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9(일)
 

그립고 그리운 빈이 아빠. 그새도 안녕하셨습니까!

당신이 가신지도 어언 8년 7개월하고도 이틀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참 유수같다는 말이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봅니다. 아니 당신이 한국으로 떠나던 2002년의 8월 12일부터 계산한다면 당신과 갈라진 나날이 10년하고도 일 개월 일주일이 지난 것입니다. 참 세월이 많이도 흘러갔지요........

저는 그새 아이들을 거느리고 당신이 살아계서서 보신대도 흡족해 하리만치 열심히 살았습니다.

홍매는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점을 꾸려서 그럭저럭 괜찮게 장사하고 있는듯하고 훈이는 북경에 집도 장만하고 직장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벼슬까지 하는데다 얼마전에는 딸도 낳았습니다.

당신은 늘 입버릇처럼 외우셨지요 작은 아들은 너무 총명하니까 부모된 입장에서 유학을 보내서 더 창창한 앞날을 도모해 주지 않는다면 죄짓는 거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가서 돈을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일년 반 동안이나 야근을 하는 무리로 목숨까지 잃은 당신입니다. 한데 이제 당신도 시름놓으십시오. 금년 4월에 빈이는 몇 년을 근무했고 남들이 다가 부러워하는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그간 자기가 알뜰히 모아두었던 돈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습니다. 지금 그래서 빈이는 도꾜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시험마다 일등이랍니다. 저절로 알바해서 학비도 잘 벌고 있으니 일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죽는 날까지 원했고 부탁했었던 그 꿈— 연길에다 당신과 제가 함께 살집도 샀거든요. 이 모든것이 당신이 도우시는 덕분이라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당신은 그만치 집식구들한테 끔찍한 분이셨으니까 말입니다.

지금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우리 애들이 공부를 유난히도 잘한다고 직장의 동료들이 우리 둘은 계획생육을 하는게 아깝다고 응당 낳는대로 다 낳아서 나라를 위해 인재들을 공헌해야 한다고 롱을 하더라면서 당신이 저한테 그 얘기를 할때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그 모습이............그리도 그 몇 년은 기분 좋아했었던 당신입니다. 홍매도 부잣집에 시집을 간데다 또 시집에서 기다리던 아들까지 낳았지 큰 아들이 대학에 붙어서 북경서 공부하고 있고 그 해는 또 작은 아들까지 전교는 물론 우리 흑룡강성에서 일등 성적으로 북경과학기술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또 남들처럼 큰돈을 들이지 않고 친척초청으로 한국에 가게되고...

우리집 일은 참말로 잣대로 종이에 금을 긋고 줄을 쳐서 설계도를 그려내듯이 뭐나 계획대로 뜻대로 잘 풀리기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그리 좋기만 한 것이 아니고 그래서 자랑하기를 즐기는 당신이 좀 입을 자제하고 참았으면 그런 생각이 늘 들었습니다. 왜 자랑끝에 쉬 쓴다는 우리말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살아가려면 행과 불행이 언제나 반반이라야 평형이 이루어지는거라고 전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집에 좋은일이 자꾸 겹치니까 저는 말못할 불안감이 앞선 것입니다. 이리 많은 좋은일 뒤끝에 찾아올 그 절반의 불행은 무엇일까? 그렇게.... 당신은 그냥 덮어놓고 좋아만 하시지만 저는 그래서 그게 어떻다고 딱 찍어 말할수가 없이 조마조마 했었던것 같습니다. 그릇에 물이 가득차면 넘치고 달도 둥글면 이지러진다고 했던가요? 아 제가 그런 청승맞은 생각을 왜 했던지 참말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도 내내 그렇게 불안 불안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기껏해서 한국에 계신 당신의 건강에나 이상이 생기지 말았으면 그냥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무사했으면 그런 생각을 했고 애들과 저도 그냥 건강하기만 하면 더 바랄게 없다고 생각을 했지 다른 생각은 꼬물만치도 한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빈이가 대학에 붙어서 북경으로 떠난후 그 몇 달은 그럭저럭 홍매네 아이를 봐주면서 저도 집식구들도 당신도 무난히 지운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불행이 우리집을 덮친 것입니다. 매일같이 저한테 전화주시던 당신입니다. 그리도 기뻐서 어쩔줄 모르시던 당신입니다. 한데 그날도 저하고 통화한지가 두 시간도 되나마나 해서 갑자기 그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왔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떴다나요?! 아 세상에 이런법도 있습니까?! 매일 전화통만 지키고 있는 멍청하고 어수룩한 저더러 어떡하라고 애들을 다 맡기고 당신이 죽습니까?

