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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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명: 금릉13채 감독: 장이머우 주연: 크리스찬 베일 퉁다웨이 더우쟈오 니니 장르: 드라마 역사 국가/지역: 중국 줄거리: 1937년 일본제국주의 침략 아래 만신창이 된 난징. 국제 우호인사가 이끄는 교회당은 일제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많지 않은 성지이다. 성당은 이곳으로 숨어든 금릉의 여대생과 13명의 기생 그리고 수많은 시신들 속에서 기어나온 6명의 국민당 부상병을 수용했다. 이들이 함께 유사이래 최고로 처참하고 잔인한 대학살을 맞게 되는 이야기이다. 결국 제일 '하찮고 미천한' 13명 기생이 여럿을 지켜주는 영웅이 된다. 성당이라 하여 영원한 성지로 내버려둘 일본군이 아니다. 어느달 드디어 성당으로 쳐들어온 일본군에 맞서 그들 13명 기생은 제일 무섭고 비인간적인 대학살을 맞는다.
    • 연예·방송
    2012-09-13
  • 런다화, SBS 프로에 출연
    영화 '도둑들'의 주연으로 활약해 한국 관객들에게 잘 알려진 홍콩 배우 런다화가 한국 SBS 프로인 '공형진의 씨네타운'에 출연한다.런다화는 오는 13일 오전 11시에 방송되는 SBS 파워FM '공형진의 씨네 타운'에 출연, 팬들에게 진솔한 매력을 선사할 예정이다. 런다화는 이날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오는 12일 차기작 '나이트 폴' 한국 언론 시사회에도 참여해 한국 팬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런다화는 천만 이상의 관객 수를 기록한 흥행영화 '도둑들'에서 극중 첸 역으로 분해 김혜숙과의 중년 로맨스를 선보였다.
    • 연예·방송
    2012-09-13
  • 아 아프도록 아까운 나의 옛날이여!
    남에게 맡기고 한국가서 거의 십년세월을 지우고 오니 옛집이 얼마나 많이 망가져 버렸는지 맘놓고 발들여 놓을 자리도 없을 지경이 되였다. 남편과 둘이서 어렵던 세월에 오순도순 세아이들을 키우면서 꿈도 많았던 내 보금자리, 비록 초라하게 붉은 기와를 얹은 옛스런 단층 벽돌집이지만 늘 윤기가 돌던 내집! 쇠줄로 엮은 넓고 예쁜 초롱에 닭, 오리,게사니 키워서 고기먹고 알먹고 담장을 의지해서 벽돌로 아담한 개집을 지어 네눈박이 귀여운 “보초군” 살게하고 얼마 안되는 둘의 월급을 쪼개가면서 다들 부러워하게 총명했던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 하던 재미, 구석구석 먼지 티끌이 쌓일세라 쓸고 닦으면서 만석부자 부러워하지 않고 살았던 알뜰한 내 살림!복숭아,사과, 오얏나무가 사이좋게 둘러서 있던 앞뜰 우물터, 과일꽃 향기와 록음이 무지 은혜롭던 봄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면 주렁진 과일나무 밑으로 이웃집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줄레줄레 모여들어서 넉넉한 내 인심을 바구니에 가득 담아들고 흐뭇해했던 기억들… 갖가지 풋남새들이 흐드러지게 자라서 이웃에 나누어 주면서 맛있게 먹던 뒤뜰 채소밭…..아! 그때가 너무도 그리워서 난 미칠것만 같고 하염없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그처럼 알뜰했던 내 보금자리 살림집을 게으름뱅이 어떤 부부가 들어와 살면서 십년세월 아예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과일나무는 다 죽어 버리고 숱한 닭오리 게 사니를 키웠던 예쁜 쇠줄 초롱마저 쇠붙이라고 다 팔아먹은건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성스런 우물터에다는 더러운 널판자를 깔고 닭을 치고 있어서 우물터가 아예 닭똥터가 되었고 집안 구석구석 때와 먼지에 찌들어서 내가 살았던 깔끔했고 윤기돌던 흔적이란 찾아볼수도 없으리만치 돼지우리도 그런 돼지우리가 없다. 아! 가슴이 찢어지고 억장이 무너진다. 사람이 어찌 이렇게도 더러울수가 있을까리해가 안된다.너무도 화가 나서 몇 날 며칠을 새벽 세시쯤 시작해서 해가 떴다지고 달이 뜨고 그래서 어두워 보이지 않을때까지 닦아내고 쓸어내고 정리하고 가담가담 잔소리도 해가면서 애쓴 보람에 원상 복구를 어느 정도 시켰다. 물론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집이고 이미 고향에 아파트를 따로 마련해서 살고 있으니 우리가 거기에 다시 살 가망은 거의 없지만 내 사랑 내 꿈이 깃들어 있었고 우리 다섯식구가 지지고 볶고 진한 정을 나누면서 긴 세월을 같이했던 알뜰한 옛 보금자리가 그렇게 망가져 가는걸 그냥 보고 있으려니까 아기자기 살갑던 우리가족의 정마저 엉성하니 변해가는게 아닌가 싶어서 너무나도 가슴아픈 일이였다.예로부터 메토끼 잡으러 가면 집토끼가 잃어진다 했던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한국가서 돈 번다고 살림을 팽개치고 설쳐대는 사이 나는 돈으로는 도저히 살수 없는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은 것 같다. 지금은 동서남북 여기저기에 다 흩어져 버린 우리집 식구들, 십년 리별에 아예 습관이 되어 버려서 만나면 오히려 서로가 서먹해진 이상한 느낌! 