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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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廣西 2명 개도둑 시민들한테 물매 맞아
    [동포투데이=국제] 중국 언론에 따르면 일전 광시(廣西) 요주(瑶族)자치현 산장(三江)향 거리에서 2명의 개도둑이 시민들에 의해 덜미를 잡혔고 이들이 탑승했던 차량에서 3마리 개시체가 발견됐다. 당일은 산장향의 장날이라 시민들이 많이 몰려들었기에 시민들은 2명의 개도둑을 한바탕 구타한 것도 모자라 차량마저 산산히 부셔버렸다. 그 뒤 차에서 발견된 개시체들을 쓰러진 도둑들의 품에 안겨 놓고는 오가는 행인들에게 조리돌림을 시켰다. 해당사진들은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졌고 도둑을 비난하는 댓글 외에도 “죄는 마땅하나 경찰에 넘겨 처리하는게 맞다. 시민들의 행위는 도를 넘었다”고 규탄하는 네티즌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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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8
  •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중국 조선족 축구 전문사이트 론평원으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중국조선족 축구론평가이며 한국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선생이 중국조선족 축구 전문사이트의 론평원으로 초빙됐다. 18일, 중국의 성급 언론매체이며 중국조선족 4대 언론사인 길림신문이 연변 국제호텔에서 길림신문 축구 전문사이트 개통식을 갖고 김창권 연변대학 교수(축구학 박사 출신)와 김철균 연변 종합신문 부주필이며 한국 동포투데이 리포터를 이 사이트의 축구론평원으로 초빙, 해당 론평원 2명한테 초빙증서를 발급하였다. 김철균 론평원은 지난 세기 90연대부터 축구보도와 접촉한 이래 연변축구단(길림삼성, 연변현대자동차, 연변오동, 길림오동, 연변세기 등 여러 관명)을 따라 중국내 장강 남북을 넘나들며 2000여편의 축구관련 보도를 하였으며 수백편에 달하는 축구관련 칼럼 및 론평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고 최은택, 고훈, 이장수, 추명, 차범근 등 축구감독들과의 남다른 우정을 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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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8
  • 중국 길림신문 축구전문사이트 개통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이젠 연변 장백산천양천축구팀을 사랑하고 연변축구를 관심하는 축구팬들이 축구전문사이트를 이용해 연변축구팀의 최신 뉴스를 접하고 상호 교류하면서 힘을 키우게 되었다. 18일, 중국 길림넷 조선문판인 인터넷 길림신문은 연변 장백산축구구락부와 손잡고 길림신문 축구사이트(http://sports.jlcxwb.com/)를 개설, 그날 개통식을 가졌다. 중국 길림넷은 길림성 당위 선전부가 주관하는 성급 중점신문사이트로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의 인가로 설립된 전국 40개 중점신문사이트의 하나이며 국내외 조선족 사회에서 비교적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길림신문사 지도부에서는 시종 연변축구팀과 연변축구 관련보도를 중시하여 왔으며 갈수록 많은 독자층이 해외로, 관내로 이동하는 현실에 비추어 주관 부주필을 골간으로 연변지사 주요 인력을 대거 참가시킨 취재편집진을 구성하고 축구 전문사이트를 개통하기로 결정했다. 그날 연변 주 체육국 대표, 연변 추구자축구팬클럽 대표, 언론매체 대표, 길림신문사 대표가 감응구를 작동시켜 축구 전문사이트를 개통시켰다. 이어 김태국 축구 전문사이트 관리자가 사이트 소개를 했고 우장룡 연변 주 체육국 부국장 겸 연변 축구구락부 주임과 이동철 연변 축구운동관리센터 주임 그리고 연변추구자 축구팬협회 대표 등이 축하발언을 했으며 한정일 길림신문 부주필이 답사발언을 했다. 한편 개통식에서는 임종현 연변 주 체육국장과 이동철 연변 축구운동관리센터 주임을 축구 전문사이트의 고문으로, 김창권 연변대학 체육학원 축구전문교수와 김철균 연변 종합신문 부주필을 축구 전문사이트의 평론원으로 초빙하고 해당 증서를 발급하였다. 길림신문 축구 전문사이트는 중국 국내에서 우리 글로 된 첫 축구 전문사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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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8
