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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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유산위원회 푸저우 회의 폐막, 34개 신규 유산 추가
    [동포투데이 김현나 기자] 1일 중국 관영 매체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44차 회의가 31일 중국 동부 푸젠성의 수도 푸저우에서 폐막했다. 이번 회의에서 문화유산 29건, 자연유산 5건 등 모두 1154건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새롭게 추가된 유적지 중에는 푸젠성의 ‘취안저우(泉州)’ 중국 쑹위안(松原)의 ‘세계 엠포리움'이 포함돼 중국의 세계 유산 수는 56개로 늘어났다. 회의기간 중 션눙지아(신농가 神农架) 경계를 약간 변경하고 공식적으로 후베이 션눙지아 세계문화유산의 일부가 되었다.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 톈쉐쥔(田學軍) 의장은 "위원회는 200개가 넘는 세계유산 보존보고서를 검토하고, 중국 만리장성과 코트디부아르에 있는 타이 국립공원과 코모에 국립공원 등 3개 유산을 보존 및 관리의 모범 사례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영국의 해양 상업 도시인 리버풀을 세계 유산 목록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 10년간 삭제된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리고 푸저우 선언을 채택하고 '세계 문화·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의 원칙을 거듭 강조하며 개발도상국, 특히 아프리카 국가와 작은 섬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톈 의장은 “이번 회의에서 아프리카의 두 재산이 새롭게 등재되면서 유네스코의 '우선 아프리카'라는 글로벌 전략이 실행됐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또 전쟁과 불법 밀렵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콩고민주공화국 살롱가 국립공원이 만들어낸 성과와 진전을 충분히 인정하고, 이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서 삭제하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톈 의장은 “이번 회의가 유산 신청 절차의 개혁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며 “2023년 9월부터 추천 초기 단계에서 위원회와 자문 기관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사전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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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1
  • 中 23번째 금메달! 시팅마오,여자 3m 스프링보드 우승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8월 1일 도쿄올림픽 여자 3m 스프링보드 다이빙 결승전에서 중국 선수 중국의 시팅마오(施廷懋)가 중국 다이빙 대표팀의 네 번째 금메달을 획득하며 중국은 이 종목에서 9연패를 달성했다. 중국의 왕한(王涵)이 이 종목에서 은메달을 땄다. 왕한과 시팅마오가 더블 종목에서 중국팀의 값진 금메달 획득에 힘을 보탰다. 이번 단일 종목에서는 준결승에서 1, 2위로 여자 3m 스프링보드 다이빙 결승에 진출해 가장 안정적인 '더블보험'을 형성했다. 결승전에서는 시팅마오와 왕한이 같은 액션을 선택했다. 첫 점프 난이도 3.0의 405B에서 시팅마오는 76.50점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고 왕한은 72.00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두 번째 점프 난이도 3.0의 205B에서는 시팅마오가 76.50점을 받아 선두를 굳혔다. 이어 난이도가 3.0인 305B에서 시팅마오가 오픈, 입수 모두 안정되며 75.00점을 기록했다. 4회전 점프는 난이도가 3.1인 107B, 시팅마오는 77.50점으로 압도적이었다. 마지막 점프 난이도는 3.0의 5152B. 시팅마오는 무난한 플레이로 금메달을, 왕한은 348.75점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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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1
