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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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제남 네 쌍둥이 함께 예대시험에 참가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2월 13일 오전, 네 자매가 중국 산동예술대학 무용과 시험현장에 나타났다. 자식들을 배동해 시험치러 온 학부모들도 이런 상황은 보기 드물다며 핸드폰으로 네 쌍둥이를 사진 찍는다. 네 쌍둥이는 중국 산동성 하택에서 왔으며 올해 15살, 2월 8일 부모의 배동하에 제남에 예술시험 치러 왔다. “이 애들의 이름은 기억하기 쉬워요, 성은 신씨, 각각 빙, 청, 옥, 결이라고 불러요”, “솔직히 네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고 경제압력도 컸지만 동시에 행복했어요. 우리 애들은 모두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요”라고 어머니 양평이 말했다. 네 쌍둥이 자매는 8살 때부터 무용을 배웠다. 양평은 “빙청옥결”이 어려서부터 비교적 좋은 무용재능을 보여주어 아이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선후로 그들을 북경, 제남 등지의 전문무용학교에 보내 학습시켰다. 양평은 “첫해에는 제가 동반해 다녔는데 후에 조금 크자 그들 넷을 서로 돌보며 독립적으로 생활하게 했어요”라고 말했다. 맏이 신빙은 네 아이들 가운데서 가장 듬직하다. 신빙은 “우리 넷은 한패가 되니 홀로 집을 나선 아이들에 비해 좋아요. 서로 돌볼 수 있으니까요”라며 둘째가 성미가 좀 드세고 셋째가 비교적 유모아적이며 넷째가 가장 활발하다고 말했다. 자기의 꿈에 대해 둘째 신청은 “비록 무용은 배우기 힘들지만 어려서부터 좋아했기에 계속 견지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빙청옥결”은 같은 예술대학에 입학해 함께 무용을 배우고 싶다며 “예술시험은 비록 어렵지만 우리는 신심이 있어요”라고 입을 모았다. “그애들 넷은 같은 대학교에 붙어 함께 무용을 배우고 졸업한 후 함께 무용학교를 꾸리겠다며 자매 넷이서 한명이 교장을 맡고 한명이 선생님을 맡으며 다른 한 명이 담임을 맡는 등 넷이면 능히 해낼 수 있다고 해요” 네 쌍둥이의 꿈에 대해 어머니 양평은 웃으면서 이는 아이들의 농담이라며 당분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전공과목 시험이라고 지적, 연후 문화과의 과외학습이 뒤따른다고 했다. “일대일의 과외학습 비용이 매우 비싸요. 괜찮은 강습기구를 찾아 그들을 마음 편히 시험을 준비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어머니 양평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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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 中 공안부, 성매매범죄 타격활동 포치
    [동포투데이 국제] 중국 광동성 동관 오락장소 매음현상이 폭로된후 공안부는 조사조를 현지에 판견한 한편 전국 매음활동과 매음활동 조직자와 경영자, 배후 보호자들을 중점타격하고 불법 오락장소를 법에 따라 처리할것을 전국 공안기관에 포치했다. 2월 9일부터 각지는 매음안건 1300여건을 조사처리하고 매음활동과 매음표현을 조직한 형사안건 181건을 수사했으며 범죄무리 73개를 파괴하고 혐의범 501명을 체포했으며 불법오락장소 2401개를 취체했다. 공안부 관계자는, 각급 공안기관은 동관음란문제 교훈을 깊이 섭취해 매음불법범죄 타격행동을 계속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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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 경기도, 해외투자 유치차 중국 방문
    김문수 도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해외투자유치 대표단이 24일부터 25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다. 경기도는 홍콩 이딩스얼 실업유한공사 투자유치와 상하이 디즈니랜드 방문을 위해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유영록 김포시장 등 13명으로 구성된 도 대표단이 중국 상해를 방문한다고 18일 밝혔다 . 