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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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즌 개시를 앞두고 한마디…
    2013 시즌 갑급리그 개시(16일 개막전, 연변팀 17일 경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연변팀에 관련된 모든 분야가 분주하고 축구팬들은 기대와 격정에 부풀어있을것이다.팔희팀에서 최근 거금을 투입해 외적감독을 모셔오고 선수들도 대거 영입해들였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연변팀은 나름대로 선수원은 적지만 짜임새가 있는 팀이다. 팀의 첫승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 연변축구에 큰 힘을 가져다줄것이다. 몇가지 문제를 화제에 올려보려 한다. 연변에서 프로팀의 존재가치는 무엇일가? 연변팀 취재를 하며 프로팀이 연변에 존재해야 하는 가치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게 된다. 프로축구팀의 존재는 작은 의미에서는 전반 연변의 스포츠활성으로 이어지게 되며 크게는 연변의 대외형상이미지, 민족의 얼과 긍지감을 강조시키는 촉매제역할을 해준다. 또한 전반 연변의 정신문명생활에서도 마멸할수 없는 공헌을 해왔고 그 위치를 지켜가고있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하는것은 연변축구가 그래도 살아야 한다면 감독진과 선수 프로축구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이 연변프로축구의 존재가치에 대해 마음을 열고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돼서이다. 감독 및 선수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연변팀은 연변인민들에게 얼과 같은 존재이다. 하기에 많은 사람들은 한국적 조긍연감독의 축구는 과연 어떤 철학과 자세를 가지고 선수들을 이끌어나갈지에 주목하고있는것이다. 팀에 관한 모든 재정적 부분 및 선수들 로임, 장려금 지불 등은 결책층과 구단에서 하지만 선수출전 및 관리와 경기승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바로 감독이다. 감독은 승리를 이루고저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지난해 시즌 조감독에게 불미스런 일들도 있었다. 조감독은 독보적인 카리스마 등 여러 장점이 겹치는 감독이다. 올시즌 역경을 잘 헤쳐나가면서 한껨한껨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의지에 많은 기대가 간다. 올시즌을 위해 가장 많은 땀을 흘릴 감독진과 선수들의 성공을 기원한다. 연변축구는 우리 연변의 기상이요, 상징이며 우리 민족 슬기의 결정체이다. 연변일보 리영수기자
    • 스포츠
    2013-03-15
  • 연변축구의 “`97신화”와 오늘의 현실
    ● 위기는 새로운 기회로 될수도 있어 이제 며칠만 되면 16개 갑급제후들이 판가름을 할 중국축구 갑급리그가 전면 가동이 된다. 올시즌을 앞두고 지난 겨울철전훈때부터 갑급권의 많은 구단들은 “올해엔 얼마만큼의 자금을 투입하게 되오”, “어떤 수준급의 외적용병을 영입하오”하며 구단실력보강에 열을 올리는 반면 우리 연변장백호랑이팀(이하 연변팀)만은 비교적 조용하다. 정부측의 2000만원 투자로 “슈퍼리그진출”을 웨치던 지난해와는 판판 다른 양상이다. 하긴 올해엔 정부측의 투자와 구단관명권투자유치 등이 아직도 즘즘한데다 선후로 고만국, 허파, 배육문, 최영철, 강홍권 등 주전들이 대거 빠져나갔으며 거기에 중국축구협회 규률검사위로부터 강점 3점 및 벌금 50만원이란 책벌이 내려진 상황이다. 구단측의 속내를 리해하지 못하는바가 아니며 국내의 많은 매체들까지 올해의 가장 유력한 강등팀으로 연변팀을 꼽는 추측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위기 또한 가장 훌륭한 기회로 될수 있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획기적인 변화 기회창조의 관건 중외고금의 력사를 놓고볼 때 위기가 기회로 될 때가 많았다. 축구도 그 례외가 아니였다. 연변축구를 보더라도 그것이 좋은 실례가 된다. 1996년 연변축구에는 위기가 닥쳐왔다. 그해 연변조선족들을 주축으로 하는 길림삼성팀은 전국축구 갑A리그에서 10위로 간신히 갑A잔류에 성공, 이러한 위기중 그 이듬해인 1997년 팀을 맡은 분이 바로 한국의 최은택교수였다. 팀을 맡은 최은택감독은 팀에 대수술을 들이댔다. 그 당시 연변오동팀은 리홍군, 방근섭, 김광주 등 주축들이 이적 혹은 질병 등으로 팀을 리탈한 상태여서 최은택감독은 어쩔수 없이 고종훈, 황동춘 등을 주축으로 김청, 천학봉과 같은 신진양성에 모를 박으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성적은 인차 나타난것이 아니였다. 제6륜까지 1무 5패로 1점을 기록한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의 약체팀으로 불린 8.1팀과의 원정경기에서 3 : 0으로 완승했고 제6륜부터 련속 9륜을 무패행진하는 “한국선풍”을 일으켰으며 연길홈장에서 대련만달의 47라운드 불패기록을 깨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그해에 8승 5무 9패로 갑A리그의 4위에 올랐다. 한편 지난해 연변장백호랑이팀(이하 연변팀)은 또 한차례의 위기를 맞았다. 10승 4무 16패 34점으로 겨우 갑급 13위에 머물었다. 득 38꼴에 실 51꼴을 기록했다. 체면이 서지 않는 기록이였다. 1996년의 경우와 비슷한 상황이였다. 그리고 1996년이 지난 뒤 한국의 최은택교수가 왔고 올해엔 한국의 조긍연이 왔다. 다르다면 조긍연감독이 지난해 연변팀 경기 몇껨 지휘했다는것뿐이다. 팀상황도 비슷하다. 고만국, 허파, 배육문, 최영철, 강홍권 등 주전들이 대거 빠져나갔으며 팀사기도 어느 정도 저락돼있다. 거기에 올해엔 – 3점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다면 올해 조긍연이 1997년의 최은택감독에 이어 새로운 축구선풍을 일으킬수 있을가? 필자의 분석으로는 그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할수 있다. “양이 이끄는 사자무리는 사자와 같은 용맹이 있을수 없지만 사자가 이끄는 양무리는 사나운 무리로 될수 있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조긍연감독이 연변팀을 잠시 지휘할 때 어느 정도 보아낼수 있었다. 조긍연감독은 사령탑을 잡은 짧은 기간에도 구단관리를 엄하게 하는 한편 수비핵심 리민휘와 신진들인 박세호, 손군 등을 대담하게 기용했으며 팀의 성적을 어느 정도 끌어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중반에 사령탑을 잡았기에 팀풍격을 완전히 전환시키기엔 시간적으로 부족하였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겨울철전훈부터 팀을 장악하고 자신의 축구 사상과 시스템을 주입하고있는것으로 전해지고있다. 