  • 경찰, 여객선 침몰 관련.... SNS 등에서 유포되는 내용은 사실무근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하여 최근 인터넷, SNS, 사고현장 등에서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 “○○와 함께 있다”, “○○식당 안쪽에 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남자애들이 모여있다”, “식당옆 객실에 6명 있다” 등의 문자가 유포되어 관련 가족들에게 아픔을 주고 현장 수색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경찰청(사이버안전국)에서는 사고 이후 유포되고 있는 SNS 내용의 등장인물 등에 대해 해당 학교측에 확인한 결과, 일부 내용은 탑승 학생 명단에 없는 허구의 인물들이었고 실종자가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에 ‘카카오톡’ 발송기록, 문자 메시지, 통화 발신기록을 확인한 결과 최근에 실종자의 전화에서 발송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SNS 등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문자는 실종자들이 발송한 것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관련 가족 등에게 상처를 주고 허위 신고 등으로 수색·구조작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는 자제하여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찰은 향후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해서는 관련법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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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8
  • 中 , 문방4보 예술박람회 '고려종이' 전시
    (고려종이 전시 부스) 제33차 전국 문방4보 예술박람회가 16일부터 19일까지 베이징 전시관에서 열린다. 전국 각 지역의 약 600여개 기업이 전시회에 참가했다. 이번 전시에서 북한의 고려종이가 전시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려종이는 한지, 고려 공물지라고도 불리는데 한반도에서 기원되였다. (고려종이) "장지성"(將之星) 이라고 이름한 고려종이는 북한의 전통적인 종이를 바탕으로 중국 전통의 남파(南派) 선지의 생산기술과 전통적인 서예용지의 습성을 융합했으며 북한 국가과학원 원사가 이끄는 박사단체가 지도의견을 주고 개발한 서예용지이다. "장지성" 선지공장은 북한 나진에 있다. 기업관계자는 2008년부터 준비단계에 들어간 공장은 2012년 건설되었으며 현재 직원이 200명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이 공장의 제품은 중국에서 전면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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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8
  •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 2명 중국인 실종 확인
    17일, 주한국 광주 중국영사관 관원에 따르면 한국여객선 침몰사고 승선자중에 2명 중국인이 승선한 것으로 확인됐고 영사관 일군이 소식을 기다리는 중국인가족을 찾아 위문했다고 17일 오후 신화넷이 보도했다고 중국 길림신문이 전했다. 한국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실종자가운데 중국인 한금희(37.녀)와 리도남(38)이 실종자로 확인됐다. 실종자가족에 따르면 이 2명 중국인은 제주도에 가 휴가를 하려고 자가용차도 함께 선상에 실었다 한다. 현장에서 기다리는 가족중 실종자 가운데 중국에서 온 다른 한 여학생도 있다 하는데 가족에서는 딸의 국적을 말하기 꺼려했고 영사관측에서는 진일보로 되는 확인을 하고있는중이다고 신화넷은 밝혔다. 주한국 중국대사관 영사부 무예 부주임은 《여객선 소속학교 소재지가 중국인이 집거해 있는 곳이라 실종학생가운데 더 많은 중국인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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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8