이번 투자유치 방문 기간 동안 도는 24일 중국 상해 매리어트 호텔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유영록 김포시장, 순티에라이 홍콩 이딩스얼 실업유한공사(ED-SUN HONG KONG)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김포시에 호텔 투자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투자업체업인 이딩스얼社는 경기도 김포시 고촌물류단지에 8천만 달러를 투자해 부지면적 4,557㎡에 약 1천실 규모의 비즈니스 호텔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딩스얼社는 동탄신도시 세인트 캐슬(saint castle) 타운하우스를 건축, 분양하고 있으며, 중국 흑룡강성에도 호텔을 건립한 바 있다. 강현도 경기도 투자진흥과장은 “이번 김포호텔 투자유치를 통해 약 1천 개의 직접고용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중국인 등 증가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숙박난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유치와 별도로 도는 상하이 디즈니랜드 방문계획도 갖고 있다. 상하이 디즈니랜드는 약 10여 년 간의 논의 끝에 지난 2011년 4월 착공하여 2015년 말 완공을 앞둔 글로벌 테마파크다. 경기도 대표단은 이번 방문을 통해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추진경과와 디즈니랜드 완공 시 예상되는 파급효과 등을 살펴보고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는 USKR사업의 해법도 모색해 볼 계획이다. 이밖에도 도 대표단은 경기비즈니스센터 상해사무소를 방문하고, 현지 기업인을 면담하여 경기도와 중국 간의 경제교류 확대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경기도는 경쟁자이며 동반자인 상하이시의 눈부신 성장을 살펴보고 경제발전방안 수립에 참고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도는 올해 외국인 투자유치 목표액을 24억 달러로 설정하고, 연초부터 투자유치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는 3월에는 미주지역, 4월에는 독일 및 스위스 등 유럽지역을 대상으로 투자유치활동을 지속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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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 북한 청소년들 마식령스키장서 스키타기 ...
    북한 조선중앙통신사의 보도에 의하면 김일성종합대학교, 평양건축종합대학교, 평양제4소학교의 청소년들이 대중체육관광기지인 마식령스키장에서 스키타기 야영활동을 전개했다. 학생들은 호텔과 스키 타는 서비시 시설 등 건축들을 참관하고 천연적으로 형성된 스키장에 와 별다른 분위기를 체험하면서 흥분과 격동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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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 북한빙상곡예단 할빈에서 공연
    2월 15일 북한빙상곡예단이 할빈빙설대세계에서 관광객들에게 수준 높은 빙상곡예종목들을 보여줬다.<사진=중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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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 싱글이 좋은 이유
    미국의 인터넷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지난 주말 밸런타인데이(14일)를 맞아 싱글에 관한 편견을 깨기에 앞장 서고 있는 "싱글리즘"의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벨라 드파울로 UC 샌타바버라 교수의 주장과 함께 "과학적으로 입증된 싱글이 좋은 리유"를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각종 연구에서 싱글이 기혼자보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더 건강하다고 나타나는데 다음은 이 중 수긍할 만한 3가지 리유를 나열한 것이다. 첫째, 심장 건강에 좋다. 2006년 7월 5일 자로 게재된 "결혼과 가족 저널"(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에 따르면 8년간 중년남녀 9000여명을 대상으로 건강상태를 분석한 결과,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가장 낮은 사람은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들로 확인됐다. 