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6(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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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중한국유학생 “통일골든벨대회” 심양서
    [동포투데이 선양] 한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민주평통) 중국지역회의 주최한 “제1회 나라사랑통일 골든벨 대회”가 5월 17일 심양시조선족제4중학교에서 열렸다고 중국 요녕조선문보가 보도했다. 이날심양외 대련, 연길, 할빈,장춘, 단동, 안산,영구 등 동북3성 8개 지역의 한국 유학생과 학부모, 교사,민주평통자문위원 등 약 400여명이 함께하는"통일축제의 장"을 연출했다. 먼저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와 추모를 위한 묵념으로 시작된 본 대회는 “바로 알자 우리 력사!열어가자 행복 통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골든벨을 울리기 위한 경쟁을 펼쳤다. 157명의 출전자들이 한반도 력사와 통일정책에 관한 출제들을 풀어나갔다. 장장3시간의 치렬한 대결끝에 30개 도전에 성공한 신동화(선양한국국제학교11학년)학생이 골든벨을 울려 오는7월 18일에 서울에서 열리는 “KBS 통일골든벨”동북3성 대표로 참가할수 있게 되였다 3시간의 치렬한 대결끝에 30개 도전에 성공한 신동화(선양한국국제학교11학년)학생이 골든벨을 울려 오는7월 18일에 서울에서 열리는 “KBS 통일골든벨”동북3성 대표로 참가할수 있게 되였다 이날 또 동북3성 한국유학생들의 글들을 사전에 미리 공모한 통일글짓기대회 시상도 함께 진행,초등부 대상은 정성빈(연변한국국제학교6학년), 중등부 대상은 홍지민(심양주말한글학교8학년), 고등부 대상은 정운영(심양한국국제학교11학년) 학생이 각기 수상했다. 주최측인 민주평통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반영한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기획했다면서 청소년들에게 통일에 대한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 평화적인 남북통일의 가치관을확립시키는데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통일축제의 장”으로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민주평통은 다음 “통일골든벨대회”는 대련한국국제학교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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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9
  • 박 대통령 ‘세월호 사고’ 대국민 담화 발표…“국민이 겪은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34일째인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의 여행길을 지켜 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든다”며 이같이 공식 사과했다. 또 “온 국민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비통함을 함께 하고 있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거듭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에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한 달여 동안 국민 여러분이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분노하신 이유를 잘 알고 있다”며 “살릴 수도 있었던 학생들을 살리지 못했고, 초동대응 미숙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고, 불법 과적 등으로 이미 안전에 많은 문제가 예견되었는데도 바로 잡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고 분노하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채 피지도 못한 많은 학생들과 마지막 가족여행이 되어 버린 혼자 남은 아이, 그 밖에 눈물로 이어지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며 저도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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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뉴스
    • 정치
    2014-05-19
  • 외국인 창업비자 발급 쉬워진다
    [동포투데이] 앞으로 외국인 창업비자 발급이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법무부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4회 외국인정책위원회에서 ‘2014년도 외국인정책 시행계획’을 확정했다. 시행계획에는 우선 경제활성화를 위한 외국인정책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외국인의 국내창업 지원을 위해 창업비자 요건을 완화하고 자금지원을 하는가 하면 과학자 등 우수인재에게는 전자비자 발급 및 가족동반 허용범위 확대, 고액투자 이민자에게는 투자와 동시에 영주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다. 또 외국어 교육, 의료분야 통역 등 외국인의 사회참여를 지원하고 국가에 공헌할 경우 ‘올해의 이민자’로 포상하며 외국인 사회통합기금을 조성하는 등 이민자가 우리 사회에 적극 참여하게 도울 수 있는 정책도 마련됐다. 이밖에 정부는 외국인 증가로 인한 사회불안 요인을 해결하기 위해 관계기관 간 정보공유를 강화하고 효율적인 출입국·체류관리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국내 대학에서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 연수를 받으려고 입국하는 외국인에게도 비자 발급을 허용하고, 외국인 고용 분야에서 불필요한 이중신고 절차를 개선하는 등 규제도 완화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이날 ‘투자이민제도 활성화방안’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투자자 편의를 도모하고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투자이민정책이 자본 유치와 경제활성화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14-05-19