한국감독들의 기전술체계에 대하여 왈가왈부할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구단관리에 대해서만은 그 무엇인가 특별한것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제날의 최은택, 리장수와 차범근이 그랬다. 축구뿐이 아니였다. 선후로 중국 국가녀자핸드볼팀을 맡았던 정형훈, 중국 국가녀자양궁팀을 맡았던 양창훈, 중국 국가녀자하키팀을 맡았던 김창백 등도 중국 국가팀을 이끌고 세계선수권 및 올림픽에서 메달권내에 진입했었다. 그만큼 어찌보면 한국감독들이 유럽이나 남미의 감독보다 한수 우위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비결이라면 유럽이나 남미의 감독들이 60% 정도의 능률을 낸다고 할 때 한국감독들은 100% 혹은 그 이상의 능률을 낸다는것이라고나 할가? 여하튼 올해들어 조긍연감독이 연변팀을 이끌고 슈퍼리그진출에 성공하거나 그렇치 못하더라도 갑급의 앞순위에까지 끌어올리기만 하면 한국감독들의 선진적인 구단관리비결이 재차 증명될수 있다고 보아진다. 적치된 난제 악성순환 될수도 그제날의 최은택감독처럼 조긍연감독도 연변팀을 이끌고 새로운 “한국선풍”을 일으킬수 있다는 점은 우에서 이미 언급한바이다. 또 이를 바라고있는 연변의 축구팬들이다. 하지만 반면에 연변팀한테 1997년보다는 아주 불리한 객관환경이 조성돼있다. 우선 이미 말밥에 올랐지만 올시즌 연변팀은 -3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축구에서 3점벌이란 이기만 한경기에서 따낼수 있지만 빅는 경기라면 3경기를 치러야 따낼수 있는 성적이며 지고빅고 하는 경기라면 몇개 라운드를 거쳐야 할지도 미지수이다. 1997년 최은택감독도 6경기에서 1점을 따낸 사례도 있다. 때문에 그 3점을 따내려면 많은 대가를 치를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1997년엔 1500만원이란 오동그룹의 관명권후원이 있었지만 올해는 아직 관명권협찬자는물론 기타의 후원자도 나타나지 않고있는 상황이다. 축구와 경제를 너무 련결시키는것도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경제를 무시할수도 없는것이 현재 중국스포츠계의 현실이다. 특히 축구가 그렇다. 올해 많은 주전들이 연변을 떠나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그들이라고 연변이 싫어서 떠났겠는가? 모두가 보다 대우가 좋은 곳을 선택하다보니 그렇게 된것이라고 보아진다. 다음 올해들어 여러 구단들에서 슈퍼리그진출 혹은 을급에로의 강등모면을 위해 연변팀을 “제밥”으로 만들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판단이다. 최근 몇년간 중국축구계에서 공평경쟁을 위한 환경조성마련에 노력을 많이 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알다가도 모를 스포츠가 중국축구이다. 항간에서 중국축구협회가 몇몇 돈줄이 긴 구단앞에서는 쩔쩔 맨다는 소문이 날 정도이다. 그리고 이왕의 사례들을 봐서 연변팀이 심판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기도 했다. 조긍연감독이 능력자라는것을 의심하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이 “거칠고도 험한 중국축구계”에서 “고군작전”을 하자면 필경 많은 장애벽에 부딪칠수 있다는것이다. 또한 조긍연도 사람인만큼 능력이 한계가 있을것이고 그 능력이 바닥을 칠수도 있는법이다. 애로와 진통이 거듭되다보면 흔들릴수 있고 그 자신이 흔들리면 전반 구단상하에 악성순환이 들이닥칠수도 있으며 결국 한국축구인의 체면도 땅에 떨어질수 있다. 김철균/조글로미디어
    • 스포츠
    2013-03-14
  • 외국인 불법고용 단속협조 안내문
    최근 저임금, 구인난 등을 이유로 외국인을 불법고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불법체류자가 크게 늘고 있다. 불법체류자는 국민의 일자리를 잃게 하고 세금을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경우 신원불명으로 검거하기 어려워 이들을 방치할 경우 그 폐해는 우리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앞으로 법무부는 외국인 불법고용을 근절하고 불법체류자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단속을 실시할 예정이오니, 귀 회사 또는 사업장 방문 시 단속업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란다. 외국인을 불법고용하다 적발되면 최고 2천만원 이하의 벌금,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등의 형사처벌을 받게 되고, 차후 외국인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기회도 박탈된다. 따라서, 외국인을 불법고용하고 있다면 즉시 불법고용을 중단하고 외국인을 자진출국시켜 형사처벌 등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란다. 외국인고용과 관련한 사항은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1345) 또는 고용지원센터(☎1350)에문의하면된다. 법무부
    • 외국인· 출입국
    2013-03-13
  • 어렵던 세월의 가슴벅찬 행복
    가정분위기의 양념-유머와 이해 아침마다 출근에 쫓겨서 신경이 잔뜩 예민해지는 나다. 다섯시에 일어나서 밥짓고 반찬하고 상까지 차려놓는 동안 식구들은 이불 밑에서 옴짝달싹하지 않을때가 많다.조급한 마음에 슬슬 화가 치솟는다.얼른 밥들을 먹어야 설거지 해놓고 출근할텐데.. "얼른 일어들 안나냐? 다 해놓은 밥 제때에 먹어만 줘두 돕는건데.암기공부 같은 것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한시간씩 해야지. 밤이면 늦게까지 텔레비나 보고 늘 그렇게 늦잠들이나 자니 중점고중엔 어찌붙고 대학엔 어찌간단 말이냐? 에구 속터져!" 여전히 응대들이 없다. 그제는 내 참을성이 한계에 이르렀다.온식구가 무더기로 지각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어서 일어들 나지 못하겠느냐!?" 이어서 이부자리가 허공중에 날아나고 베개 뺏긴 애들의 머리가 덩굴 떠난 호박통마냥 방바닥에 나 뒹군다. 엉덩이들에서 장구소리가 나게 두들겨서 야단법석을 떨어대며 세수시키고 양치시키고.... 닷발이나 나온 입들에 밥이야 제대로 들어갔든 말든 닥달을 해서 학교에 쫓아 보냈다. 헌데 어젯밤 술이 만취해서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던 남편은 그때까지 이불 밑에서 꿈쩍도 않고 있다. "당신은 출근도 안해요?" "단위(직장)에 오늘 하루 말미를 맡았어!" "술 마신게 무슨 큰 벼슬이라구 말미까지 맡고 난리예요? 술두 어쩌면 맨날 목숨걸고 마시는지 원! 함께 출퇴근하는 사이에 돕지는 못할망정 허구한날 술타령이니 에구구 . 이집에서 나만 종이구 노예지. 정말 속상해 죽겠네!" 이어서 그릇소리가 왱강댕강 시에미 격덕에 개 배때기를 차는 식으로 내 설거지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는 내가 마냥 못마땅한 남편이였다. "당신은 맨날 아침이면 기운이 솟아서 야단이야?" "뭐 뭐?! 기운이 솟아서!?" 기막히다. 