이 기간 중 계속 싱글이였거나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는 그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재혼이나 리혼, 사별한 사람들은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현저하게 높았다고 한다. 둘째, 날씬한 몸매를 유지한다. 18~64세 남녀 1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싱글들은 기혼자나 리혼한 경력이 있는 사람보다 운동량이 더 많았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마찬가지 결과를 보였다. 이는 싱글이 기혼자보다 본인의 외모를 신경 쓰거나 자녀가 없기 때문에 자신 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4년간 호주에서 녀성을 대상으로 시행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이들의 일상 활동량은 결혼을 기점으로 현저히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는 2003년 "미국 예방의학저널"(American Journal of Preventative Medicine)과 2004년 "결혼과 가족저널"(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 2010년 "신체활동과 건강저널"에 실렸다. 셋째, 사회적 관계가 강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결혼한 친구들과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드파울로 교수는 "실제로 여러 연구를 통해 기혼자는 싱글보다 친구나 가족, 이웃들과의 관계에 소원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한다. 이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 커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결혼하면 자신의 형제자매와 연락이 뜸해지는 것도 관련 연구로 밝혀졌다. 결혼과 동거는 사랑과 관심이 오직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싱글은 친구나 형제자매, 부모와 감정적으로 더 많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2004년과 2012년 "결혼과 가족저널"(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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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 유엔 인권보고서: 북한정부 반인류죄를 범하고 있다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상황 국제조사위원회는 17일, 북한인권보고서를 발표해 북한정부를 엄히 질책하고 국제형사법정에서 관련 북한관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것을 건의했다. 이는 유엔에서 처음으로 발표한 북한인권 관련 종합성 조사보고서라고 중국신문망 등 중국 각 언론들이 18일 보도했다. 북한인민들 폭행을 당하고 있다 영국방송공사의 보도에 따르면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북한인민들은 “형용할 수 없는 폭행”을 당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인권침해에는 반인류죄가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17일 이 보고서에 대한 제네바주재 북한 외교관의 말을 인용, 이 보고서는 “위조”된 자료에 기초하여 씌어진 것으로서 서방국가들이 북한정권을 뒤엎기 위한 정치극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김정은을 기소할 수도 한편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최종보고서는 북한의 인권유린 행위를 반인류죄로 규정하고 조선노동당 제1서기 김정은을 그 책임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만일 북한이 인권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유엔 인권보장이사회가 제재를 가할 것이며 또는 그 책임인을 국제형사법원에 넘겨 처벌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조선3대가 실시한 대규모의 숙청은 특정집단을 제거하기 위한 대도살이며 이 두가지 죄행(인민들에 대한 폭행과 대규모 정치숙청)은 국제형사법원의 처벌대상이라고 지적했다. 