  • 13억 인구 인도 메달 1개, 3만 명 인구 산마리노보다 적어
    [동포투데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현재(7월 31일)도 금 21개, 은 13개, 동 12개로 미국, 일본 등 강국을 제치고 금메달리스트와 메달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인구 13억 명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인 인도의 메달 수는 현재까지 은메달 1개로 3만 명 인구의 산마리노보다 적다. 도쿄 올림픽에 인도는 역도, 복싱, 레슬링, 사격, 양궁, 배드민턴 등 85개 종목에 총 120명의 선수를 파견했다. 인도는 현재까지 단 하나의 은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인구가 6만 5000명에 불과한 영국 해외 영토 버뮤다는 금메달을 기록하고 있다. 역도 여자 49㎏급에서 인도의 미라 바이가 은메달을 따냈고 이 대회 금메달은 중국의 후즈후에게 돌아갔다. 중국 선수와 마찬가지로 미라 바이는 귀국 후 현지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인도는 아직 은메달이 1개밖에 따지 못했기에 더욱 소중할 것이다. 인도의 메달 수는 인구 3만여 명의 작은 나라 산마리노보다 훨씬 적은데 산마리노는 은 1개, 동 1개를 확보했다. 산마리노 섬 전체가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고 면적은 60.75제곱 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신호등까지 설치하기에는 너무 작은 나라이다. 인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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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1
  • '삼국지' 재해석⑳ 유비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Ⅰ
    ●김정룡(多가치 포럼 대표) 나관중의 구라와 유비의 이미지 유비는 관우와 장비 두 사람과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과 싸운다. 이들 삼형제는 황건적과 싸워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었다. 전투라면 승패는 병가의 상식이어서 당연한 일이다. 동탁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뒤집어 놓자 전국에 반동탁연합군이 생겨났고 유비 삼형제도 이 조직에 가담한다. 동탁의 부하 화웅이 무술이 어찌나 뛰어난지 반동탁연합군에 대적할 만한 장수가 없었다. 이때 관우가 나선다. 관동연합군 맹주 원소를 비롯해 조조 등 한다하는 거물들이 모두 관우를 처음 본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관우의 실력을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그 중에 그래도 사람을 볼 줄 아는 이는 조조였다. 조조가 따뜻한 술 한 잔 따라주면서 고무격려로 용기를 북돋아준다. “이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고 돌아오겠습니다.” 관우의 비장한 각오다. 과연 관우는 빈말을 하지 않았다. 술이 채 식기도 전에 검붉은 얼굴에 웃음을 활짝 담고 손에는 화웅의 머리를 들고 돌아왔다. 화웅이 죽자 여포가 직접 나선다. 유비 삼형제는 먼저 관우가 맞섰는데 결과가 나지 않자 장비가 나섰고 그래도 결판이 나지 않아 유비까지 합세하여 반나절 싸웠지만 여전히 승부가 나지 않자 여포는 돌아간다. 천하에 적수가 없다던 여포와 맞서 싸운 유비의 삼형제는 세상에 명성을 널리 알린다. 이들 삼형제의 출발이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인지, <삼국연의>를 읽어본 독자라면 모두 이들에게 푹 빠지게 된다. 유비는 출발도 좋았지만 223년 죽을 때까지 영웅의 발자취를 멋지게 남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스토리들은 전부 나관중의 구라다. 지금까지 역사학자나 역사에 깊은 연구가 없는 절대다수 독자들은 나관중한테 ‘사기’를 당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독자들이 알고 있는 유비 삼형제의 모습은 역사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문학적인 이미지라는 것이다. 진수의 <삼국지>를 역사적인 이미지라고 믿는다면 사서와 소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물론 소설은 문학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허구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도 무방하다. 