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02(일)
 


가정분위기의 양념-유머와 이해


아침마다 출근에 쫓겨서 신경이 잔뜩 예민해지는 나다.


다섯시에 일어나서 밥짓고 반찬하고 상까지 차려놓는 동안 식구들은 이불 밑에서 옴짝달싹하지 않을때가 많다.조급한 마음에 슬슬 화가 치솟는다.얼른 밥들을 먹어야 설거지 해놓고 출근할텐데..


"얼른 일어들 안나냐? 다 해놓은 밥 제때에 먹어만 줘두 돕는건데.암기공부 같은 것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한시간씩 해야지. 밤이면 늦게까지 텔레비나 보고 늘 그렇게 늦잠들이나 자니 중점고중엔 어찌붙고 대학엔 어찌간단 말이냐? 에구 속터져!"


여전히 응대들이 없다.


그제는 내 참을성이 한계에 이르렀다.온식구가 무더기로 지각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어서 일어들 나지 못하겠느냐!?"


이어서 이부자리가 허공중에 날아나고 베개 뺏긴 애들의 머리가 덩굴 떠난 호박통마냥 방바닥에 나 뒹군다. 엉덩이들에서 장구소리가 나게 두들겨서 야단법석을 떨어대며 세수시키고 양치시키고....  닷발이나 나온 입들에 밥이야 제대로 들어갔든 말든 닥달을 해서 학교에 쫓아 보냈다.


헌데 어젯밤 술이 만취해서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던 남편은 그때까지 이불 밑에서 꿈쩍도 않고 있다.


"당신은 출근도 안해요?"


"단위(직장)에 오늘 하루 말미를 맡았어!"


"술 마신게 무슨 큰 벼슬이라구 말미까지 맡고 난리예요? 술두 어쩌면 맨날 목숨걸고 마시는지 원! 함께 출퇴근하는 사이에 돕지는 못할망정 허구한날 술타령이니 에구구 . 이집에서 나만 종이구 노예지. 정말 속상해 죽겠네!"


이어서 그릇소리가 왱강댕강 시에미 격덕에 개 배때기를 차는 식으로 내 설거지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는 내가 마냥 못마땅한 남편이였다.


"당신은 맨날 아침이면 기운이 솟아서 야단이야?"


"뭐 뭐?! 기운이 솟아서!?" 기막히다. 대꾸하면 출근전에 부부싸움이라도 날 것 같아서 그만두고 볼이 잔뜩 부어갖고 발뒤꿈치에서 비파소리가 나게 직장으로 달리는 내 속에서 천불이 인다. 에구 내 팔자야, 맨날 요모양 요꼴이니 사는 재미는 커녕 정신이 다 없네!


그렇게 여덥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의 나한테 속하지 않은 시간이 지나간다.


하지만 하루해가 저물어 퇴근해서 집에 오면 또 여유작작 기분이다. 콧노래가 절로나고 행복감에 들떠갖고 될수록 신경을 써서 맛있는것도 애들한테 해 먹이고 다그쳐 설거지에 아침준비까지 끝내고는 또 자기 시간이라 책도 보고 애들한테 옛말도 들려주고....... 어차피 잠만 적게 자면 되니까 걱정이 없다. 날 밝을 때까지, 아니 아침 다섯시까진 적어도 내 자유시간이니까.


늘 그렇게 살아왔다. 내 생각에 맞벌이 부부라 애들을 키우면서 다른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헌데 그걸 개변시킨 것은 나의 큰 아들애였다.


그날도 늘 그랬듯이 잠자기 전 옛말 시간이 끝이나서 하회는 다음 날 밤에 들려 주기로 하고 애들을 잠자리에 몰아 넣는데 큰 아들애가 한마디 한다.


'엄마는 말이야, 밤이면 천사인데 아침이면 마귀로 돌변한단 말이야!"그말에 작은 아들애와 딸애까지 이구동성으로


"그래맞아! 정말그래!!!!" 하고 찬성한다.

