출전 금지 제재 조치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제롬 발크 FIFA 사무총장은 서신을 보내 조직의 규범상 축구 경기 구조를 벗어난 상황에 대해 신경쓰지 않을 방침이라고 언급하면서 러시아 경기 출전과 관련해 변경사항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앞서 제프 블라터 전 FIFA 사무총장은 2018 러시아 월드컵 개최 결정을 변경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확인성명했다.
    • 스포츠
    2014-04-05
  • 中 섬서 정치인들 도박 참여 화제
    [동포투데이=국제] 지난 1일 오전 10시경, 섬서성 서안 안탑구(雁塔) 분국 장연보파출소에서는 주민들의 제보를 받고 한 아파트단지에서 도박활동을 벌인 일당을 체포하였다. 홍콩 언론 봉황넷에 따르면 파출소의 30여명 경찰이 현장에서 도박에 참가한 10여명을 체포하였는데 이들 중 다수가 정협 위원들과 지방관리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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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14-04-05
  • 中, 7세 난치병아들 엄마에게 신장 기증
    [동포투데이=국제] 지난 2일 새벽, 중국 호북성 형주의 7세 나는 남아 진효천이 뇌종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진효천의 념원대로 의사는 그의 좌측 신장을 뇨독증에 걸린 어머니에게 이식해 주었다. 한편 진효천의 우측 신장과 간장도 다른 젊은이들에게 기증해 두 생명을 구해 주었다. 중국 현지 언론《무한석간》에 따르면 진효천은 5살 때 악성뇌종양에 걸려 수술을 받았지만 불행하게도 재발하여 더는 치료할 수 없게 되었다. 효천이 어머니 주로는 뇨독증에 걸려 이식을 받아야만이 살 수 있었다. 급해난 할머니는 손자가 죽게 되자 대담하게 손자의 신장으로 며느리를 구할 것을 제기했다. 2일 새벽 4시 15분, 효천이는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효천이는 생의 희망을 어머니한테 주었다. 오전 10시경 모자간의 신장이식수술이 동제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완성되고 효천이의 신장은 어머니 몸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호북성에서 처음 있은 직계가족간의 유체기관 기증이었다. 한편 국가온라인분배시스템의 분배를 통해 효천이의 우측 신장은 21살 나는 상양의 여자애 풍정(가명)에게 기증하고 27세 나는 무한의 남자환자 문군(가명)이는 심한 B형 간경화로 기증자를 기다리다가 효천이의 간장을 이식받게 되였다. 4월 2일 12시 30분과 12시 45분, 2명 환자의 수술이 성공돼 효천이는 도합 3명의 생명이 소생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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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5
  • 中 저장(浙江) 5층짜리 낡은 아파트 붕괴 1명 사망
    [동포투데이= 국제] 지난 4일 오전, 중국 저장(浙江)성 펑화(奉化)시에서 4일 오전 5층짜리 낡은 아파트 1동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아파트 내부에 있던 주민들이 건물더미에 매몰됐고 구조끝에 5명이 건물더미에서 탈출됐지만 이 중 한 여성이 결국 목숨을 잃었다. 1994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지난해 안전검사에서 “위험” 판정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근처에 사는 한 주민은 “무너진 아파트에 살던 주민들이 지난해부터 아파트 관리부문 에 불안하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했었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 및 소방부문은 사고경위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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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5
  • [수기] 인생스케치
    ■ 이진숙 새의 족속들을 보면 거개가 수컷이 암컷보다 더 멋지게 생겼다 한다. 붉은 볏을 머리에 이고 갈구리발에 머리를 잔득 쳐들고 멋지게 휘여진 꼬리를 흔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걷는 수탉의 도고한 모습은 실로 오만한 왕자를 방불케 한다. “문, 무, 용, 인, 신(文,武,勇,仁,信)” 5덕을 갖췄다는 수탉은 12띠 중에서 유일하게 날수 있는 동물이다. 라이벌과 맞서 용감하게 싸워 “용덕”이라는데 닭띠생인 내가 라이벌로 보였는지 어릴 때에 죽도록 혼난 적이 있다. 지금도 장거리나 농촌 마을에 갔다가 덩치가 큰 수탉을 보면 속이 한줌만 해서 슬그머니 피한다. 대약진으로 한창 들끓던 그 연대- 바로 1958년에 나는 초중에 붙었다. 학교들마다 근공검학이랍시고 별의별 일들을 다 했다. 우리 학급에서는 100여마리가 잘되는 오리와 닭을 키웠다. 수탉 한마리가 적어도 10여마리의 암탉을 거느린다더니 그 닭무리속에 얼마 안되는 수탉들이지만 우리 간담을 서늘케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 때 우리는 둘씩 한개조가 되어 번갈아 당번을 했다. 