  • 박 대통령, 대국민담화,“해양경찰청 해체, 416국가 안전의 날 지정”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과와 후속 개혁조치를 담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세월호 사고의 최종책임은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다고 사과하고,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또 안전행정부의 안전기능을 국가안전처로 넘겨 국가안전처에서 안전혁신마스터 플랜을 만들 계획이다. 다음은 박 대통령 대국민담화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지 오늘로 34일째가 되었습니다.온 국민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비통함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국민 여러분, 지난 한 달여 동안 국민 여러분이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분노하신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살릴 수도 있었던 학생들을 살리지 못했고, 초동대응 미숙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고, 불법 과적 등으로 이미 안전에 많은 문제가 예견되었는데도 바로 잡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고 분노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채 피지도 못한 많은 학생들과 마지막 가족여행이 되어 버린 혼자 남은 아이, 그 밖에 눈물로 이어지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며저도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의 여행길을 지켜 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듭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사고 직후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명 구조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해경의 구조업무가 사실상 실패한 것입니다. 그 원인은 해경이 출범한 이래, 구조·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 하고, 수사와 외형적인 성장에 집중해온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어왔기 때문입니다. 해경의 몸집은 계속 커졌지만 해양안전에 대한 인력과 예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고,인명구조 훈련도 매우 부족했습니다. 저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그냥 놔두고는 앞으로도 또 다른 대형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그래서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고, 해양 구조·구난과 해양경비 분야는 신설하는 국가안전처로 넘겨서해양 안전의 전문성과 책임을 대폭 강화하겠습니다. 국민안전을 최종 책임져야 할 안전행정부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안전행정부의 핵심기능인 안전과 인사·조직 기능을 안행부에서 분리해서안전 업무는 국가안전처로 넘겨 통합하고, 인사·조직 기능도 신설되는 총리 소속의 행정혁신처로 이관하겠습니다. 그래서 안행부는 행정자치업무에만 전념토록 하겠습니다. 해경을 지휘 감독하는 해수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해수부의 해양교통 관제센터(VTS)는 국가안전처로 넘겨 통합하고, 해수부는 해양산업 육성과 수산업 보호 및 진흥에 전념토록 해서각자 맡은 분야의 전문성을 최대한 살려내는 책임행정을 펼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하겠습니다. 국민여러분, 그동안 정부는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관행과 제도를 바꿔서정상화화기 위한 개혁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 개혁 작업을 서둘러 진행해서 이런 잘못된 관행들을 미리 끊어버리지 못하고 국민 여러분께 큰 아픔을 드리게 된 것이 가슴에 크나큰 회한으로 남습니다. 이번 사고는 오랫동안 쌓여온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이라는 비정상의 관행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평소에 선박 심사와 안전운항 지침 등 안전관련 규정들이 원칙대로 지켜지고 감독이 이루어졌다면 이번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해운사들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에게 선박의 안전관리 권한이 주어지고, 퇴직관료들이 그 해운조합에 관행처럼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선박 안전을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와 감독 대상인 해운사들 간에 이런 유착관계가 있는 한, 선박 안전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었던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20년이 다된 노후선박을 구입해서 무리하게 선박구조를 변경하고,적재중량을 허위로 기재한 채 기준치를 훨씬 넘는 화물을 실었는데,감독을 책임지는 누구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민관유착은 비단 해운분야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수십년간 쌓이고 지속되어 온 고질적인 병폐입니다.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끼리끼리 서로 봐주고, 눈감아 주는 민관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 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우선, 안전감독 업무, 이권이 개입할 소지가 많은 인허가 규제 업무,그리고 조달 업무와 직결되는 공직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는 공무원을 임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기관에 대한 취업도 더욱 엄격하게 제한할 것입니다. 현재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이 있지만, 최근 3년간 심사대상자 중 7%만이 제한을 받을 정도로 규정의 적용이 미약한 실정입니다. 이번 사고와 관련이 있는 해운조합이나 한국선급은 취업제한 심사대상에 들어있지도 않았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이 취업제한 대상이 아니었던 조합이나 협회를 비롯해서퇴직 공직자의 취업제한 대상기관 수를 지금보다 3배 이상 대폭 확대하겠습니다. 또한, 취업제한 기간을 지금의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관피아의 관행을 막기 위해 공무원 재임때 하던 업무와의 관련성 판단기준도 고위공무원의 경우 소속부서가 아니라 소속기관의 업무로 확대해서 규정의 실효성을 대폭 높일 것입니다. 고위 공무원에 대해서는 퇴직이후 10년간 취업기간 및 직급 등을 공개하는 취업이력공시제도를 도입할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공직자윤리법의 개정안을 정부입법으로 바로 국회에 제출하겠습니다. 그리고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한데,지금 정부가 제출한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습니다.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우리 공직사회는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무사안일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창의성에 기반한 21세기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공직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개혁이 필요합니다.