하늘땅이 캄캄하고 그래서 세상마저 마지막날을 맞이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도 울고 울고 또 울어서 정신마저 돌아버린 것 같았고요.....

그 며칠은 그렇게 정신없이 출국수속을 했고 드디어 2004년 2월 27일 한국가는 비행기를 심양공항에서 탔습니다. 당신이 세상 뜨신지 꼭 열흘되는 날입니다. 아! 지금 생각만해도 잇발이 갈리고 치가 벌벌 떨립니다. 망할놈의 인간들! 무슨 사망비자에 그리 오랜 시간이 지체되는지? 추위를 무릅쓰고 매일 비자신청온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수십미터는 잘 되는 긴줄을 서서 내 순번이 돌아오길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리다가 점심때가 돌아오면 또 개 몰듯이 밖으로 내 몹니다. 집안에서 기다리지 말고 밖에서 나가 부스너털면서 기다려라! 그렇게 총까지 멘 공안일군들이 지키면서 악이나게 만듭니다. 어느 인면수심의 여자가 퍼렇게 살아있는 제 남편이 죽었다고 거짓으로 비자 신청을 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 무슨 열흘씩이나 심사가 필요한데요?! 한데도 섭외결혼에 비지니스비자에 여행비자는 줄줄이 다 도장찍어 나오는데 매일 어두울 때까지 기다려도 또다시 내일 오랍니다. 제 인생의 가장 비참했던 그 며칠을 인간이하의 그 수모를 당하면서 저는 매일 심양주재 한국영사관 앞에서 슬픔에 떨고 치욕에 떨면서 울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날에는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 한국가면 장례때 걸어 놓으려고 크게 확대해서 준비해뒀던 당신의 영정사진을 안고 나갔습니다.

또다시 줄을 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곱게 줄서서 기다렸습니다. 한데 점심때가 돌아오니 또다시 개 몰듯이 바깥으로 내 몹니다. 더는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는것이 아닙니까? 어찌 사람을 이렇게 한계로 내 몬단 말입니까? 당신이 냉동보관함에 들어가 있은지 벌써 열흘이 되어 오는데 그렇게도 사람을 악이 나게 만듭니다.

"야 이것들아 너무 심하지 않느냐! 내 남편이 죽었단 말이다. 네년 남편들이 만약에 죽어서 냉동실에 있다면 어떻겠느냐?! 주검을 뻗쳐놓고 여행을 가고 싶겠느냐? 결혼이 하고 싶겠느냐, 너들도 사람이냐? 이 짐승같은 인간들아! 대한민국이 지상천국이라도 사람을 이리 천시하면 못쓰느리라. 천벌을 받을 것이다. 네 년들한테도 그냥 이렇게 조선족이나 개무시하면서 으시대는 날만 있을줄 아느냐 행과 불행은 언제나 반반이라고 했으렷다. 네 남편이라고 그냥 무사할줄 아느냐! 당장 내 여권에 도장을 찍어 주지 않으면 네년들의 남편놈들이 오늘 내일중으로 내 저주가 맞아서 무리죽음을 당할 것이로다." 창너머로 보이는곳에 비자심사하는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인간들이 다가 여자들이라 내가 싸잡아서 그리 욕을 한 것인데 욕은 듣는 사람이 먹는다고 밖에서 질서유지를 시키던 중국여자가 내 욕을 다 먹은것입니다. 한을 품은 여자의 저주가 오뉴월에도 서리로 내린다 했거늘 그 여자 낯색이 댓바람에 하얗게 질리더니 자기를 저주한다고 야단을 칩니다. 그래 내가 저주를 했다. 어쩔 것이냐? 네년은 저주만 받고서도 그렇게 분하지만 내 남편이 죽어서 지금 이국 타향의 차디찬 냉동실에 홀로 누워 있는터에 그게 뭔 대수냐 네 남편이 이자리에 있으면 달려들어 찢어라두 놓을거다" 당신도 아시다 싶이 전 원래 그런 여자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근데 사람이 악이 나니까 눈에 뵈는게 없었고 무서운 것도 체면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밖을 지키고 있던 공안일꾼들이 폰으로 안과 연락을 합니다.그래서 옹근 아흐레 만에 여권에 도장을 찍은 것입니다.