  • 해외견문 시리즈( 4 ) 잊지 못할 설날의 그 추억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매번 음력설이 돌아 올 때마다 나의 눈앞에는 고향을 떠나 머나먼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위스키포란 곳에서 선원들의 음력설 음식을 챙겨 주느라 진땀을 빼던 20여년전의 일이 선히 떠오르군 한다. 우리 중국에서는“춘절”이라 하고 한국에서는“구정”이라고 하는 음력설은 한국인들도 각별히 중시하고 굉장히 쇠는 풍속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회사에서는 부모처자를 떠나 원항에서 파도와 싸우는 우리 마도로스 형제들이 음력설을 즐겁게 쇠라고 아프리카에 있는 대리점을 통해 인당 200딸라씩 돌아가는 음력설 특별수당금을 지급했고 선장으로부터 기관과 뎃기의 당직자 외 모든 일군들은 3 일 간 휴식하라는 지령도 내렸다. 선내는 삽시에 명절기분으로 술렁이었다. 하지만 당시 주방장이었던 나는 흥분에 앞서 더럭 겁부터 생겼다. 남들이 다 향수하는 명절 휴식일도 보장이 없는데다 우리 “코리안스타”호의 24명 선원들의 “엄마 대리”와 “아내 대리”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집만 못지 않게 음력설을 쇠게 하는 것이 당시 나한테 부여된 성스럽고도 간고한 사명이기도 했다. 그런 연고로 다른 선원들의 기분과는 반대로 나한테만은 그 음력설의 도래가 조금도 반갑지를 아니했다. 또한 더욱 안타까운 것은 돈은 있지만 그 돈으로 욕심나는 부식물을 살 수 없는것이 특이한 아프리카의 사정이었다. 음력설을 앞둔 어느 날, 통신장 겸 사무장인 이순택씨와 주방장인 나는 부식물 구입에 나섰다. 헌데 째질 정도로 가난한 아프리카인데다 음력설이라고는 달력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그 곳의 시장에서 음력설 전야라고 부식물이 풍부할리 만무했다. 거기에 수절이라고는 쓸 줄도 모르는 “연탄동네”인 아프리카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을 찾기란 실로 하늘의 별 따기와 다름이 없었다. 그날 우리는 봉고차를 타고 위스키포는 물론 와리시의 시장이란 시장은 다 돌아다녔지만 약간의 양배추, 토마토 등 야채와 오렌지, 파인내플 등 과일 외에는 설음식에 근사한 부식물은 별반 사들이지 못했다.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인 떡부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토록 과일이 흔한 고장이었지만 그 과일 속에서 사과는 한알도 생산하지 못하기에 그것을 구하기 또한 무척 힘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 점심 때도 퍼그나 지났다. 선원들의 점심밥과 반찬은 이미 아침에 해놓았기에 “싸롱뽀이”라고 하는 주방장 조리가 그 것을 점심시간에 차려만 주면 그만이겠지만 저녁을 지을 일이 근심되었다. 그럼에도 부식물 구입은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 바로 이런 찰나에 나의 눈앞은 금시 환해지는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따상하이(大上海)”란 간판을 건 중국인 술집이 우리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프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다짜고짜로 술집문을 밀고 들어갔다. “해외에서 중국인 술집을 만나니 고향의 친지를 만난 것처럼 기쁩니다. 중국사람이 이국땅에서까지 뿌리박고 장한 사업을 벌이다니 진짜 감동됩니다. 부디 하시는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이렇게 잘 되지도 않는 중국어 밑천을 몽땅 털어가며 술집주인을 춰올린 뒤 찾아온 사연을 말하자 제 아무리 철석간장같은 주인이라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물건을 팔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술집 “따상하이”에서 적지 않은 야채와 육류와 면류 등 부식물을 얻은 우리였으나 우리 민족의 둘도 없는 전통음식인 떡부류만은 끝내 얻지 못하고 귀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다른 선원들은 독특한 적도부근의 풍미를 맛보려고 앞다투어 샤와하고는 외출했지만 나는 그런 사정이 못되었다. 아니, 곧 닥쳐올 음력설 때문에 잠을 자려고 에어컨까지 틀어놓고 잠을 청했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이궁리 저궁리하며 뒤척거리던 중 나는 문득 기발한 착상이 떠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창고로 달려갔다. 나는 창고에서 얼마 안되는 찹쌀을 꺼내어 2시간 가량 물에 담근 뒤 다시 그 것을 건져 쇠절구에 넣고는 절구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쿵쿵 고향처자 떠나서 웬 말이냐 쿵쿵 사내 놈이 여자 노릇 웬 말이냐 쿵쿵 남들 자는 이 한밤에 웬 짓이냐 쿵쿵 … 내가 찧어대는 절구방아소리는 제법 노래리듬이 되어 스스로 그 무드에 젖어들고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아프리카의 새벽 하늘은 어느덧 조용히 밝아왔다. 그믐날 밤이 되었다. 눈보라가 없고 쩡쩡 갈라터지는 얼음판도 없는 특이한 아프리카의 섣달 그믐날 밤, 배갑판은 등불들로 불야성을 이루었고 그 아래에서 굉장한 파티를 벌인 선원들은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만끽하는 한편 가라오케 오디오의 음악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설을 맞는 즐거움에 젖어 들었다. 