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혁 (재中동포소설가)
내리는 눈을 맞으며 새해의 첫 등산을 했다. 고도(古都) 룡정에서 서남쪽방향으로 약 4키로메터쯤에서 룡정을 보듬어 안은 세전이벌과 평강벌의 복판에 분수령으로 솟았는 비암산이라는 고운 이름의 산에 올랐다.
“연변문화유물략편”에 의하면 해발높이 500m되는 비암산은 꼭대기 서쪽의 높은 비탈이 바로 BC 3,000년전 신석기시대의 “비암산유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막상 이 산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것은 한 그루의 나무때문이다. 물론 산에 오르면 사처에 사철 푸른 소나무 투성이지만 이 소나무만은 그 위상이 남다르다.
1930년대에 이미 있었던 이 소나무는 흡사 큰 기둥에 청기와를 얹은 정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은 “일송정(一松亭)”이라고 부른다.
일송정 푸른 솔은 흘러 흘러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저 유명한 “룡정의 노래”의 첫구절에 나오며 세간에 더욱 알려진 나무, 룡정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송정은 그야말로 룡정을 징표하는 “마스코드”이다.
일찍 룡정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고색찬연한 일송정은 룡정을 지켜주는 “당산나무"격이였다. 결혼하여 젊은 녀인들은 일송정”이 솟았는 바위를 기자석(祈子石.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바위)으로 삼았고 가물이 들면 농부들은 일송정을 기우제를 지내는 신주나무로 모셨다.
비암산은 언젠가부터 반일투사들의 비밀아지트 역할도 했다. 일제의 감시 눈초리를 피해 멀리 비암산에 올라 일송정 아래에서 모임을 갖고 일제를 쳐부시고 독립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 기원하던 곳이 일송정이라고 한다.
일송정이 룡정사람들의 슬기와 용맹, 절개와 위훈으로 드높은 기상을 보여주는 징표로 부상하자 불안한 일제는 나무에 마수를 뻗치기 시작했다.
잔악한 일제경찰은 일송정에 대못을 박아넣고 구멍을 내고 후추가루를 넣고 급기야는 나무에 대고 사격련습을 하는등 악랄한 수단으로 나무를 고사(枯死)시켰다.
1930년대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하면서 취재차 룡정행차를 하였던 김기림의 “간도기행” (조선일보 1930년 6월13일~26일) 에서도 당시 일송정의 모습을 찾아 볼수 있다.
“평강령 남단을 가로막고 앉은 일송정 봉오리는 고절을 자랑하던 소나무도 옛이야기. 지금은 마른 거루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리하여 간도에 남아있던 최후이며 유일한 소나무도 다만 일송정 이름속에 남아있는것이다.”
1980년대 룡정시의 사회단체들은 그 옛날 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는 설화가 담긴 소나무를 복원하기로 합의를 보고 복원식수를 하였다. 소나무를 떠다 심었고 나무곁에 팔각정자도 세웠다. 하늘향해 비첨이 건뜩 들리고 단청무늬가 아름다운 정자의 천정에는 가곡 “룡정의 노래”에 나오는 주요한 줄거리를 소재로 하여 우물, 말 탄 사람, 달빛 어린 해란강, 룡주사, 룡문교, 대성중학교등 룡정의 경관들을 그려넣었다. 이후 일송정이 섰는 산정에로 오르는 돌층계, 일송정 기념비, 팔각정자, 조선족 유명 작가 시인들이 지은 룡정관련 시구를 새긴 노래비등을 건립하여 한동안 인적기 드물던 산정에 제법 하나의 풍경구가 조성되였다.
지금 룡정시의 텔레비중계탑, 강경애 문학비와 함께 비암산에 자리잡은 일송정은 룡정의 빠칠수 없는 하나의 주요한 경관으로 되였고 일송정은 정녕 유서깊은 룡정과 더불어 중국조선민족의 애환과 분발을 상징하는 문화유물로 민족의 전설과 력사를 이야기 해주는 신목(神木)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되였다.
사철 푸르른 잎새, 철갑을 두른 듯한 몸체, 소나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다. 혹독한 추위와 매서운 바람도 잘 견뎌내며 허연 눈발을 떠이고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는 그래서 모진 력사의 시련을 견디며 오늘에 이른 우리 민족정신과도 많이 닮았다.
지난해 말, 룡정시에서는 또 한번 일송정을 새롭게 수선하였다. 300여만원을 투입하였고 한국의 저명한 조경사를 초빙하여 일송정기념비주변을 새롭게 조경하였다.
새롭게 조경한 일송정은 오늘도 비암산의 창공 한 자락을 떠인채 그 전설을 읽으며 찾아드는 유람객들을 맞아 주고있다.
ⓒ 인터내셔널포커스 & www.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건보 땐 ‘먹튀’, 연금 땐 ‘꼼수’…또 조선족 때리기인가
국내에서 불과 한 달가량 국민연금에 가입한 뒤 추후납부 제도를 이용해 가입기간 10년을 채우고 노령연금을 받는 중국인 사례가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보도는 최근 외국인의 추납 신청과 연금 수급 사례가 늘고 있다며 “특히 한국계 중국인을 중심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 -
하영에게 증조부의 죄까지 물을 것인가
배우 하영이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 의혹과 관련해 결국 고개를 숙였다. 하영은 12일 자필 사과문을 통해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가족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논란 이후 관련 자료를 직접 ... -
[민국의 그림자 ⑦] 패망을 감지한 밀정들…‘76호’의 붕괴와 특무들의 마지막 선택
1943년 후반, 상하이의 공기는 달라지고 있었다. 태평양전쟁의 흐름이 일본에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왕징웨이 정권 내부에서도 동요가 시작됐다. 겉으로는 여전히 일본과의 협력을 외쳤지만, 일부 고위 인사들은 이미 일본이 패전할 경우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계산하고 있... -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배우들 ①] 선아오, 연변에서 중국 영화의 중심으로
중국영화 금계장 시상식에서 트로피와 수상증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선아오(申奥) 감독. [사진=1905영화망]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영화계에서 최근 주목받는 젊은 감독 가운데 한 명인 선아오(申奥). ‘수익인’(受益人)과 ‘고주일척’(孤注一掷)에 이어 ‘난징사진관’(南京照相馆... -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배우들 ②] 장률, 국경을 넘어 세계영화의 ‘지음’을 찾다
중국 조선족 영화감독 장률(张律)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을 이야기할 때 장률(张律)은 빼놓기 어려운 이름이다.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던 그는 마흔을 전후해 뒤늦게 카메라를 잡았지만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해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
장동혁의 ‘중국 편이냐’ 질문…안보는 편 가르기가 아니다
▲ 외국 세력의 간첩 활동과 정보 유출, 대공수사를 둘러싼 논란을 형상화한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인터내셔널포커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이재명 정부를 향해 “중국 편인지 대한민국 국민 편인지 확실하게 밝혀라”고 말했다. 중국의 선거 개입과 간첩 활동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