다시 한데 모여 오순도순 화기애애하게 살던 그 옛날로 되돌아 갈수만 있다면 내가 무엇인들 아낄까? 되돌릴래야 되돌릴수 없이 된 지금에야 그 옛날의 소중함을 알게 되였으니 이보다 통분한 일이 다시 없는데 돈에 속아서 보이지 않는 건강까지 잃은점 또한 더더구나 통분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한국가기전에 그처럼 짱짱했던 내 몸이다, 기껏해서 어쩌다 걸리군 하던 경한 감기가 제일 무서운 병이였고 웬간히 무거운 물건은 겁없이 다루던 나, 지금은 껍질만 남았다. 열근쯤되는 물건도 아예 깔려 죽을듯이 무겁게 느껴지는 등신이 되었고 엄중한 풍습성관절염에 심한 골다공증과 빈혈에 저혈압에 영양부족에…그리고 나 스스로는 별로 못 느끼는건데 언니들의 말을 빈다면 난 또 심한 강박증 증세까지 보인다는가? 그새 그렇게 그냥 나는 사람이 아닌 돈버는 기계로만 산 것이였다.귀국후 일년 반 동안을 북경 청도 흑룡강의 여러지역과 여기 연변지구까지 많이 돌아다니면서 새삼스레 느낀건데 우리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신 나게 한가하게 놀면서도 잘먹고 잘 살고 있는것 같다. 어디를 가도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넓은 공터나 이름모를 어느 광장이나 운동장같은 그런 곳엔 아침저녁으로 늘 숱한 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고 신체 단련을 하고 그렇게 시름없이 신 나게 노는 사람들 천지다. 거기에 비해 크고 작은 공원에 아파트단지마다 있는 작은 휴식터에 간단한 체육시설이나 기구들이 널려있는 한국이지만 누구나 먹고살기 바쁜 한국인들이라 그런 곳에서 한가하게 춤이나 추고 그네타고 있는 모습들을 난 본적이 없다.그렇게 중국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인의 생활리듬에 물 젖은 탓이였던지 지금와서 생각하면 굳이 그렇게 악을 쓰고 일하지 않아도 되였을 것을 하루라도 놀게 되면 큰 죄라도 짓고 있는듯이 난 늘 불안했던것 같다. 그래서 거의 십년 세월 여관의 청소아줌마로 일했던 내가 휴식한 날짜는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영 아파서 도저히 일할수가 없는 그런 날에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그냥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고자고 또 자고 저녁부터 다시 새벽까지 자고자고 또 자고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서 그 다음날 머리를 들 수 있는정도 다리를 끌지 않고 걸을수 있는 그런 정도면 다시 일을하고….그렇게 보낸 세월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십년이나 되였으니 내 몸이 쇠덩인들 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은행에 저금이 늘어나는 재미에 빠져서 몸이 썩어 가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지난해 삼월 중순의 어느 날, 내가 이러다가 앉은뱅이가 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다리가 갑자기 심하게 아파서 화장실도벽을 밞으면서 기어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금산은 산을 쌓아 놓은들 내가 걸음도 못걷는 병신이 되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몇 번이나 전전긍긍을 하면서 미루어 왔던 귀국을 갑자기 결심하게 된 나였다. 이제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집에가고 싶었다. 아프고 보니 그처럼 목숨 같던 돈이 원쑤같았다. 그립던 내 식구들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그냥 한국에서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나의 귀국은 그렇게 갑자기 이루어졌고 귀국과 함께 열심히 벌어 모았다고 여겼던 “큰돈”도 실감이 나지 않게 여기저기 반년도 되기전에 다 날아나 버렸다. 결국 출국전이나 똑같이 난 또다시 빈털털이가 된 것이다. 돈이란 돌게 생긴 물건이라서 아무리 벌어도 손에 남아 있는 법은 없다고 했던가? 그것이 누구의 명언인지는 몰라도 진짜로 100%진리임을 실감했다. 이리 될줄 내가 미리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왜 그 긴 세월 제몸을 혹사하며 기를 써 왔을까? 실로 후회막급이다.그렇게 내딴엔 대단히 적시적이고 명지한 결심이고 행동이였다고 여겼던 나의 귀국,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심심히 느끼건대 지금 남아 있지도 않고 이미 다 없어져 버린 돈을 다 끌어모아 처넣어도, 아니 그보다 백배 더 되는 돈을 처넣는대도 목숨보다 더 소중했던 많은 것들은 이미 되돌릴수 없이 나한테서 영영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아, 그리운 옛날이여! 소중했던 내 건강이여!!!!돈에 미쳐서 그리 허망하게 잃어버리기엔 너무도 아깝고 아픈 내것들이였건만.../훈이
    • 독자기고
    2012-09-13
  • 중국에선 흙만 파먹다가 왔습니다.