재미가 있으면 그만이다. <삼국연의>는 진짜 재미있다. 어느 정도로 재미가 있나? 동양 삼국 고전 소설 중에 가장 많이 읽혔고 따라서 현재도 게임소재로 활용되는데 최고의 소재로 꼽히고 있고 수입창출도 다른 고전 소설이 죽었다 깨도 따를 수가 없다. 실망스런 사서의 기록 그렇다면 유비 삼형제, 특히 유비의 역사적인 이미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유비는 역사적인 이미지와 문학적인 이미지가 너무 거리가 멀어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진수는 <삼국지>를 기전체로 편찬했다. 그런데 조조와 그 후계자들에게만 ‘기(紀)’를 붙이고 나머지 수많은 인물들에게는 전부 ‘전(傳)’으로 기록했다. 예를 들어 조조와 그 후계자들을 ‘무제기’, ‘문제기’, ‘명제기’, ‘소삼제기’라 했고 유비는 황제를 칭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주전’, 그의 후계자 황제 유선을 ‘후주전’이라고 붙였고 손권도 마찬가지로 ‘전(傳)’으로 기록했다. 진수의 이와 같은 기록 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있긴 한데 문제는 촉서(蜀書)는 위서(魏書)와 오서(吳書)와 달리 유비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유언과 유장의 합전(合傳)으로 막을 열었다는 것이다. 유언과 유장의 합전 제목을 유이목전(劉二牧傳)이라 붙이고 부제를 ‘현명하지 못한 유비의 선조들’이라고 달았다. 유비의 팬들이 이 촉서의 서두를 접하게 된다면 기분이 되게 나쁠 것이다. 진수는 유언과 유장을 유비의 선조라고 했는데 사실 유비는 이들 두 사람과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다. 이 세 사람은 같은 유씨이고 모두 황족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아마 진수는 ‘선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후한에 이르러 세상이 혼란해지자 조정에서는 황족인 유씨 집안사람들을 각 지방에 관리로 많이 임명했다. 유주목인 유우, 형주목인 유표 등등이 있다. 유비는 자칭 황족이라 하지만 이 부류에 끼지 못했다. 유언은 익주목이었다. 시중 동부(董扶)라는 사람이 유언에게 말했다. “앞으로 수도는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익주의 분야에 천자의 기운이 있습니다.” 유언은 동부의 이 감언이설에 빠져 천자가 되려는 마음이 강렬해져 걸림돌이 되는 자를 하나하나 제거하고 천자가 타는 수레 용구 1천여 대를 만들었다. 형주목 유표가 유언의 행실이 못 마땅해 조정에 표를 올려 고발했다. 조정에서는 유언을 일깨우려고 유장을 파견했는데 유언은 유장을 돌려보내지 않고 눌러 앉혔다. 유언은 마등(馬騰)이 일으킨 모반에 가담해 신세를 망친데다 낙뢰를 맞아 성이 불타고 수레 용구를 모두 탕진했으며 민가에까지 피해를 끼쳤다. 결국 유언은 인재와 천재가 겹쳐 상심하다가 악성종양이 나서 흥평 원년(194)에 죽었다. 유언이 죽자 익주 유지들이 유장을 익주목으로 추천했다. 익주목이 된 유장은 장송의 꾀에 넘어가 유비를 맞아들인다. <삼국지>에 의하면 “유비가 이끄는 장수와 사병은 유장이 있는 곳에 가서 1백여 일 동안 즐겁게 마셨다.”고 한다. 유장과 유비는 한중의 장로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해 나중에는 유비가 유장을 파멸시키고 촉을 차지한다. 진수는 왜 이 유언과 유장의 합전을 촉서의 첫머리를 장식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좋고 아름다운 일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부정적인 ‘사건’으로 서두를 떼야했을까? <삼국지> 연구가들은 이 때문에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유비의 출신과 소년 시절 유비는 한나라 경제(景帝)의 아들 유승(劉勝)의 후예라고 <삼국지>는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비는 황족이라는 ‘명함’을 내밀고 다녔다. 그런데 전통시대에서는 6대를 벗어나면 친족의 의미가 사라진다. 유승과 유비는 6대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에 유비를 황족이라고 볼 수 없어 당시 황족들이 지방 관리부임에 유비는 끼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어디를 가나 이르는 곳마다 누구든지 황족 후예로 인정해 주었다. 유비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짚신과 돗자리를 엮어 생계를 꾸려나갔다. 독자들은 이 대목을 근거로 유비가 어릴 적에 매우 빈한하게 살았고 요즘 말대로 하면 흙수저라고 인식하고 자수성가한 모델이라고 높이 평가를 내리고 싶어 한다. 