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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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 김철균


아비쟝에서 출항한 본선 “코리안스타”호는 계속해서 아프리카의카메툰, 가봉, 콩고 등 나라의 항구들에 들려서 며칠씩 머무르군했다. 참, 아프리카에서 고생한 일을 생각하니 진절머리가났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나 싶게 경찰과 도적이 한동아리가 되어훔치고 빼앗고 구걸하는가 하면 그 동네에서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선식점이 거의 없다 싶이 하여 우리 민족이 즐기는 된장, 간장과 김치는 물론 쌀마저도 구할길 없어 보리쌀처럼 길죽한 아프리카의 밭벼쌀(早稻)을 구해서 호구를 한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우선 주방음식을 장만하기가 제일 골치거리였다. 그 중 김치는 우리 민족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부식으로서다른 건 어찌됐더라도 그것만은 꼭 담그어야 했다. 헌데 처음 아프리카에서 김치를 담글 때 올라온 배추와마늘을 보니 기가 막혔다. 글쎄 배추는 그 어디 흙탕물에서 뒹군 것같은 시래기보다도 못한 것이었고 마늘은그 쪽마다 쥐잇빨만큼씩이나 작은 것이어서 그 껍질을 바르기란 여간 신경나는 일이 아니었다. 헌데 그것나마무등 애를 쓴 끝에 겨우 김치를 만들어 식탁에 올렸더니 또 골치 아픈 일이 뒤따랐다. 글쎄 그토록 씻고또 씻고 몇번이나 씻었건만 여기 저기서 바드득 바드득하고 돌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놈의 김치야?”


“이러다간 며칠 안되어 잇빨이 몽땅 부러져 나가겠는 걸.”


이런 불평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의 얼굴은 확확 달아 오르군했다. 궁리끝에 나는 그 후부터는 포기김치를 담그지 않고 그냥 칼로 썰어서 씻은 뒤 담그었더니 보기는억망이었으나 그런대로 선원들이 돌씹는 일만은 거기서 종적을 감추었다.


그외 아프리카에서 오른 부식들을 보면 포장닭은 털이 듬성듬성그채로였고 야채와 과일류도 잘 정선하지 않아 올린 뒤 언제나 다시 다듬고야 창고에 넣을 수가 있었다. 특히주목되는 것은 농업과학기술과 축산업이 발달하지 못해서인지 배에 오른 파, 배추, 수박, 망고, 바나나등 류들은 그 크기를 말하면 수박은 두근 이상짜리가 별반 없었고 양파와 닭알 등도 작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본선에서는 돼지도 산 것채로 사다가 잡아먹군 했는데 그것들의 크기가 진짜 중국시장의 새끼돼지보다 좀 어떠할가 했다. 그런대로 비게가 적고 맛은 있었지만.


또한 여러번 언급됐지만 아프리카의 날씨란 무덥기가 말이 아니어서주방의 불앞에서 일하는 나의 목과 가슴은 늘 땀 때가 돋아 났으며 갑판과 기관실에서 일하는 선원들도 그 무더위로 하여  점도부동하게 신고를 했다. 그런가 하면 그 무더위로 하여 큰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그것은가봉에 있을 때의 일인데 하루는 내가 한창 주방에서 점심준비를 할 때 불현듯 바로 주방의 지척에서 “꽝!”하는요란한 폭발소리가 나면서 전반 선체가 세차게 흔들렸다 멈췄다. 이에 급기야 밖으로 뛰쳐 나가 봤더니배 2층 난간이 부러지고 갑판에 커다란 구멍이 팡 뚫려져 있었다. 알고본즉 그 때 본선에서는 기관실에 쓰이는 암모니아병을 주방 근처의 벽에 묶어 놓았었는데 그것이 고온에 속의 기체가 팽창하면서 끝내 폭발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인명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선박의 파손 정도는 비교적 엄중했는바 철판 두층이나 구멍이 뚫렸던 것이다.