    "중국에는 이런것이 있습니까"내가 한국에 가서 제일 많이 받아본 질문이다.몇 십년 동안 막혔던 국문이 열려서 사회주의 나라란 그냥 머리에 뿔난 빨갱이들만 사는줄로 알았던 한국인들의 눈에 뿔나지 않은 우리들이 신비하기도 했으리라. 물론 정치인들의 잘못된 오도로 그렇게 되었다고는 생각되지만, 한국인들은 유난히도 자아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인것 같다. 갑자기 그많은 교포들이 한국에 들이닥치니까 아마도 어려웠던 한국의 6~70년대를 상상했을까, 그냥 그렇게들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교포자신들이 알다싶이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지 않는가?그냥 인간이 하도 많은 나라여서 우리같은 중노년들이 일자릴 찾기가 한국보다 어려우니까 고생만 꺼리지 않는다면 아직은 일할 수 있는 나이에 한국에가면 돈벌기 하나만은 참 좋더라.그런 생각에 몰려올 뿐인데…….온양온천의 어떤 일식회집에서 일할 때다. 30대 초반의 홀써빙 김씨와 50대 초반의 주방장 채씨가 참이슬 소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자가 저래도 되나 싶었었다. 그래서 손님상에서 얼마 마시지 않고 남아 나오는 소주는 얼마든지 있는터에 주방장 언니하고 김씨는 일할때를 제외하고 거의 머리 맑은 날이 없이 지냈다. 술이라면 원쑤보다 더 싫어하는 난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그들이 보기엔 그게 아닌듯, 어느 날 써빙 김씨가 나한테 묻는다."중국에 소주 있어요" 이런!? 천만 뜻밖의 질문이어서 난 조금 당황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요것이 날 얼마나 무시하는 질문 인지는 알것 같았다. 중국에서 소주 구경도 못했으니 소주가 좋은줄 모르지, 그렇게..... 한심해서 조금 뜸을 들였다가 내가 되물었다."김씨는 제갈량이 누군지 알고 있소? 조조, 류비, 관운장. 장비는?""삼국지 인물들이 아닌가요?""그래 맞소, 중국에는 말이요 그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두강”이라구 하는 유명한 술이 있소, 그뿐이 아니구 모태주, 분주, 오량액, 북경얼궈터우, 북대창, 그렇게 다가 역사가 몇 천년에서 적어도 몇 백년되는 중국의 명주들을 다 세려면 아마두 며칠이 걸려도 모자랄껄! 술 좋아하는 김씨가 원래는 중국술을 마시면 더 짱일텐데." 아직 100년 역사도 되지 않는 참이슬을 세상 제일의 소주로 생각하는 김씨한테 역사가 깊은 명주들을 들이대니까 말문이 막히고 기분도 많이 나빴으리라. 그래서인가 김씨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다가 그만둔다. 믿든가 말든가 그냥 그렇게 그녀의 입은 막은 셈인데 그후부터 김씨는 나를 유난히도 미워했었다. 중국언니 아는척을 많이 한다. 있는척도 한다. 잘난척도 한다. 그렇게 자꾸 가게 식구들 앞에서 나를 까주기가 일쑤고.. 주방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 그것도 중국언니 사발깨는 소리라고 사장님께 일러바치기도 하고….그러니까 날 삼척으로 모는 판이었다. 한국사람들이 누구를 왕따 시킬때 필수로 하는 조건 즉 있는척, 아는척, 잘난척!뭐 나는 별로 잘난척한게 아니고 그냥 있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도 그들의 생각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어처구니였던지 하도 어려워서 한국나와 버는 주제에 삼척까지…. 그쯤으로 여기는지 그렇다고 그들의 덜미를 일일이 낚아채서 중국에 데려다가 눈깔이 뒤집히게 만들수도 없고….그럭저럭 힘든 그해 여름을 그 가게에서 보내고 난 다른 일자리를 찾아서 경북의 어떤 두메에 모텔 청소아줌마로 갔었다.사장님은 60대 초반의 지방 유지인데 전에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국가 유공자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세월에 어렵게 살아서 공부는 많이 못했었던 모양이었다.그 사장님이 또 날 우습게 보아서 세탁기는 쓸 줄을 아느냐? 전기 밥솥은? 그러루한 이상한 질문을 자주 들이 댔었다.어느 가을날이었다. 사장님께서 친구들과 함께 마을의 냇가에서 손가락 굵기의 작은 물고기를 두근정도 잡아 왔었다. 중국에서 하도 배불리 먹다가 간지라 나는 그게 눈에 들어 오지도 않는데 그는 그것도 별미라고 밖에 있는 하우스에 술상을 차려놓고 친구들과 둘러앉아서 한편으로는 큰돌 세 개 고여놓고 장작불 지피고 직경이 5-60센티되는 옛날 솥뚜껑을 그위에 엎어 놓고서 물고기를 굽는다. 물론 그 별찬에 하나밖에 없는 일꾼인 나도 불렀었는데 구운물고기새끼를 소금에 찍은 술안주에 밥이라 비린내 나서 먹기도 싫지만 그런대로 사모님과 함께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서 구워주는 고기를 받아서 먹었다. 가뜩이나 작은 물고기가 솥뚜껑에 더러는 살이 달라 붙어서 뼈뿐이고 먹을게 없지만 그런대로 인사치례는 해야 할것 같아서 맛있다고 했더니 사장님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은듯이“중국에서 이런걸 먹어 보았나?” 또 그런 한심한 질문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고 있는지 알고 있으라는 것도 되리라. 아 참으로 기분이 개떡 같았다. 사람을 알기는?!! 요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데서 저 버르장머리를 좀 고쳐는 놓아야 할텐데 싶어서 난 조금 궁리하다가 내 뱉았다.“언제요? 구경두 못했는디, 쌀밥두 한국와서야 먹어봤니더!”그말에 모두들 눈이 화등잔 같이 커지고 사장님은 원래 기다리던 답이라 의기양양해서 그것 봐라는 식으로 어깨까지 들썩이는데 내가 한마디 덧붙였다.“중국에 있을 때는 그냥 흙만 파먹구 살다가 왔씸더!”