비행기에 앉으니까 악이나서 잠깐이나마 즘즉했었던 슬픔이 또다시 몰려 옵니다. 당신이 살아 계시고 이렇게 제가 만약에 한국가는 비자를 받아서 비행기에 앉았다면, 공항에 마중나와 절 기다리다가 넓고 따스한 그 품에 포옹해 주실 당신을 눈앞에 그려보며 얼마나 기쁨에 들뜨고 행복감에 가슴이 설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내 생에 처음으로 탄 비행기입니다. 그것도 이런 기막힌 상황에 말입니다. 에라 미친년의 개 팔자!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뭘할까 그냥 확 죽어 버렸으면 차라리…. 저는 그래서 비행기 추락사고라도 콱 났으면 그런 되도 않을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저도 핑게좋게 당신을 따라 가게 되고 저는 그게 더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훈이는 졸업이 눈앞이니까 이제 홍매하고 둘이서 하나밖에 없는 동생 빈이를 어떡하나 책임지고 학업을 마무리하게 하겠지 그런 생각에... 그때는 그냥 제가 죽어서 당신한테 가는게 제일로 당연한 일처럼 생각되었습니다.그래서 머릿속으로 유서 내용까지 다 작성해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아 엄마는 지금 아빠를 따라서 가니까 너무너무 행복하다. 그런즉 절대로 슬퍼 말아라. 홍매는 큰누나이니까 부모없는 두 동생한테는 엄마 대신이고 그래서 동생들은 누나말에 따르거라. 그리고 훈이는 형이니까 졸업을 하게 되면 엄마 아빠한테 효성하는 몫으로 빈이 공부 뒷바라지를 마저 하거라. 엄마가 긴말은 못하겠다. 각자가 우리집 상황이 갑자기 이리 되었으니 알아서들 양심껏 잘 살거라." 그렇게요...............

하지만 비행기는 아무런 탈도 없이 얼마 안되여서 인천공항에 착륙을 했고 저 역시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비행기에서 내린 겁니다. 비행기 사고도 그렇게 그냥 아무렇게나 나는게 아니더라구요....

그게 어제일 같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친척들이 공항에 마중을 나왔었고 저를 안내해서 서울 성심병원의 영안실에 갔습니다. 딱 3년간만 애들을 지키고 있으면 돈을 이따만치 벌어다가 나를 호강시키겠다던 당신입니다. 그 약속을 어이하고 그렇게 차거운 냉동실에 제가 온것도 모르고 누워계십니까?! 제가 왔습니다. 제가 왔다니까요. 당신이 늘 시름못놓고 어디든 데리고 다녀야만 하던 한심한 길치 이 아내가 왔단 말입니다. 그리도 아기같이 보살피면서 평생을 사랑했었던 아내가 왔다고요! 불러도 대답없이 당신은 이미 차디찬 냉기를 뿜고만 계십니다.냉동보관함에 누워계신 열흘이라는 간 시간에 당신은 이미 얼음덩이 같이 싸늘하게 변해 버린 것입니다. 할빈공항에서 저를 마지막으로 포옹해주시던 당신 특유의 체취가 아직도 제 코끝에서 맴돌건만 당신은 이미 굳어진 상태고 당신의 다정한 목소리도 그래서 인제 다신 들을수가 없습니다. 아 제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혔는지 당신은 아시기나 하십니까? 아이구 찢어질듯이 아팠던 내 가슴아-아-아!! 수년세월 저한텐 늘 따스하기만 했던 당신, 지금은 차디차게 굳어버린 당신한테 떨리는 내 손으로 상시옷 입히고 장례해서 벽제화장터에 싣고가서 화장을 했고. 다시 바다장례식장 녹색17번부표를 찾아서 하얗게 재가루로 변해 버린 당신을 모실 때까지, 제가 겪었던 인생 최악의 무서운 그 아픔과 슬픔, 그리고 무더기로 흘렸던 가슴 쓰라린 피눈물, 하늘에 닿는 그 처량함이 어찌 당신이 잠들어 있는 그 바다의 깊이보다 못하다고 할수가 있을까요? 아! 생각하면 지금도 살이 떨리고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그칠줄을 모릅니다. 사람이 살다가 그런 끔찍한 일이 없어야 하는건데!!!...............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갔습니다.