그번 폭발사건이 있은 뒤 본선에서는 기관실의 일거리가 많은상황에서 가봉에서 근무하는 한국동아건설의 일군 몇명 모셔다 그 수리임무를 도맡겼다. 그것으로 우리는아프리카에서의 첫 한국인 단체와 접촉하게 되었는데 무료로 배수리를 도움 받은 건 물론 그들을 통해서 적지 않는 된장, 간장과 마늘지, 오이지, 깨잎지들 부식까지 넘겨 받을 수가 있었다. 또한 우리는 그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다녀오기도 했고 그들과 축구경기도펼쳤는데 비록 1대 6으로 진 경기였지만 마음은 유쾌하기가그기 없었다.


그밖에 가봉 리베비얼항에서 우리는 그곳으로 기름박으러 온본 회사의 탱크선 한척을 발견했는데 가본 결과 거기에 글쎄 우리가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로부터 포클랜드로 함께 갔고 포클랜드에서도 늘 함께 전재작업을했던 한국선원 안장옥씨를 만나게 됐다. 참 크고도 작은 것이 세상이고 죽지 않으면 만날 수 있는 것이세상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안장옥씨를 놓고 말하면 문화정도는 국민학교 중퇴생이고 “배놈”경력이 10년도 넘는 선원이었다. 하다 보니 “배놈”생활에 미립이 틀만치창녀들을 다스려본 사내로서 남녀 사이의 육담을 엮을라 치면 청산유슈였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중국선원들이그한테 “좆박사”라는 별명을 달아 주었는데 그것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한국선원들의 말에 따르면안장옥씨의 섹스솜씨는 그들중에서도 으뜸인바 한번은 부산의 완월동에서 남녀 두쌍이 함께 한방에 들었는데 그가 얼마나 힘차고도 끈질기게 방아를 찧어대는지아가씨가 너무 흥분하여 나중에는 자기를 그채로 죽려 달라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사내의 머리고 가슴이고 닥치는대로 잡아 뜯더라는 것이었다.


한편 그는 작업시에도 늘 우스개를 잘하여 피로한 선원들의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야참, 이 아저씨깡깡 말랐지만 연장만은 큼직하게 잘 키웠겠네. 워낙 뚱뚱한 사내일수록 그것이 작고 마른 사내일수록 그것이큰 법이라니깐.”


“왜 여자들을 처녀, 아주머니, 할머니 이렇게 나누는지 아세요? 처음 해본다고 처녀이고 아주 많이하기에 아주머니이며 할만치 다 했기에 할머니라고들 한대요.”


“우리 나라가 36년간이나일본 쪽바리들한테 당해서 전반 대한민국에 일본의 태양기가 휘날렸거든. 그래서 나는 일본년들을 만날 적마다그 년들의 사타구니에 태극기를 꽃아 놓았다니까요.”


“깜둥이년들과 놀아대는게 왜 신나는지 아세요? 해빛에 짙게 타서 보기 흉하지만 속은 맞춤하게 익었기에 잘 삶아놓은 돼지고기처럼 맛이 구수하다구요.”