그 말에 모두들 제정신들이 들어서 박장대소가 터졌다.“아이구 나 죽는다. 이모는 차-암 공부 많이 한 사람같아! 어쩌면 그렇게 우스개두 신통할까?!”그말에 난 또 시침을 딱 떼고 한마디 더 했다. “공산국가두 사람사는 곳이구 우리두 똑같은 하늘 아래에서 왔는데 우리 사장님은 저런 무식한 질문을 자주 합니다요. 그래서 화날때가 많습니다.” 그 말에 사장님의 얼굴과 목덜미는 물론 반 벗어진 대머리까지 댓바람에 시뻘건 돼지간 색깔이 되는 것이었다. 모두가 아시다싶이 총명한 사람을 보고 멍청이 바보라고 조롱하면 그 사람이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롱을 한 사람과의 친근 정도를 나타내서 기분 좋아하지만 진짜 바보를 바보라고 하면 큰일 난다. 그리고 바람둥이 아닌 사람을 바람둥이라고 하면 또 그냥 로맨틱하다 낭만적이다 뭐 그쯤으로 해석이 되어서 기분 나쁜줄을 모르지만 진짜 바람둥이를 바람둥이라고 하면, 원래 남한테 알리지 못할 구린 구석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터에 어떻겠는가? 그게 그러니까 그런 도리라 하겠다. 가방끈은 짧지만 사장님은 어찌하다 보니 베트남전에서 용케 목숨을 부지해서 돌아온고로 지방유지로 뽐내면서 유식한 냄새를 많이 풍기고 살지만, 사실은 무식쟁이라 무식하다는 말 자체를 제일로 꺼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를 그 많은 친구들 앞에서 귀한 물고기 새끼까지 구워 먹여 놨더니 은혜도 모르고 무식하다고 개망신을 시켰으니 어땠겠는가?하지만 그 사장님은 사람이 좋은 탓이였던지 아니면 나 스스로의 감각대로 내가 누구보다 일을 더 잘해서였던지 난 잘리울 각오까지 단단히 하고 그날밤 행장을 다 꾸려놓고 기다리고 있었건만 그일 때문에 날 자르지는 않았고 그 후부터는 또 그런 한심한 질문을 절대로 못하게 완전히 버릇이 고쳐졌었다.사실 우리 교포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국내에서 그렇게 못 사는 이들이 거의 없다. 한국에는 집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우리는 저마다 아파트 한채씩은 기본이요 좀 더 잘사는 이들은 아파트가 몇 개씩 되지 않는가? 게다가 먹는 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먹고 있는게 우리다.지난해 귀국해서 나는 참말로 그걸 많이 느꼈었다. 아! 먹을것이 너무 흔해서 쓰레기 취급을 하는구나. 그렇게…..가을이 돌아오니 조선족지구에 배추들이 시장마다 들어와서 쌓이는데 한근에 40~60전, 데댓근 되는 배추 한 포기에 기껏해서 2~3원(한국돈으로 4~500원)정도다, 게다가 그 아까운 겉잎들을 하얀 속이 나올때까지 발가서는 배추겉잎이 산더미를 이룬다. 한국 같으면 누런 떡잎까지 다단으로 묶어서 한단에 5000원씩 파는데 중국에선 그것이 가을철이면 엄청난 골칫거리요 그래서 누군가 혹시 그 겉잎들 속에서 부드럽고 좋은것들을 골라 시래기감으로 챙기려고하면 장사꾼들이 커다란 주머니까지 갖다가 안겨준다. 하지만 그렇게 챙기는게 1%도 안된다. 그걸 보니까 난 또 귀국하기전해에 있었던 한국의 배추대란이 생각났다. 태풍에 배추농사가 쫄닥해서 배추 한 포기에 만여원! 중국돈으로 6~7십 원 심지어는 백여원씩! 나중에6000원짜리 중국 배추를 들여다가 한사람당 세포기씩만 파는데 어두운 새벽부터 마트에 긴 줄을 서서 그 배추 세 포기를 사겠다고 부스너털면서 기다리다가 그것마저 동이나서 난리들을 했고……하지만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중국상품은 인기가 없다. 중국에선 저질 상품을 그냥 가짜라고 말하지만, 한국에선 중국산이라고 한다. 그게 오히려 가짜나 짝퉁이라 하기보다 더 저질 상품이라는 뜻과 가깝게 통하니까. 물론 그만치 얌치까진 일부 중국의 장사치들이 저질상품생산으로 중국의 이미지를 흐려놓았으니 한국인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그래서 모두가 중국산을 싫어하는데 그래도 100%가 일률로 다 나쁜건 아니건만 어떤 이들은 그냥 덮어놓고 중국산이라면 부정부터 한다.내가 불광 어느 모텔에서 일할땐데 밥하는 언니가 또 그런 사람이었다.“난 도 중국산을 엄청시레 싫어한다고마.”그렇게 늘 우리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그 언니는 배도 꼭 한국산으로만 먹는데 비싸니까 하나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조금씩 쪼개서는 며칠씩을 먹으면서도 늘 그 소리다.그래서 내가 과일같은 건 중국산이 싸고도 괜찮을건데 했더니 한국은 일년 사계절 기후가 뚜렷해서 한국산 과일이 엄쳉시레 더 맛있다는가?그 말에 내가 중국은 하루 동안에도 이곳 저곳에서 사계절 기후가 뚜렷이 다 나타나는 큰 나라이고 지금은 그런 곳들에서 산출되는 과일들이 바로바로 비행기로 운송되니까 사계절 내내 햇과일을 먹을수가 있다고 했더니 역시 나를 “삼척”을 하는 미운 존재로 보는가 그 표정이 몹시도 시큰둥했었다.배 한 개에 사오천원! 그게 어디 궁한 백성이 사먹을 과일 가격인가 말이다. 그 돈으로 내가 출국하기전의 시세로 한다면 중국에선 배 한 박스를 사고도 남을 것인데…..아 한국가서 8년 세월에 나는 그래서 과일 하나 맘놓고 못 사 먹었다. 돈은 번다지만 그것 역시 중국에서는 큰돈이나 한국에서 먹고 싶고 입고 싶고 놀고 싶은걸 다 해결한다면 기본생활비에 해당하니깐 말이다.그러다가 귀국해보니 아 중국은 참말로 먹을것이 너무너무 흔해서 사람들이 귀하게 취급을 안 한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뭐든 없어지고 모자라고 그래야 귀한 줄을 아는데 중국은 땅덩이가 너무커서 혹시 어느 지방에 흉년이 든 대도 풍년든 곳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먹을것이 귀해질 일은 절대로 없는 나라이다,나도 출국하기전엔 그래서 중국이 이리도 풍성하고 넉넉한 줄을 잘 모르고 살았었다. 세상은 원래부터 그런거려니 그랬었다. 하지만 한국가서 8년을 지내고 나니까 완전히 눈이 뒤집힌 것이다.