저도 당신을 바다장례식장에 맡기고서 한국에서 열심히 벌었고 한푼도 낭비하지 않고 알뜰히 모았습니다. 이제 그래서 우리도 가난에서 완전 탈출을 한것입니다. 모든게 당신이 늘 꿈으로 넉두리하던 대로입니다. 그냥 단신만이 없어진 것입니다. 혹시 당신의 영혼만은 저와 함께 있는 겁니까?

저는 해마다 설명절이나 음력 칠월십오일-한족들의 귀신절이 돌아오면 빠짐없이 당신한테 종이돈을 태워 보냅니다. 당신이 늘 제 곁을 지켜주고 계신다고 여겨져서 고맙고 든든한 생각에 말입니다.

이제 저의 꿈만 이루면 됩니다. 만약에 그 꿈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옛날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당신도 되살릴수가 있을것 같습니다. 그냥 책속에서라도 당신이 살아 숨쉴 수 있는 그런 꿈입니다...... 저는 누가 뭐래도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백일몽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또 혹시 백일몽이라 하더라도, 저는 열심히 꾸고 또 꿀것입니다. 죽을때까지 그렇게 꾸다보면 언젠가는 뭐라도 되어지겠지 그런 생각입니다. 당신도 많이 도우시고 지켜보고 그러십시오.

아 지금 당신이 살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생각해 봅니다. 당신이 늘 그렇게 외우셨듯이 연길에 집사고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시는 문구치러나 다니시고 저는 또 제가 좋아하는 책을보고 글이나 쓰고 그렇게요. 남에 없이 아이 셋이나 키우면서 어렵게 살았던 그 세월에 당신이나 저한테는 도저히 이룰수 없었던 환상같은 그 꿈이 지금 완전한 현실로 눈앞에 왔습니다. 한데...... 하지만 괜찮습니다. 당신은 늘 저의 곁에 계서서 매일 백번씩이라도 액자속에서 절향해 웃음짓고 계시니까요. 그러니 그냥 거기 그렇게, 그자리에 가만히 계셔도 좋습니다. 제 맘속엔 당신이 늘 살아 계십니다......

지금 이 시각 창밖에는 어스름이 깃들고 있습니다. 제맘을 닮은 궂은비가 추적추적 슬프게 내립니다. 그래도 전 괜찮습니다. 당신은 늘 제 꿈나라에 찾아 오셔서 절 위안해 주십니다. 오늘 밤에도 만날수 있을 겁니다.

아 빈이 아버지, 저승과 이승은 이렇게 만날수가 없지만도 맘은 그냥 이어져 있는게 맞습니까? 대답을 좀 해 보십시오!!....

이제 십년 세월이 되어오지만 저는 그냥 생각할수록 당신이 이리된 것이 기막힐 따름입니다................

이제는 바깥이 완전히 어두워 졌습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오늘은 그만 하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의 아내가

당신과 나의 알뜰한 보금자리에서.

이천 십이년 구월 십구일에…

글/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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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 계신 내님께 삼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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