한 국제 언론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조사는 김정은 등 북한정권 책임자의 법률적인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더욱 확실한 증거를 준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알아본데 따르면 이에 앞서 국제형사법원은 유엔 수단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와 안전보장이사회의 요구에 따라 2008년에 수단대통령을 기소한 적 있다. 하지만 중도에서 흐지부지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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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 한국,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현장
    17일 21시 06분경 경주시 양남면에 소재한 마우나리조트 내 체육관 지붕이 붕괴하여 현장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가지던 부산외대 대학생들 중 10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당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후 경주경찰서 경찰관은 물론 경북 등 기동대 5개 중대와 부산 및 대구경찰특공대 등 가용경력 550여명을 동원하여 구조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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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 경찰,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현장 적극 지원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경찰청은 어젯밤 21시 06분경 경주시 양남면에 소재한 마우나리조트 내 체육관 지붕이 붕괴하여 현장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가지던 부산외대 대학생들 중 10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당하는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2. 18. 06시 현재) 매몰된 피해자들의 신속한 구조를 위해 신고접수 후 즉시 경주경찰서 전 직원 비상소집을 발령하여 현장에 급파하고 경북지방청장, 경주경찰서장 등 경찰 지휘부가 현장 지휘하여 효과적인 구조 활동을 하도록 조치하였다. 또한 경주경찰서 경찰관은 물론 경북 등 기동대 5개 중대와 부산 및 대구경찰특공대 등 가용경력 550여명을 동원하여 구조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오늘 아침에는 경찰청장이 직접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현장을 방문하여 구조 활동을 하는 경찰관을 격려하는 한편, 특공대.기동대 및 경찰견.조명차량 등 경찰의 인력 및 장비를 최대한 지원하여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조작업을 하도록 당부하였다. 또한 경찰청장은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는 피해자의 고통과 애타게 귀가를 바라는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도록 구조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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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 [실화문학] 길성 선생과 그의 첫사랑
    ■ 연변 리포터 김 철 균 늘 도수높은 안경을 걸고 다니는 길성 선생은 올해 76세이다. 76세라면 나이가 많은 편일까? 옛날 같으면 많다 할 수 있겠으나 요즘엔 그닥 많다고 할 수도 없다. 간 밤에 길성선생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자신이 70대 로인이 아닌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군인이었고 함께 살고있는 여인 또한 지금의 마누라가 아니었으며 “류쾌이챈(六块钱)” 하며 한족 말을 하는 여인 즉 한족 처녀었다. 길성 선생은 머리를 도리질했다. 뭔가 뒤죽박죽인 “도깨비꿈”인듯 싶었다. 