대꾸하면 출근전에 부부싸움이라도 날 것 같아서 그만두고 볼이 잔뜩 부어갖고 발뒤꿈치에서 비파소리가 나게 직장으로 달리는 내 속에서 천불이 인다. 에구 내 팔자야, 맨날 요모양 요꼴이니 사는 재미는 커녕 정신이 다 없네! 그렇게 여덥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의 나한테 속하지 않은 시간이 지나간다. 하지만 하루해가 저물어 퇴근해서 집에 오면 또 여유작작 기분이다. 콧노래가 절로나고 행복감에 들떠갖고 될수록 신경을 써서 맛있는것도 애들한테 해 먹이고 다그쳐 설거지에 아침준비까지 끝내고는 또 자기 시간이라 책도 보고 애들한테 옛말도 들려주고....... 어차피 잠만 적게 자면 되니까 걱정이 없다. 날 밝을 때까지, 아니 아침 다섯시까진 적어도 내 자유시간이니까. 늘 그렇게 살아왔다. 내 생각에 맞벌이 부부라 애들을 키우면서 다른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헌데 그걸 개변시킨 것은 나의 큰 아들애였다. 그날도 늘 그랬듯이 잠자기 전 옛말 시간이 끝이나서 하회는 다음 날 밤에 들려 주기로 하고 애들을 잠자리에 몰아 넣는데 큰 아들애가 한마디 한다. '엄마는 말이야, 밤이면 천사인데 아침이면 마귀로 돌변한단 말이야!"그말에 작은 아들애와 딸애까지 이구동성으로 "그래맞아! 정말그래!!!!" 하고 찬성한다. 난 끔쩍 놀랬다. 내가 하루사이에 애들의 마음속에서 천사와 마귀사이를 오가고 있었나?!! 나는 그런것 같지 않은데.... 아니 내딴에는 내가 책과 신문에서 보고 남들한테서 전해들은 이세상 최고로 훌륭한 어머니들의 모습을 닮으려고 그처럼 노력을 한 건데.김이새고 기가 죽는다. 그러면서도 곰곰히 생각하니 아들애의 맘이 어느정도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릴때 난 우리 어머니를 드문히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책보기를 좋아했던 나는 숙제가 끝이나기 바쁘게 책을 보기가 일쑤였다. 아이 여럿을 키우시면서 늘 여유가 없으셨던 어머니라 그런 내가 마냥 못마땅하시다. "고 손에서 책을 못놓겠느냐?"그리고는 물길어 오너라. 텃밭에 풀 뽑아라. 고추밭에 물주어라.밥 짓겠는데 불 때라.설거지를 해라. 그렇게 책 때문에 늘 집구석에 박혀 있어서 엄마 눈에 많이 띄었던 탓이 였던가 아니면 재매간에 제일 말잘듣고 만만해서 였던가 여럿중에 나한테만은 더구나 특별하셔서 정해놓고 줄 잔소리시다. 그것도 내가 보는 책 속의 주인공이 죽느냐 사느냐 긴요한 대목에 그러시는 엄마가 난 정말로 싫었었다. 그렇지만도 어쩔수 없이 보던 책을 치우고 어머니의 심부름을 열심히 하고나면 행복한 밤 시간이야 맘놓고 책 본들 뭐라 할가고 생각했지만도 그게 아니였다. "자겠는데 불끄지 못하겠느냐? 아이구 또 책이네. 아예 부엌아궁이에 집어 넣기전에 얼른 치우지 못할까?"그렇게 어머니는 지독한 소리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어머니는 평생 아들 하나 못낳으시고 시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애매한 우리 딸들한테 푸신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게 무슨 나쁜짓도 아니고 고작 책을 지나치게 읽는 것이 그리도 눈에 거슬렸을까? 그래서 내가 어머니로 된 후에는 애들한테 꼭 민주적인 좋은 인상만을 주려고 노력 했었는데 나도 어쩔수 없는 우리엄마 딸이다. 특히나 아침에 따뜻한 이불속에서 단잠을 자는 아이들을 억지로 이불 벗겨 던지고 베개를 마구 당겨 빼서 머리통이 뗑하도록 애들을 괴롭히는 폭력적인 행동은 꼭 옛날 우리엄마의 방식이였다. 지금이 어느땐데? 5~60년대의 무지몽매한 방식으로 애들을 짓몰아 댔던 내가 후회스럽고 부끄럽다. 또다시 전투같이 시작되는 아침시간이였다.난 여전히 조급하고 그래서 신경이 날카롭다. 허지만 꾹 참고 먼저 딸애의 방에가서 살그니 이불을 들면서 한마디 했다. "큰 아씨. 좀 더 자면 지각할텐데 그래두 괜찮겠수?" 낮게한 그 한마디에 딸애의 눈이 번쩍 떠지더니 "후후훗!"하고 웃음보를 터뜨린다.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서두른다. 아들애가 자는 방에가서 난 더구나 엉뚱한 소리를 했다. "큰 도련님은 지각해도 괜찮으시다면 좀 더 주무시오."그러고는 짐짓 이불귀까지 꽁꽁 여며주었다. 헌데 아들애 역시 "히히힛!"웃더니 재빨리 일어나서 전에없이 이불까지 곱게 갠다. 옛말이나 드라마에서만 접했던 호칭을 자기한테 써주니 무척이나 신기하고 기분좋은 모양이였다. 그날 아침은 여느때보다 조용히들 서둘렀지만 여유작작 애들은 밥 맛있게 먹고 신이나서 학교에 달려갔고 직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도 가볍다. 그로부터 우리집 애들의 호칭은 여러가지로 불리였다. 상황에 따라서 딸애는 공주님 혹은 아씨님이요. 큰 아들애는 세자님이나 도련님이나 그렇게 호칭을 조절하는외에 작은 아들애는 무조건 대학생이다.그것도 북경대학생! 말이 씨가 된다는데 이왕이면 자기 아들한테 씨가 될 좋은 호칭이야 제 맘대로 붙이지 못할까? 그 날은 직장에서 또 회식이 있었으므로 남편은 자정이 지나서야 만취해서 집에 왔었다. 밤새 속이 불편해서 화장실을 드나들던 그이라 아침엔 애들이 학교 다 갈때까지 예외없이 또 늦잠이였다.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늘 그러는 남편이 난 무지 싫었지만 한결같이 개변도 못시키고 제속만 끓여댈 뿐이였다. 주방에선 해장국이 맛있게 끓고 있었다. 남편의 침대머리에 다가간 난 근래에 눈에 뜨이게 많이 생긴 주름살에 입까지 맥없이 벌리고 후줄근하니 잠들어 있는그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새삼스레 안되고 측은한 생각이 든다, 언제 저리도 많이 늙었을까? 복잡한 인간관계와 끝없는 경쟁속에서 살아 남으려고 나름대로 악을쓰고 있는 남편이였다. 그 속에 쌓인 울화와 스트레슨들 오죽할까? 그래도 한 가정의 세대주요 한 여자의 남편구실을 착실히 하고 있는 남편이다. 전엔 그걸 이해하려 하지않고 그냥 술 먹는다고 미워만 했던게 미안하다.그이라고 번마다 술 마시기 좋아서만 마시는 건 아닐 겻이다. "여보, 밤새 고생했는데 해장국이라도 마시고 다시 주무시든가 그러세요."오랜만에 바가지가 아니고 물기어린 차분하고 정겨운 말소리라 그랬을까? 남편의 두눈이 잠자던 사람 같지 않게 생기를 띠고 번쩍인다. 그리고는 "다, 당신 금방 뭐, 뭐라고 했어?" 한다. "콩나물 해장국 마시라구요."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어찌알고?!" 남편은 감격스러운 표정에 잔뜩 신이나서 세수하고 밥상에 마주 앉는다. "어허! 시원하다. 어허 시원해!!" 남편은 그렇게 감탄을 연발하고 밥까지 말아서 콩나물 국 두 그릇이나 비웠다. "어, 이제야 살 것 같다!"배를 두드리면서 남편은 날 보고 씩 웃기까지 했다. 술 마신 이튿날 그렇게 만족해하는 모습을 오랜 세월 함께 살면서 난 처음으로 보았다. 속에서 뭔가 뭉클한다. 조금만 더 이해하고 신경을 쓰면 되는 것을 왜 바가지가 만능인 줄로만 알았을까? "이제 나두 술 좀 작작 마셔야겠어!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그렇게 콩나물국 덕에 난 바가지로는 평생 어림짝도 없을 남편의 맹세까지 보너스로 받아 냈었다. 이제 유머와 이해로 한결 부드럽고 따뜻해진 우리집 분위기다. 언제부턴가 애들이 이 엄마에 대한 호칭도 변했다. "이야기 주머니"혹은 " 만능엄마" "천사엄마" 그렇게.... 물론 나는 만능이 아니다. 결점이 많으나 노력하는 엄마라는 건 승인 할수가 있다. 그래서 애들이 나에대한 호칭에서 그 기대를 읽었고 그것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붉은 기와를 얹은 옛스런 단층 벽돌집에서 어렵게 살았지만 행복했었던 우리집 옛 이야기 한토막 입니다. 지금은 세대주가 죽고 옛집은 남의 집이 되어 버린데다 애들과 저 역시 천리 만리 떨어진 외국이나 타향에 골고루 흩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마음이 너무 많이 아파서 눈물이 납니다. / 박순자