유비는 어릴 적에 진짜 가난하게 살았을까? <삼국지>에 의하면 “유비는 소년시절 책 읽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개와 말, 음악과 아름다운 옷을 좋아했다.”고 한다. 유비가 좋아했던 개가 그냥 떠돌아다니는 똥개였는지, 아니면 값비싼 사냥개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추측해 본다면 똥개를 좋아하는 것을 갖고 사서에 개를 좋아했다고 기록할 리는 만무하니 비싼 개였을 확률이 매우 높다. 말은 아무리 보통 말일지라도 보통 백성은 소유하지 못한다. 게다가 좀 괜찮다는 말을 소유하려면 웬만한 경제여건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음악을 좋아하려고 하면 큰돈이 아니더라도 가난한 집 아이들은 꿈도 꿀 수 없을 만큼의 돈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옷도 당연히 돈이 있어야 좋아할 수가 있다. 개와, 말을 좋아한다는 표현은 유비가 그것을 소유했다고 보아야 하고 음악도 악기가 없이 그냥 좋아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다니려면 역시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유비는 어릴 적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유비의 집 동남쪽 모퉁이 울타리 옆에 높이가 5장(丈)쯤 되는 뽕나무가 있었는데 나뭇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작은 수레 덮개와 같았다. 그곳을 오가는 사람은 모두 이 나무를 기이하게 여겼으며 어떤 이는 이 집에서 틀림없이 귀인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의 탄생에는 반드시 ‘신화’가 있기 마련이다. 이 대목은 유비의 탄생신화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어서 기록된 문구가 중요하다. 유비는 어릴 때 같은 종중(宗中)의 아이들과 이 나무 밑에서 놀며 말했다. “나는 반드시 깃털로 장식한 개거(蓋車, 천자의 수레)를 탈거야.” 유비는 필경 어릴 적에 가난한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부잣집(유씨 가문) 아이들과 놀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난한 집 아이면서 가난한 집 아이들과 어울린다면 어떻게 천자의 수레를 알 것이며 감히 천자의 수레를 탈 궁리조차 할 수 있겠는가? 유비가 어릴 적 가난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또 있다. 열다섯 살이 된 유비는 어머니가 공부하도록 하여 같은 종중인 유덕연(劉德然), 요서군(遼西郡)의 공손찬과 함께 전에 구강태수(九江太守)를 지낸 같은 군(郡) 출신 노식(盧植)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는 요즘처럼 의무교육도 아니고 또 공부한 비례가 매우 적었다. 유비 시절 공부하려면 부잣집 아이 아니면 꿈도 꿀 수가 없었다. 물론 유덕연의 아버지 유원기(劉元起)가 늘 학비를 대주어 그의 아내가 바가지를 긁었다는 기록이 <삼국지>에 있다. “각각 따로 일가(一家)를 세우는데 어찌하여 늘 이와 같을 수 있습니까?” 유원기가 말했다. “우리 종중에 있는 이 아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오.” 이 부부의 대화를 보면 유비가 공부한 학비를 유원기가 전부 대준 것이 아니고 더욱이 유원기를 믿고 공부시킨 것도 아니다. 다만 유비가 어릴 적부터 싹수가 보였고 될 성싶은 떡잎 감으로 보였기 때문에 유원기가 학비를 늘 대준 것이다. <삼국연의>의 수천만, 심지어 현재까지 동양3국의 수억 명의 많은 독자 중 다수는 부자가 아니라 흙수저 출신이다. 이들은 한 가지 로망을 갖고 이 소설을 읽는다. 즉 유비는 가난한 출신으로 자수성가하여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는 매력에 빠져든다. 그래서 유비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유비가 가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거나 인정하게 된다면 스스로 배신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유비의 출신과 소년시절의 이모저모를 알지 못하고 그냥 좋아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 그렇지만 한편 우리는 나관중한테 ‘사기’ 당한 것을 되돌릴 권리가 있다. 필자가 이 굉장히 어렵고 힘든 재해석 작업을 하는 이유가 바로 되돌려주기 위함이다. 유비는 환갑 직전까지 3부 리그에서 헤맸던 인물 유비는 키가 7척5치(175센티미터)로 손을 아래로 내리면 무릎까지 닿고 눈을 돌려 자기 귀를 볼 수 있다. 