하지만 그 꿈 역시 “아닌 밤중의 홍두깨”는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지난 세기 60 연 대 초 강소성 무석에 있는 중앙군위 직속으로 된 해방군 문화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이 문화학교는 부대간부 내의 문맹을 퇴치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었다. 건교 초기었던 그 때 모집된 학원생은 도합 1000명 가량었지만 시험에 합격되어 선발된 학원생은 얼마 안되고 거개가 조선전쟁에 갔다온 군인들로 부대계급은 높으나 문화수준이 제로인 학원생들이었다. 그 중 심양군구에서 시험에 합격되어 입학한 길성이의 문화수준은 앞자리 10명안에 들 정도었다. 그리고 조선족은 유독 그 혼자 뿐이라 자연스레 모든 학원생들의 관심인물이었다. 모든 사생들이 길성이를 “멋진 총각(帅小子)”이라고 놀려주고 있었으며 특히 여학생들이 더했다. 아니 여학원생들은 길순이를 놀려주는 것이 아니라 길성이한테 은근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는 그녀들의 눈길만 보아도 보아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성이는 반에서 6 명 밖에 안되는 여학원생 중 “왕순자”란 이름을 발견했다. 그래 한족도 순자란 이름이 있단 말인가? “쑈왕, 쑈왕의 이름이 어쩐지 조선족의 이름 같구만.” 어느 날 길성이가 묻자 왕순자는 제법 근사하게 애교에 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 전 워낙 조선인이었거든요. 왜 걸 묻죠.” “그럼 어찌되여 성은 왕씨인 거요?” 그제야 순자는 비교적 정색해하며 자신의 이왕지사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왕순자에 따르면 그녀는 조선에서 태여났었다. 일찍 조선전쟁 당시의 어느 날 유엔군의 폭격에 어느 한 가정집이 불길에 휩싸였고 죽어있는 남정과 주부가운데 6 살 짜리 어린 여자애가 울고 있었다. 이 때 불을 끄러 달려왔던 어느 한 지원군 장군이 그녀를 발견, 옷을 벗어 여자애한테 씌워준 뒤 주위를 살피다가 여자애를 돌 볼 어른이 없음을 알게 되자 바로 여자애를 안고 군부대로 돌아오게 됐다. 그 뒤 장군은 그 조선인 여자애를 슬하에서 키우다가 귀국 당시 아예 양딸로 입양하기로 정하고는 중국으로 데려왔던 것이다. 그 장군인즉 바로 당시 상해 경비사령부의 왕육생(王六生) 정위었다. 그 사연을 알게 되자 길성이는 순자가 여느 여학생과는 어딘가 다르게 보였다. 얼마 안되어 길성이와 왕순자는 친한 사이로 됐다. 아니, 키가 크고 얼굴까지 준수한데다 문화수준까지 높은 길성이한테 순자가 더 적극 접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20대 초반의 길성이한테 이성의 출현은 그로 하여금 복잡한 모순 속에서 헤여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가난한 가정을 생각, 가정을 위해서도 그렇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너무 일찍 이성과 접근하면 안 된다고 여겼다. 꼭 공부를 열심히 하여 보다 출세한 뒤에야 이성을 생각하고 앞날의 가정에 대해서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순자가 너무 좋았다. 가정환경도 우월했지만 그 녀의 활달한 성격과 노상 실 웃음이 담겨 있는 그 녀의 얼굴이 더욱 좋았다. 순자는 비교적 개방적이었다. 언젠가 얘기를 통해 상해 사람들이 개방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직접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때는 바로 지난 세기 60 연대 초였지만 순자가 읽는 책을 보면 홍콩의 애정소설이 아니면 레브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 이엘보이니치의 “등에” 그리고 시집으로는 부쉬킨의 “예프게니 오네킨” 등이었다. 당시 길성이와 순자는 주로 일요일을 이용해 들놀이와 산책 등으로 데이트를 즐기군 했는데 순자는 일단 교정을 벗어나기만 하면 길순이와 팔을 끼군 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주 길성이의 얼굴을 건드리며 깔깔 대기도 했으며 주위를 살피다가는 깜쪽같이 길성의 얼굴에 뽀뽀해주기도 했다. 그렇 때마다 길성이는 와들짝 놀라면서 얼굴이 달아 오르군 했으나 그렇다고 그 것이 싫지는 않았다. 길성이와 왕순자가 사귄지도 어느 덧 2 개 월이 넘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이 되자 순자는 일요일 날 상해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놀러 가자고 제의했다. 아버지인 왕정위가 길성이를 만나 보자고 한다는 거였다. 순자의 제의에 길성이는 원간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거 너무 이른 거 아니야?!” “뭐가 이른가요. 