그 속에는 밥이 설었다고 나한테 밥그릇을 던지군 하던 꺾다리 기관장이 있었는가 하면 나와 통신장이 짜고 들어 부식비를 뜯어먹지 않는가 하고 늘쌍 눈을 밝히군 하던 “땅개”ㅡ 냉동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은 단 한시도 쪽을 놓지 않았다. 아니 그 밤도 나를 괄시하고 헐뜯고 뒤조사를 하던 그들더러 설을 잘 쇠라고, 그네들의 “엄마대리”와 “아내대리”로 돼 주었다. 에어컨에서 내뿜는 냉풍도 나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식히지 못했다. 부지런히 지지고 튕기고 볶고 쪄냈으나 만들어내기 바쁘게 음식은 바닥이 났다. 거기에 아프리카 깜둥이 아가씨 10여명까지 어울려 먹어대다 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날 밤 선원들은 술마시고 놀아대느라고 밤을 새웠고, 나 또한 그네들의 기분을 돋구어 주느라고 밤을 새웠다. 그리고 그 파티는 그 날로 끝난 것도 아니고 설날을 지나 정월 초이튿날까지 계속됐다. 그렇듯 지속되는 연속 작전에 선원들도 지쳤고 나도 지쳤다. 그네들은 먹고 마시느라고 몸에 탈이 생겼고 나는 팔다리가 물러나게 일하느라고 지쳤다. 특히 연 며칠밤을 자지 못했기에 코피가 흘렀고 하루 몇시간씩 더운 가스불 앞에서 일했기에 목과 앞가슴 부위에 좁쌀알만한 땀띠가 가득 내돋았으며 현훈증으로 걸을 때마다 두 다리가 휘청거리군 했다. 하지만 나는 기분만은 좋았다. 나 혼자의 희생으로 전반 24명한테 즐거움을 주었다는 만족감과 그 24명 또한 나를 절대 떠날 수 없다는 자호감에서 짜릿한 흥분이 잦아들기도 했다. 한편 나는 명절 때면 남자들은 먹고 마시느라고 피곤하고 여인들은 뒤시중을 드느라고 피곤하다는 그 말에 이해가 갔고 남정들의 뒤 시중에 드러난 잔등도 가리울새 없이 일하고도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여인들의 내심세계도 얼마간 알리는 듯 했다. 특히 선박에서 “넘버원”으로 불리우는 기관부의 조기장까지 나의 손을 잡으며 “주방장 김상, 정말 욕봤다잉께. 그렇게 뱃놈한테는 선장이 아빠라면 주방장은 엄마라잉께”라고 전라도방언이 다분히 섞인 어조로 좋아할 때 가슴이 뭉클해나면서 좀만 더 잘해줬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이러한 위안과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매번 선원들의 생일 때마다 그한테 찰밥에 미역국을 끓여주는 정성을 가질 수가 있었고 짧지 않은 2년여간 단 하루의 휴식일도 없이 선원들의 건강을 책임지며 열심히 일할 수가 있었다. 오늘도 나는 설음식 준비에 분주히 돌아치는 내 와이프의 거동을 절대 무심히 보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엄마와 아내와 아줌마들이 있기에 이 세상 사나이들의 행복과 즐거움과 긍지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희생으로 남한테 행복과 즐거움을 아겨주는 것 ㅡ 이는 영원히 제창할만한 인간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2014년 2월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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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4-04-18
  • 퇴직간부 허길성선생 “굽이굽이 인생길 하많은 사연들” 출간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허길성 선생이 쓴 “굽이굽이 인생길 하많은 사연들(현재 동포투데이에서 단독으로 연재되고 있음)” 자서전 출간기념 모임이 지난 4월 12일 연변 국제호텔에서 있었다. 허길성 선생은 장편으로 된 이 자서전을 펴내기 위해 10여년 무척 애를 써왔으며 책은 제목부터 주인공 허길성 선생의 굴곡적인 인생길을 여실이 보여주고 있다. 1939년 조선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태어난 허길성 선생은 세살 때 아버지 지게에 얹히워 두만강을 건너와 지금의 용정시 석정향 중성촌에 정착했다. 그는 17살에 초중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 선후로 농촌 공소합작사, 공장의 잡부 등을 거쳐 1957년에 군에 입대하게 된다. 군입대 후 선생은 고사포부대 전사로 자동차운전기술을 배웠고 서장진군시 운수련의 전사로 청해와 서장사이를 5차례나 오가며 임무를 출중히 완성하였다.   허길성선생의 가장 보귀한 점이라면 꾸준히 배우는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한 가지라도 배워 두면 그것이 재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허길성 선생은 군복 안속의 흰 천에 한어글자를 새기면서 기억하군 했다. 이처럼 매일 몇 글자씩 적으니 얼마 안되어 군복안속에 한어글자 수백자나 되었다. 