    • 문학살롱
    2013-03-11
  • 중화인민공화국 출경입경관리법 7월 1일부터 실행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 27차 회의에서 통과된 “중화인민공화국 출경입경관리법”이 올해 7월 1일부터 실행하게 된다. 새롭게 제정된 이 법은 출입경관리, 특히는 외국인관리면에서의 많은 내용이 증감되였다. 우리 주 공민 및 우리 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상술한 법을 자세히 료해할수 있도록 이번기부터 문답형식으로 새롭게 실행될 “출경입경관리법”에 대해 소개한다. -편집자-1. 새로운 "중화인민공화국 출경입경관리법(이하 “관리법”으로 칭함)"은 언제부터 실행합니까?답: 새로운 "중화인민공화국 출경입경관리법"은 2013년 7월 1일부터 실시합니다.2. 외국인이 중국에 입경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합니까?답: 외국인이 중국에 입경하려면 반드시 외국주재 중국의 사증(비자)발급기관 (대사관, 령사관 및 기타 사증대리기관)에 가서 사증을 받아야 입국할수 있습니다. 본법에서 별도로 규정한 것은 제외합니다.외국인이 사증신청을 할때 반드시 외국주재 중국의 사증발급기관에 본인의 려권 혹은 기타 국제려행증건과 신청유관자료들을 제출해야 하며 외국주재 사증기관의 요구에 따라 해당절차를 밟아야 하며 면접을 봐야 합니다.또한 외국인이 사증신청을 할때 중국국내의 단위거나 개인의 초청장을 제출할 경우 신청인은 반드시 외국주재 중국사증기관의 요구에 따라 초청장을 제출해야 하며 초청단위거나 초청인은 반드시 초청내용의 진실성에 대해 책임져야 합니다.3. 외국인에게 주는 사증은 몇가지 입니까?답: 외교나 공무로 입경하는 외국인에게는 외교, 공무사증을 발급해 주고 신분이 특수한 외국인에게는 례우사증(礼遇签证)을 발급해줍니다. 외교, 공무, 례우 등 사증의 발급범위거나 발급방법은 외교부에서 규정합니다.사업, 학습, 친척방문, 려행, 관광, 상무활동, 인재인입 등 비외교 공무사유로 입국하는 외국인에게는 종류에 따라 그와 상당한 보통사증을 발급합니다. 보통사증의 종류와 발급방법은 국무원에서 규정합니다.4. 사증(비자)이란 무엇이며 사증등록내용은 어떠합니까?답: 사증이란 외국인이 입경해야 할 시일과 입경후 규정한 체류시간을 말하는데 그 사증등록내용을 보면 사증의 종류, 소지인의 성명, 성별, 출생날자, 입경회수(入境次数), 입경유효시일, 체류기한, 발급날자, 발급한 곳, 려권 또는 기타 국제려행증건번호 등이 있습니다.落款:주공안국출입경관리국문의전화: 0433-2242108/조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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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3-03-11
  • 中국가기구지도자 이렇게 산생된다
    12기 전국인대 1차회의는 10일 제3차 전체회의를 거행했다. 회의는 가결을 거쳐 12기 전국인대 1차회의 선거 및 임명결정 방법을 채택했다.일정선거 및 임명결정 방법에 따라 선거 및 임명결정은 각기 아래와 같은 3차례 전체회의에서 이루어진다. 3월 14일, 제4차 전체회의에서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비서장을 선거하고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을 선거하며 국가주석, 부주석을 선거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선거하게 된다.3월 15일, 제5차 전체회의에서는 국무원 총리 인선을 결정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위원 인선을 결정하며 최고인민법원 원장, 최고인민검찰원 검찰장을 선거하게 된다.3월 16일, 제6차 전체회의에서는 국무원 부총리, 국무위원, 각 부 부장, 각 위원회 주임, 중국인민은행 행장, 심계장, 비서장 인선을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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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3-11
  • 한국에서 체험한 만원짜리 관광코스
    한국에서 체험한 만원짜리 관광코스    한국유람길에 오른 우리 부부가 인천항 제 1국제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바로 올해 4월 12일 오전 10 시였다. 아침부터 재수 좋게 날씨가 아주 좋았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었고 아시아에서도 으뜸간다는 인천대교가 우리의 머리위를 가로 타고 멀리 하늘과 바다사이에 머리를 파묻어 끝이 없었다. 인천항 터미널 바로 남쪽 문앞에서 우리는 24호선 공공버스를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거기서 또 다시 지하전철 1호선을 갈아 타고 부천역까지 간후 곧바로 부천남부지역에서 월세를 맡고 사는 나의 여동생네 집으로 찾아갔다. 이미 출근했는지 그들은 집에 없었다. 우리는 나의 여동생이 사전에 전화로 알려준 곳을 뒤져 열쇠를 찾은후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우리는 짐들을 대충 정리해 놓고는 이내 꿈나라로 들어갔다. 연길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2박3일,기차와 배를 엇갈아 타고 오느라고 심신 모두가 피로로 꽉 찼기때문이었다.    그 이튿날 우리는 여러가지 일 보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골목에서 대통로로 나가는 동안 눈에 보이는 것이란 온통 벽에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간판과 광고판들뿐이였다.거기서 이상하도록 특이한게 광고판 내용보다도 간판 내용들이였다.“엉터리 생고기” “장어랑 아나고 바람 났네—해물 칼국수,아나고 전문집” “씽씽 노래방” “담쟁이—추억의 포차, 호프,소주,막걸리”등등 별의별 내용들이 다 있었다. <부천역사쇼핑몰>이라고 씌여있는 커다란 이마트(E-Mart)앞 길 남쪽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 우리는 예정대로 부천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신길역까지 간후 다시 5호선 전철을 환승한 후 오목교역까지 가서 내렸다. 전철 출구를 나와 다시 서쪽 방향으로 약 500메터가량 걸어 가니 길 왼쪽켠에 에스오일(S-Oil)이란 글이 쓰여 있는 주유소가 보이였다. 바로 그 주유소 옆에 있는 5층 건물벽에 <출입경관리소행정사> 란 커다란 간판이 걸려져 있었다.