들어보면 그 모두가 얼토당토치도 않는 지껄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힘겨울 때 이런 우스개소리를 듣는다는 건 일종 위안이고 기분좋은 일이였으며 안장옥씨 역시 힘겨울때마다 일부러 그런 우스개를 피우는 모양이였다. 참 “배놈” 생활10여년에 집 한채 마련하지 못했다는 안씨, 하지만 마음씨만은 무척 좋아 술도 곧 잘 사고작업시에도 남을 잘 도와주군 했다. 그래서 술군과 오입쟁이 속이 독한 놈 없다고들 했는가? 하긴 마음씨 고와 돈과 연장까지 여자들한테 잘 주니 집 한채 마련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다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우리가 만난 이들로는 우리 나라의 상해에서간 어선의 선원들이었는데 그들은 80톤짜리 어선 두척을 몰고 중국을 떠나 카메룬의 해상에까지 와서 조업하면서만선만 되면 입항하군 했던 것이다. 글쎄 그 100톤도 안되는배를 몰고 태평양과 인도양을 지나 대서양으로 들어오다니 그들이야말로 죽음이란 뭔지 모르는 모험가들이었다. 또한그들의 생활환경을 보면 한방에 10여명씩이나 들어있었고 작업조건도 본선에 비하면 억수로 차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를 만나자 그렇게도 반가와하며 선내식당에 청해 한끼 잘 대접하면서 한국선박에 승선하여 얼마나고생하는가고 위안해 주었고 돌아올 때는 또한 목숨을 걸고 잡은 참치(일본어로 “마구로”라고 하는 물고기인데매우 귀함)4마리나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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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이들로는 아미잔에서 선식점을경영하는 성이 리씨라는 한국인 일가였고 콩고에서 “북경술집”을 경영하는 중국인일가 등등이였다.

 

와리에서 당한 봉변


참, 아프리카에서고생한 일을 생각하니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본선이 아프리카를 떠나 라스팔마스에 오자 나는 다음번의스켓쥴만은 제발 남미나 동남아 더 좋기는 한국이나 일본쪽으로 정해줍시사 하고 마음속으로 수십번이나 기도를 드렸다.


헌데 일이 탈리느라고 그러는지 아니면 내가 드린 기도가 하느님을감동시키지 못해서인지 한국 본부로부터 날아온 텔렉스에 따르면 다음 항차가 또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라는 것이었다.에이쿠, 또 아프리카, 선원들 모두가 질려버렸다. 뿐만 아니라 본선은 령에 의하여 몇년전 본선에서 잡부로 근무한 적 있는 흑인선원 죤과 죠셉이란 두 녀석까지편승시키게 했다.


배가 라스팔마스항을 떠나자 여태껏 고분고분하던 두 흑인편승자가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인즉 이전에 본선에 승선하여 일한 보수로 수십박스(BAX)에 달하는 냉동물고기를 가지기로 했는데 그것을 받지 못했다면서 전임 선장의 싸인까지 내보이며 이제 나이지리아에가면 그 걸 꼭 받아내겠다는 것이였다. 이에 현임선장이 그것이 자기와는 상광없다고 잡아떼자 그들은 그것을트집 잡으며 물고 늘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화근이었다. 특히 죤이란 녀석은 여러해동안 트롤선, 참치선, 새우선 등 한국선박에만 굴러가니며 일하다 보니 한국말은청산유수였다. 헌데 일은 묘하게도 번져져 선장방에서 두 흑인편승자를 처리할데 대해 선장, 기관장, 1기사, 1항사, 통신장이 토의한 것을 그가 엿들었던 것이다.


그 토의내용인즉 항행도중 라스팔마스로 가는 본회사의 다른선박과 접선하게 되는데 그때 가서 그 두 녀석을 강박적으로 전선(转船)시켜 라스팔마스로 되돌려보내는 것이었다. 헌데 그 비밀이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죤의 귀에 직접 흘러들게 되었으니 난리가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두 흑인편승자는 미치광이처럼 날뛰였다. 그놈들은 칼이고 몽둥이고손에 쥐우는대로 쥐고 흔들어대며 본선선원들을 위협했다. 그럼에도 그 숱한 한국선원들은 그 두놈의 행위를제지시킬 수가 없었다. 뒤에서는 “그저 제놈들을 바 콱 처넣었으면”하고 이를 갈면서도 그 놈들앞에서는그들이 도리어 슬금슬금 피하였고 그 두놈이 고분고분 할 때 제일 우쭐렁거리며 큰 소리 치던 사람 또한 겁은 제일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해상에서 본회사의 “프리오라스팔마스”호와 접선했을 때도 그놈들을 넘겨줄 수가 없었다. 글쎄 그 놈들의 위엄에 선장부터 쩔쩔 매고서야 어떻게 일을 성사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프리오라스팔마스”호의 선원들은 깜둥이들이 제멋대로 설치는 본선을 보며 몹시 안타깝다고 하는 것이였다. 하긴 두 흑인녀석은 유독 우리 중국 조선족선원들과는 아무런 위협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도 얽매인 몸이라 평소에 그들을 잘 대해줬던 까닭이라 할까? 여하튼“죄는 지은데로 간다”는 속담이 그런데 없었다.


