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과 더부러 새롭게 인식되는 역사 , 그제날 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들 (시리즈 1)

■ 김철균
아버지를 재차 떠올리며
나의 아버지고 김노걸(魯杰)씨가 생전이면 올해 108(1904년생)세가 된다. 한국경상도 울산이 고향인 아버지는 한일합방 이듬해인 2010년에 할아버지한테 이끌려 간도로 이주, 당시 두만강에서 어부로 생계하는 넷째 할아버지와 다섯째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이주했다 한다.
아버지는 1931년에 장가를 들어 큰 딸 김춘옥, 둘째 딸 김춘봉과 큰 아들김승균을 본 뒤 일본군들이 벌인 공사장에 끌려 다니며 부역을 하다가 광복을 맞게 되었다.
광복 후 아버지는동북민주연군에 입대(어머님의 말로는 농사일과 집안을 관계하기 싫어 군대에 갔다고 함), 훈춘보안퇀 일원으로 전우들과 함께 당시 국민당이 장악하고 있던 훈춘공안국을 아침에 점령한다. 2-3명씩 조를 짜갖고 골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출근하는 공안국 인원들을 한명씩 나포했기에 거의 무손실로 큰일을 해낸 것이다.
그 뒤 아버지는 소련 극동국제여단에서 주보중, 김일성, 최용건 등과 활동하다가 연변으로 진출한 지병학, 석동수 등 항일빨치산 장령들의 인솔하에 훈춘과 흑룡강성 동녕현 일대에 진출하여 토비숙청에 참가하였으며 이어서 국민당의 동만진공으로 하발령 저격전에 참가하는 것을 계기로 중국내 국공양당의 내전에도 뛰어들었었다.
당시 아버지는 동북민주연군 10종대의 기관총수였다. 그러면서 수차 장춘해방전투에도 참가했고 그 뒤 1948년 가을과 겨울에는 세계에서 유명한 요심전역의 흑산저격전에도 기관총수로 참가해 국민당군을 무리로 쓸어눕혔다고 한다.
1948년 12월 아버지는 남하하는 제4야전군을 따라 입관, 천진해방전투 등 많은 전투에 참가하면서도 용케도 목숨만은 잃지 않았으며 이어서 장강도하작전에서는 돛배 선수의기관총수로 해방군의 진격로를 엄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제4야전군이강서성 남창을 해방하자 상급으로부터 비밀지령이 떨어졌다. 순 조선인군인들만 뽑아서는 어디론가 싣고 가는것이었다.
아버지네가밤중에 당도하고 보니 그 곳은 하남성의 성도 정주였다. 그리고 어느 한 학교마당에 모인 군인들을 보니 말짱 조선인군이들이었다.
어느날 밤아버지네는 재차 화물차 바곤에 싣겼다. 기차는 무한정 달리다가는 가끔씩 멈춰서군 했는데 나와 보면 그곳은가없이 펼쳐진 허허벌판이었고 그런 곳에서 부대는 밥을 먹고 볼일도 보군 했다 한다. 그러다가 또 어느날밤 기차가 한 철교를 건너는가 싶더니 미구하여 문뜩 멈춰섰고 모두들 내리게 했다.
그 곳은 곧바로 조선의 신의주였다.
신의주에서 아버지의 일행은 중국인민해방군 군복을 벗고 조선인민군 군복을 갈아 입었다. 그것이 바로 6.25발발 직전인 1950년 4월경이라 한다.
그 뒤 아버지는조선인민군 제7군단에 소속되어 원산 부근에서 훈련하다가 곧바로 6.25에 뛰어들게 되었으며 낙동강까지 진출했다가 다시 유엔군의 인천상육으로 후퇴의 길에 올랐다. 그러는 과정에서 부상당하여 중국 교하에 있는 조선인민군 야전병원에 입원했다가 상처가 다 아물자 다시 전선에 나갔으며 조선정전협정이 조인된 뒤에야 중국훈춘으로 되돌아오게 됐다.