건물 2층에 바로 행정사 사무실이 있었는데 중국조선족들이 경영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오목교에 있는 “출입경관리소(본관)”은 아니였다.우리가 행정사를 찾은 목적은 H-2비자를 받고 3년간 한국을 드나들던 아내의 재입국 신분증을 새것으로 다시 발급받으려는 목적이였다. 헌데 중국인 신분증을 중국에 있는 집에 두고 가지고 오지 않았기에 훗날 팩스로 부쳐 온 다음 다시 신청히기로 하고 거기서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고는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다시 전철을 타고 부천에 온후 SK휴대폰 서비스사에 찾아가서 아내가 지난번 출국시 정지시켜 놓았던 휴대폰을 다시 열고는 곧바로 맞은편에 있는 “하나투어려행사”를 찾아 가서 제주도 관광 신청을 했다. 2박 3일 관광비용이 두사람 합해 75만원이 나왔다.   우리는 이미 약속한 친구를 만나러 서울 동대문시장으로 갔다. 높다란 빌딩이였는 데1,2층 모두가 도매시장이였다.실로 그곳은 말이 시장이지 실상은 엄청난 규모의 물류집산지였다.그 넓고도 높은 건물안엔 많은 원단들과 의류 부품들로 꽉 차 있었고 도처에 사람들로 붐비였다.특히 인상깊은 것은 시장 안에서 여기저기로 짐을 배달하는 일꾼들이 보였는데 그들이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사용했던 지게를 메고 짐들을 운반하고 있었다.가까이서 지게를 보니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반들반들 빛까지 났다. 동대문시장밖 대통로 위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란 역시 지게 위에 숱한 원단을 싣고 고속으로 달리는 오토바이들이였다.어쩌면 현대화 운수공구에 옛날 지게를 장착해 사용한단 말인가? 사람의 등에나 작은 오토바이 뒤에 좀 더 많은 짐을 싣고 좁은 길을 빨리 오가자면 지금의 이 방법이 최선인듯 싶었다.중국에서도 짐을 싣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많이 보았지만 모두 광주리 같은 것들이 아니면 넓은 널판자 따위들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였다.효율적으로 볼 때 지게와는 비교도 안된다. 비록 중요한 대발명도 아니고 조금만 머리를 굴러도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 같지만 이러한 아이디어가 하나 둘 모이면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동대문시장 동쪽에 우뚝 서 있는 옛 성문<흥인문(兴仁之门)>앞에서 기 념사진 몇장 찍고 동대문시장 북쪽 길옆 지하전철 4호입구로 갔다.거기엔 한자로 된 간판들이 건물벽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연변양고기뀀(延边羊肉串)>, <연변냉면(延 边冷面)>,<도문양고기뀀점(图们羊肉串店)>,<연길뀀점(延吉串店)>,<연길냉면(延吉冷面)>,<호프집(扎啤店,买一赠一)>등등 한국속 연길이 따로 없었다. 연변 사투리 쓰는 조선족 또한 많이 보였다. 연길에 있을 땐 중국조선족들이 그냥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막일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요즘들어 이삼십대의 젊은 조선족 고급인재들이 유명회사에 입사하고 있다는 등의 뉴스를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등 뉴스도 가끔 들은 적은 있었지만 영업을 하는 조선족들도 이렇게 많을 줄은 정말로 몰랐다.우리 부부를 포함해 일곱 일행은 친구의 초대로 그 곳에 있는 <연길뀀점>에 들어갔다.그 뀀점 사장님도 역시 중국 연길 태생으로 성이 박씨였다.나의 친구와 절친한 사이라 우리와 한상에 앉아 술잔을 나눴다.박사장님은 뀀점에서는 “참이슬”과 맥주 “카스”등 한국상품은 물론 조선족을 즐겨찾는 여러 종류의 중국술도 수입해 팔고 있다고 소개했다. 비록 중국에 있을 때 자주 먹어보던 음식들이였지만 서울에서 연길 양고기뀀 구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더 기분이 좋았다.나중에 박사장님은 우리가 중국에서 한국관광을 왔다는 것을 알고 잘 놀고 가라며 근처에 있는 노래방까지 안배했다.   저녁 늦게야 친구들과 헤여진 우리 부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빔밥집에 들어 가 무우깍두기에 콩나물비빔밥을 시켜먹었다. 여기 콩나물비빔밥은 참 맛이 좋았다. 한국요리사의 작식 기술이 뛰어나 그런지 아니면 . 식사후 우리는 운동도 할겸 도보로 청계천으로 갔다. 밤이 깊었지만 청계천은 등불이 환해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팔짱을 낀 젊은 남여 모습도 심심찮게 띄였다.청계천은 물이 하도 맑아 어두운 밤에도 물속에서 노니는 고기떼들을 볼 수 있었다. 물위엔 물오리인지 원앙새인지 쌍쌍이 짝을 맞춰 헤엄치고 있었다..하늘에 정말로 칠선녀가 있다면 그들은 꼭 이렇게 멋진 곳에 내려와 미역을 감으면서 신나게 놀았을 것이다.참으로 청계천의 밤은 황홀했다.우리는 그날 저녁 청계천에서 많은 사진을 찍으며 즐겼다.    늦은 밤 우리는 전철을 타고 부천으로 돌아와 부천남부 자유시장내에 위치한 <중국 식품> 가계를 찾아갔다.여동생의 말에 따르면 여기서도 재입국 신분증 재발급 신청을 대리해주고 있단다. 때는 이미 밤12시가 넘었지만 아직도 시장안은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중국식품>가게 사장님이 알려준대로 나의 안해 재 입국신분증 신청에 필요한 증명사진 찍으러 <부천역사쇼핑몰> 지하통로로 갔다. 자동 사진기가 있었다. 돈만 내면 선 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였다. 잠간 돌아 다니면서 찾아 보니 지하통로 한쪽 옆에 예쁜 꽃천에 둘러싸인 사진기계가 보이였다. 안해는 꽃천 문을 열고 들어가 지정된 의자에 앉았다.그러자 스피카에서 부드러운 말투로 사진찍는 요령을 알려준다.가격표에 정해진대로 동전을 투입하자 무인 자동사진기계가 작동을 시작했다.   눈은 어느 쪽을 바라 보라, 턱은 어느 쪽으로 살짝 돌리라,사진을 찍으니 움직이지 말라,“찰칵!” 샤타를 누르는 소리가 나자 화면에 방금 찍은 사진 모습이 나타나고 그것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 본다. 그렇다고 하자 몇촌짜리 사진을 찍으려는가고 또 물었다. 우리가 2촌짜리 사진이라고 하자 화면의 어느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한다.우리가 그 버튼을 누르니2분도 안지나 사진 3장이 사진기계속에서 스르르 밀려 나왔다. 티끌만한 흠집도 없는 표준사진이였다.참으로 신기했다. 예상밖에 사진을 쉽게 찍고 여동생네 집으로 다시 가는중 한 아줌마가 우리손에 전단 한장을 쥐여 주었다. 우리는 무엇인지 보지도 않고 손에 돌돌 말아든채로 집에 들어갔다. 몸을 간단히 씻고 자리에 누워 그 전단지를 펼쳐 보았다. <천호여행사>에서 특별행사를 한다는 전단지였다.    “하얀 달빛에 흐드러진 벚꽃향에 흠뻑 젖어 들고 섬진강 물길따라 사랑과 추억이 영글어 가는 곳!” “쌍계사 벚꽃 축제----섬진강 화개 장터 산수유축제로 초대” 행사특가1인당 1만원이고 “관광코스는 아침(차내식) —섬진 강변---중식 (불고기전골) ---산수유축제---쌍계사 십리벚꽃-- -화개 장터—저녁(찰밥)—귀가”라는 것이였다.