저는 관피아의 폐해를 끊고 공직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공무원이 되는 임용부터 퇴직에 이르기까지 개방성과 전문성을 갖춘 공직사회로 혁신하려고 합니다.이를 위해 민간 전문가들이 공직에 보다 많이 진입할 수 있도록 채용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겠습니다. 민간 전문가 진입이 보다 용이하도록 5급 공채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5 대 5의 수준으로 맞춰가고, 궁극적으로는 과거 고시와 같이 한꺼번에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현재 과장급 이상의 직위에 민간 전문가가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형 충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결국 공무원들만 다시 뽑아서 무늬만 공모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은 현재 부처별로 선발위원회를 두고 공모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중앙에 별도의 ‘중앙선발시험위원회’를 설치해서 공정하게 민간전문가를 선발해서 부처로 보낼 것입니다. 이와 함께 공직사회의 문제점으로 계속 지적받아온 순환보직제를 개선해서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전문성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공무원들은더욱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와 함께 보다 나은 여건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직무유기와 업체의 무리한 증축과 과적 등 비정상적인 사익추구였습니다. 이번에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은 지난 1997년에 부도가 난 세모그룹의 한 계열사를 인수하여 해운업계에 진출한 회사입니다. 17년 전, 3천억원에 가까운 부도를 낸 기업이 회생절차를 악용하여 2천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탕감받고, 헐값에 원래 주인에게 되팔려서 탐욕적인 이익만 추구하다 이번 참사를 내고 말았습니다.이런 일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됩니다. 앞으로 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탐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여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해서 피해자들을 위한 배상재원으로 활용하도록 하고,그런 기업은 문을 닫게 만들겠습니다. 이를 위해, 범죄자 본인의 재산 뿐 아니라, 가족이나 제3자 앞으로 숨겨놓은 재산까지 찾아내어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을 신속하게 추진할 것입니다.이번 사고와 관련해서는 국가가 먼저 피해자들에게 신속하게 보상을 하고, 사고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특별법안을 정부입법으로 즉각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크나큰 희생을 당한 분들이 부도덕한 기업과 범죄자들로부터 피해를 보상받느라 또 한 번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구상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죄지은 사람이나 기업의 잘못을 국민의 혈세로 막아야 하는 기막힌 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청해진해운이 문제가 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청해진해운의 성장과정에서 각종 특혜와 민관 유착이 있었던 것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었다면 그것 역시 명백히 밝혀내서그러한 민관유착으로 또 다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우리 사회 전반의 부패를 척결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입니다.그리고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합니다. 거기서 세월호 관련 모든 문제들을 여야가 함께 논의해 주기 바랍니다. 이번 참사에서 수백 명을 버리고 도망친 선장과 승무원의무책임한 행동은 사실상 살인행위입니다. 선진국 중에서는 대규모 인명피해를 야기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수백 년의 형을 선고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심각한 인명피해 사고를 야기하거나, 먹을거리 갖고 장난쳐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는그런 엄중한 형벌이 부과될 수 있도록 형법 개정안을 제출하겠습니다.이렇게 해서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것이결코 이득이 되지 않고, 대형참사 책임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지 않도록 만들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번 참사로 우리는 고귀한 생명을 너무나 많이 잃었습니다.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남은 우리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 국민의 안전과 재난을 관리하는 기능이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어서 신속하고 일사분란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컨트롤타워의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안전처를 만들어 각 부처에 분산된 안전관련 조직을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해서 육상과 해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유형의 재난에현장 중심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겠습니다. 육상의 재난은 현장의 소방본부와 지방자치단체, 재난 소관부처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며,해상의 재난은 해양안전본부를 두어 서해·남해·동해·제주 4개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현장의 구조, 구난 기능을 대폭 강화할 것입니다. 각 부처에서 주관하고 있는 항공, 에너지, 화학, 통신 인프라 등의 재난에 대해서도 특수재난본부를 두어 적극 대응할 것입니다. 특히 첨단 장비와 고도의 기술로 무장된 특수기동구조대를 만들어 전국 어느 곳, 어떤 재난이든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하고군이나 경찰 특공대처럼 끊임없는 반복훈련을 통해 ‘골든타임’의 위기 대응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겠습니다. 국가안전처의 이러한 기능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안전관련 예산 사전협의권과 재해예방에 관한 특별교부세 배분 권한을 부여할 것입니다.