평소 말수가 적고 아랫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며 기쁨이나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다. 의로운 사람들과 사귀기를 좋아하므로 젊은이들은 다투어 그를 가까이했다. 유비의 외모는 귀인(貴人)의 상이고 성격 또한 서글서글하고 붙임성이 좋아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범상치 않는 영웅의 기질을 갖고 있어 투자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중산의 큰 상인 장세평(張世平)과 소쌍(蘇雙) 등은 천금의 재산을 모아 탁군 일대에서 말을 사려다가 유비를 보고 첫눈에 반해 뛰어난 인물이라 여겨 그에게 많은 돈을 투자했다. 유비는 이것을 종자돈 삼아 무리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대목이 무슨 뜻이냐면 천하가 대혼란에 빠진 난세에 입으로만 하는 선비들은 나라를 구하지 못한다. 원소는 대단한 선비가문이지만 군벌로 변했다. 오로지 군벌이 되어야만 게임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비가 투자를 받아 무리를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은 유비도 한황실(漢皇室) 부흥을 이루려면 군벌이 되는 길밖에 없었고 그 투자에 의해 군벌이 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군벌이 되어 나라를 구하는 길은 험난하고 또 험난했다. 유비가 무리를 모아서 첫 번째로 한 일이 바로 황건적과의 싸움이었다. 전투에서 공을 세워 안희현(安喜縣)의 현위(縣尉, 현의 경찰서장 급)로 임명되었다. 젊었을 때 유비는 아마 자존심이 굉장히 강했던 모양이다. 군의 독우(督郵)가 유비가 있는 현에 왔고 유비가 만나기를 요청했는데 재수 없게 거절당했다. 화가 난 유비는 독우를 묶어놓고 곤장 200대나 때렸다. 소설에서는 장비가 때린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유비가 더 많이 때렸다. 누가 더 많이 더 적게 때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급 관리를 팼으니 배길 수 없게 되어 관직을 버리고 도망갔다. 얼마 후 대장군 하진이 사람을 파견하여 단양으로 가서 병사를 모집하게 했는데 유비도 하비현에 이르러 적과 죽기내기로 싸워 공을 세워 하밀현(下密縣)의 승(丞)에 임명되었으나 또 관직을 버렸다. 뒤에 고당현(高唐縣)의 위(尉)가 되었다가 현령으로 승진하기까지 했는데 재수 없게 황건적에게 격파되자 공손찬이 있는 곳으로 달아났다. 유비는 기이하게도 관직을 쉽게 얻기도 하고 또 쉽게 버리기도 했다. 또 유비의 주특기는 여차 싶으면 도망가는 것이다. 앞으로도 유비의 도망을 여러 차례 만날 수 있다. 심할 때는 처자식까지 버리고 도망간다. 공손찬이 유비보다 나이가 더 많아 유비는 공손찬을 형으로 모시고 가까운 사이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유비는 공손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유비한테는 공손찬이 큰형 같은 사람이어서 가장 어려울 때 공손찬을 찾아갔던 것이다. 공손찬은 유비를 원소에게 대항하도록 했다. 유비가 공을 세웠으므로 잠시 평원(平原)의 현령을 대행했으며 뒤에 평원의 상(相)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유비의 성미는 한 곳에 지그시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한다. 원소가 공손찬을 공격하고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자 제(齊)에 주둔해 있던 유비는 전해와 함께 서주목 도겸(陶謙)을 구하러 갔다. 이때 유비는 사병 1천여 명과 유주의 오환족(烏丸族)에 속하는 기병이 있었으며 굶주린 백성 수천 명을 얻었다. 서주에 다다르자 도겸이 유비에게 병사 4천 명을 증원시켜주니 유비는 동창생이자 오랜 친구이자 형처럼 모시던 공손찬을 떠나 도겸에게 귀의했다. 도겸은 질병이 악화되자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 줄 것을 부탁한다. 먼저 별가 미축(麋竺)에게 말했다. “유비가 아니면 이 서주를 안정시킬 수 없소.” 도겸이 죽자 미축은 주의 백성을 인솔하여 유비를 맞이하려 했지만 유비가 감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비는 겸손의 달이다. 감투가 생겼다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경솔한 인간이 아니었다. 보다 못해 답답함을 느낀 하비 사람 진등(陳登)이 유비를 설득한다. “지금 한나라 왕실은 점차 쇠약해지고 천하는 엎어지려고 합니다. 공업(功業)을 세우기에는 오늘이 좋은 기회입니다. 