먹을것이 흔하고 싸니까 그냥 식당놀이만 하지 않고 제집에서 밥지어 알뜰히 먹으면 우리 부부의 한 달 식비가 한국돈으로 십만 원, 중국돈으로 5,6백 원 정도면 엎어 씌울 수 있도록 족하다. 우리 부부의 월급의 10%도 안되는 적은 그 돈으로 소고기 돼지고기 물고기 계란과 여러 가지 채소들도 골고루 다 먹을수가 있다. 한국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던가?그래서 난 지금 아주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 악을 쓰고 벌지 않아도 이리 편하게 배불리 먹고 잘살수 있는터에 왜 손이 발이 되게 그리도 미련했던고! 그래서 돈은커녕 병만 가득 지니고 귀국한 나다. 얼마나 더 잘먹고 더 잘 살겠다고 그리 악을 썼던지 스스로도 미련하게 느껴지고 이해가 안된다.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바다는 메울 수가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다 채울수가 없다고 했으리라. 그렇게 먹지도 입지도 쉬지도 않고 악을 쓰고 벌었으나 돈은 또 번것만큼 쓸 일이 그냥 있는데다 바라보는 인간들도 많아서 영원히 손에 남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난 또다시 빈털털이로 되었지만 그냥 퇴직금을 타서 먹고 살기가 구차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먹을것이 싸고도 흔한 중국에서 산다는 것이 참말로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그리고 우리 중국에 먹을것이 이렇게 지천인줄 모르는 한국인들의 그 어처구니 없는 질문들이 생각날 때마다 오히려 그들이 불쌍한 생각이 든다. 이런 구경을 못해 봤으니까 자기들이 최고로 잘 사는줄 아는 것이지../훈이
    • 독자기고
    2012-09-12
  • 백청강 직장암 초기 진단
    MBC '위대한 탄생' 우승자인 가수 백청강(23)이 직장암 초기인 것으로 확인됐다.소속사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직장 내 선종 제거 수술을 받은 백청강이 직장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며 "의료진은 적출한 선종의 일부에서 암세포를 발견했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백청강은 몇개월 전부터 배에 이상 신호를 느껴 여러 곳의 병원에서 검사받은 결과 직장에 4㎝가량의 선종을 발견해 제거 수술을 받았다. 소속사 관계자는 "현재 백청강은 선종이 발견된 직장의 일부분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후 회복 중에 있다"며 "완치까지 회복하고 앞으로 건강에 유의하면 활동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선족 출신인 백청강은 지난해 '위대한 탄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가수로 데뷔해 최근까지 미니음반 '올 나이트(All Night)'를 발표하는 등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 연예·방송
    2012-09-11
  • 법무부, 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센터 운영
    법무부, 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센터 운영 - 9월 17일부터 합법체류 등록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 - 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본부장 이창세)는 전국 체류지출입국관리사무소(출장소 제외)에 ’12.9.17.~’12.11.30.(75일 간) 한시적으로『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센터』를 운영하기로 하였습니다.  이번 조치는 ’12.1.1.부터 입국 외국인에 대한 지문‧얼굴정보확인제도 시행으로 신원불일치자의 체류 동요(動搖) 및 불법체류자로 전락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외국인 체류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입니다.  자진신고자(강력범, 입국규제자 등은 제외)는 원칙적으로 출국 후 자국에서 불일치된 신원이 확인되면 6개월(입국규제기간) 후 다시 대한민국에 입국을 할 수 있습니다.  법무부는 앞으로 지문‧얼굴정보확인제도를 귀화허가 및 체류허가 신청 시에도 적용하여 적발될 경우에는 강제퇴거하고 10년 간 입국금지 조치할 예정입니다. □ 배 경 ○ 법무부에서 금년 1월부터 국익위해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하기 위해 입국하려는 외국인에 대해 지문‧얼굴정보확인제도를 시행한 결과, - 금년 8월 말까지, 과거 국내에서 체류했을 당시의 인적사항과 다른 여권으로 입국하려다 적발된 외국인(신원불일치자)은 3,000여 명이고 체류 중 신원불일치자로 확인되어 강제퇴거된 외국인은 380여 명임 ○ 국내 체류외국인 중 신원불일치자가 재입국이 거부될 것을 우려하여 출국하지 않음으로써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있음 ○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이들에 대한 소명 기회를 부여하여 신원사항을 명확히함으로써 외국인 체류질서를 확립할 필요 있음 □ 주요 내용 ○ 금년 9.17.~11.30.(75일간) 한시적으로 전국 체류지 사무소(붙임 4 참조)에 『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센터』를 설치하여 자진신고를 접수함 ○ 자진신고 대상자는 ‘12.9.11. 