안전처를 재난안전 전문가 중심의 새로운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선발을 공채로 하고, 순환보직을 엄격히 제한해서 국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공직사회를 변화시키는 시범부처로발전시켜 나갈 생각입니다. 전국의 뜻있는 전문가와 국민 여러분께서 적극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국가안전처가 신설되면, 국민 여러분과 재난안전 전문가들의 제안을 광범위하게 수렴하여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그리고 11년째 진전이 없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도 조속히 결론을 내서 재난대응조직이 모두 하나의 통신망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대응하고 견고한 공조체제를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많은 고민과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해서 오늘 국민 안전을 위한 대책과 국가개조 전반에 대해 말씀드리기까지 번민과 고뇌의 연속된 날들이었습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우리 역사에 지우기 힘든 아픈 상처로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진정한 ‘안전 대한민국’을 만든다면,새로운 역사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막중한 책임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로 단합해서 위기를 극복한 저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제 좌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 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 것입니다. 여러분께 약속드린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비정상의 정상화, 공직사회 개혁과 부패척결을 강력히 추진할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단하지 않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힘을 모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생업을 제쳐놓고 달려오신 어업인들과 민간 잠수사들, 각계의 자발적인 기부와 현장을 찾아주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계셨습니다. 어린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탈출시키고 실종된 고 권혁규군,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망한 고 정차웅군, 세월호의 침몰 사실을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하고도 정작 본인은 돌아오지 못한 고 최덕하군.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고 남윤철, 최혜정 선생님.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생을 마감한 고 박지영, 김기웅, 정현선 님과 양대홍 사무장님, 민간 잠수사 고 이광욱 님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봅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해추모비를 건립하고, 4월 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합니다.다시 한 번 이번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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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9
  • 해외견문 시리즈 (5) 젊은 마도로스의 수기
    ■ 김철균 푸르른 달빛이 파도에 부서지면/ 파이프에 꿈을 실은 첫사랑 마도로스// 뎃기에 기대서면 그날밤이 그립구나/ 항구마다 정을 두고 떠나온 사나이// 그래도 첫사랑 맺은이는 잊을 길 없네… 매번 이 한국가요를 들을 때마다 나는 지난 세기 90연대 초반에 원양화물선을 타고 세상이 작다하게 6대주 4대양을 누비던 마도로스 생활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마도로스ㅡ 마도로스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가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와 로맨틱한 꿈을 주는 항구를 연상케 된다. 오늘은 태평양에서, 내일은 대서양에서 이 세상이 작다하게 주름잡고 다니는 바다의 신사, 아 얼마나 멋진 바다의 사나이들인가! 허나 마도로스인 우리들한테는 항상 낭만과 기쁨과 웃음만이 뒤따른 것은 아니었다. 고향과 부모처자를 떠난 외로움, 힘들고 짜증나고 지겨운 바다생활,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이 모든 것들은 배를 타는 마도로스였던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귀가 멀지 않은 “벙어리” 1991년 3월 18일, 연길역에서 출발한 우리 해외송출일군 12명은 이틀후인 3월 20일 아침 7시 30분에 중국 국제항공 보잉 747기에 올라 출국의 첫코스를 밟게 되었다. 스켓쥴은 베이징 ㅡ 홍콩 ㅡ 밴큐버(캐나다)ㅡ 토론토(캐나나)ㅡ 상파울로(브라질) ㅡ 몬테비데오(우루과이)ㅡ 포클랜드(영국점령지로 말빈군도라고도 함) 이렇게 쭉 잡혀 있었는데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고 마지막에 선박에 올라 정식 근무를 하도록 돼있었다. 연길에서 베이징 공항까지는 송출회사의 담당자가 책임져 주었기에 순조로왔고 홍콩의 치더공항(启德机场) 역시 중국인이 많은 곳이라 언어소통이 잘 되어 우리가 대륙에서 왔고 영어를 모른다고 하니 공항안내양이 우리를 이끌고 수속을 다 해주었기에 괜찮았다. 애로사항은 홍콩에서 이륙해서부터였다. 홍콩에서 캐나다 밴큐버까지의 비행시간은 20여시간, 중도에 참을 몇 번 주었는데 우리 일행 매 개인은 미화 20달러씩밖에 없는지라 누구도 그 참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스튜어디스(空中小姐)양이 “서비스”라고 알려 주었으나 그 말뜻을 알리 없는 우리는 한결같이 “노(NO)”하고 손을 내저어 스튜어디스양으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우루과이까지 가면서 공항에서 파는 싸구려 빵을 사먹거나 집에서 갖고간 누룽지를 더운 물에 담궜다가 먹군 했다. 글쎄 코치가 있는가 영어 한마디 할줄 아는가 실로 세상에 귀가 멀지 않은 “벙어리”가 있다면 아마 우리었을 것이다. 공항마다 수속을 할 때면 숱한 질문을 받군 했는데 영어를 구사할줄 모르는 우리는 근근히 손형용이나 그림을 그려 가지고 그들과 뜻을 나누군 했다. 그래도 공항일군이 알아차리고 도장을 팍팍 찍어주던 일이 얼마나 고마왔던지…그리고 수속 뒤에 그들은 꼭 “땡큐베리마취(대단히 고맙습니다)”라고 했는데 거기에 우리는 인사는커녕 멍해서 대답하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이는 제딴이야 주인인양 고개부터 끄덕이군 했다. 애간장 태우는 일도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서 있은 일이다. 