우리의 임무는 아침 일찍 밥도 먹지 못한채 닭과 오리를 밖으로 내몰고 우리청소를 한 다음 배추따위를 짓쪼아 물에 퍼지운 두병(콩찌꺼기)에 섞어 아침식사를 시키는 것, 그리고 업간체조시간, 점심시간, 하학후에 시간을 맞춰 모이를 주고 나중에 닭과 오리를 잠자리에 몰아넣으면 당번 끝이다. 어느 당번날 아침, 나는 대야에 모이를 담아들고 허리를 굽혀 좁고 기다란 나무구유에다 손으로 모이를 쭉 널어놓고 있었다. 내가 머리를 드는 순간, 글쎄 수탉이란 놈이 새노랗고 똥그란 눈을 부릅뜨고 나의 팔을 탁 쫏는 것이었다. “어구-엄마” 나는 숨이 떨어지는 소리를 질렀다. 긴박한 순간에 여자애들은 왜 남자애들과 달리 하나같이 엄마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나는 모이대야를 내 동댕이치고 요리조리 수탉을 피했다. 웬걸 , 그 놈은 한사코 따라와 길길이 뛰면서 되는대로 나를 쪼아 놓았다. 키가 작은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소리소리 지르며 울안에서 뱅뱅 돌아쳤다. 그럴수록 사납게 달려드는 수탉이다. 끝내는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 안에서 청소하던 당번애가 달려나와 나무꼬쟁이를 휘둘러서야 짐승과 사람전쟁은 끝났다. 지금 같으면 혈압이 터졌을거다. 제길할, 내가 닭이라고 착각했나 봐, 사람도 하루에 한번씩은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더니 요 놈의 수탉도 정신상태가 빵점인 모양이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고는 나무꼬챙이를 들고 “복수”에 나섰다. 이게 뭐냐? 이번엔 딴놈 이 등 뒤에서 “꼬-꼬-꼬”하면서 야단을 부린다. 와-정말 개판이다. 그날 저녁 나는 자면서도 소리치고 놀라고 식은 땀을 흘리고 했다. 정말이지 닭우리에 “새 친구”가 오면 밤새 쪼아서 피투성이로 만든다는 그 “닭의 텃세”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혹시 덩치가 큰 수탉을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런데 늙으막에 또 재수없는 일이 생겼다. 어느 날 오후, 외손자를 데리고 함께 교문을 나섰다. 금방 골목길에 꺾어 들었는데 갑자기 난데없는 수탉 한마리가 우쭐우쭐 걸어오고 있었다. 옛날 나를 혼내던 그 수탉과 아주 흡사한 놈이다.(에구,북경에두 수탉이 활개치며 다니다니…) 나는 한 손에 손자의 책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애 손목을 잡고 다짜고짜 뛰었다. “얘, 닭이 너를 문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나는 헐떡이며 말했다. 그러자 손자 놈은 나를 쳐다 보더니 “닭이 어떻게 물어, 쫏겠지”라며 비양댄다. 사실 난 그때 “쫏는다”는 말을 한어로 할줄 몰랐기 때문이다. 해마다 딸집에 가서 몇 달씩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번번이 발음이 틀리고 음조가 틀려 수없이 애하테 몰렸는데 오늘 또 당한 셈이다. (후-쬐꼬만 애한테까지 늘 훈시받다니…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하긴 한족사위와 대화를 잘 나눌 수 없는 것이 내게는 큰 고민이고 스트레스다. 밥상에서 이야기 꽃을 피울 때도 반벙어리상을 해야 했고 사위와 말을 건네기도 조심스럽다. 한족말을 잘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되는 순감이 많다. 내게는 큰 후회였다. 정말이지 한어말로 제생각도 쨩 소리나게 표달못하니 이보다 더한 바보가 어디에 있을소냐?! 누군가 인생은 후회의 누적이라 했다. 틀리고 후회하고 하지 않아 후회하고… 먼저 미련하게 처사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크고 작은 모든것,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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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5
  • 오묘한 세계 대백과(3) 천태만상의 외성계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광활한 우주에서 은하계는 하나의 작은 매생이에 불과하다고 한다. 은하계 이외 인류가 관측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성계의 총수는 가능하게 수천억개에 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는 그 수많은 성계중의 보통 일원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는 천문학가 허블의 분류 방법과 성계의 형태 특정에 따라 성계를 타원성계(椭圆星系), 선와성계(漩涡星系), 봉선성계(棒旋星系), 투경성계(透镜星系) 및 불규칙적인 성계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저명한 선녀좌하(仙女座河) 외성계와 은하계는 매우 흡사한 바 역시 선와성계에 속하며 더욱 흥미가 있는 것은 그 신변에 또 다른 두개의 작은 성계가 있으며, 그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3중 성계를 이루기도 한다. 하다면 사람들은 성계의 운동법칙으로 전반 우주의 결구 형태에 대해 추측할 수 있으며 성계에 있는 모든 원형선와결구가 전반 우주의 축도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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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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