현재 국내 합법체류 중인 등록외국인으로서 현재와 과거 국내 체류 당시의 여권상의 인적사항이 서로 불일치하는 자임 - 다만, 현재 입국규제 중인 자, 과거 형사범으로 강제퇴거된 전력이 있는 자, 국익위해 우려자 등은 자진신고 대상에서 제외함 ○ 자진신고자에 대해 출국명령서 및 출국확인서를 발급하여 출국조치하고 출국 6개월 후 자국에서 불일치된 신원이 확인되면 사증을 발급하여 재입국을 허용함 □ 향후 계획 ○ 법무부는 앞으로 귀화허가 및 체류허가 신청 시에도 ‘지문․얼굴정보확인제도’를 적용하여 적발될 경우에는 강제퇴거하고 10년 간 입국금지할 예정임 붙임 1. 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 처리방안 1부. 2. 신원불일치자 등 출국 및 재입국 흐름도 1부. 3. 관련 통계 1부. 4. 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센터 현황 1부. 끝. 【참고 자료】 1. 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 처리방안 □ 자진신고제도의 주요 내용 ○ 자진신고 대상자 - ’12.9.11. 현재 국내 합법체류 중인 등록외국인으로서 현재와 과거 국내 체류 당시의 여권 상의 인적사항이 서로 불일치하는 자 - 다만, 현재 입국규제 중인 자, 과거 형사범으로 강제퇴거된 전력이 있는 자, 국익위해 우려자 등은 자진신고 대상에서 제외 ○ 자진신고 기간 및 장소 - 기간 : ’12.9.17.~ ’12.11.30.(75일 간) - 장소 : 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센터(체류지 사무소) ○ 자진신고 방법 - 해당 외국인이 ’12.9.11. 현재 등록한 체류지 사무소에 직접 출석하여 신고(대리 신고 및 등록지 사무소 변경신고 불가) □ 신원불일치자 출국 및 재입국 절차 ○ 자진신고자에 대해 출국명령서 및 출국확인서를 발급하여 출국조치함 - 다만, 65세 이상 고령자, 결혼이민자 중 임산부 또는 미성년자녀 양육자 등 명백히 인도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추후 신원소명을 전제로 출국명령 후 1년 간 출국기한(입국규제) 유예 ○ 출국 6개월(입국규제기간) 후 자국에서 전자여권, 신거민증 등으로 불일치된 신원이 확인되면 사증을 발급하여 재입국 허용 - 다만, 현지신고자*는 자국 주재 대한민국공관을 방문하여 국내 자진신고자와 동일한 방법으로 신고하여 불일치된 신원이 확인되면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사증을 발급하여 재입국 허용 (현지신고자) 최종 출국 당시 합법체류 등록외국인으로 정상 출국하여 현재 해외에서 체류 중인 자로서 최종 출국 당시와 그 이전 국내 체류 당시의 여권 상의 인적사항이 서로 불일치하는 자 ※ ’12.9.11. 이전까지 실제 성명으로 입국거부되어 송환된 자 포함 (신고 기간) ’12.9.17. ~ ’13.3.31.(현지일자 기준) (신고 장소) 자국 주재 대한민국공관(대사관‧총영사관) □ 단속된 자에 대한 조치 및 향후 계획 ○ 신원불일치자가 자진신고기간 중이더라도 단속되거나 자진신고기간 이후에 적발된 경우에는 강제퇴거명령 및 10년 간 입국금지 ○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앞으로 등록외국인을 대상으로 귀화허가 및 체류허가 신청 시에도 ‘지문‧얼굴정보확인제도’를 적용하여 정밀심사를 실시할 예정 4. 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센터 현황 연번 신고 센터 전화번호 주 소 1 서울출입국 02-2650-6311 서울시 양천구 목동동로 121 2 부산출입국 051-461-3091 부산시 중구 충장로 14 3 인천출입국 032-890-6405 인천시 중구 서해로 213 4 수원출입국 031-695-3813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반달로 39 5 제주출입국 064-723-3494 제주도 제주시 임항로 277 6 대구출입국 053-980-3512 대구시 동구 동촌로 71 7 대전출입국 042-220-2111 대전시 중구 목동길 150 8 여수출입국 061-689-5518 전남 여수시 무선로 265 9 양주출입국 031-828-9301 경기도 양주시 평화로 1475번길 23 10 울산출입국 052-279-8001 경남 울산시 남구 매암동 139-16 11 광주출입국 062-381-0312 광주시 서구 화정로 196 12 창원출입국 055-240-8612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대로 166 13 춘천출입국 033-244-7351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사암길 12 14 청주출입국 043-230-9032 충북 청주시 흥덕구 비하로 12번길 52 15 전주출입국 063-245-6164 전북 전주시 덕진구 호성로 213 ※ 해당 외국인이 ’12.9.11. 현재 등록한 체류지 사무소에 직접 출석하여 신고하여야 합니다.(대리 신고 및 등록 사무소 변경 신고 불가)
    • 외국인· 출입국
    2012-09-11
  • 법무부, 위명여권자 신원확인시 재입국가능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본부장 이창세)는 전국 체류지출입국관리사무소(출장소 제외)에 9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75일간 한시적으로 '신원불일치자 자진신고센터'를 운영한다고 10일 밝혔다.이번 조치는 지난 1월 1일부터 입국 외국인에 대한 지문·얼굴정보확인제도 시행으로 신원불일치자(위명여권)의 체류 동요(動搖) 및 불법체류자로 전락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외국인 체류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다.자진신고자(강력범, 입국규제자 등은 제외)는 원칙적으로 출국 후 자국에서 불일치된 신원이 확인되면 6개월(입국규제기간) 후 다시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있다.