난 끔쩍 놀랬다. 내가 하루사이에 애들의 마음속에서 천사와 마귀사이를 오가고 있었나?!!


나는 그런것 같지 않은데.... 아니 내딴에는 내가 책과 신문에서 보고 남들한테서 전해들은 이세상 최고로 훌륭한 어머니들의 모습을 닮으려고 그처럼 노력을 한 건데.김이새고 기가 죽는다. 그러면서도 곰곰히 생각하니 아들애의 맘이 어느정도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릴때 난 우리 어머니를 드문히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책보기를 좋아했던 나는 숙제가 끝이나기 바쁘게 책을 보기가 일쑤였다. 아이 여럿을 키우시면서 늘 여유가 없으셨던 어머니라 그런 내가 마냥 못마땅하시다.


"고 손에서 책을 못놓겠느냐?"그리고는


 물길어 오너라. 텃밭에 풀 뽑아라. 고추밭에 물주어라.밥 짓겠는데 불 때라.설거지를 해라. 그렇게 책 때문에 늘 집구석에 박혀 있어서 엄마 눈에 많이 띄었던 탓이 였던가 아니면 재매간에 제일 말잘듣고 만만해서 였던가 여럿중에 나한테만은 더구나 특별하셔서 정해놓고 줄 잔소리시다.


그것도 내가 보는 책 속의 주인공이 죽느냐 사느냐 긴요한 대목에 그러시는 엄마가 난 정말로 싫었었다.


그렇지만도 어쩔수 없이 보던 책을 치우고 어머니의 심부름을 열심히 하고나면 행복한 밤 시간이야 맘놓고 책 본들 뭐라 할가고 생각했지만도 그게 아니였다.


"자겠는데 불끄지 못하겠느냐? 아이구 또 책이네. 아예 부엌아궁이에 집어 넣기전에 얼른 치우지 못할까?"그렇게 어머니는 지독한 소리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어머니는 평생 아들 하나 못낳으시고 시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애매한 우리 딸들한테 푸신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게 무슨 나쁜짓도 아니고 고작 책을 지나치게 읽는 것이 그리도 눈에 거슬렸을까?


그래서 내가 어머니로 된 후에는 애들한테 꼭 민주적인 좋은 인상만을 주려고 노력 했었는데 나도 어쩔수 없는 우리엄마 딸이다. 특히나 아침에 따뜻한 이불속에서 단잠을 자는 아이들을 억지로 이불 벗겨 던지고 베개를 마구 당겨 빼서 머리통이 뗑하도록 애들을 괴롭히는 폭력적인 행동은  꼭 옛날 우리엄마의 방식이였다.


지금이 어느땐데? 5~60년대의 무지몽매한 방식으로 애들을 짓몰아 댔던 내가 후회스럽고 부끄럽다.


또다시 전투같이 시작되는 아침시간이였다.난 여전히 조급하고 그래서 신경이 날카롭다.


허지만 꾹 참고 먼저 딸애의 방에가서 살그니 이불을 들면서 한마디 했다.


"큰 아씨. 좀 더 자면 지각할텐데 그래두 괜찮겠수?"


낮게한 그 한마디에 딸애의 눈이 번쩍 떠지더니


"후후훗!"하고 웃음보를 터뜨린다.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서두른다.


아들애가 자는 방에가서 난 더구나 엉뚱한 소리를 했다.


"큰 도련님은 지각해도 괜찮으시다면 좀 더 주무시오."그러고는 짐짓 이불귀까지 꽁꽁 여며주었다.


헌데 아들애 역시 "히히힛!"웃더니 재빨리 일어나서 전에없이 이불까지 곱게 갠다. 옛말이나 드라마에서만 접했던 호칭을 자기한테 써주니 무척이나 신기하고 기분좋은 모양이였다.


그날 아침은 여느때보다 조용히들 서둘렀지만 여유작작 애들은 밥 맛있게 먹고 신이나서 학교에 달려갔고 직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도 가볍다.


그로부터 우리집 애들의 호칭은 여러가지로 불리였다.