그 전단 뒷면에도 광고가 있었는데 거기엔 “거가대교 해저터널로 초대” 특별행사가격은 1인당 1.5만원이라고 씌여 있었다.아무리 적게 추산해도 하루 관광요금이 일인당 3~4만원이 들 것 같은데 이렇게 적은 돈으로 관광을 할 수 있다는게 참 마음에 끌렸다.논의 끝에 우리는 관광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매부에게 이 일을 말하였다.그는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다며 전단지에 밝힌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 문의한다.답변은 싼 값으로 초대하는 것은 특별행사 특가이고 다른 뜻은 없다고 알려 주었다. 우리는 확실하다고 판단하고는 밥도 먹지 않고 부천남부역 새천년 웨딩홀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에 올랐다. 그 버스에 이미 여럿 사람이 앉아 있었다.그들도 전단지를 보고 관광길에 나섰다는 것이었다.어쩐지 기분이 좀 이상야릇한 감이 났다. 부천,서울지역에서 부산까 지 먼 길인데 단돈 만원으로 우리를 밥까지 먹여주면서 관광시켜 준다니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뭐가 뭔지 딱히 몰랐다.    버스에서 우린 김밥으로 아침을 에때웠다. 가는 길에서 여행사 과장이라고 자칭하는 한 곽씨성 여자가 하는 말이 원래 가기로 했던 거가대교대신 쌍계사로 간다고 하였다.그러자 몇 몇 사람이 왜서 거가대교로 가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그들은 이미 쌍계사에 갔다왔기에 거가대교로 가겠다는 것이였다.이에 그 여자는 관광 손님이 원래 적은 데다가 두곳으로 나뉘여 간다면 양쪽 차가 모두 사람 몇명 밖에 싣지 못해 여행사에서 감당해야 할 손해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그 여자의 말이 일리가 있었는지 더 이상 잡음은 나오지 않았다.    버스가 부산행 고속도로 휴계소에 도착하였다. 운전기사와 그 여자가 차에서 내려 어디론가 갔다오더니 거가대교로 갈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다른 버스를 환승하라고 알려 주었다. 7,8명이 내리고 나니 우리가 앉은 45명승 최신형 관광버스엔 모두 28명밖에 남지 않았다. 대부분 60,70세 이상의 노인들이였고 그 이하는 매우 보기 힘들었다.    버스는 우리를 싣고 남으로 남으로 계속 질주하였다. 경기도 수원시를 스쳐지나 충청남도 천안시로,거기서 또 충청북도 청주시를 스쳐지나 청원시와 대전광역시로,그 다음 또 다시 충청남도지역에 들어와 금산시에 도착하였다.   이미 점심때가 다 되였다.버스는 산길을 타고 어느 시골마을로 들어가 섰다..모두들 길에서 지치고 갈증이 나서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화장실로 달려 갔고 마실 물을 찾아서 꿀꺽꿀꺽 마셨다. 몇 분후 그 여자가 모두들 어서 모이라고 불러 놓고는 여기가 금산 시의 특산이자 명작인 흑홍삼(黑红参)기지의 판매처라고 알려 주면서 이제 곧 흑홍 삼연구소 박사님의 강의를 듣는다고 했다.우리가 강의실에 들어가 자리잡고 앉자 한 젊은 남자가 흑홍삼 액을 시식하라며 우리들 주위로 분주히 돌아다녔다. 삼냄새가 세게 났다. 박사님은 강의를 곧 시작하였다.    «……흑홍삼이란 인삼과 홍삼처럼 고혈압환자가 복용 할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저혈압을 올려주고 고혈압을 낮춰주고 면역력을 조절해 주는 특효가 있다»는 것이였다. 박사님의 강의 내용을 들어보면 흑홍삼은 확실히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오면서 본 가장 좋은 약이었다.박사님의 강의가 끝나자마자 공장장님이 들어오더니 흑홍삼을 사라고 홍보를 시작한다.현재 시중가격은 얼마인데 직매장 가격은 시작가격보다 매우 싸다면서 많이 사면 작은 포장의 흑홍삼을 하나 더 증송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어머니,얼마나 값 싸세요, 어서 사세요,몸에 대단이 좋은 것입니다!»허나 너무나 엄청난 가격이였다.1차 구매량 금액은 16 만원부터 23만원 좌우였다.모두들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이때 수명의 여자들이 욱 몰려 들어와 손님 한명도 빼놓지 않고 흑홍삼을 사라고 선전했고 현금없어도 신용카드만 있으면 열두달 할부도 가능하다고 마구 들이댔다.나는 그만 당황해서 가지고 온 돈이 적어서,중국에서 왔기에 신용카드가 없다는 말로 찰거마리처럼 달라붙는 그 여자들을 물리쳤다.. 그래도 어르신 몇분이 흑홍삼을 좀 샀기 때문에 우리는 문밖에 나올 수 있었다. 밖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은 대부분 찜질방에서 금방 나온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고 땀방울이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우리가 그다음 도착한 곳은 <영농후계자직매장(록용)>이였다. 점심 시간이여서 문을 닫았기에 또 다시 차를 돌려 다른 마을에 있는 <삼성제약연구소—ABM>로 갔다. 거기서 모귀현 박사님이 우리에게 끼토산에 대하여 강의를 해주셨다. «끼토산이란 끼틴과 끼토를 합하여 만들어 낸다.끼틴이란 게,새우등 해산물의 껍데기에서 채집하여 만들어 내는데 끼틴과 끼토를 합하여 제약하면 끼토산 약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였다.또 «이 끼토산은 사람의 몸의 피를 맑게 해 주고 콜레스트롤을 낮게 해 주어 동맥 경화를 예방하고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박사님의 강의가 끝나자 역시 어디선가 많은 여자들이 몰려와 약을 사 가라고 한바탕 성화를 부렸다.연달아 두번째로 당했지만 그래도 면역력이 생겼는지 모두들 태연하게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점심은 좀 늦었지만 금산구역의 <태봉한우정육집>에서 불고기 전골에 밥을 간단히 먹었다.식사후 우리가 식당을 나올 때 또 관광버스 두대가 들어 서더니 숱한 사람들이 식사하러 들어오는 것이였다.어찌된 영문인지 모두들 말 한마디도 없었고 모두 검은 연기에 그을린 것처럼 얼굴색이 어두웠다. 버스에 올라 탄 우리는 이제는 쌍계사로 곧바로 가겠지하고 무거운 짐을 벗은듯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누군가 키드득 키드득하면서 웃음 소리를 내였다.그 소리에 모두들 서로 머리를 돌려 살펴 보면서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버스는 부르릉 거리면서 고속을 내여 달리는 것 같더니 삑하고 소리를 내면서 또 정거를 하는 것이였다. 차에서 내리고 보니 아까 점심에 왔다갔던 <영농후계자직매장 (록용)> 이였다.곽과장은 시간이 얼마 없다면서 모두들 빨리 직매장 강의실로 들어 가라고 재촉했다.그제야 여행사의 진의를 깨달은 사람들은 직매장에 들어가기 싫어 너도 나도 화장실로 향했다.하지만 곽씨성 여자는 인내심있게 한명 한명 설득해 한사람도 빼놓지 않고 강의실에 모두 끌어들였다.