법무부는 앞으로 지문·얼굴정보확인제도를 귀화허가 및 체류허가 신청 시에도 적용하여 적발될 경우에는 강제퇴거하고 10년간 입국금지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65세 이상 고령자, 결혼이민자 중 임산부 또는 미성년자녀 양육자 등 명백히 인도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추후 신원소명을 전제로 출국명령 후 1년간 출국기한(입국규제)을 유예한다현지신고자는 자국 주재 대한민국공관을 방문하여 국내 자진신고자와 동일한 방법으로 신고하여 불일치된 신원이 확인되면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사증을 발급하여 재입국을 허용할 방침이다.현지신고자는 최종 출국 당시 합법체류 등록외국인으로 정상 출국하여 현재 해외에서 체류 중인 자로서 최종 출국 당시와 그 이전 국내 체류 당시의 여권 상의 인적사항이 서로 불일치하는 자를 말한다.(9월 11일 이전까지 실제 성명으로 입국 거부되어 송환된 자 포함) 신고 기간은 9월 17일~2013년 3월 31일(현지일자 기준)이며, 신고 장소는 자국 주재 대한민국공관(대사관·총영사관)이다.신원불일치자가 자진신고 기간에 단속되거나 자진신고기간 이후에 적발된 경우에는 강제퇴거명령 및 10년간 입국 금지된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앞으로 등록외국인을 대상으로 귀화허가 및 체류허가 신청 시에도 ‘지문·얼굴정보확인제도’를 적용하여 정밀심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뉴스홈
    2012-09-11
  • 조선족에 대한 단상
    요즘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갈 때 가장 많이 들르는 곳 중에 한 곳이 선양이다. 인구 4백만의 동북지역의 중심으로 유난히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옛 이름은 봉천(奉天), 만주어명은 무크덴(Mukden)이라고 한다. 이 도시는 일찍이 고구려의 영토에 속해 있다가 다시 당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심주가 되었다. 그 후 발해에 속했다가 요·금 시대에는 동경로, 원대에는 선양로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도 선양은 중국의 변방에 위치해 수많은 나라들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선양에는 조선족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온다. 선양 근처 씨족마을 본계현 주변에 사는 2천명의 한족과 만주족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본적에 기재된 족속(族屬)을 조선족으로 바꿔달라고 한 일이 있다. 중국은 대다수 한족을 제외하고도 55개의 소수민족이 있어 자신이 어떤 민족인지를 등록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동북에서 주류인 한족과 만주족으로 살던 사람들이 굳이 조선족으로 바꾸려한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있게도 이들이 모두 박(朴)씨인데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조선에서 끌려온 후손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에서 박씨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박씨는 외래 귀화족이 없이 모두 박혁거세를 시조로 삼는다는 데에서 이들이 조선에서 왔음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 기록에서도 병자호란으로 인해 수많은 양민들 뿐 아니라 소현세자 마저 청국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노예처럼 부려지던 조선인들은 만주족으로 가장하기도 했고, 혁명기에는 한족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모두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핍박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이 변하자 스스로가 조선족임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본계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선족임을 증명하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숨겨놓았던 족보 등을 증거물로 제출했다고 한다. 그동안 조선족임을 감추기 위해 우리말과 풍속은 잊었지만 후손들에게는 자신들이 조선에서 왔음을 가르쳐왔다고 한다. 요즘처럼 역사논쟁이 치열한 때는 조선족이라는 것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선양을 포함한 동북의 역사는 모두 조선족들과는 무관한 ‘중국역사’의 일부라고 집집마다 교양문건을 하달해 공부하라고 한다니 말이다. 물론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 사람들이 고구려의 후손들이라기보다 조선시대 유민은 분명하다. 하지만 선양을 포함한 중국의 동북방은 만주족을 포함한 예맥족의 활동무대 였음이 분명하다. 중국에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자신들의 역사도 국경선으로 나뉘어 버린 오늘날의 정치상황이 조선족들을 더 서글프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야 중국국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노동하는 조선족을 대하는 우리에 태도를 보면 더 말해 무엇 하랴?/이상엽
    • 화제뉴스
    2012-09-11
  • 오빠는 갔다.