당시 우리 일행중 박학철이란 젊은이가 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공항일군이 우리 다른 사람은 다 대기실로 들어가게 하면서도 유독 그한테만은 그의 얼굴과 여권을 대조해 보더니 이것 저것 꼬치꼬치 캐고들면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과 뭔가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으나 아무리 손질로 형용하고 해도 그들은 그냥 머리를 가로 저으며 “노, 노”라고 할뿐이었다. 어떻게 한담?…… 바로 그 때 우리 일행 중 일어를 좀 하는 최용식이란 젊은이가 일본인 한분을 데리고왔다. 이렇게 되어 최용식과 일본인 그리고 캐나다 공항일군 3명이 3자 대화가 오고 갔는데 물론 최용식과 일본인은 일어로, 일본인과 공항일군은 영어로 대화했다. 대화끝에 그제야 공항일군은 박학철의 여권에 도장을 찍어 주더니 대기실로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그 뒤 알고보니 박학철의 여권중의 사진은 머리를 짧게 깎은 탈모사진이었지만 당시의 박학철은 머리를 길게 기른데다 여권사진을 찍을 때에 비해 몸이 많이 뚱뚱해졌고 거기에 코수염까지 무성하게 자랐으며 사진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였다면 실제 인물은 거의 40대가 돼 보였으니 공항일군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실 아무 것도 아닌 오해였다. 하지만 박학철은 물론 일행 중 단 한명도 영어를 할줄 아는 이가 없으니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외국인들이 우리 중국사람을 얼마나 비웃었겠는가?! 영어를 알면 세계 그 어디를 가든지 기본상 언어소통에는 별문제지만 다른 말 특히 조선말 같은 건 국경만 넘으면 거의 쓸모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우리 일행 중 적지 않은 친구들의 짐속에는 비누와 치약같은 것을 2년간 쓸 수 있는 분량을 갖고 간 이들이 많았다. 그들의 말로는 외국에 가면 모든 것이 비싸기에 그렇게 갖고 왔다고 하였다. 일리는 있었으나 후에 볼라니 그러한 생필품은 선박에서 모두 무료로 공급하는 것들이었으니 모두가 불필요한 것들이었다. 또한 비행기에서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그 안에 있는 비누나 휴지같은 것을 되는대로 가방속에 챙겨넣은 이들도 많았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고나 할까? 당시 비행기 승무원들이 얼마나 웃었을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창피스럽고 얼굴이 뜨거워 나군 한다. 처음 목격한 서양인세계 우리가 목적지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공항에 도착한 것은 꼭 베이징을 떠나 34시간만이었다. 헌데 베이징에서 그 전 날 아침에 떠나 이튿날 저녁에 몬테비데오공항에 도착했는데 몬테비데오공항의 달력을 보니 여전히 3월 20일이었다. 이에 우리 일행 중 몇몇은 “어제 베이징을 떠날 때 20일이었는데 왜 여긴 오늘도 20일인가” 하면서 의아해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의 시간적 차이를 모르는 그들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론만이 아닌 실제적으로 그 시간적 차이를 보는 순간, 오묘한 지구론 학설을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몬테비데오공항에는 선박회사 대리점 일군 2명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그들은 우리의 여권을 거두더니 한명 한명씩 점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공항일군들과 마찬가지로 여권과 매개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대조해 보더니 마침내 우리들더러 봉고차 2대에 나뉘여 앉게 하고는 마침내 몬테비데오의 밤거리를 헤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밤에 보는 몬테비데오의 거리었지만 매우 깨끗했다. 차창밖으로 내다 보노라니 거리의 행인들은 거의 모두가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으며 몹시 행복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특히 손을 꼭 잡고 산보하는 노부부도 가끔씩 보였는데 머리가 백발일뿐 옷차림새 같은 것은 젊은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더없이 깨끗해 보였다. 한편 당시만 해도 우리 일행 12명은 베이징에도 다녀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그야말로 “촌티”가 다분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렇듯 황홀하고도 번영스러운 외부의 세계와 갑자기 접촉하니 별의별 “촌티”가 나는 말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먼저 화룡에서 온 최××씨가 울상을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잡혀가 그냥 무리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가지 말라고 하는 어머니의 권고를 귀등으로 흘려보내고 왔는데 대체 어떻게 돼가는거야?!”라고 하며 울상을 하더니 개산툰에서 온 양××씨는 길가에 줄지런히 주차돼 있는 길다란 승용차 행열들을 보고는 “우루과이의 수도이니까 이 나라에 그 무슨 대형행사가 있는 모양이야. 그렇찮으면 어떻게 이많은 승용차들이 모일 수가 있어?!”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긴 그때 지난 세기 90연대 초기만 해도 연변밖을 크게 벗어나 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그러한 광경을 눈으로 직접 목격해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약 40분간 달리던 봉고차는 어느 한 5-6층 되어보이는 건물앞에서 멈춰섰다. 공항에서 우리를 맞던 2명의 일군은 우리를 데리고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바로 우리가 머물게 될 호텔이었다. 호텔 카운터에서 등록을 마치자 우리는 각각 자기들이 묵을 방으로 들어가 행장을 풀었다. 장기간 비행기를 타서였던지 나의 발은 몹시 부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샤워부터 하고는 슬리퍼를 끌고 카운터로 향했다. 피곤한데다 샤워까지 하고나니 목이 말랐던 것이다. 그래서 물을 좀 얻어 마시려고 말이다. 여기서 또 우스운 에피소드가 한 단락이 있다. 내가 카운터 아가씨를 보고 물을 마시는 흉을 하며 “워터”라고 말하자 그 아가씨는 “워터? 오우, 아구와”라고 했다. 그러자 나는 이에 반박이라도 하듯 “노, 워터”하며 손질발질을 해댔다. 이에 그 아가씨는 한참 나를 훑어보더니 머리를 흔들더니 따라 오라고 손짖을 했다. 그래서 따라간 결과 그것은 내가 든 방이었는데 아가씨가 곧바로 냉장고를 열더니 곧바로 물병을 꺼내주는 것이었다. 여태껏 싸루려 여관방에나 들어보았지 고급호텔에는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호텔방마다 냉장고가 있고 또한 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음료수과 과일 등이 있다는 것을 알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리고 출국할 때 영어를 좀 아는 친구를 통해 영어로 물을 “워터”라고 부른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스페인어로 “아구와”라는 것을 역시 알리 만무했다. 