그러면서 하는 말이”손님들이 동작이 늦으면 그만큼 관광할 시간이 적어진다”고 했다.    강의실은 살림집처럼 구들위에 바닥재를 쭉 펴 놓아서 그 우에 풍덩 들어 앉으면 됐다. 우리를 기쁘게 맞아준 사람은 키가 9척이나 되고 몸이 우람져 씨름군같이 생긴 사나이였는데 커다란 검정테 안경에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가진 유머감이 넘치는 사람이였다.그는 우리를 보자 환한 얼굴에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또 다시 한번 «안녕하세요!»하고 소리쳤다.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그러자 «아이쿠 어머니!어제 밤에 싸웠어요?»그래도 아무 대꾸도 없었다.   «아참,깜박 잊었구만!어머니 이재 금방 흑홍삼판매장과 삼성제약 끼토산연구소로 갔다 왔지요?그렇지요?……당했구나,당했어!ㅉㅉㅉ……억수로 당했구나!……거기서 많 이 당했지요?» 그러자 «예!»하고 모두들 대답하는 것이였다.   «괜찮아,괜찮아,여긴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괜찮아요!여기는 저의 아버지가 옛날 부터 사슴을 기르다가 그 농장을 저에게 넘겨 준 것이여서 여기서는 그저 편하게 저 의 강의만 들으면 돼요»라고 말했다.그제야 모두들 안심하고 희희닥닥거리면서 편하게 자리에 앉아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그는 손에 백센치가 거의 되는 녹용을 들고 강의했다.    «……록용의 제일 끝머리는 분골이라고 하는데 사람의 머리에 좋고 치매를 예 방하고 정신을 맑게 해주며 분골에서 아래로 내려 가면서 세개 부분으로 나뉘는데 상대,중대,하대라고 한다.상대는 중심 부분이 검고 겉 부분이 붉으며 사람의 욕 (欲)을 올려 주는 작용을 한다.중대는 사람의 피를 만들어 주고 하대는 뼈를 돕는 다.……» 강의 도중 그는 예쁜 아가씨 몇명을 불러들이더니 여러분들께 자기네가 직접 만들었다는 록용술을 대접하라는 것이였다. 공짜여서 모두들 작은 주전자에 가득 담은 술을 다 마시고 좀 더 달라고 해서 더 마셨다. 술이 배속에 들어가서 좀 쨍하게 될까말까 할 때 아가씨들이 허리춤에서 기록부를 꺼내 들고 손님과 일대일로 코를 딱 맞대고 앉아서 록용을 사라고 성화를 부리기 시작하였다.그제야 또 걸렸구나 하며 정신을 차리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몸으로 문을 막아선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우리 부부는 다행이도 강의가운데서 튀어나온 “금산록용은 한국의 보물이고 명품이기에 수출을 국가적으로 엄금하고 있다”는 대목을 아가씨들한테 다시 들려주면서 중국신분증을 꺼내 흔들어보였기에 남먼저 문밖을 나올 수가 있었다.   그곳을 떠나 쌍계사로 가는 길에서 곽과장은 이제는 직매장 같은 곳으로 가지 않는다면서 오늘 약 산 사람이 셋밖에 안돼 여향사 손실이 매우 크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윽고 우리한테 <흑홍삼사탕> 한봉지씩은 꼭 사야 된다고 애원했다.사탕 봉지를 받고 상표에 붙은 가격을 보니 3천원정도밖에 안됐다. 우리 부부는 처음 이런 일을 당해 당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미안한 감도 들어 집에 돌아갈 때 선물로 장만할겸 2만원을 주고 네봉지를 샀다.    버스는 마침내 구레시에 들어섰다.화개장터로 가는 길에서 곽과장이 또 입을 열 었다. 오늘 여러 분들을 여기까지 안전하게 모셔왔고 또 안전하게 차를 몰고 돌아가야 하기에 운전기사와 자기에게 수고비로 5천원씩 더 내라는 것이다.우리는 그들이 달라는대로 또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섬진강변을 따라 앞으로 나가면서 곽과장은 굳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여러가지 우스개 소리도 해 보았고 섬진강 쪽배나루터 전설도 들려 주었다.   화개장터에 도착하였다.이미 해가 서산 마루에 걸려 인차 어둠이 깃들 것만 같았 다.우리는 화개장터를 대충 돌아 보았다. 장터 어구에서는 젊은 각설이 둘이서 흔들거리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곳에는 중년각설이 부부가 다음 무대를 준비하느라 분망하게 보내고 있었다.조용남이 노래를 불러 소문이 났다는 <화개장터>는 먹을 것이 없는 소문 난 잔치와도 같았다.이름뿐이지 아주 자그마한 시장이였다. 물건 이란 주로 약초가 많았고 작은 음식점 주인들은 서로 제집에 들어 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우리가 다시 버스에 올라 앉으니 곽과장은 섬진강건너 쌍계사 십리 벚꽃축제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였다.리유는 지금 그쪽에 차가 많아서 길이 막혔다는 것이였다.    «당신네들 이게 무슨 짓거리야? 이것은 유람이 아니고 사기다 사기!……어디 두고 보자,돌아가서 당신네를 고발할테다!”    한60대 어르신이 격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그 분은 부인과 부인의 친구 셋이서 우리와 함께 관광길에 올랐던 것이다.그의 손은 노여움에 부르르 몹시 떨고 있었다.이에 곽과장은 운전기사와 뭐라고 상의하더니 다시 쌍계사로 간다고 알려주었다.전라도와 경산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위에 가로 놓인 무지개다리를 건너 버스는 천천히 쌍계사쪽으로 떠났다.차가 한꺼번에 몰려 길이 막혔다던 길에는 자동차 한대도 보기 힘들었다. 시간이 얼마 안지나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아름드리 벚꽃나무에 하얀 벚꽃들이 활짝 핀 모습이 어슴프레 보였지만 날이 어두워 벚꽃구경을 별로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곽과장은 손님들에게 저녁식사로 대접할 찰밥을 준비했다면서 자기를 도와 손님들에게 저녁을 공급할 분이 있으면 나오라고 했다.겨우 아줌마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나의 안해도 자리에서 일어나 거들어 주었다.식사 후 모두들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을 때 곽과장이 조용히 나의 안해를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무엇인가 손에 살며시 쥐어주고 가는 것이였다.알고보니 흑홍삼 판매처에서 공장장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겠다던 홍삼세수비누 4개였다. 우리가 집에 돌아오니 이미 밤 11시가 지났었다.몸을 씻고 오늘 하루의 여행길에서 쓴 돈을 계산해보니 모두 6만3천원이었다. 중국조선족대모임 한국생활수기 모음집 /이성욱
    • 문학살롱
    2013-03-11
  • 중국조선족대모임 2013년 3.8 부녀절 기념모임
    중국조선족대모임 2013년 3.8 부녀절 기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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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13-03-11
  • 中 해외에 정착하면 호적이 취소당하나?