이 주는 튼실하고 풍요로우며 인구가 1백만입니다. 당신이 이 주를 맡아주시기를 머리 숙여 원합니다.” 진등의 이 말뜻은 당신이 한왕실 부흥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뭔가 공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 빈말로 하면 누가 인정해주냐!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이니 이 하늘이 내린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유비는 여전히 뒤로 빼며 사양한다. “원공로(원소)가 가까이 수춘(壽春)에 있습니다. 그의 집안은 네 대에 걸쳐 공경 다섯 명을 배출했고 천하의 인심이 그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주를 그에게 부탁할 수 있습니다.” 유비가 이렇게 거듭 사양한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진짜 겸손의 달인으로 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몸값을 높이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진등은 유비의 거듭 사양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득에 나섰다. “원공로는 교만하고 오만하여 혼란을 다스릴 만한 군주가 못 됩니다. 지금 서주에서는 당신을 위해 보병과 기병 10만 명을 모으려고 합니다. 위로는 천자를 돕고 백성을 구제하여 춘추시대의 오패와 같은 위업을 이룰 수 있고 아래로는 영지를 나눠 받아 국경을 지켜 공적을 죽백(竹帛)에 남길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제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저도 감히 당신 뜻을 듣지 않겠습니다.” 북해(宰相)의 재상 공융까지 나섰다. 그는 당대의 명성이 자자한 명사였다. “원공로가 어찌 나라를 걱정하고 집안을 잇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는 무덤 속에서 살이 썩어 없어진 송장의 뼈와 같은데 생각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현재 상황으로는 백성이 유능한 인물 곁에 있어야 합니다. 하늘이 내려준 좋은 기회를 받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늦을 겁입니다.” 유비는 더는 사양 못하고 마침내 서주를 다스리게 되었다. 원소도 유비가 서주를 다스리는 것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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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1-08-01
  • 중국 여자배구 때늦은 도쿄올림픽 첫 승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 7월 31일 저녁,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조별리그 B조 4차전에서 일찌감치 본선진출에 실패한 중국 여자배구가 오히려 부담 없이 우승 후보 이탈리아를 3-0으로 꺾었다.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종목에서 첫 승을 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 경기에는 절대 주력 주팅(朱婷)은 출전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전에서 중국 여자배구는 미소를 지으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이탈리아 선발진은 세터(二传手) 마리노프, 주 공격수 포세티와 피트리니, 부공격수 다니시, 파헬, 에그누와 프리랜서 데지날로였고 중국은 주팅, 딩샤(丁霞), 옌니(颜妮)가 출전하지 않았다. 중국의 선발진은 세터 야오디(姚迪), 주공격수 장창닝(张常宁)과 리잉잉(李盈莹), 부공격수 위안신위(袁心玥)와 왕위안위안위안(王媛媛), 쿵샹위(龚翔宇)와 프리랜서 왕멍제(王梦洁)였다. 경기초반 이탈리아 팀이 8-6으로 앞섰으나 이미 아무런 압력이 없는 중국 팀은 매우 순조롭게 경기를 펼쳤다. 주팅이 없는 중국 여자배구였으나 여전히 강팀임을 과시하며 19-14로 앞섰다. 이에 이탈리아는 세라로 교체됐지만 중국은 22-18로 앞서며 맹활약, 리잉잉의 강슛으로 중국은 25-21로 첫 세트를 마무리했다. 2 세트에 들어 리잉잉의 컨디션이 올라가자 패스가 안정됐고 전술에도 탄력이 붙으면서 중국이 13-8로 앞섰다. 이탈리아는 세라 포세티를 교체하면서 피트리니와 주공격라인을 이뤘지만 중국의 기세를 꺾지 못했으며 중국의 서브는 이탈리아 팀의 패스를 자주 받아쳤다. 