그러니 그 카운터 아가씨가 “아구와”라고 하자 “노”하며 “워터”라고 곱씹었으니 한심했다. 후에 알고 보니 남미의 우루과이 등 적지 않은 나라들은 한시기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기에 지금도 관방언어는 스페인언어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밤이 깊어지자 호텔 로비에는 이상하게 생긴 여자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 녀들은 우리를 보더니 눈을 껌뻑하지 않으면 스쳐지나가면서 옆구리를 툭 다쳐놓군 했다. 왜 그러는거지? 우리가 그녀들을 경계하며 피하려고 하자 그녀들은 오히려 깔깔 웃어 대면서 “꼬레안노, 꼬레안노(스페인어- 한국사람)”하면서 공개적으로 추파를 던져대는 것이었다. 그제야 소위 성개방이라는 자본주의사회의 실체를 점차 실감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가 이튿날 아침 일어나 호텔앞 광장을 거닐노라니 술에 잔뜩 취해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가씨들이 남자들의 부추김을 받으며 호텔문을 나서는 모습이 적지 않게 눈에 띄기도 했다. 그 녀들은 우리를 보더니 또 “꼬레안노, 꼬레안노”하며 지껄이더니 우리가 응대도 하지 않자 이번에는 “꼬레안노, 이 씨팔놈아!”라고 한국말까지 섞어가며 고함을 질러대는 것이었다. 아마 우리를 한국선원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우루과이에 도착한 이튿날 밤 우리는 호텔에 든 한국선원들한테 이끌려 몬테비데오에 중심가에 자리잡은 한 댄스바에 가보았는데 거기에 들어서자 초저녁에는 그저 남녀가 어울려 디스코같은 춤만 추던 것이 야밤이 되자 몇몇 나체녀들이 커다란 젖가슴을 흔들어대며 춤을 추기도 하고 자신의 성기를 이용해 여러 가지 묘기를 부리는 등 갖가지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시골 촌구석에서 여태껏 살아오다가 갑자기 다른 세계에 들어서 보았다고나 할까? 한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우리는 상가들을 돌면서 구경하던 중 고객들이 상가내를 마음대로 돌면서 물건을 고르는 등 “희한한 일”도 목격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이 곧바로 슈퍼마켓이었다. 하긴 그때 우리가 슈퍼마켓이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지라 희한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몬테비데오에 도착한 3일 후 드디어 우리는 소련선박 “프리오 카츄사”호에 편승하여 선박에 승선하여 근무하게 될 목적지인 포클랜드 해상으로 향했다. 이상한 것은 우리가 몬테비데오에 도착했을 때(3월 20일)는 중국의 초봄과는 달리 그 쪽은 가을이었으며 한창 락엽이 흩날리는 계절이었고 소련선박에 편승하여 남쪽으로 가면서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다음기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5-18
  • 中 병원간호사 스튜어디스 제복 입고 근무
    [동포투데이] 인민넷에 따르면 15일 오전, 중국 장수성 후이안시 렌수이현 중의원(江苏淮安市涟水县中医院)의 제 10 병실구역(十病区)에서 간호원들이 이쁘장한 에어 스튜어디스(空姐) 복장으로 근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곳 간호장의 소개에 따르면 이 복장은 현재 제 10 병구에서만 실험적으로 실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제 10 병실구역이 중의원의 특색을 가장 잘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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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14-05-18
  • 북한, 고층 아파트 붕괴로 다수 사망… 인민보안부장 사과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8일, 평양 시내(풍성구역)의 건설중인 23층 아파트 건물구조가 13일 부실공사로 “엄중한 사고가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났다”고 보도하고 담당 간부가 유족들에게 사과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사고현장은 평양 시내 평천구역으로 “시공을 되는 대로 하고 그에 대한 감독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일꾼들의 무책임한 처사로 엄중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국가적인 비상대책기구’가 생존자 구조 등에 임하고 있다고 전했지만 사고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17일에는 최부일 인민보안부장과 평양시의 행정, 조선로동당 간부들이 현장을 방문해 유족과 지역 주민들에게 사죄했다. 공사를 담당한 조선인민내무군 관계자는 “인민에 대한 복무관점이 바로 서 있지 않은 데로부터 공사를 날림식으로 하여 오늘과 같은 엄중한 사고를 빚어냈다”고 말했다. 북한은 언론이 국내 사고와 당국의 대응을 보도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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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14-05-18
  • 중국 공공기관, 새로운 임금제도 도입
    최근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공공기관 인사 관리 조례"가 오는 7월 1일부터 실행된다. 조례에 따르면 임금 혜택 및 사회보장 측면에서 "격려"와 "구속"이 결합된 공공기관 신 임금제도가 도입된다. 조례는 공공기관의 임금 분배에 각 업종의 특성에 맞춰 직무내용·업적·공헌도 등을 충분히 반영돼야 하며, 국가는 공공기관 직원의 임금이 정상적으로 늘어날 수 있도록 제도 고안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또 공공기관 직원의 임금 수준은 국민경제 발전과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하며 국가가 규정한 복리 혜택을 누려야 하고 공공기관 규정에 따라 근무 시간 제도 및 휴가 제도의 실행이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조례는 공공기관 직원들은 법에 보장된 사회보장 대우를 받아야 하며 법에 규정된 정년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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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4-05-18
  • 여자 아시안컵, 韓,中대표팀 월드컵 본선 진출권 획득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은 17일 베트남 호찌민 통낫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 AFC 여자 아시안컵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태국을 4-0으로 꺾으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조별리그 2연승으로 4강에 오르는 동시에 내년 여자 월드컵 본선 티켓을 확보했다. 한편 중국 대표팀도 이날 3-0으로 미얀마 대표팀을 이기고 조별리그 2연승의 기록으로 미리 월드컵 진출권을 확보했다.