남들 같으면 양가부모들의 만남(상견례)도 이뤄질 수도 있을 법한데요.” “그래도…” 길성이는 뒤 말을 흐렸다. 솔직히 말해 그 시각 길성이는 자신이 순자 부모님들의 눈에 들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 때까지 길성이 역시 혼사가 이뤄지자면 두 가정의 경제 및 사회적 지위 등이 엇비슷해야 된다고 부모님으로부터 많이 들어왔던 터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으나 길성이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며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순자를 설득하여 이튿날의 행사를 미루게 하기로 맘 먹었다. 헌데 이튿날 아침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노크소리가 나더니 왕순자가 숙소에 들어섰고 그 뒤로 웬 젊은 군인이 뒷따랐다. “아직도 기상하지 않았어요. 빨리 빨리 일어나 출발차비를 해요.” 순자의 뒤에 선 군인은 왕육생 정위의 운전사였다. 왕정위가 찦차까지 보내 오다니. 길성이는 차마 행사를 뒤로 미루자는 말을 입 밖에 내 번질 수가 없었다. 그들이 차에 오르자 군용찦차는 부르릉 하고 시동이 걸리더니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기사오빠, 이 남자가 어때요. 잘 생겼나요? 이 남자는 동북에서 온 조선족이래요.” 차안에서 순자는 쉴 새 없이 종알댔다. 그럴 때마다 운전사는 “예 아가씨”하며 순자한테 깎듯이 예의를 갖췄다. 오전 10쯤 되자 길성이와 순자를 앉힌 찦차는 상해 경비사령부에서 멀지 않은 왕육생 정위네 집에 도착했다. 왕정위네 집은 중국 고대풍격이 독특한 단독주택이었다. 여러 개의 방이 딸려 있었고 그 때 세월에는 흔치 않은 수세식 단독 화장실도 있었다. 길성이를 보자 순자의 어머니 왕부인은 유난히도 수다를 떨면서 이것 저것 묻는 것도 많았다. 한참 뒤 왕정위가 헛기침을 해서야 왕부인의 수다가 멈췄다. 왕정위 역시 굵직한 여송연을 몇 모금 빨더니 천천히 길성이한테 이것 저것 묻기 시작했다. 길성이는 공손히 사실 그대로 대답을 올렸다. 일찍 3살 때 아버지의 지게에 앉아 두만강을 건너 간도땅에 정착하던 것부터 농민가정 출신이며 가정이 가난하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말씀 올렸다. 나중에 왕정위는 “가정이 가난하다는 건 그닥 중요하지 않는 거지”하며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점심식사를 마치자 왕부인의 제의하에 모두가 시내쇼핑을 갔다. 상해거리를 돌면서 왕부인은 특별히 길성이가 입을 양복 한 세트와 흰 와이셔츠, 양말 등을 사는 것이었다. 길성이로서는 난생 처음으로 입어 보는 양복이었다. 그가 양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자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왕정위네 내외 그리고 길성이와 순자는 상해 국제호텔의 무도장으로 갔다. 오색영롱한 네온싸인이 반짝이는 속에서 순자와 함께 탱고를 추는 길성이의 모습은 너무나도 멋졌다. 남들이 부러운 눈길로 길성이와 순자가 춤추는 모습을 바라 볼 때마다 왕부인은 “내 딸이 사귀고 있는 조선족군인이래요” 하며 자랑했다. 길성이와 순자의 사랑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따라서 길성이가 상해에 있는 왕육삼 정위네 집으로 가는 차 수도 많아졌다. 왕정위네 가정에서는 길성이가 갈 적마다 맛갈스런 음식을 식탁에 올렸고 그럴 때마다 순자는 제일 맛있는 요리를 집어서는 부친 먼저 길성의 입에 넣어 주군 했다. 그러면 왕정위 또한 “이 계집애야, 아버지보다 이 친구가 먼저냐”하며 악없는 농작을 걸기도 했다. 대단히 흡족한 기색이었다. 길성이는 경제적으로도 이 가정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당시 길성이가 받는 수당은 인민페 6원이었다. 그래서 순자는 흔히 길성이와 농작을 걸 때면 “류쾌이챈(六块钱)”이라고 부를 때가 많았고 나중에는 아예 그 “류콰이챈”이 길성의 대 명사로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류콰이챈”인 길성이는 왕부인의 관심으로 양복 외에도 와이셔츠와 고급내복 등이 여러 벌씩 갖추었고 보고 싶은 책도 사볼 수 있었으며 부모님께 얼마씩 용돈도 부칠 수 있었다. 길성이와 순자의 사랑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따라서 길성이가 상해에 있는 왕육삼 정위네 집으로 가는 차 수도 많아졌다. 왕정위네 가정에서는 길성이가 갈 적마다 맛갈스런 음식을 식탁에 올렸고 그럴 때마다 순자는 제일 맛있는 요리를 집어서는 부친 먼저 길성의 입에 넣어 주군 했다. 