애써 공부한 보람에 사단분부에서 있은 문화시험에서 앞자리를 차지했고 무석에 있는 중앙군위 문화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으며 북경공정병학원에 입학할 수도, 졸업할 수도 있었다. 1965년 7월 허길성 선생은 북경공정병학원을 졸업하고 심양군구 공정병 사령부에 배치받는다. 그러다가 “전례없는 문화혁명”시기 계급입장이 견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군복을 벗어야 했고 연변버스공장에서 “로동개조”까지 하게 되었다. 그뒤 허길성 선생은 연길시 라디오방송국에 전근하여 선후로 라디오발사탑시공, 유선TV보급망 가설과 종업원 주택건설 등 건설항목에서 관건적인 역할과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허길성 선생의 자서전을 읽노라면 파란만장의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주인공이 겪어온 눈물겨운 사연들이 마치 영화필름처럼 눈앞에 떠오른다. 좌절과 곡절의 인생을 겪으면서 행복한 가정을 영위하고 아들 딸을 어엿한 대학생, 박사생으로 육성했으며 생활이 어려운 농촌의 4명 학생을 집에 데려다 공부시켜 모두 출세시키면서 자선사업에 투신하여 사회의 공익사업에 기여를 하는 주인공의 고귀한 덕성에 감복이 간다. 이날 모임은 연길 양천허씨 종친회에서 주최했으며 북경, 천진, 대련 등지에서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그리고 부대시절의 전우 등이 달려 왔으며 한국계 미국인 김찬영 박사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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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외동포
    2014-04-18
  • 中, 시진핑 주석 여객선침몰 사고와 관련해 한국에 위문신을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외교부 공식사이트에 따르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17일, 한국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대량의 인명 피해와 실종이 조성된 것을 두고 한국 박근혜 대통령에게 위문메시지를 보냈다고 중국 신문망이 17일 밤 보도했다. 시진핑 주석은 위문신에서 “귀국의 ‘세월’호 여객선이 불행하게도 엄중한 사고가 발생해 대량의 인명 피해와 실종을 조성했으며 특히 그중에는 적지 않은 청년학생들이 있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매우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중국 정부와 인민들을 대표하고 또 저 자신의 명의로 조난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조난자와 실종자 가족 및 부상자들에게 진지한 위문을 드립니다. 중한 양국 인민들은 심후한 우의가 있습니다. 저는 이 사고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중국측은 언제건 한국측에 필요한 지지와 도움을 제공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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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14-04-17
  • “중국축구협회컵” 연변팀 1 : 0으로 강서연성팀 제압
    [동포투데이=스포츠] 16일, 중국 장시성 난창올림픽체육센터에서 있은 “중국 축구협회컵” 제2라운드 경기에서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경기 37분경에 넣은 이호걸 선수의 쐐기골에 힘입어 을급팀 강서연성팀을 전승하고 중국축구협회컵 제3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이날 연변팀 이호은 감독은 전부의 주력진영으로 을급팀 강서련성팀과 접전하면서 4-2-3-1 포메이션을 구사했다. 경기개시 5분에 있은 10번 지충국 선수의 슈팅으로 연변팀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상대방도 만만치 않았다. 연성팀은 홈구장 우세를 빌어 경기초반 연속 3- 4차에 거쳐 연변팀에 슈팅을 날렸다. 경기 25분 연변팀 김파 선수가 왼쪽변선에서 상대 금지구역으로 침투하면서 반칙을 유도했으나 심판은 페널티킥을 주지 않았다. 경기 37분 연변팀은 한차례 화려한 배합으로 상대의 골문을 갈랐다. 17번 고만국 선수가 상대 금지구역 왼쪽에서 공을 지충국 선수에게 패스했고, 후자가 다시 고만국에게로, 고만국선수가 다시 공을 옆으로 패스하자 뒤에서 달려들어오던 2번 이호걸 선수가 강슈팅을 날려 연성팀 골문을 갈랐다. 그것이 경기 종료까지의 결승골이 되었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 스포츠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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