본선이 나이지리아의 와리항에 입항하자 시내에 집까지 있는그놈들의 기염은 하늘을 찌를듯 했다. 헌데 어창에 쌔고 버린 것이 물고기였고 또한 진작 그들한테 줘야할 것이 번연했음에도 선장은 대체 무슨 궁리를 하는지 질질 끌며 주지 않는 것이었다. 평소에 냉동기를쉬우기 위해 수백박스씩 되는 포장물고기를 바다에 처넣는 걸 보면 그들이 요구하는 수자는 새발의 피나 다름 없겠는데 공연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것이 아닌가.


터질 일은 끝내 도래하고야 말았다. 하루는 주방에서 점심밥을 짓던 중 밖에서 하도 법석이며 떠들어대기에 브릿치쪽으로 올라가 봤더니 창피스럽기로 글쎄 선장이 브릿치안의 쇠기둥에 꽁꽁 묶이워 있었고 권총을 빼든 웬 흑인사나이 한명이 제복차림을하고는 버티고 서서 곁사람은 얼씬 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한편 갑판을 내려다보니 몇몇 깜둥이들이 갑판장한테서어창열쇠를 빼앗아서는 어창뚜껑을 활짝 열고 물고기 박스를 날라내고 있었는데 갑판장을 강박하여 크레인까지 돌리게 했다. 완전히 무법천지였다.   


한국선원들은 물론 대리점의 에이젠트와 근무경찰마저도 속수무책으로눈을 펀히 뜬채 보고만 있을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해군제복을 입고 총을 빼든 사나인즉 편승자였던죤의 형님이었는데 해군함대의 함장이었으며 그의 세력이 어찌나 센지 와리시내에서 그라 하면 흑인들 모두가 설설 긴다고 했다. 다쳐도 큰 범을 다쳐놓은 셈이었다.


일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위낙 도적놈들이 욱실거리는 와리였지만 이전에는 죤네형제의 세력이 본선을 보호해 주었기에 부두에 아무리 정박해있어도 별로 물건이 잃어지는 일이 없었다 했다.


하지만 그 사달이 생긴 후부터는 무엇이나 달랐다. 죤네형제와 갈등이 생기고 그것이 점점 격해지자 따라서 점점 물건이 연속 부절히 잃어지기 시작했다.


전날에 TV와 비디오가 잃어졌는가 하면 다음날에는 호사줄과 단정뽀트의 엔징까지 잃어졌으며 또 그 이튿날에는 주방의 창밖에있는 프로팬 가스통까지 들어갔다. 주방에 전기밥솥과 곤로까지 있었으니 말이지 그런 시설이 없는 선박같으면밥도 지어먹지 못할 번 하였다.


하루라도 빨리 그 곳에서 벗어나야지 사람이 불안해서 일이손에 잡히지 않았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어쩐지 더 큰 봉변을 당할 것 같은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 그때 본선은 와리항에서 그리 멀지 않는 위스키포란 곳에서 닻을 내리고 기름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라스팔마스같으면이틀이면 만재할 수 있는 것을 열흘이 넘도록 절반도 채울 수가 없었다.


그 원인은 우리한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름빠지(전문 기름만 싣고다니는 작은 배)는 주로 밤에만 오군 했는데 방정맞게도 그번 항차만은 왜서인지 모든 일이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아 갑판부 선원들은밤마다 그 기름빠찌를 기다리다가 잠자리에 들어가기가 일쑤였다.