    • 스포츠
    2014-05-18
  • 연변축구 잘 할 수 있는 무형산업 (6)
    옌볜 지역에서 축구는 100여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한다. 중국에서 옌볜은 ‘축구의 고향’이라고 불릴 만큼 오랜 시간 축구가 성행했다. 또한 축구는 하나의 문화로서 중국 조선족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연변 FC는 중국축구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중요한 존재다. 또한 지린성을 대표하며 중국축구무대를 주름 잡은 팀이다. 좌절, 곡절과 진통 그리고 억울함도 많이 당했으며 서기 1965년엔 전반 중국축구리그를 평정한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그렇기에 옌볜 FC는 중국 조선족의 가장 큰 자랑이다. “동포투데이”는 민함 선생을 모시고 “연변축구 잘 될 수 있는 일종 무형산업”이란 제목으로 연변축구 특별기획으로 된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연재기간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갑급리그에서의 연변팀 현황 분석도 하게 됨을 알리는 바이다. - 편집자 연변프로축구는 크게 두개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즉 1994년부터 2001년까지의 갑A 단계이고 다시 2001년부터 현재까지의 갑급단계라 할 수 있다. 모두가 알다싶이 2001년 원 갑A권 구단이던 길림오동팀이 갑B로 강급되면서 절강에 매각, 그 뒤 연변에서는 82-83 연령단계 선수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연변팀을 구성해 중국축구을급리그에 참전했는데 그 때부터 연변축구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00년 길림오동팀이 갑A에서 분전하고 있을 때 2선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팀은 조선 평양에서 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연변 주 체육국에서는 프로축구초창기 연변삼성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이호은 감독한테 이 팀을 맏겨 팀구성을 완성하게 했다. 이 팀은 2001년부터 중국축구 을급리그(3부 리그)에 참가했다. 그 때는 원 연변 현대자동차팀에서 활약하던 방근섭, 이찬걸, 이시봉 등 선수들이 주축으로 되었지만 첫해의 전적은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노장선수들의 경험과 신진들의 활약이 유기적으로 잘 배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1993년 전국운동회에서 “전면 진공 전면 방어”의 축구로 “흑마”로 부상했던 이호은 감독의 축구운영사상도 어딘가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듬해 역시 노장과 신진들과의 배합의 미숙으로 역시 갑급진출이 무산됐다. 다음 세번째 해인 2003년 연변팀은 방근섭, 이시봉과 이찬걸 등 노장들이 퇴역하고 순 신진들로 구성돼 을급리그에 뛰어들었지만 성적이 이상적이었다. 그만큼 정림국, 한송봉, 문호일, 배육문, 윤광, 한광화 등 신진들의 기량이 제고됐다고 할 수 있었다. 그해 연변팀은 을급 8강까지 진출했다. 8강전 제1라운드의 2회전에 달하는 경기에서 연변팀은 상대방을 물리치고 4강에 합류했다. 4강전에서 연변팀은 광동일지천과 상대했다. 1회전에서 연변팀은 광동일지천과 2 : 2로 비겼다. 2회전에서 이기면 연변팀의 갑급진출이 성공되는 판이었다. 2회전 전반 연변팀은 1 : 0으로 앞섰다. 당시 연변팬들은 축하파티를 마련할 준비를 했고 스포츠기자인 필자는 연변팀 갑급진출을 축하하는 언론을 써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후반들어 연변팀이 상대한테 연속 2골을 허락하며 패할줄이야. 갑급진출 무산 뉴스에 팬들은 낙심했다. 축구파티상에 오른 요리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 축하 언론을 쓴 원고지는 구겨진 채 파지통에 들어갔다. 