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9(일)
 


힘들고 벅찬 나날들



오늘도 삼복간의 더위로 잠 못 드는 밤이다. 한국에 온지도 4년 반이 되여 가는 이 밤에도 고향에서 힘 들게 지나온 세월을 떠 올리며 이 세상 자식의 뒤바라지를 하시는 모든 부모들에게 <고생 많으십니다.>라는 인사의 말 한마디 전하고 싶다.


1995년은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잊혀지지 않는,고난의 한 해이기도 하다. 애들이 중학교까지는 시골 학교에서 다닐 수 있었는데 지식을 더 많이 배울려면 고중은 도회지로 가야 했다.고중 입시 성적이 발표되니 큰애의 성적은 537점이였다. ㄹ시에 있는 고중에 가려면 580점 이하는 만원이란 입학비를 받는데 집안 경제 사정이 어려워 ㄹ시 일중에 입학하려고 하니 기숙사가 없어 고려하고 있는데 둘째 시누이가 ㄷ시 철도 고중에서 3천 원을 내면 된다고 하여 교육국의 승낙을 얻고 당안을 갖고 새로운 학교로 갔다. 그때 우리 집에는 단돈 백원밖에 없는 처지에 친척들과 마을에서 빌렸으니 그 애탄 심정은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었다. 저의 심정은 오로지 아들을 공부 시키려는 일념으로 불 타 올랐고, 애를 공부 시키지 못하면 사는 것이 의미 없고 제 인생도 걸었었다. 제가 못한 공부를 아들한테는 마음껏 시키고 싶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아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공부를 잘했다. 아들이 음식에 체해 고생할 때 초약도 정성 들여 달여준 황 할머니가 고마웠고 한 학급을 다니던 김일 학생의 집에서 일년 반이나 돌봐 준 김일이 어머니가 무척 감사하다는 메세지를 보낸다. 우리 집 사정이 어렵다고 식비만 받고 주숙비는 받지 않으면서 아들과 똑 같이 대해준 그 분이 고맙기만 하 다.


대학 입시가 다가왔다. 그날도문에 계시는 황 할머니 집에서 아침 밥을 먹이고 아들을 바래주는 저의 마음은 아팠다. 남들은 시험 준비 기간에 맛나는 음식도 먹이고 영양 보충도 시키련만 저는 식비 대기도 힘들어 가느다란 허리에 입구창이 나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애를 바라보노라니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왜, 내가 아들을 대학 입시에 내몰았던가?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면 안 되는가?>고 하면서 후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후회는 3일 뿐,역시 력사의 한 페이지를 그리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 얼마나 아들 일에 정력을 몰부었던지 꿈에 대학 입시 점수가 나왔다고 하여 그날 전용 코드로 전화햇더니 537점이라고 하였다. 고중 입시 성적과 일치했다. 그제야 아들이 손에 쥐고 있던 책으로 구들을 탕 내리치며 "아,인제는 됐다." 자신감에 넘쳤다.


십년 공부 드디여 결실을 보는 것이다. 이제부터 새로운 설계도를 그릴 수 있으니깐, 우리는 두 애의 공부 뒤바라지를 하느라 고생이 막심했었다. 우린 살기 위해서 밥만 먹으면 되고 고기는 설에나 먹을 수 있었다.


큰 애가 연변대학 과학기술 학원에 입학하고 작은 애의 학비도 마련해야 하는데 향 담배 수매소에 못 받은 돈 3천 원 밖에 없었다. 하여 장씨라 부르는 한족의 담배 영수증으로 3천 원을 쓰기로 하였는데 잎담배회사에 연계하고 여러부문을 뛰여 다니며 해결하는데 9월 7일이 개학인데 전날 오후 세 시에 현금을 쥐게 되였으니 그 애탄 심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여기에서 한 가지 인생의 도리를 터득한 것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애가 대학 간다면 돈이 제절로 해결될 테이지만 평범한 농민 자제는 눈물이 나도록 힘겨웁고 대학에 간다고 기쁜지 슬픈지도 모르고 지냈다.


가난한 집 애가 헴이 빨리 든다고 영어 시간에 남들은 영어로 대화도 하는데 A,B,C부터 배우느라 방학에도 집에 오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해결하느라 ㅂ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컴퓨터를 익히며 홈페이지도 만들며 자립의 길에 나서기도 했다.전 한가지만은 애들한테 확실하게 알려 줬다.<너희 부모는 돈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농민이다. 어디에 기대고 의지할 데도 없으니 제출로는 자기가 찾아야 하고 막노동을 해서라도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딱 찍어 말하면 홀로 서기라고 알려 주면서 일에는 귀천이 없으니 법을 위반하지 않고 나라에서 규제하는 일 외에는 다 할 수 있다고 신근한 노동은 사람을 단련시키고 빨리 성숙되게 한다.


오늘도 대학에 진학한 학부형들도 자식의 입학금 때문에 잠 못 이룰 사람들이 계실 것이고 부모들이 한국행을 해서 해결 받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고 모든 대학생들이 밝은 웃음으로 새로운 교정에 들어가 지식을 배우고 사회에 유용한 인재로 자라나기를 축원하는 바이다.

/현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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