그렇게나마 기름양을 거의 채우던 어느날, 갑자기 죤네 형제가 한무리의 깜둥이들을 데리고 또 본선에 들이 닥쳤다. 이유는뻔했다. 그들이 우리 회사의 비밀을 손금보듯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본선에서 받는 기름은 유전의 주인과 우리의 선주가 몰래 짜고 들어 그 생산양 및 수출양을 속이고 팔고 사는 즉 나라의 세금납부수속도 없는 국제적밀수였다. 그러니 권세가 큰 어른들을 끼지 않고서는 벌일 엄두도 낼 수 없는 도박이었다. 헌데 죤네 형제의 세력도 그보다 못지 않았기에 그 낌새를 알아차렸던 것이다.그러니 그 놈들이 그 약점을 틀어쥐고 본선에 협박을 들이대지 않을 리 없었다. 그들은 선박에오르자 마자 비법적으로 퍼올린 기름을 몽땅 몰수할텐데 자기들이 곧바로 그것을 인수한다는 것이었다. 그기름을 그 자리에서 몰수당한다는 것은 회사를 놓고볼 때 그 손실정도를 한두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와리근처의 해상유전의 기름은 근본 잡질이 섞이지 않은 것으로 라스팔마스의 기름보다 질이 좋아 그것을 작업선에 공급하면 기본상 엔징이 꺼지는 사고가없었고 또한 값도 싸서 일단 그것을 받아서 작업선에 되넘겨 팔면 우리의 선주는 대단히 폭리를 얻는 셈이었다. 하지만그 통에 녹아나는 것은 되려 본선의 선장과 선원들뿐이었다.


죤네형제가 야단을 치는 그 복새판에 마침 회사본부로부터 텔렉스가날아왔다. 내용인즉 죤네형제를 잘 구슬려서 보낸 후 즉각 출항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선장은 대뜸 큰 보따리를 벗어놓은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뒤이어선장은 죤네 형제한테 담배와 위스키, 닭고기와 물고기 등 따위를 주라고 지시하고는 이미 회사에 다 연락했으니래일 다시 와보라고 죤네 형제를 구슬렸다. 이에 죤네형제 역시 물고기를 뺏아내려고 벌인 수작이었던만큼더는 트집을 잡지 않고 눈을 희번떡거리며 으름장을 놓고는 물러갔다. 또한 기름을 도로 퍼준대도 기름빠찌가없는 그들이 갑자기 어디에 싣고 가겠는가.


그날 저녁, 밤장막이무겁게 드리우자 본선은 지꿎게도 우리를 괴롭히고 불안하게 하던 와리항을 떠나 라스팔마스를 향해 선수를 돌렸다.


하지만 시름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죤네 형제가 쾌속정을 타고 뒤쫓아오지 않는가 해서 선수와 선미에 선원들을 대기시켜 놓고는 몽둥이나 쇠망치등을 나누어주었다. 일단 그들이 쫓아와 선박에 오르려 할 때면 사정없이 족치라는 것이었다. 이는 일종 사색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였다. 과연 우리의 약점을 찾아쥐고협박하며 을러메고 빼앗는 죤네 형제가 무지하고 야만스러운지, 아니면 그 녀석들을 구슬려서라도 밀수기름을싣고 도망가는 우리가 인색하고도 탐욕스러웠던지?...