    오빠가 갔다그것두 우리마음속에 긴 슬픔과 한숨만 남겨둔채로 말이다사는게 왜 이다지도 복잡한지 종잡을 수가 없다그의 말처럼 내가 멍청한건지 아님 단순한건지?허나 그의 분노처럼 내 맘속에도 똑같은 분노가 들어있고그처럼 그말들을 마구 내뿜고 싶었지만 훗날 생각하니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뭐가 옳구 그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눈앞에 보이는 대로 다 판단할 수 없지만그렇다고 내 맘에 둔 그 분노 그의 말처럼 마구 내뿜지 못하는 것에안타깝구 성질나기만 한다이래서 내가 늘 스트레스를 받고 풀지도 못하고 사는 듯 싶다하고 싶은 말들 가슴에 차곡차곡묻어만 두니 말이다한국온 지 팔년. 그동안 나 여직껏 해보지 못하고겪지 못했던 걸 한꺼번에 다 해 본 듯싶다인간들은 다 제 생각만 하고 사는 듯 싶다갈팡질팡하는 오빠의 마음땜에 더 미칠것 같다또한 그런 그의 맘을 바로 잡으려 애쓰는 그의 모습이더욱더 불쌍하고 안타깝기만 하다나도 눈있고 귀가 있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만큼미치는 생각 역시 그 못진 않을 것이다단지 표현의 차이일 뿐이라 생각한다못난 내오빠 땜에 죄없는 그마저 이런 봉변을 당하고속을 태워야 한다는 것에 맘이 아프다더욱이 그런 아들 땜에 사십여 년을 늘 하루같이 송곳방석에앉듯이 안절부절 못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불쌍하다못해 이젠 자지러지게 아프게만 느껴온다사귀다 사귀다 한심한 여자까지 사귀여갖구몇 달만에 나타난 것이 임신 칠 개월 넘어서 애 낳겠다고나타난 그 여자 땜에 우리집은 말이 아니다진짜 맑은 하늘에서 떨어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응당 좋은 일이구 기뻐하구축하해야 될 일이지만오로지 오빠한테나 우리한테는 그것이 더 불행으로 다가왔다이젠 칠십을 넘기는 부모님한테 그 부담이 고스란히안겨지니 말이다자립을 하고도 남을 나이에 제 몸뚱이 하나조차 제대로 건사 못하는오빠가 그렇게 사악한 여자를 만나서 끝을 낸다는 판에이런 일이 벌여졌으니 어찌 황당하지 않을수가 있을까?전생에 뭔 죄를 져서 이렇게 사냐구 어머니는 낙누하지만당금 태어날 애를 생각하면서 어쩔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같기도 하다순진하고 단순한 오빠가 불쌍하기도 하지만넘 한심하기도 하다오빠를 놓고 이어지는 나와의 구설수땜에 어머닌 형제의가 다 끊어지게생겼다면서 그기에 한술 더 뜨신다모든게 내탓 같기도 해서 그러시는 같아서 더 맘이 아팠다진짜 가운데서 속이란 속은 다 태우면서 오빠하구 지냈지만돈을 제대로 안 준 그 이유로 내가 얼마나 압력을 받구시달림을 받는지 그도 알지 못할 것이다오빠한테서 받는 것보다 어머니한테서 받는 그 말속의가시가 더 아프게 내 맘을 찔렀다나로 인해 그 화풀이가 다 어머니한테 돌려진다고 생각하시니많이 화나신 듯싶다돈을 아예 안준 것도 아니다소소하게 쓴 돈이 얼마인지 모른다물론 오빠한테 말이다뭉치돈을 안 건네주니 그 돈은 빛이 하나도 없는거다사는 게 아무리 정정해도 돈이 더 큰 듯 싶다개떡같은 세상살이 참 힘들다지겹다, 눈물겹구 억울하다그의 말처럼 내가 야무지지 못하구 똑 부러지지 못해서내가 이렇게 한심한 꼴두 당하는 듯 싶다이모든게 내 팔자일까?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아픈 현실 역시 내 운명일까?그렇다면 애써서 공들은 나의 노력은 다 헛된 것일까?휴.... 한심하고 억울하다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알쏭
    • 독자기고
    2012-09-11
  • 내 고향 평강벌
    평강벌 곡창에 아침해 찬란하고해란강 맑은 물결 옥답으로 흘러드네금파은 파 넘실넘실 아름다운 내 고향산좋고 물맑아 꽃구름 피어나네아- 아! 사랑스런 내고향서성향이 여양지바른 언덕 아래 과일꽃 만발하고뒷동산 목장에 소와 양떼 살쪄가네............................................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노래입니다.노래말처럼 아름답고 살기가 좋았던 내 고향-60리 평강벌의 첫동네로 소문났던 화룡현 서성향! 지금은 스산하기가 이를데 없이 변모했습니다. 우리가 다녔던 중소학교와 한족소학교 합해서 전에는 학생수가 수천 명에 달했었는데 지금은 중학교 청사에 모아놓은 세학교의 학생수가 겨우 40여 명밖에 안된답니다. 터전을 버리고 우리민족들이 고향을 많이 떠나서 논농사 지을줄 모르는 한족들이 드문히 들어 와 터를 잡았는데 벼농사로 이름높던 평강벌 논을 개답해서 옥수수 콩을 심은데도 있었습니다. 아 한 두 마디로 이루 다 말 할수가 없습니다. 아주 옛 모습이 다 망가져 버려서 가슴만 아픕니다.한국바람에 우리의 터전들이 삭막해 갑니다. 한국 가서도 돈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하면서도 무시나 당하고 하건만, 터전을 지키면서 가까운데서도 그만한 힘과 노력을 들이면 얼마든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도 왜 기어이 한국가야 하는줄 아시는지 안타깝습니다.연길시의 그 많은 건축공지들에서 수많은 외지 사람들이 돈을 벌어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눈엔 연길이 한국만치 돈벌기가 좋은 곳 아닐까요?! 우리동포들 한국가서도 그냥 그러루한 일들을 해서 돈을 버는데 여기서보다 더 많이 벌지도 못하거니와 이국 타향이라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은 배로 많습니다. 한데도 집 가까이에선 그런 일하는게 창피한 건가요?! 돈 버는데 창피한게 어디 있습니까?내나라 내고향 내집에서 따뜻한 밥을 해먹고 속이 든든하게 떳떳하게들 돈을 버는게 한국가서 속이 한줌만해서 눈치살이나 하면서 조마조마하게 일해서 돈버는 것보다 훨씬 스트레스도 적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우리고향이 다 망가져 간 후에 금산은 산을 쌓아놓고 산들 무슨 재미가 있을까 가슴 아파서 이렇게 바가지 좀 긁어 봤습니다./훈이
    • 독자기고
    201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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