……
나의 기억속의 아버지는 성격이 괴벽했다. 식사하다가도 뭔가 마땅치 않으면 수절을 메치기가 일쑤였고 지어는 밥상을 엎어 버릴때도 있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집식구나 남과 트집을 잡을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어릴 때 나는 아버지를 무서워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한편 아버지는뭐나 아끼지를 아니했다. 풋돈깨나 생기면 집안생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술부터 사 마셨다. 그리고 술 마신 뒤면 이 강산 낙화유슈란 노래를 자주 부르기도 했다.
내가 학교를붙은 이듬해니까 아마 1965년쯤으로 기억된다. 그 때로부터아버지는 뭔가를 예감했는지 자주 어린 나를 앉혀 놓고는 전쟁시기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가끔씩“참,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말을 곱씹군 했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기관총수였으니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말로도 된다. 그것도 자의가 아니게 군인이란 천직 때문에 사람들을 무리로 쓸어눕혔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죽인 한국국방군 속에는 아버지의 고향(울산)사람도 혹간 있을 법 아닌가?
그리고 당시나는 아버지가 눈물을 떨구는 모습도 분명 보았었다. 아마 숱한 사람을 죽이고 살아있는 자체가 귀찮았을수도 있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당시 아버지의 성격이 괴벽해진 것을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다.
다른 한편위의 사진을 보다 시피 아버지는 멋지게 생겼으며 키도 비교적 큰 편이었다. 헌데 아버지는 두 아들(나와 형님)만은 키큰 아들로 만들지 못했다. 반면에 딸들은 이쁘기도 하고 키가 작지 않게 잘 만들었다. 그리고딸들 한테는 훗날 모두 잘 살게 되는 팔자를 주었으나 두 아들은 항상 쪼들리게 살게 만들었다. 마치 자신의 팔자처럼 되게 했다. 이는 극히 모순되는 것이었다. 그 사례로나의 형님 김승균씨는 훈춘병원의 업무원장으로 떵떵 거리며 살 수 있었으나 술 마셔도 평생 자기 호주머니 돈만 축냈으며 생전까지 형수님의 단위(교육국)에서 분양해준 집에서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 그것도 병원의 유명 닥터로 암병치료전문가라던 형님은 결국 자신이 암병으로 돌아갔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돈도 잘 번다. 헌데 남는 것이 없다. 특히 몇해전에는 한 예술단체의 친구가 대출을 받을 때 담보를 서주었다가 그 친구가 제때에 갚지 않아 내가 빚을 내면서 그 돈을 갚아주게 됐으며 하마트면 와이프한테 이혼당할뻔 하기도 했다.
당시 남들은어떻게 남의 담보를 서줄 수 있느냐, 친구와 여자는 공유해도 돈거래는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 역시 그런 도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남의 딱한 사정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뒤 일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나의 아버지는 일자무식이었다. 대신 다른 분야가 몹시 발달했다. 얘기를구수하게 잘했다. 그래서 일터에서나 기타 모임에서 동네사람들은 아버지가 하는 얘기(옛말)을 듣기 좋아했다. 특히 아낙네들이 그랬다. 헌데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 대해 늘 도리질을 했다. 나쁜 사람이라 했다.
아버지가 나쁜사람이라고 점찍은 어머니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 어머니가 다 돌아간 뒤 지난 세기 70연대에 있은 일이다. 당시 나는 형님의 슬하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조선으로부터 한 여성이 찾아왔다.그러면서 우리는 형제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여성은 아버지가 조선에 감춰둔 딸이었다. 그러니 6.25 당시 그 전쟁의 난리속에서도 아버지한테는 어머니몰래 좋아하던 여성이 조선에 있었으며 그 누님이라는 분은 그 여성이 낳은 딸이었다. 하다면 어머니가 생전에 아버지를 나쁜 사람이라고 한 것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그럼 나는 어머니밖의 아버지의 그 여성을 뭐라 해야 하나? 작은 어머니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아버지는 그닥 좋은 분은 못되었다. 그렇다고 나쁜 분이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어언간 50년(문화혁명시기“외국스파이”로 몰리어)이 된다. 고인이 된 아버지의 잘못을 따진다는 건 자식으로의 도리가 아니라고 인정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전에 아버지가 나한테 많은 얘기를 해준 것도 어떤 뜻이 담겨져 있는가를 어느 정도 알기에 나는 아버지의 그 얘기들을 정리해서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심한바이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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