그렇게 황망히 도망치기에 급하다 보니 브릿치에서 항행지휘를하는 선장 역시 통 제정신이 아니었다. 와리항에서 바다까지 나오자면 강을 따라 몇시간 내려와야 했는데강과 바다 사이 합수목 어구에는 양쪽으로부터 쌓은 방파제가 있었고 그 두 방파제 사이 즉 물이 제일 깊은 곳으로 배가 지나가도록 되어 있었으며그 방파제 두 끝에는 위낙 등대가 있었다. 헌데 그 등대의 전등이 고장났는데도 게으른 흑인들이 수려할념을 하지 않아 있으나 마나 했다. 그렇게 등대가 제구실을 못하는데다 밤이 되자 바다의 밀물이 강에까지올리 뻗치여 낮에나 겨우 보이던 방파제까지 잠그어놓았다. 어두운 밤의 항행, 보이지 않는 등대불, 거기에 제 정신이 아닌 선장의 지휘, 배는 미처 어쩔 사이도 없이 원 배길을 벗어나 방파제위에 매달렸다. 그러자 160미터가 되는 그 육중한 선체도 기능을 잃고 파도가 치는대로 기우뚱거렸다.선내는 삽시에 수라장이 되었고 바빠 맞은 것은 선장과 1항사였다. 하지만 엔징을 아무리 돌려며 후퇴하려 해도 그 힘으로는 방파제에 걸린 선체를 조금도 뒤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럴 즈음 그 곳을 지나던 스페인 선박 한척이 마침 본선을 발견하고는 구원의 손길을 뻗쳤다. 스페인 선박이 본선 선미에 두줄로 와이야샤스를 건 다음, 두 선박의엔징이 동시에 힘을 쓰며 약 반시간 가량 모지름을 써서야 본선은 간신히 방파제에서 미끄러져 내려갈 수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선박밑창에 구멍이 뚫리는 수밖에 없었다. 치명적인 손상은 아니나 구멍난 곳은 다름 아닌 기름탱크가 있는 곳 밑이었는데 이튿날에 볼라니 배가 지난 뒤의바다에는 기름이 한줄로 덮이며 본선을 따라오는 것이었다. 다행이도 기름탱크안에 밀봉한 칸들이 많았기에대부분의 기름은 살릴 수가 있었으며 선장 역시 본부에 답복할 이유는 충분했다.

 

에필로그


아프리카, 오늘도그 때 아프리카에서 지내던 자초지종을 생각하노라면 소름이 끼치며 진짜 어떻게 지냈던가 싶어진다. 유럽과미주의 많은 선진국들에서 바다밑과 우주에까지 탐구와 개발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오늘, 아프리카는 왜아직도 그 모양, 그 꼬락서니인지? 과연 그네들한테는 언제가야 현대문명과 첨단과학기술이 보급될는지? 그 중 우리가 돌아본 아프리카에서 가봉과 남아프리카공화국등 나라는 그래도 백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사회경제와 그 문명정도가 기타 나라들과는 앞섰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곳 흑인들 역시 수천년간 내려오면서 습관화된 노예근성과 훔치고 구걸하는 버릇은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있었다. 그외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는 해상에 새우, 게, 갈치 등 맛좋은 물고기들이 깔려 있음에도 불구, 자기네는 잡으려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빌어먹고 있었다. 특히 보편적으로 아프리카를 보면 남자들이 빈둥거리며놀고 아낙네들이 야생과일을 따거나 매생이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본 와리 시내에서도 아낙네들이 아이를 업은 채 보짐을이고 다니는 것이 수없이 많았다. 또한 해상유전의 그 많은 시추탑가운데서 나이지리아 자국의 것이 별반없는가 하면 석유자원이 풍부한 반면에 와리시의 많은 기동차량들은 기름이 없어 달리지 못한다 했다. 나이지리아처럼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이러할진대 자원이 결핍하고 불모의 땅인 에티오피아나 소말리아, 우간다 같은 나라들은더구나 어떻겠는가?! 가보지는 못했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남한테만굽어들고 의거해서는 나라가 부강하고 국민들이 잘 살 수가 없는 법이다. 남이란 언제든지 크게 부려먹고적게 주려 하기 마련이다. 마치 본선에서 흑인들한테 밥이나, 기껏해고기박스나 몇개씩 주고 얼려서 일을 시키듯이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홀로서기에 열중하고 나라는 자립, 자존, 자강에 기초하여 세워져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곳. 게으르고나태하고 빈궁한 아프리카 - “연탄동네”여 각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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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견문 시리즈 (5) 아프리카 인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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