그러면 왕정위 또한 “이 계집애야, 아버지보다 이 친구가 먼저냐”하며 악없는 농작을 걸기도 했다. 대단히 흡족한 기색이었다. 길성이는 경제적으로도 이 가정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당시 길성이가 받는 수당은 인민페 6원이었다. 그래서 순자는 흔히 길성이와 농작을 걸 때면 “류쾌이챈(六块钱)”이라고 부를 때가 많았고 나중에는 아예 그 “류콰이챈”이 길성의 대 명사로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류콰이챈”인 길성이는 왕부인의 관심으로 양복 외에도 와이셔츠와 고급내복 등이 여러 벌씩 갖추었고 보고 싶은 책도 사볼 수 있었으며 부모님께 얼마씩 용돈도 부칠 수 있었다. 한편 길성이는 순자와의 관계를 부모님한테 털어놓을 때도 되였다고 생각, 오는 음력설 기간 순자를 데리고 집에 다녀 오겠노라고 연변일보사에서 근무하는 둘째 형님한테 편지를 쓰기도 했다. 바로 이럴 즈음 대만의 장개석군대가 “대륙수복”을 부르짖으면서 복건지구를 비롯한 대륙에 무장도발을 자주 감행했고 길성이가 공부하는 학교에도 변화가 생겼다. 갑자기 수업정지 통지문이 벽보란에 나붙더니 어느 날 밤 전체 사생들을 집합시켜 놓고는 과반수의 학원생들을 군용트럭에 실어 어디엔가 이동시키 것이었다. 그리고 그 며칠 뒤 또 이상과 같은 집합이 있더니 재차 적지 않은 학원생들이 떠나갔다. 이렇게 되자 길성이와 순자도 긴장했다. 순자의 부친 왕육삼 정위한테 여쭤 보았으나 그 역시 이 학교와 소속이 다른 지라 알리 만무했다. 그러자 여자인 순자는 매일 울리만 했다. 길성이는 순자는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순자, 울지 말어. 갈라져도 잠시 뿐일거야. 우리 서로 갈라져도 마음만은 절대 변치 말자구. 그리고 서로 연락도 하고 말이야.” 어느 날 그들 둘은 학교 뒤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둘이서 자주 만나던 아름드리 홰나무밑으로 다가간 그들은 나무에 “영원히 변치 말자”는 글자를 새기고는 앞으로 누가 먼저 이 곳으로 오면 자기의 이름을 새겨 놓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가 어느 야밤 삼경 학교에서는 제 3 차로 학원생들을 집합시켜 놓고는 명단을 불렀는데 그 중에는 길성이의 이름도 포함됐다. 길순이가 떠날 때 순자가 울면서 매달린 건 자질구레하게 늘여 놓을 필요도 없다. 사달은 길성이가 우는 순자를 달래다 보니 그만 상해에 있는 순자네 집주소를 적지 못한 것이었다. 길성이는 트럭에 오른 뒤에야 “아차!”하며 자기의 실수를 통탄했다. 그리고 “왜 미리 주소를 적어 두지 않았던고”하며 자신을 꾸짖었다. 이 실수는 후에 오래도록 길순이의 가슴아픈 후회거리가 됐다. ※ ※ ※ 그날 밤 무석에 있는 해방군 문화학교를 출발한 길성이이네 일행은 곧추 북경으로 향했고 북경에 도착한 후에는 장평현에 있는 북경공정병학원의 신입생으로 됐다. 당시 중앙군위에서는 소수민족 학원생들만은 복건전선에 보내지 않고 북경공정병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북경공정병학원에서 공부하는 기간 길성이는 연속 2 년 간 천안문광장에서 모주석의 검열을 받는 영광을 지니기도 했다. 이 역시 중국 조선족으로는 사상 첫 사람이 아닌가 싶다. 한편 북경에 있는 기간 길성이는 못내 순자를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군사학원생이란 자유롭게 출장다닐 수도 없는 상황, 그러다가 1964년 이 학원을 졸업하고 심양군구에 배치 받아서야 출장기회가 생겨 상해에 있는 왕육생 정위네 집을 찾아 갔더니 집에는 이미 다른 가정이 살고 있었고 왕육생 정위는 이미 1선에서 물러나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었다. 그 뒤 어느 해엔가 길성이가 심양역 광장에서 무석 해방군 문화학교 시절의 동창생을 만나 순자의 행적을 탐문했더니 그녀는 이미 결혼했으며 심양군구의 어느 한 군병원에서 군의관으로 사업하고 있다는 것과 활달하던 그제 날과는 달리 몹시 과묵해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길성이는 순자한테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때는 자신과 순자 모두가 이미 결혼한 몸, 그제 날의 로맨스에 연연하기보다 서로 각 자의 가정에 충실하는 것이 명지한 선택일 뿐이었다. 길성 선생은 오랫동안 이 일을 감추고 있다가 최근에야 부인과 자녀들한테 공개했다. 부인과 만나기 전의 일이기에 계속 감출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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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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