상황에 따라서 딸애는 공주님 혹은 아씨님이요. 큰 아들애는 세자님이나 도련님이나 그렇게 호칭을 조절하는외에 작은 아들애는 무조건 대학생이다.그것도 북경대학생! 말이 씨가 된다는데 이왕이면 자기 아들한테 씨가 될 좋은 호칭이야 제 맘대로 붙이지 못할까?


그 날은 직장에서 또 회식이 있었으므로 남편은 자정이 지나서야 만취해서 집에 왔었다. 밤새 속이 불편해서 화장실을 드나들던 그이라 아침엔 애들이 학교 다 갈때까지 예외없이 또 늦잠이였다.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늘 그러는 남편이 난 무지 싫었지만 한결같이 개변도 못시키고 제속만 끓여댈 뿐이였다.


주방에선 해장국이 맛있게 끓고 있었다.


남편의 침대머리에 다가간 난 근래에 눈에 뜨이게 많이 생긴 주름살에 입까지 맥없이 벌리고 후줄근하니 잠들어 있는그이의 모습
을 보고 있노라니 새삼스레 안되고 측은한 생각이 든다, 언제 저리도 많이 늙었을까? 복잡한 인간관계와 끝없는 경쟁속에서 살아 남으려고 나름대로 악을쓰고 있는 남편이였다. 그 속에 쌓인 울화와 스트레슨들 오죽할까? 그래도 한 가정의 세대주요 한 여자의 남편구실을 착실히 하고 있는 남편이다. 전엔 그걸 이해하려 하지않고 그냥 술 먹는다고 미워만 했던게 미안하다.그이라고 번마다 술 마시기 좋아서만 마시는 건 아닐 겻이다.


"여보, 밤새 고생했는데 해장국이라도 마시고 다시 주무시든가 그러세요."오랜만에 바가지가 아니고 물기어린 차분하고 정겨운 말소리라 그랬을까? 남편의 두눈이 잠자던 사람 같지 않게 생기를 띠고 번쩍인다. 그리고는 "다, 당신 금방 뭐, 뭐라고 했어?" 한다.

"콩나물 해장국 마시라구요."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어찌알고?!"


남편은 감격스러운 표정에 잔뜩 신이나서 세수하고 밥상에 마주 앉는다.

"
어허! 시원하다. 어허 시원해!!" 남편은 그렇게 감탄을 연발하고 밥까지 말아서 콩나물 국 두 그릇이나 비웠다.


"어, 이제야 살 것 같다!"배를 두드리면서 남편은 날 보고 씩 웃기까지 했다. 술 마신 이튿날 그렇게 만족해하는 모습을 오랜 세월 함께 살면서 난 처음으로 보았다. 속에서 뭔가 뭉클한다. 조금만 더 이해하고 신경을 쓰면 되는 것을 왜 바가지가 만능인 줄로만 알았을까?


"이제 나두 술 좀 작작 마셔야겠어!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그렇게 콩나물국 덕에 난 바가지로는 평생 어림짝도 없을 남편의 맹세까지 보너스로 받아 냈었다.


이제 유머와 이해로 한결 부드럽고 따뜻해진 우리집 분위기다. 언제부턴가 애들이 이 엄마에 대한 호칭도 변했다. "이야기 주머니"혹은 " 만능엄마" "천사엄마" 그렇게....


물론 나는 만능이 아니다. 결점이 많으나 노력하는 엄마라는 건 승인 할수가 있다. 그래서 애들이 나에대한 호칭에서 그 기대를 읽었고 그것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붉은 기와를 얹은 옛스런 단층 벽돌집에서 어렵게 살았지만 행복했었던 우리집 옛 이야기 한토막 입니다. 지금은 세대주가 죽고 옛집은 남의 집이 되어 버린데다 애들과 저 역시 천리 만리 떨어진 외국이나 타향에 골고루 흩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마음이 너무 많이 아파서 눈물이 납니다.

/ 박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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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던 세월의 가슴벅찬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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