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한국인과 조선족 왜 사이가 나쁠까 (2) - 책임의식



대단히 앞서나가는 생각같지만, 한국인과 조선족의 갈등 문제를 생각하면서 저는 독일인-유태인 사이의 갈등도 처음 시작은 한국인-조선족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역사상 민족간의 갈등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민족의 사례처럼 잘 지내던 두 민족이 갑자기 어느날 안하던 싸움을 시작하는 사례보다는, 독일인과 유태인처럼 은은하게 서로 미워하며 악감정을 쌓아가는 일이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한국인들은 제대로 된 형태의 "인종갈등"이나 "민족갈등"을 경험 못했어요. 한국이 역사상 주권을 완전히 잃어 남의 통치 하에 들어갔던 적은 3번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고려시대때 몽고의 침략에 항복하여 그들의 지배하에서 생활했던 것이고, 두번째는 일제시대였고, 세번째는 일제시대 직후 미군정 하에서 미국의 통제를 잠깐 받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타민족, 타인종과 그나마 많이 조우했던 것은 이 세 경우가 가장 큰 규모였는데, 모두 다 "한민족이 지배 및 통제를 받는 입장"이었지, 타 민족과 어울려 사는 의미로 지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같이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익힌 적은 사실상 없었다고 봐야죠.

독일이나 유럽 미국은 인종문제나 민족 문제에 대한 큰 갈등과 어려움을 경험도 해봤고, 흑백갈등도 겪어봤습니다. (흑백인종갈등은 피부색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싸움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갖고있죠) 그 때문에 비록 갈등이 남아있을 망정, 그것을 다스리는 노하우에 대해서 노련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긴 역사가 흐르는 동안 이렇다할 타민족과 같이 지내는 일을 겪지 못했어요. 기껏해야 화교가 조금 섞이는 정도, 한국의 특정 성씨 중 몇몇이 그 기원이 중국 성씨에 있다는 등, (周씨같은 경우죠) 이런게 고작입니다. 그 때문에 인종갈등 민족갈등 등등의 얘기를 그동안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남의 일을 봐오듯 했던 것이죠.


즉 한국인들은 원래부터 타민족과 원만히 지내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게다가 앞서말한 한국인들의 책임의식, 한국인의 생각 구조의 특이성, 게다가 한국인뿐만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타민족에 대한 감정, 그리고 한국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언론의 농간질, 한국인들 자신들끼리의 싸움과 그 과정에서 배운 적개심... 기타등등, 그렇지않아도 이런 가지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섞여있는 와중에서 한국인들은 조선족을 맞이하였고, 거기서 생기는 여러가지 불상사들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명백히 조선족에게 책임이 있는 잘못도 적지만은 않았고, 한국인들도 자신들의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이런 여러가지 문제들이 조선족에 대한 시각을 나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오해를 풀 수 있는 열쇠는 그다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 때문에 한국인과 조선족은, 서로 잘 지낼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편하게 지내고 있다... 대강 지금 상황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겁니다. 과학적인 통찰은 자신이 없지만 ㅡ이런 문제는, 제대로 파고들면 책 한권도 모자라고 연구 주제 하나가 나올만큼 규모가 큰 문제입니다ㅡ 저는 평범한 일반인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나름대로의 의견을 써 보기로 하죠.


먼저, 앞의 글에서 잠깐 얘기했던 "한국인이 갖고 있는 광범위한 책임의식"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한국인의 사고 구조 중 하나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내용인데, 의외로 다른나라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거든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김씨 집에서 딸을 박씨 집에 시집보냈는데...
그 김씨집안 딸이, 시집가자마자 일주일도 안되어 박씨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 도자기를 깨뜨려 완전히 박살 가루를 내놓은 일이 터진 겁니다.


이 때, 일반적인 한국인 김씨 집안은 "어이쿠! 이럴수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딸이 이런 잘못을 저지르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이러면서 나와요. 솔직히 김씨 집안에서 싹싹 빌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자신들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올 필요가 없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의례상 체면상 헐리우드 액션을 보이는거죠.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박씨 집안에서도 도자기가 아까와서 속으로 눈물을 삼킬 망정 "하하. 사돈댁. 괜찮습니다. 귀한 따님 보내주신걸로도 우리집안에 큰 경사를 선물해 주신건데, 도자기가 대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그냥 좋게좋게 마무리를 하지요. 박씨 집안이 김씨 집안을 "알아서 기는 밸도 없는것들"이라고 보지는 않고, "이 사람이 예의를 아는 사람이구나"라는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갈등봉합과정중 하나고, 한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원만한 마무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김씨 집안에서 이런다면?
"아이 씨, 우리 딸이 이미 당신 집안 사람이 됐는데, 도자기 깨진게 왜 내 책임이야? 웃기는 소리하지 말고 당신집안 걱정이나 해. 그 도자기가 그렇게 귀한거라면 잘 간수하지 그랬어? 짜식아. 왜 그걸 제대로 보관 못해서 우리딸이 도자기 깨먹게 만들어? 더 이상 입 놀리지 마. 오늘 이후로 우리 딸 갈구는(못살게 구는)일 벌어지면 당신들 알아서 해. 당신들 가족 육회를 떠 주고 말겠어."