    【연변=동포투데이】“전 지금 외국에 있는데 아직도 제1세대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지금 제2세대 신분증으로 교체하고 싶은데 꼭 본인이 들어가서 수속해야 하는가요? 만약 교체하지 않으면 호적을 취소당하는가요?”… 이는 미국,일본,한국 등 해외에 오래동안 체류한 중국인들이 공동으로 관심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얼마전 중국 공안당국은 “본인이 호적 소재지역의 공안파출소에 가서 신청해야 한다. 외국 국적에 가입했거나 해외에 정착했을 경우 본인 또는 가족이 여권 등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증서를 갖고 소재지역 공안파출소에 가 호적 취소 신청을 내야 하며 외국 국적에 가입했거나 화교(화교란 5년이상 해외에 장기체류, 영주권을 취득한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호적 취소 신청을 내지 않을 경우 소재지역 파출소는 현급이상 공안국 출입국관리부문의 확인을 거쳐 호적을 취소할 수 있다”고 해명한바가 있다. 사실 해외에 정착했다고 해서 호적이 반드시 취소당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2003년 8월7일, 중국공안부는 “해외에 1년이상 정착할 경우 호적을 취소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한 철폐 결정을 내린바가 있다. 해외에 장기 체류할 수 있는 거주증을 가지고 체류 기한이 5년이상이 되면 공안당국이 본인의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호적을 취소할 수 있었지만 2003년부터 이들의 호적을 기본적으로 취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1세대 신분증을 제2세대 신분증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여전히 호적을 취소당할 수 있다. 제1세대 신분증을 반드시 제2세대 신분증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미처 신분증을 교체하지 못한 이들의 호적은 언제든지 취소당할 수 있다는게 공안당국 관계자의 해석이다. 2000년 이전에 출국해 지금까지 해외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자신이 소지하고 있는 제1세대 신분증을 제2세대 신분증으로 교체하지 않을 경우 호적을 일방적으로 취소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0년 이전에 출국해 해외에 정착한 중국인들 상당수가 호적을 취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적을 취소당한후 정착 신청은 어떻게? 외국 국적에 가입했거나 거주국의 영주권을 따낸 화교들이 귀국후 체류기간이 70일이 지나면 정착 신청을 낼 수 있다. 공안당국 관계자의 해석에 따르면 신청인이 중국내에서 출생했고 귀국후 원 호적 소재지역에서 1년을 단위로 연속 70일 이상 체류했을 경우 호적을 취소당한 화교는 정착 신청을 낼 수 있다.이밖에 “귀국화교정착신청준칙” 규정에 따라 신청인은 유효한 중국여권 또는 여권을 대체할 수 있는 유효한 증건, 정착 예정 지역의 파출소 주숙등기신청증명 자료와 정착 예정 지역의 부동산 소유권 증명서 복사본,화교의 해외 정착 증명자료 또는 합법적으로 5년이상 체류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 등 12개 항목의 증명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교의 부동산 구입은 어떻게? “귀국화교정착신청준칙” 규정에 따르면 신청인은 반드시 부동산이 있어야 한다.이 때문에 십여년전 가족 모두가 출국해 해외에 정착했던 화교들이 귀국후 부동산이 없어 정착 신청을 내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여권도 신분증처럼 신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화교들은 여권으로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호적을 취소당한후 은행계좌,보험 등은 어떻게? 외국 국적에 가입해 호적이 취소되면 은행계좌,보험 등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첫째로 믿을 수 있는 대리인을 물색해 권한 부여 범위와 책임 및 이익을 미리 협의한후 권한 부여 증명서를 작성하고 필요시 서면으로 된 공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둘째로 이민국의 국적 가입을 준비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중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을 경우 호적을 취소당해도 여권으로 신분증을 대체하면 된다.그러나 이민국의 국적에 가입했을 경우 중국 법률에 따라 소지하고 있던 중국 여권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특히 이민국 국적 가입시 성씨 또는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경우를 대비해 "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는 증거 자료를 확보하는데 유의해야 할 것이다. 증거 자료 확보 방법은 매우 많다. 예를 든다면 증인의 증언,공증,대사관 혹은 영사관의 증명, 소지하고 있던 중국신분증 또는 여권,관련 사진 문서 등등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신원 확인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이같은 증거물은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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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3-10
  • [유래상식]3.8부녀절의 유래
    [동포투데이] 중국에서 3월 8일은 부녀절(三八妇女节)이다. 중국의 ‘3.8 부녀절’의 유래는 ‘세계 여성의 날’에서 시작된다. 매해 3월 8일에 기념을 해서 3.8 부녀절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이날의 원래 공식적인 명칭은 "연합국부녀권익과 국제평화일(联合国妇女权益和国际和平日)"이란 긴 이름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1922년부터 ‘3.8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고 1924년 중국여성들의 첫 기념행사가 광저우에서 열렸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3월 8일을 ‘부녀절’로 결정했다. 서양에서는 3월 8일을 계기로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시위를 벌이도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중국에서는 진정 여성을 위한 기념일이다. 이 날 중국의 직장에서는 여성들에게 휴가를 주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종일 휴가를 주는 곳도 있지만 대개는 반나절 일하고 퇴근하게 된다. 축하행사에 선물까지 일반적으로 농촌에서는 비슷한 또래끼리 모여 음식을 만들고 마작을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고,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는 여성들은 간단한 기념품에 회식을 하기도 한다. 잘나가는 회사의 여성들은 1000위엔 가량의 기념품을 받기도 해 어떤 명절보다 기대에 차있기도 한다. 또한 이날에는 ‘3.8 부녀절’을 겨냥해 할인관광, 여성의 날을 맞아 주택가격 우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미용이벤트 등 ‘여성’을 타깃으로 한 많은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나 축하행사가 회사 차원에서 열리기도 한다. 회사에서 여성들에만 오전에 근무하고 오후에는 휴식하도록 배려하는가 하면 기념품을 주기도 하며 축하파티도 열어주는 축하형식도 천차만별 다양하다. 학교에서도 여성교원들에게 휴가를 주는 등 ‘여성의 날’답게 여성들에게 각종 ‘특혜’가 주어지기도 한다. 3.8부녀절 축하 메시지 世界因有了女人,显得分外美丽!祝三八节永远年轻漂亮! shì jiè yīn yǒu nǚ rén,xiǎn dé fēn wài měi lì ! Zhù sān bā jié yǒng yuǎn nián qīng piāo liàng !!세상은 여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3.8절을 축하드리며 영원히 젊고 아름답기를! 三八节,是你的日子。我赚的钱都归你,家里的活都归我。(남편이 아내에게)sān bā jié, shì nǐ de rì zǐ. Wǒzhuàn de qián dōu guī nǐ, jiā lǐ de huó duō guiī wǒ? 3.8절은 당신의 날입니다. 내가 번 돈은 모두 당신의 것, 집안 일은 내 몫. 我决定做一天你的公仆,全心全意为你服务,这将是我无上的光荣!(남편이 아내에게)wǒ jué dìng zuò yī tiān nǐ de gōng pū, quán xīn quán yì wèi nǐfúwù, zhè jiāng shì wǒ wú shàng de guāng róng!나는 하룻동안 당신의 하인으로 성심성의껏 당신을 위해 봉사하려 합니다. 이것은 곧 나의 영광입니다. ※. 三八부녀절의 유래 국제부녀절은 세계 각국 부녀들이 평화, 평등, 발전을 쟁취하는 명절으로써 매년 3월8일 개최된다. 1857년 3월8일 미국 뉴욕에서 복장 및 방직분야의 여직원들이 비인도적인 작업환경과 12시간의 업무제도와 월급에 대하여 항의를 하였다. 1908년 3월8일 1500여명으로 조직된 부녀들이 뉴욕시에서 시위행진하여 업무시간을 단축시키고 봉급을 향상하고고 선거권을 가질수 있게 하며 미성년 고용을 금지 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의 구호는 “빵과장미”인데 빵은 경제를 보장하고 장미는 보다 좋은 생활의 질은 상징한다. 1910년 독일 사회학자ClaraZetkin이 미국 복장분야의 공인들 파업일을 기념으로 “국제부녀절”이라는 명절을 제출하였다. 이 제출은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부녀사회학자회의에서 통과하였으나 구체적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 1977년 12월 연합국에서 3월8일을 국제부녀절로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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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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