중국 팀이 17-10으로 앞서자 이탈리아는 포세티를 다시 세라로 교체했으며 중국은 리잉잉의 돌풍 중 25-20으로 한판 더 이겼다 이어 3세트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는 주력 부공격인 키리첼라까지 등장해 전황이 점점 치열해졌다. 3세트야말로 중국 팀의 진정한 시험장이었다. 이탈리아 팀은 모든 주전이 출전하여 반드시 이긴다는 속내였다. 그러나 주팅이 없는 중국 여자배구는 점점 수준급 플레이를 펼쳤고 야오디의 블로킹(拦网)이 성공하면서 중국은 20-19로 앞섰으며 다시 이탈리아가 23-21로 역전했다가 왕위안위안의 완파로 중국 팀이 23 동점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탈리아가 실책을 범한 가운데 중국이 26-24로 승리, 이탈리아를 꺾었다. 8월 2일, 중국 팀은 (현지시간) 15시 25분 아르헨티나와 마지막 경기를 갖는다. 이는 중국 여자배구의 도쿄올림픽 마지막 경기이자 감독 랑핑(郎平)의 마지막 팀과의 작별경기로 된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랑핑은 울먹이며 팬들에게 “경기를 잘 치르지 못해 미안하다. 기대를 많이 해주신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나서 “감독으로서 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번 교훈이 선수들의 성장에 소중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렇게 일찍 탈락될 줄을 몰랐다. 지난 2년 동안 선수들이 열심히 하루하루를 해왔다. 8강 탈락으로 이들의 노력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림픽 이후 거취에 대해 젊은 감독에게 사령탑을 넘기고 물러날 것임을 시사했다. 랑핑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그녀는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날 준비가 돼 있으며 이번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결말을 가져오게 된 것은 아주 의외였다.
    • 스포츠
    2021-08-01
  • 中 법조계, 크리스 유죄 확정되면 중국에서 복역하고 추방당할 것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베이징 경찰은 아이돌 그룹 ‘엑소’의 전 멤버 크리스(30·중국명 우이판·吳亦凡)가 강간 혐의로 차오양 공안지국(朝陽公安支局)에 의해 이미 구속됐다고 통보했다. 이와 관련해 허베이레허(河北熱河) 법률사무소 소속 얀쉬(閆旭) 변호사는 크리스가 다수의 피해자를 성폭행한 사실이 있을 경우 성범죄가 가중될 수 있다며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크리스는 캐나다 국적이지만 영토관할권 원칙에 따라 중국 내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중화인민공화국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베이징 란펑(藍鵬)법률사무소 장치화이(張起淮)변호사는 최종 재판에 들어가면 크리스가 징역형 등을 선고받으면 중국에서 복역하고 복역한 뒤 추방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외국 국적은 호신부가 아니며 아무리 유명세를 타도 면책특권이 없다. 법을 어긴 사람은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한다. 인기가 높을수록 자율을, 잘 나갈수록 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 연예·방송
    2021-08-01
  • 中 22번째 금메달! 궁리쟈오, 여자 포환던지기 우승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1일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올림픽 육상 여자 포환던지기 결승전에서 중국의 궁리쟈오(鞏立姣)가 20m58의 개인 최고기록으로 우승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이번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단의 22번째 금메달이다. 중국의 쑹자원(宋佳媛)이 19m14로 5위, 가오양(高陽)18m67로 10위에 올랐다. 미국의 샌더스(19m79) 2위, 뉴질랜드의 애덤스(19m62)가 3위를 차지했다. 여자 포환 종목은 중국 육상팀의 중요한 골드러시 포인트이다. 2017년과 2019년 세계선수권 우승자이자 이번이 네 번째 올림픽 출전인 궁리쟈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과 2012년 런던 올림픽 은메달 등을 목에 걸었다. 이날 궁리쟈오는 6번째 투구에서 20m58의 개인 최고기록을 세우며 큰 차이로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뤘다.