만약 이렇게 나온다면?
이렇게까지 심하게 나오지 않을망정, 그냥 아무 말도 없이 남의 일 보듯 가만히 있는다면?
박씨 집안에서는 김씨집안을 이해해 줄 생각이 있다가도 분노가 치받아서 화가 나게 됩니다. 싸움은 이렇게 나는 법이죠.


한국인들이 조선족에게 갖는 섭섭함 중에는 이런것도 약간 섞여있습니다.
보이스피싱이나 수원 살인사건 등의 범죄가 벌어졌을 때, 조선족들이 거기에 대해서 미안함을 가질 이유는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다른 조선족이 벌인 문제를 왜 그 범죄자와 상관도 없는 조선족이 책임져야 하겠습니까) "우리 조선족 말투는 이러이러한 특징이 있다. 한국인들은 이런것을 조심하라." 라거나, "우리 조선족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있어서 참으로 부끄럽다. 피해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우리도 많이 슬퍼하고 있다. 한국사회를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라는 식으로 나오는 일이 있었다면, 한국인들의 생각은 상당부분 누그러졌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쌓이다보면 조선족의 이미지는 달라지게 되겠지요.


오늘 올라온 게시물을 보니, 동포세계신문 제267호 2012년 4월 16일 발행 2면에 김성화님이 쓴 글이 소개되었던데, 그 글에서도 비슷한 점을 지적한 듯 합니다. 조선족들 입장에서도, "왜 우리가 먼저 숙여야 하느냐"고 언짢아하실 분이 있겠지만, 요번 수원살인사건처럼 명백히 조선족이 가해자의 입장이 된 상황에서는, 조선족이 "한국의 문화에 따르는 차원에서" 미안함을 표하는 action이 따르는것도 괜찮은 방법일 듯 합니다.


한국에서는 "말"과 "태도"라는게 아주 중요하게 취급됩니다.
어쩌면 조선족 여러분들도 아는 사건일 것 같은데, 2009년 11월 9일 한국에서 방영된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여대생이 "키 180cm 이하의 남자들은 루저"라는 발언을 한 일이 있었어요. 그 일때문에 엄청나게 한국인들이 분노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방송 및 현실에서 여자들이 남자의 인격을 조롱하며 그것을 재미로 희화화하는 일이 수많았던 한국에서, 남자들은 속으로 불쾌했을 망정, 그냥 웃자고 하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넘어가며 참아왔는데, 그 말 한마디때문에 크게 화를 낸 것이죠. 남자들 뿐 아니라, 키가 180cm보다 작은 아들을 두고 있는 어머니도 그 방송을 보고 울었다고 하니 말 다했죠.


여기서 그 여대생이 "나는 나보다 키가 큰 남자와 연애했으면 기분이 좋을것 같다"로 말했다면 대충 키작은 남자들이 투덜대고 끝났을 겁니다. 그러나 말을 격하게 한 탓에 크게 사회적 공분을 샀던 것이죠.


이것은, 그만큼 한국에서는 말과 태도를 중시한다는 얘기입니다. 좀 더 나아가면, 체면과 명분을 중시한다는 동양 일반적인 사고방식과도 통하는면이 있는거죠.

입에 발린 말이라도 좋으니, 그냥 시늉으로 내는 태도라도 좋으니, "이 일은 우리 잘못입니다"라고 나오는 태도를 높이 사는 경향이 있고, 말을 조심해서 하는것을 중시하며, 그런 모습을 교양있는 모습이라고 보는게 보통입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는, 상대가 교양이 없다면 이런 숙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도리어 깔보기도 하는데, 요번처럼 "집단과 집단의 관계"에서는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따르는 rule을 감안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수원 살인사건 피해자를 위로방문하거나 묘소 참배를 하는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 위로방문을 하자니 불에 기름붓는것 같아서 망설여진다면, 카페 대문에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큰 배너를 일정기간동안 붙인다거나 하는것도 방법일 듯 합니다. 살인사건이 이미 조금 지났으니 지금 당장 다는 것은 늦었겠지만, 사건후 1개월, 사건후 1년 뒤에 "오늘은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지 얼마가 되는 날입니다. 마음으로 희생자에 대한 명복을 빌어 주십시오"라고 크게 표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선 한국인의 약점을 하나 써 보도록 하지요.


박성인 kenwoo@hanmail.net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한국인과 조선족 왜 사이가 나쁠까 (2) - 책임의식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