그 뒤 이호은 감독은 사표를 냈다. 3년동안 애를 쓰며 연변축구의 갑급진출을 위해 노력했으나 역시 자신의 한계를 감안한 모양이었고 또 지치고 서글픈 모양이었다. 그 이듬해 연변 주 체육국에서는 당시 상해에서 상해천나팀의 감독을 맡고 있던 고훈 감독한테 러브콜, 이에 고훈 감독은 상해에서의 모든 우월한 조건도 송두리채 버리고 고향축구를 위해 연변으로 달려왔다. 그 이듬해 즉 2004년의 을급리그 연변홈장은 화끈한 분위기었다. 매 경기마다 수만명의 관중들이 동원, 당시 길림신문의 최승호 기자는 연변홈장을 “을급리그의 슈퍼리그 분위기”라고 표현했다. 그 해 10월 말, 연변세기팀은 을급리그 북방구의 우승(무패행진)으로 하남성 정주에서 있은 8강전에 참가했다. 당시 연변팀은 제1라운드의 2경기를 거쳐 산동구거룡팀을 격파하고 제2라운드의 2경기를 거쳐 운남 여강팀을 완승하여 갑급진출에 성공하여 연변축구의 비장한 한페지를 기록했다. 그 이듬해 즉 2005년부터 연변팀은 전국축구 갑급리그에 참전하게 됐다. 사령탑은 자연스럽게 고훈 감독이 맡게 됐다. 고훈 감독이 연변팀을 맡고 갑급리그에서 올린 성적은 다음과 같다. 2005년 갑급 5위, 2006년 갑급 6위, 2007년 갑급 6위었다. 그 시기 연변축구구락부는 선후로 3명의 주인이 교체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또한 일련의 혼란과 손실을 보았지만 구단성적은 갑급리그 참전 이래의 가장 양호했고 구단도 가장 안정되던 시기었다. 헌데 갑급리그가 결속된 뒤인 그해 11월 20일, 연변축구사상에 전례없던 변고가 생겼다. 이른바 축구계의 사업일군과 축구원로, 심지어 축구선수들까지 참여하에 “투표의 방식”으로 감독을 선거했다. 후에는 다 밝혀졌지만 이는 주체육국 골간층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당시 이호은, 조영원, 고훈 등 3명이 경쟁발언을 한 가운데 조영원씨가 가장 많은 투표수로 감독지휘봉을 받아안게 됐고 연변축구의 공로자인 고훈한테 준 투표수는 고작 3표에 불과했다. 고훈감독을 놓고 말하면 주견이 있는 축구인이었다.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면 상급 지도일군의 권고 등은 듣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정치와 개인적용망 및 그것을 둘러싼 “외교” 등이 참여하는 중국축구계ㅡ 당시 고훈은 최은택, 이장수와 더불어 이런 현상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그 해 연변에서는 조영원 감독을 내세워 이듬해 즉 2008년에 슈퍼리그 진출성공과 전국운동회 우승을 쟁취하여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하지만 그것은 근근히 욕망뿐이었다. 그 이듬해 연변팀은 시즌 초반 연속되는 부진으로 조영원 감독이 조기하차했고 전국운동회 리그도 중도에서 탈락되었으며 감독 지휘봉은 황용한테 넘어갔다가 성적부진으로 현춘호한테 다시 넘어갔으며 최종 김광주가 감독직을 대행했다. 당시 김광주는 구단의 “급시우”였다. 마지막 몇경기를 악전고투하여 갑급잔류에 성공했다. 2009년 연변팀은 김광주의 지휘하에 갑급 6위를 기록했고 그 이듬해인 2010년에는 12승 4무 8패 41점으로 갑급 제3위 차지, 갑급시즌 참여이래 가장 우수한 성적을 따냈다. 2011년, 연변팀의 박성, 김경도, 한청송 등 많은 주력선수들이 이적해갔다. 그해 김광주감독이 아무리 애를 썼지만 연변팀은 부진을 거듭한 끝에 갑급 11위에 머울었다. 그 이듬해 2012년 연변팀은 또 감독풍파가 많은 해로 됐다. 초기 정상용이 사령탑을 잡았다가 그것이 한국인 조긍연한테로 넘어갔고 마지막 그래도 또 김광주가 동산재기하여 갑급잔류에 성공했다. 그해 연변팀의 성적은 8승 5무 13패었다. 그리고 지난해인 2013년 연변장백호랑이축구구락부에서는 재차 조긍연 감독을 초빙해 뭔가 시도했으나 여전히 실패, 나중에 이광호가 뒤수습을 하여 갑급잔류에 성공했다. 그 다음은 올해 2014년의 일이다. 이호은에 이어 이광호가 재차 사령탑을 잡게 됐다. <축구논평 민함>
    • 스포츠
    201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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