    • 스포츠
    2021-08-01
  • 中, 31일 코로나19 본토 확진자 53명...해외유입 22명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1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7월 31일(0~24시 기준) 31개 성(자치구·직할시)과 신장생산건설병단(新疆生產建設兵團)에서 75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보고됐다. 이날 신규 확진자 75명 중 22명은 (윈난 7명, 상하이 5명, 톈진 3명, 네이멍구 2명, 저장 1명, 허난 1명, 쓰촨 1명)해외입국자이며 53명은 본토(장쑤 30명, 허난 12명, 후난 4명, 윈난 3명, 푸젠 1명, 산둥 1명, 후베이 1명, 닝샤 1명) 확진자이다. 추가 사망자는 없으며 의심환자 1명(해외유입)은 상하이에서 발견됐다. 이날 퇴원환자는 24명이고 의학관찰에서 해제된 밀접접촉자는 715명이다. 중증환자는 전날보다 1명 줄었다. 31일 24시 기준 기존 확진자 1022명(중증 25명), 누적 퇴원환자 87347명, 누적 사망자 4636명, 누적 확진자 93005명이 보고됐다. 현재 의학 관찰 중인 밀접 접촉자는 24257명으로 집계됐다. 이외 홍콩·마카오·타이완 지역의 누적 확진자는 27717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홍콩특별행정구 확진자는11984명(퇴원 11713명, 사망 212명), 마카오 특별행정구는 59명(퇴원 54명), 타이완 지역 확진자는 15674명(퇴원 12856명, 사망 78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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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1
  • 중국 여자배구, 이탈리아 3-0 완파 '조별리그 탈락'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중국 여자배구는 31일(현지 시간) 도쿄 올림픽 조별리그 4차전에서 3연승을 달리던 이탈리아를 3-0으로 꺾고 첫 승을 신고했다. 터키 여자배구가 이날 아르헨티나를 3-0으로 꺽는 바람에 3연패에 빠졌던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도쿄 올림픽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는 1984년 이후 올림픽에서 중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기록한 역대 최악의 성적이다. 이탈리아전에서는 손목 부상을 입은 주팅(朱婷)은 출전하지 않았고 위안신위(袁心玥), 공샹위(龔翔宇), 왕위안(王媛媛), 장창녕(張常寧), 야오디(姚迪), 리잉잉(李盈瑩)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다. 랑핑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기지 못해도 기죽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라며 선수들을 격려했으며 압박감을 털어버린 중국은 드디어 이번 경기에서 진정한 강팀의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 내내 중국은 활발한 경기를 펼치며 과정부터 득점까지 전반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등 모든 면에서 상대를 압도했다. 결국 중국은 3-0(25:21, 25:20, 26:24)으로 대승을 거뒀다. 중국은 8월 2일 이번 올림픽 마지막 상대 아르헨티나와 맞붙는다.
    • 스포츠
    202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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